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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16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예수께서는 어느 자리에 앉으셨을까? (3)

유월절! 그때가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먼길을 걸었다. 3-4월경 요단 계곡길 주변에는 들에 피는 백합이라 불리는 붉은색 아네모네 꽃들과 들꽃들이 한참 만발하였고, 겨자풀 역시 그 꽃망울을 피우고 맘껏 하나님께서 입히신 색을 입고 봄바람에 장단을 맞춰 춤을 추고 있을 때였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요단 계곡 평지길은 갈릴리 바다에서 사해로 달려가는 요단강 물을 얻을 수 있었고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을 통과하면서 민박도 하고 음식도 얻을 수가 있었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수와 그의 제자들뿐 아니라 갈릴리 지역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요단 계곡길을 따라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진: 요단 계곡길


예수께서는 요단 계곡을 따라오시다가 여리고에서 가까운 요단강 근처 베다니, 과거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며 메시야를 예비하였고, 그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았던 그 베다니를 거쳐 요단강을 건넜다. 그리곤 여리고로 들어가셔서 하룻밤을 머무신 후에 계곡길과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이전, 여리고에서 삭게오를 만나 그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그날 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삭게오의 집에서 하루밤을 지내신 후에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셨다. 



사진: 들에 피는 백합 (아네모네)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마가는 삭게오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을 기록한다. 그런후에 예루살렘 올리브산 동편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러 나귀를 타고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성에 입성하셨다. 마가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성전에 들어가셨을때 이미 해가 저물었다고 기록한다 (막 11:11).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니, 아마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여리고 중간에 있는 여인숙 (눅 10:25-37)에서 하룻밤을 더 머무신 후 다음날 예루살렘에 성전에 가셨을 수도 있다. 


최후의 유월절 만찬 직전, 이제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께 정치적 로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예수께 한 자리를 부탁한다 (마 20:20-28; 막 10:35-45). 이들은 예수께서 정치적으로 왕권을 잡을것이라는 착각을 한듯 하다. 마태는 다른 제자들 역시 은근히 한 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20:24). 


지난 3년간의 따라다님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였을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멸시하던 갈릴리 지역 출신이지만 이제 정치적으로 권세를 누려볼 상상을 하였을까? 이들은 보이지 않는 암투와 시기 그리고 높은 자리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다. 


"안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막 10:45). 



사진: 성묘 교회 (십자가의 길) 


섬기고 죽기 위해 오신 예수였지만, 제자들은 엉뚱한 예수를 기대하였고, 하나님의 영혼 구원의 목적을 두고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신 예수가 아닌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상을 지닌 또 다른 예수를 따르고 싶어했다. 


그렇게 헛된 기대에 부풀어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최후의 만찬을 예루살렘 성내에서 하게 되었다. 평소에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때 앉아서 먹을 수도 있고 의자에 앉아서 먹을 수도 있었다. 혹 바쁘거나, 의자 혹은 앉기가 불편하면 서서 먹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월절은 달랐다.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기에 이날 만큼은 반드시 누워서 식사를 해야 했다. 과거 이집트에서는 누워서 식사하는 이집트인들을 섬겼지만, 유월절 이후 이들은 자유민이 되었고 섬김의 자리에서 섬김을 받는 자리, 편안하게 누워서 식사를 즐길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월절은 해방과 자유민이 된 권리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일부러 반쯤 누워서 식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섬김받는다는 즐거움에 푹 빠지는 날이었다. 


이때 식사 자리를 배정하게 된다. 먼저 식탁은 "ㄷ"자 모양 (Triclinium)이며 그 날의 만찬을 배설한 인물이 왼쪽 끝자리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왼쪽 끝자리에는 만찬을 준비한 인물을 돕는 이가 앉는다. 세번째 자리는 그 날의 VIP가 앉게 된다. 그리고 반대편 오른편 맨 끝자리에는 그날 신분이 가장 낮은 사람이 앉는다. 





사진: 구글 이미지 켑쳐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중동의 식사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그린 것이다. 따라서 다빈치의 그림을 통해 성서의 최후의 만찬을 해석하거나,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형적인 유월절 식사 자리 순서를 요한복음 13장에 근거해서 보면 누가 예수의 좌우편에 앉았는지 그리고 반대편 끝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중 하나가 자신을 팔것이란 말씀을 하셨을때 요한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다. 따라서 왼팔로 기대어 반쯤 누워서 식사를 한다면 예수의 품에 의지하기 위해 요한은 예수의 오른편에 앉아야만 했다. 즉 요한은 예수의 식사를 돕기 위해 왼쪽 끝자리에 앉은 것이다. 



사진 (구글 이미지 캡쳐): 트리클리니움 식탁과 유월절 식사 방법



베드로는 요한의 반대편 오른쪽 맨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 그가 요한에게 머리짓을 하여 누가 예수를 팔것인지 물어보라고 한 것을 보면 요한과 베드로는 서로 마주보고 이는 자리에 앉은 것이 분명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바로 왼편에 앉았다. 예수께서 한 조각의 빵을 유다에게 주었다고 요한은 기록하였고 (요 13:26), 마태는 예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예수를 팔았다고 기록한다 (마 26:23). 가룻 유다가 그날 가장 중요한 손님 (the guest of honor)이었던 것이다. 


반대편 오른쪽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베드로는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가룻 유다의 자리 혹은 예수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요한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야만 했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자신이 말단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말석에 앉은 사람은 자원해서 그날 식사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의 발을 닦아 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심기가 불편할대로 불편해진, 높은 자리를 빼앗긴 베드로였기에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팔을 걷은 후에 예수와 다른 제자들의 발을 닦아 줄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진: 나사렛 수태고지 교회의 십자가 


바로 이때 예수께서 일어나셨다. 겉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하셨다. 다른 제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성서가 침묵하므로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요한은 베드로의 반응만을 기록한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요 13:6). 


씻김을 받는 자리가 아닌 씻어주는 낮은 자라에 베드로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높은 자리에 앉지못한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만을 안고 그 만찬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 한 사람 씻어주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을때 그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예수께서는 발을 다 씻어준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 13:13-17). 


사진: 베드로 통곡교회 (Servus Domini  - 주님의 종)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던 길! 그 길이 영광의 길이 되기를, 그 길이 한 권세를 차지하는 길이 되기를, 그 길이 예수와 함께 하였던 시간에 대한 금전적 정치적 보상이 되기를, 그 길이 높임을 받는 길이 되기를,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한번 드러내기를 원하였던  기대하였던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시면서 예수께서는 섬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으로 그 섬김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셨다. 


십자가없이 영광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니다! 십자가 뒤에는 영광이 아니라 섬김의 시간이 기다린다. 십자가의 섬김을 경험하였던 모든 이들에게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은 다시 겉옷을 벗고 무릎을 꿇고 섬기는 것이다. 낮아지는 것이다. 예수의 사람들에게는 높은 자리가 필요 없다. 예수의 사람들에게는 낮은 자리가 가장 영광스런 자리이다. 그 낮아짐의 자리에 주님이 계셨고, 그 낮아짐의 자리로 예수의 사람들을 초대하신다.



사진: 베드로 제사명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Feed my sh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