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석 VS 다듬어진 돌

Public Diary 2017.01.25 06:02 Posted by Israel

쉰들러 리스트. 영화의 엔딩 OST “예루살라임 셀 자하브 (황금의 예루살렘)”와 함께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들이 손에 작은 돌을 들고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 앞으로 걸어 온다. 그 돌들은 쉰들러의 묘지 비석위에 하나 둘씩 올려 진다. 왜 유대인들은 묘지에 꽃이 아닌 돌을 올려 놓을까?

 이스라엘의 돌의 나라이다. 여기 저기를 돌아봐도 돌 뿐이다. 돌은 파란만장한 이스라엘 역사와 늘 함께 하였다. 돌은 이스라엘 민족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 예루살렘은 돌-도시이다. 구도시의 옛 성은 돌산 위에 세워졌다. 영국이 오스만 투르크를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낸 뒤, 1918년에 최초 예루살렘 총독이 된 로날드 스토레스 (Sir. Ronald Storrs)경은 고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예루살렘만의 독특함을 유지하도록 베이지 색의 예루살렘 돌 (에벤 예루샬라임)을 건물 외벽에 부착하도록 하였다. 훗날 이스라엘이 독립을 한 이후에도 예루살렘은 이 건축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석양이 물들면 건물의 외벽에 부착된 돌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하여 황금의 예루살렘이라는 말을 생산해 내기도 하였다.



사진: 오스카 쉰들러의 묘

 갈릴리 역시 돌 천지이다.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께서는 목수 일을 하였다. 당시 목수는 목공보다는 석공에 가까웠다. 그 만큼 나무보다는 돌이 더 흔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석공들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정과 망치로 잡석을 다듬어서 집의 기초석을 놓고 벽을 쌓아 올렸다.

보잘 것 없는 잡석도 석공에 의해 다듬어지고 기억의 의미가 부여될 때 그 돌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특히 순례자들에게 성서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현장에 남겨진 잘 다듬어진 돌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여러 해전 성지순례를 다녀갔던 한 미국인이 이스라엘 국립 고고학 협회에 약 2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돌 하나를 보내 왔다는 뉴스가 있었다. 사연인즉, 오래 전 성지 순례를 다녀갔던 그는, 당시 가이드에게 고대 유적 발굴 현장에 있는 돌을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답은 No! 였다. 그후 그가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가이드가 발굴 현장에서 가져온 돌을 선물이라며 주었다. 당시에는 너무 기뻐서 돌을 받았지만 돌아와서는 늘 그 돌로 인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늘 마음 한구석에 돌이 묵직하게 그의 양심을 짓눌렀다.  결국 용기를 내어 그 돌을 돌려 주기로 결정하였다물론 그 돌은 유적 현장에 있던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잡석이 아닌 옛 역사의 흔적이라는 기억을 담고 있는 다듬어진 돌이었기에 뉴스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사진: 집밖에 핀 아네모네 꽃 ~~~

구약성서는 돌에 어떤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까? 구약 성서에는 276회의 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 중 여호수아 4 12절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듯 하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면서 열 두개의 돌을 취하여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돌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 선조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돌은 영원한 기억과 기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묘지에 와서 돌을 올려놓는 추모자는 망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그 돌은 추모자가 잊고 싶어하지 않는, 붙들고 싶은, 따르고 싶은 망자의 삶에 대한 기억의 소망이다. 그 추모자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 세대의 추모자 역시 그의 묘지에 돌을 올려 놓으며 그를 기억하고 기념할 것이다.

 

            
사진: 나사렛에서 찍은 목공일하는 예수님...

세상을 떠난 이후에 누군가로부터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오늘을 살면서 스스로를 깎고 다듬어서다른 이에게 웃음과 기쁨을 줄 수 있는유익을 주는 다듬어진 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잡석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사람이 만든 모든 것들은 유한한 것이니 언젠가는 잊혀지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많은 돌들이 올려져 있는 묘지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의 삶은 쪼개지고 다듬어진 향기로운 생각행동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그러하기에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의  손에 들린 기억의 돌이 그의 무덤에 쌓여가는 것이리라


사진: 실로에 핀 백합화 (아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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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예순다섯날의 사랑온도

Public Diary 2016.01.06 15:59 Posted by Israel

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달력 첫 장에는 20161. 삼백예순다섯날의 첫 시작을 알리는 가냘픈 숫자 ‘1’ 뒤로 어깨동무를 하듯 줄줄이 둘, , , 다섯서른 하룻날의 숫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날들은 내일을 예고하고, 그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겠지 라는 어렴풋한 소망을 품을 수 있어 좋다. 내일을 알리는 숫자들의 행진이 있는 달력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난다. 오래전 누렇게 빛바랜 종이 벽에 매달려 있던 습자지처럼 얇은 일력(日曆)이 있었다. 큼지막한 숫자의 일력은 그 날 하루의 날짜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력 한장 한장은 그 하루가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위급한 때 화장실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하루살이 일력은 그 하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경고음이었다.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오겠지만 그 내일이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날은 아니다. 성서는 내일이 자기 것인 양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누가복음 12:20).” 자정을 넘겨 내일이라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 그날 밤에 생명의 주인께서 그 내일의 시간을 인생으로부터 회수하신단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찾으리니이 말을 빌려준 것, 혹은 강탈당하였던 것을 되돌린다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성서의 말에 근거하여 볼 때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 빌려 쓰는 것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생은 시간의 채무자이다. 다만 그 시간을 빌려쓰는 동안에는 이자나 연체, 상환 날짜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사야 2:22)” 코의 호흡이 사라지는 그 날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유한한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시간을 무료로 빌려주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을 날이 오고 있다. 따라서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시간의 주인으로부터 빌려 쓰는 인생이기에 지금 주어진 시간, 오늘 하루, 그리고 삼백예순다섯날을 살아갈 수 있는 코의 호흡이 유지되는동안 그 하루하루를 채우는 삶의 징검다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다. 떼어낸 달력 뒤에 숨겨져 있던 덜 빛바렌 네모난 달력 자국처럼 인생의 선명한 공백만을 남기라고 시간을 빌려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겠도 시인 문인수의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처럼 얼마나 많은 인생이 공백만을 남기는 새해의 출발을 하였던가?



사진:  오병이어 교회 (갈릴리) 연자맷돌 


뜨거운 열기가 땅을 달구던 스물넷의 여름 한날. 굴곡지고 주름진 손 마디 마디에 묻어난 사랑으로 품어주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셨던 아버지의 여윈 가슴을 안고 사랑 고백을 하였다. 그날 공백만 뚜렷하게 남아있던 삶의 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야 함을 깨달았고 그것이 삶의 시간을 빌려주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십년 뒤 이스라엘행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떠날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식 날 단 한 번 신었던 구두 한 켤레만을 남기고 이 세상의 시간과 이별하셨다. 아버지의 시간은 그렇게 멈춰버렸지만 자식의 사랑고백을 안고 떠나셨다. 다들 그런다고 한다. 갑작스럽던지, 준비되었던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고 빌린 시간의 끝이 왔을 때 남기고 싶은 말 한마디는 사랑한다라고. 세월호 침몰로 희생되었던 아이들이 그 깊은 죽음의 바닷속에서 휴대전화에 남긴 메시지 역시 엄마, 아빠 사랑해!” 였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는 늦춰선  안된다. 이번 새해는 사랑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삼백예순다섯 징검다리의 이가 빠지지 않도록 매일 사랑 고백으로 채워야 한다.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어제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지워지지 않는 사랑으로 새겨야 한다. 삶의 무게가 실린 일력과 달력을 한장 한장 떼어낼 때마다 인생이 빌려쓰는 시간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허나 그 시간에 남겨진 사랑의 체온은 영원하다. 말에는 체온이 있다!’ 어느 드라마에서 들은 말이다. 정상인의 체온은 36.5도이다. 우연한 일치일까? 한해도 365이다. 그 많은 날의 정상적인 체온 유지는 오직 사랑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다. 시간과 생명의 주인 앞에 사랑으로 체온 유지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은 오늘 시작할 수 있는 사랑실천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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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에 대한 보상은 없다!

Public Diary 2014.03.18 13:25 Posted by Israel

       마가복음 10:46-52. 이 짧은 7절의 맹인 거지 바디매오 사건은 나와 우리의 "제자도"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바디매오가 보여준 제자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또 다른 맹인의 눈이 치유되는 사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벳새다의 맹인이 눈을 떴다. 예수께서는 두번의 안수를 하였고, 첫번째 안수 때 그 맹인은 눈은 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두번째 안수를 받은 후 그는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갔다. 왜 두번의 안수와 흐릿한 봄(seeing)에서 제대로 된 봄의 점진적인 과정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이 이야기의 끝으로 미루고 8-10장에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들로 넘어가자. 


      예수께서는 세번에 걸쳐서 자신이 받을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예고하셨다 (막 8:31; 9:31; 10:33-34). 이에 대해 제자들의 반응은 이러하였다. 1) 베드로는 예수께 항변하여 예수께서 걸으실 죽음의 길을 막고자 하였다 (막 8:32). 2)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도 두려워 하였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큰자인지를 쟁론하는데 바빴다 (막 9:32, 34). 3) 예수께서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향한 예루살렘 길에 들어섰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들뜬 마음으로 주의 영광중에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막 10:37).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내었다. 그들은 높은 자리를 요구할 기회를 놓친것에 대해, 그리고 그 자리가 야고보나 요한이 아닌 자신들이 앉을 자리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사진: 예루살렘 성교 교회 - 십자가의 길 


      베드로가 예수의 길을 막았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가 걸어야 할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를 두려워 할 뿐 아니라 서로 큰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막 9:35)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우편과 좌편의 영광을 요구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4-45).


      자신을 부인하라! 십자가를 져라! 나를 따르라! 섬기는 자가 되어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라!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요구하신 제자의 삶이고 길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였고 큰 자가 되고 싶었으며,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을 영광을 누리고 싶었다. 예수의 예루살렘 길은 고난을 향한. 죽음을 향한. 그리고 부활을 향한 길이었다. 제자들의 예루살렘 길은 첫째가 되려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영광의 우편과 좌편에 앉는 길이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고 주장하였다. 배. 그물. 부모. 직장을 떠나고 버린 후에 예수를 따랐다. 그러하기에 자신들의 버림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고 더 나아가 그 보상을 요구하였다. 


      한 젊은 부자가 예수께 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게 되는지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셨다 (막 10:21). 그 순간 제자들은 자신들이 버린 목록을 하나 하나 헤아렸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막 10:28). 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29)" 이라는 말로 베드로에게 응대하셨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러하기에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막 10:30)" 라는 말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은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을까? 


      그들은 예수의 길을 막았다. 그들은 첫째가 되고자 하였다. 그들은 으뜸이 되고자 하였다. 그들은 영광의 우편과 좌편에 앉고자 하였다. 그들은 그 자리가 자신들과 동행하는 다른 제자들이 아닌 자기의 자리이며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배. 그물. 부모. 직장을 다 버렸다고 하지만, 그 빈자리에 채울 그 무엇. 보상을 요구하며 예수를 따랐다. 


      여기 바디매오가 있다. 여리고의 바디매오. 마가는 그를 맹인 거지 바디매오. 길가에 앉아 있는 자로 소개한다. 그는 볼 수 없었다. 그는 거지였다. 유대교에서는 불구로 태어난 사람 혹은 불구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여겼다. 늘 죄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일 뿐이었다. 그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막 10:47). 다른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예수께서는 바디매오를 불렀다. "그를 부르라" (막 10:49).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1). 바디매오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그리고 보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그의 눈이 떠졌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막 10:52). 


      예수께서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는 질문을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하셨다 (막 10:36). 그들은 자신들의 따름에 걸맞는 보상을 요구하였다. 우편과 좌편에 앉는 영광. 예수께서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보기만을 원하였다. 


     마가는 직접적으로 여리고의 바디매오가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랐는지, 골고다 언덕의 예수와 함께 있었는지를 알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라고 기록한다. 헬라어 문법상 이 구절은 지속적인 따름이다. 그저 예수께서 여리고를 빠져나갈 때까지만 따르지 않고 그는 예수의 마지막 십자가 고난의 길에 동참한 것이다. 


      8장의 맹인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맹인은 눈이 뜬 후 점진적으로 그의 눈이 밝아졌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맹인이 아니었던 제자들은 예수를 보았고 만났다. 그러나 그들이 보았던 예수. 만났던 예수는 자신들의 필요. 기대. 그리고 보상을 해 주는 예수였다. 그 메시야는 보상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줄 메시야였다. 그들은 맹인이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예수의 길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그 맹인이 "모든 것을 밝히 본"것처럼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야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다 (행 12:2).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그의 제자들에게 요구하였다 (벧전 3:21).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즐거움과 그 영광을 전하였다 (벧전 4:13-16).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 (계 1:9). 



사진: 예루살렘 성묘 교회 - 십자가의 길 


      나와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 (엡 2:1). 죽었던 나와 우리가 새생명을 얻게 된 것은 예수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의 결과이다. 그러하기에, 예수를 따르는 나와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그 어떤 보상은 없다. 제자가 누려야 할 영광은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에 동참하는 영광이다. 그 예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부르심이 나와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다. 현세에서 그 어떤 보상의 기대 주머니를 버리지 못한.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는 나와 우리는 여전히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았던 맹인처럼 예수를 따르는 길이 아닌 나와 우리의 영광을 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따름에 대한 보상을 기대했는가? 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해 누가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라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 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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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성의 목마른 영혼을 위한 물

Public Diary 2014.01.03 12:10 Posted by Israel


이스라엘의 북쪽끝 헬몬산 자락 아래에서 남쪽 홍해까지 연결되는 90번 도로는 요단 계곡, 학명으로는 리프트 계곡이라는 계곡길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옛 랍비들은 한 여름에 요단 계곡길을 걷는 것은 마치 지옥의 아랫목에 두터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만큼 요단 계곡길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요단강 물의 증발과 뜨거운 햇볕이 만들어내는 열기가 대단한 곳이다. 겨울철에 내린 비로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푸르름을 자랑하던 겨자와 아네모네 꽃들도 요단 계곡의 여름 햇볕 아래에서는 맥을 못추고 이내 시들어 버린다. 


에어컨이 완비된 버스를 타고 90번 도로를 달리면서 바라보는 요단 계곡길은 푸른 낭만 혹은 갈색톤으로 물든 황금 들녘, 간혹 보이는 양떼들과 목자 그리고 채소밭에서 일하는 아낙네들의 목가적인 모습을 즐길수 있다. 그러나 막상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차를 타고 달리면 어서 빨리 요단 계곡을 빠져나갔으면 하는 바램뿐 주변을 여유가 없다. 그 길은 그 옛날 예수께서 걸으셨던 길이다. 그 요단 계곡 길을 따라서 어릴적부터 부모를 따라 유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적어도 일년에 3번 이상 예수께서는 요단 계곡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다. 



(사진: 요단 계곡) 


상상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그 요단 계곡길을 따라 오면서 계곡 서쪽으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사마리아 산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마치 "잔듸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꽃혀 있는 양 갈릴리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산지길을 따라 난 비교적 수월한 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갈수 없었다. 예수께서도 그 이유를 묻거나 혹은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혹은 일행중에 있던 랍비들을 통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거주민들 사이에 등을 돌리고 서로 창끝을 내밀어야 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듣고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바라만 보았던 사마리아였다. 예수의 눈에 비쳤던 사마리아 산지길은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 아니었다. 그 안에 회개와 생명의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인생들이 내일의 소망없은 백성들의 땅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 


갈릴리, 유대 광야,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사역 기간 동안 많은 군중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들은 놀랐다. 예수의 가르침에, 그들은 즐겼다. 예수의 공급하심을.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예수의 기적에. 생업을 뒤로하고 예수를 쫓았지만 해가 지중해속으로 그 빛을 감추듯 때가 되면 화호성과 따름을 뒤로 하고 등을 돌린채 돌아서는 것이 군중이었다. 어쩌면 예수의 사역은 물량주의에 가치를 두는 현대 사회, 아니 현대 교회의 가치 기준으로 볼때 철저히 실패한 사역이었다. 그는 군중몰이를 할줄 몰랐다. 군중들이 그를 따랐지만, 그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군중들이 그를 주목하였지만, 그는 스스로 군중의 주목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군중이 박수를 쳤지만, 그는 군중의 박수를 요구하지 않았다. 군중은 그로부터 받았지만, 그는 군중으로부터 그 무엇도 받지 않았다. 군중에게는 돌아갈, 그리고 쉴 수 있는 잠자리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머리 둘곳도 없었다. 



(사진: 사마리아의 한 마을) 


예수께서는 그 사역의 가치를 개인에게 두었다. 철저히 개인 중심적이었고 한 사람을 만나, 그 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변화시켰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물량주의, 성과주의의 가치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 한 영혼의 가치이다. 교회의 가치는 "양"에 있지 않다. 예배의 가치 역시 "양(Quntity)"에 있지 않다. 미가 선지자가 피를 토하듯 외쳤듯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기름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슨 가치가 있었던가? 수많은 예배의 손이 올려지는 곳에만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시골 구석에 있는 쓰러져 가는 예배당에도, 한 영혼이 있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은 계신다. 푹신 푹신하고 안락한 의자, 잘 꾸며진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에만 주님은 임재하지 않으신다. 성막이 있었던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곳은 먼지 바람이 날리는 광야였다. 구원받아야 할 한 영혼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면 주님의 임재가 있다. 





(사진: Google Image) 


만남...


그 한 영혼을 예수께서는 찾으셨다. 창세 이전에 준비되었던 그 만남을 위해... 창세 이전부터 예비하였던 죽음을 통한 구원을 위해...그 만남의 자리로 찾아 오시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오셨다. 그리고 30여년의 짧은 생애 가운데 그렇게 기다리던 그 만남의 자리로 오셨다. 


야곱의 우물...


우물속에 비치는 그 얼굴 조차도 보기 싫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주름과 햇살에 검게 그을린 얼굴, 인생의 쓰디쓴 실패와 좌절.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그런 인생. 내일 태양이 다시 떠 오르는 것이 그토록 싫었던 인생이었다. 갈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물을 마시기 위해 오지만 그 안에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갈증,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으로 인해 영혼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정오의 햇살보다 더 무겁고 더 뜨거운 삶의 가시밭길속에서 찾아온 야곱의 우물. 그녀는 혹이라도 얼굴이 우물에 비칠까 두려워 얼굴을 가린채 우물 곁으로 다가왔다. 그때 들린 목소리... 



(사진: Google Image) 


물을 요구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눈빛과 말은 그녀가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인생 도화지의 한 장면 장면들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예배가 아니었다. 그리심 산도 아니었다. 그녀의 다섯 남편도 아니었다. 우물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그녀의 삶을 채울수는 없었다.그녀가 물동이를 버린 순간. 그녀가 등을 돌려 마을로 향하는 그 순간. 마을로 뛰어들어가 자신이 만난 예수를 전하는 그 순간 여인은 자신이 예수께서 찾던 그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사진: 야곱의 우물 표지판 - 동방 정교회)


사마리아 수가성을 찾았다. 그 옛날 야곱의 우물이 있다는 동방 정교회 예배당 지하에 내려가서 그 우물 물을 마셨다. 그 여인이 마셨던, 그리고 예수께서 마셨던 그 우물 물을 마셨다. 마을 어귀에 있었을 야곱의 우물은 교회 예배당에 모셔져(???) 있었고 수가성은 이미 도시가 되어 있었다. 수가성 양 옆으로는 에발산과 그리심 산이 지금도 여호수아의 목소리를 간직한 채 서 있었다. 길 양옆으로는 바쁜 차량의 행렬들과 길거리 상인들, 그리고 상인들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치고는 제법 활기가 찬 마을이다. 그 땅에 매료되었고  또 다시 오고 싶었다. 또 다시 야곱의 우물을 찾아 그 물을 마시고 싶었다. 그저 목마른 목을 축이기 위한 물이 아닌, 한 영혼을 찾아 오셨던 예수의 갈증을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그 영혼을 향한 갈증이 없는 슬픈 나를 채찍질 하기 위해 또 다시 그 우물곁으로 가서 서고 싶다. 


겨자- 모든 씨보다 작은 씨

Public Diary 2013.02.28 21:35 Posted by Israel

봄의 전령사 "아몬드 나무꽃"이 피고 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갈릴리 바다 주변에도 아몬드 꽃이 피었고 헐몬산 아래 가이사랴 빌립보에도 아몬드 꽃이 한참 피고 있다. 아몬드 꽃과 함께 갈릴리 바다 주변과 요단 계곡 주변에 겨자꽃이 한참 피고 있다. 연노랑색의 꽃은 마치 유채꽃과 너무나 흡사하여 유채꽃인지 겨자꽃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겨자는 일년생 풀이다. 2-3월 성서의 땅에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겨자꽃을 보는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바로 이 말씀 때문일 것이다.

 

 사진: 바니아스(가이사랴 빌립보)에 핀 아몬드 나무꽃 (아몬드 나무꽃의 의미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http://www.myloveisrael.com/629 http://www.myloveisrael.com/6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31-32 참조 막 4:30-32, 눅 13:18-21).

 

모든 씨보다 작은 씨, 그러나 나무처럼 자라서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무처럼 큰 겨자가 있을 것으로 상상하였지만, 그 상상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은 연노랑색 풀이라니... 당황스럽기까지 한 이 현실을 접하면서 성서의 말씀을 이해하기란 쉽는 않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씨보다 작은 씨라는 말은 과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 (The smallist seed in the world)을 말한 것일까? 일상속에서 대화를 나눌때 우리는 말하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가장 작다! 가장 크다! 가장 예쁘다! 가장 잘 생겼다! 등등 그러나 이때 "가장" 이라는 말이 세상의 모든 것과 비교하여 "가장"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화자와 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의 "가장" 이라는 말로 비교를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씨보다 작은 씨" 라고 말씀하셨을때 갈릴리 혹은 유대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이 주 청자 (main listners)들이었다. 따라서 당시 겨자를 흔히 보는 이들이기에, 그리고 그 겨자씨가 밭에 뿌리는 다른 씨들에 비해 작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들은 겨자씨가 가장 작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갈릴리 바다에 핀 겨자꽃

 

다음으로,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라는 말씀 역시 성서의 땅에서 자라는 연약한 겨자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다. 마가는 "공중의 새들이 그 그들에 깃들일 만큼 된다" 라고 했는데, 마가의 말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마가의 말은 이해가 쉽게 되지만 왜 마태와 누가는 그늘이 아니라 가지에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고 하였을까? 과연 새들이 깃들일만큼 겨자가 크게 자랄까? 구글 검색을 통해 찾아본 결과 갈릴리 골란 고원 상부에서 찍은 사진 (참조: http://dqhall59.com/israelphotosIV/mustard.htm) 을 보니 2 미터 이상 자란 겨자를 보기도 하였다. 봄이 지나고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겨자는 말라버린다. 이 경우 말라버린 겨자는 나무처럼 그 가지가 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새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쉽게 깃들일 만큼 그 가지가 강하고 큰 것은 결코 아니다. (참조http://ww2.odu.edu/~lmusselm/plant/bible/mustard.php) 따라서 마태와 누가가 말한 헬라어 kataskenoun 은 어쩌면 마가의 말대로 그늘에 깃들인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겨자씨의 비유에서 예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메세지는 천국에 관한 것이었다. "천국은 마치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라는 말로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천국" 이 말은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언급하셨던 말씀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예수께서는 다니시는 곳곳마다 천국을 전하셨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땅의 회복" 이 아닌 천국의 회복을 전하셨다. 과거 한때 최초의 인류는 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완벽한 이 땅의 천국속에 살았다. 그때의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그 천국! 하나님이 왕이신 그 나라! 하나님이 주인이신 그 나라!로의 회복을 전하셨다.

 

작은 겨자씨가 땅에 심겨지면 자라난다. 이 자라남의 신비는 창조의 신비와도 같다. 씨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농부에 의해 땅에 심겨지고, 땅속에서 썩어가면서 그 씨는 싹을 트게 된다. 햇볕과 공기, 물 그리고 바람을 맞고 받으면서 싹은 자라나게 되고 꽃을 피우게 된다. 심겨진 겨자씨처럼, 예수의 사람 역시 복음이라는 땅에, 예수라는 땅에 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심겨진 예수의 사람은 천국의 한 부분이 된다. 예수의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그 천국은 확장된다. 그 천국이 확장될수록 예수의 사람은 하나님의 주인되심과 그 분의 왕되심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진다. 땅속에 숨겨진 겨자씨가 그 형체를 잃어가듯 예수의 사람은 옛 사람의 모습을 점점 잃어간다. 그렇게 천국은 확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나 보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그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진리가 삶속에 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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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내려오세요...

Public Diary 2011.12.10 08:46 Posted by Israel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의 탄생일에 대해서 복음서 기자들과 초대 교회의 문서들은 침묵을 지킨다. 적어도 주후 200년까지 기록된 성서와 관련된 기독 문서들, 예를 들면 외경이나 교부(The Church Fathers)들의 글은 예수의 탄생일에 대한 언급도 없고 절기로 지켰다는 기록도 없다. 주후 3세기로 접어들면서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탄생일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 듯 하다. 그러면서 탄생일에 대한 추정을 하게 되고 12 25일 혹은 1 6일을 탄생일로 지키게 되었다. 성서와 주변 문서의 기록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흔히 알려진 설인 12 25일은 로마 태양신의 절기인데, 이 날을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탄생일로 정했다는것이다. 왜 하필이면 태양신의 절기인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만한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어떤 자료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의 세력이 약할 당시 이방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들의 탄생 절기를 지키는 풍습이 있었다. 예수의 탄생일 제정은 이방인들이 기독교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선교 전략으로 탄생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 의하면, 예수의 탄생월을 12월로 정한것은 유대 절기인 유월절 (대략 3-4월경)에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후에 임신을 하여 12월에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이다. 히포의 어거스틴은, “삼위일체에 관해라는 글을 통해 마리아가 예수를 3 25일날 임신하였고 동일한 날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다 라는 전통에 근거해서 예수께서는 12 25일날 탄생하셨다 라고 기록하였다. 이 두번째 설은 고대 랍비 문학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탈무드에 의하면,  니산월 (유월절이 있는 달)에 세상이 창조되었고,  이 니산월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태어났으며, 이삭은 유월절에 태어났다.  게다가, 훗날 유월절 기간에 구속의 사건이 있을 것이다 라는 전통이 있었다. 이것을 교회에서 받아들여 예수의 탄생일을 추정하였을 수도 있다.

         딱딱한 이야기는 뒤로 하고, 이스라엘에서는 성탄절을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늘 이런 저런 사건 사고로 주목받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에 성탄절은 없다. 길거리 어디에서도 그 흔한 케롤송을 들을 수 없다. 예수 대신 주인공 자리를 완벽하게  꿰찬 산타의 모습과 그의 리무진 기사 붉은코 루둘프도 없다. 물론 베들레헴은 다르다. 성탄 기간이 되면 전세계에서 기독교인들로 베들레헴으로 몰려든다. 작년 이스라엘 관광성 보고에 의하면 성탄 기간 동안 약 9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할 것이라는 뉴스가 있기도 했다. 성탄절은 이스라엘이 짭짤한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에게도 성탄절은 한몫 잡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종교인들은 성탄 기간이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기독교와,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의 우두머리인 예수는 그들의 적이기 때문이다. 호텔들과 식당에서는 성탄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작년에는 종교인들이 공공연하게 경고를 하였다. 만일 성탄 장식을 하게 되면 매해마다  식당에 카슈르트 (일명 코셔) 인정 마크를 해주는 것을 취소해서 더 이상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식당의 카슈르트 인증 마크는 종교인들이 갖고 있는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카슈르트 인정 마크를 받지 못하면 종교인들이 호텔이나 식당에 출입하지 않고, 식당 영업에 매우 큰 지장이 발생하게 된다.

       종교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도 조금씩 성탄 분위기를 어설프게나마 내려는 듯 하다. 작년부터 성탄절 기간에 케이블 TV 방송에서는 산타와 루돌프의 아이콘을 화면 하단에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하이파에서는 5480개의 재활용 플라스틱 병으로 성탄절 츄리를 장식하는 파격적인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주인공이 설 자리가 없다.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달하던 시대, 유대땅 베들레헴에 오실 메시야의 탄생 예언을 입술로 읆조리면서도 그 가슴이 뛰지 않았던 서기관들, 그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의 갓난 아이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던 헤롯의 추악한 모습이 오늘날에도 그 방법과 모양은 다르겠지만 이 땅 이스라엘에 남아 있다. 아니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도 고질적인 질병처럼 숨어있다. 주인공을 환영하고 싶지 않은 바벨탑을 쌓아버린 이 시대의 비극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이 땅에 다시 오신 예수를 곱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심문관 추기경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시대의 주인공 혐오증과 무감각증을 고발한다. 대심문관은 자신이 아닌 예수가 민중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참아 견딜 수가 없었다. 예수는 먼 하늘나라에서의 경배 대상이 되어야지 땅에서의 경배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12월이다. 한해를 정리하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돌아보라는 음성을 들을때이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그 분이 주인공이 되도록 이제는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이다. 내 자리가 아니다. 그 분의 자리이다. 올해 성탄절은 그 분이 주인공 되심을 인정하였던 베들레헴의 목동들이 이땅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있기를 , 그리고 나 자신이 그 목동들 중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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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브에서 예루살렘으로

Public Diary 2011.11.25 06:59 Posted by Israel
여행은, 우리 인생이 종착점을 향한 "나그네 길"을 가고 있음과 자신의 편협한 생각 주머니에 큰 구멍을 내주고, 겸손 주머니에 통풍구 역할을 한다. "작아지는 자"의 과정에 입학하는 것이리라.... 


아침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 블루홀이 무엇인지, 얼마나 아름답기에 블루홀 블루홀 하는지 밀려오는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내 손바닥이 너무나 작았다. 그래서 택시 기사 아저씨와 딜을 했다. 20 달러만 더 주면 블루홀을 들렸다가 타바 국경으로 간단다. 왠걸...생각보다 저렴하다. 그래서 바로 블루홀로 향했다. 스킨 스쿠버들의 영원한 무덤으로 알려진 블루홀은 그 깊이만 100 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해변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로 100 미터...애구 겁나라... 어릴적 냇가에 가서 멱만 감아도 엄마의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등짝을 두들겨 맞았던 기억도 생생한지라 100 미터라는 깊이는 감히 덤비기에는 너무나 깊다.



암튼 블루홀로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를 거쳐야만 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기사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시민 혁명과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로 인해 정국이 혼란하였던 시기인지라 블루홀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치 않았다. 블루홀이라 불리는 곳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스노쿨링 장비를 빌려서 블루홀로 들어가자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세계가 펼쳐진다. 물론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저 물위에 둥둥 떠서 지나다니는 형형 색색의 물고기들과 산호초들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또 다른 세계를 보는 것이다.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큰 후회를 하였으리라. 



그렇게 두시간 정도를 바닷속 구경을 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타바를 향했다. 다하브에서 타바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다시 돌아오는 광야길은 나그네 인생을 산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라! 라는 준엄한 목소리로 내 심장을 울린다. 과거 이 광야의 세계속에 살았던, 아니 나그네의 여정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걸음이 남긴 발자취는 모래 바람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광야 인생 이라는 영적 유산을 가슴에 새기고 타바에 도착하였다. 


이제 이국경을 넘어가면 이스라엘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일상의 궤도로 다시 돌아가지만, 시내산의 경험은 내 삶의 여정에 중요한 한 점을 찍는 여정이었음을 잊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게 짧은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타바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인생 여행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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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에서 다하브로

Public Diary 2011.11.05 04:25 Posted by Israel
시내산을 두번 올라가라면 다시는 못 올라갈듯한 마음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려와서 다시 보이지도 않는 산 정상을 향해 눈을 들어 보니, 다시 오고 싶다는, 아니 다시 와야만 한다는 산의 울림이 내 마음의 귀를 때린다. 귀로 들린다면 막을 수 있겠으나, 마음에 들리는 이 산의 명령앞에 언젠가, 그래 언젠가 다시 와서 그때는 산 정상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내야지 라는 다짐을 해 본다. 
 
 


호텔에 돌아와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식사였기 때문일까? 아침이 저녁보다 훨씬 좋았다. 역시 기대치를 너무 높이면 실망도 큰법...깨끗하게 포기하고 적응하는 것도 삶의 지혜인듯 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다하브로 향했다. 다하브는 히브리어로 "자하브"라 하는데 이는 "황금" 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다하브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하는 중 휴가차 온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옛날에 배가 다하브로 들어오는데 석양에 물든 다하브가 황금색 옷을 입어서 다하브라 불렀단다.  
 
 
다하브로 가는 광야 길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물론 푸른 초장도 아니고, 시냇물이 흐르는 광야가 아니다. 들판에서 뛰어놓는 양떼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를 만날 수 있는 광야도 아니다. 그러나, 푸른 옷을 벗어버린 광야는 그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 성형을 가하지 않은 광야의 태고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광야 애찬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모세를 따라 출애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광야는 치명적으로 아름다움의 장소가 아니라 삶의 혈전이 벌어지는 곳이었으라. 가도 가도 오아시스가 보이지 않는 광야길에서 자식이 목말라 애타한다면, 부모로서 끓어오르는 분을 어떻게 삼키고 그냥 무릎을 꿇고 기도만 하였을까? 성서의 광야 생활을 안락한 흔들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읽는 것과 그 광야속에서 물  한방울을 얻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만 했던 그 백성들 사이와의 괴리감은 그들의 분노에 찬 소리지름 앞에 "믿음"이라는 심판의 자로 그들을 판단하는 내 자신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든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던 "물". 그것은 그들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 방법은 거칠었지만, 쉽게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였던 나를 돌아보라는 광야의 음성을 들으면서 다하브를 향했다. 

 

시내산에서 다하브까지는 근 2-3시간 정도가 걸렸다. 다하브가 가까울수로 점점 바닷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전에 예루살렘에서 같이 공부하던 한 유학생의 다하브 예찬이 문듯 기억난다. 다하브가 너무 좋아서 다른곳을 다 포기하고 다하브에서만 일주일 있었다! 그러나 왠걸... 다하브에 도착해서 보니 썰렁하다. 한여름이라 그런가? 이유를 물어보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면서 나라가 불안하다보니 관광객이 없단다. 시내 호텔에 짐을 풀고 다하브 다운타운으로 가보니 조금 과장해서 아무것도 없다. 문을 연 식당이 아마 두세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스킨 스쿠버 장비를 파는 곳 정도였다. 


호텔에서 다하브 다운 타운으로 가는 방법도 아주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택시를 기다렸다. 길가에 차 한대가 서 있었는데, 어린 아이를 운전대 좌석에 앉혀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했다. 다운타운을 간다고 하자 자기가 데려다 준단다. 택시가 아니기에 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의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호텔에서 나왔는데, 아마 8명은 족히 된듯 하다. 그런데 그 승용차에 다 타는 것이다. 운전석에 두 사람. 보조석에 두 사람 그리고 뒷 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다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어 다른 짚차가 멈추더니 태워다 준단다. 좋다 했더니 뒤 짐칸에 타란다. 이런... 

 

암튼 조금 더 기다려서 택시를 타고 다운 타운을 약 10분 정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가서 수영을 했지만 재미는 없었고, 블루홀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스누쿨링을 하고 싶었으나 그곳까지 가기에는 시간과 돈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였는데, 결국 사기 비슷한 것을 당해서 호텔 근처에 있는 가게 주인의 현란한 말솜씨에 거의 속아서 모터 보트를 타고 트리풀 (Three pole) 이라는 곳으로 갔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별거 없었다. 아무래도 녀석이 그냥 아무데나 간것 같다. 사전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하브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이제 내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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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등정기 2

Public Diary 2011.10.23 07:33 Posted by Israel
       사실 산하고는 별로 많이, 그렇게, 그저 그렇게 친하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등정 혹은 정복하였던 산들을 나열해 보면, 먼저 어릴적 집 뒤에 있다 해서 붙여진 뒷산, 안양의 수리산, 안양의 갈멜산, 도봉산, 그리고 교회 행사로 끌려 올랐던 치떨리는 치악산, 그리고 군복무 당시 셀수 있을 정도로 올랐던 무명산(Nameless Mountain). 이 정도면 명함을 내밀만한 수준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문제는 산의 높이이겠지만 그것까지 자세히 언급할 여백이 없다. 

* 해오름 기다리기...

      시내산의 높이는 대략 7497 피트이다. 왠 "피트" 솔직히 말해서 고도를 "피트"로 하면 상당히 높아 보인다. 구지 몇미터가 되는지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 산을 등정하기 위해 일어난 시간은 새벽 1시를 약간 넘긴 이후였다. 무릎을 꿇고 겸손히 욕조 수도꼭지에게 인사를 한후, 옷을 차려 입고 산오름 입구로 갔다. 호텔에는 우리 가족외에 7명이 더 투숙중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산 입구에 가니 어디에서 잠을 자고 왔는지 족히 1-2백명은 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내산에서 투숙하지 않고 다른 먼곳에서 팀을 모아서 온다고 한다. 그리고 가격도 더 싸다. 돈 이야기가 나오니 마음이 조금은 쓰리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했다고 위로를 하며 다른 팀에 휩쓸려서 산을 오르기 위해 입구를 통과했다. 

* 아내의 해오름 기다리기 

      그때 복병이 나타났다. 입구를 지키던 혹은 그냥 앉아 있던 베두인들이 가이드 있냐고 묻는다. 나는 바로 난 이스라엘에서 왔다. 그래서 가이드가 필요없다 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궁시렁댔다. 재차 가이드 어디있냐라는 말에, 또 다시 힘을 주어서 난 이스라엘에서 와서 가이드가 필요없다. 그랬더니 나한테 경찰관 한테 가보라고 한다. 왠 경찰관.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것이 죄인가 싶어 당당하게 경찰관에게 가서 또 다시 한번 난 이스라엘에서 왔다. 그래서 가이드가 필요없다 했더니 딱 한마디 한다. No Guide No Mountain 기가 막힌 영어이다. Never Give Up! Never Give Up! and Never Give Up! 이라는 명언 이상으로 멋진 말이다. 


* 난 내 딸이 기도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 안타서 고마워요...스마일 낙타의 말


       바로 돈을 주고 가이드를 고용하였다. 후세인! 가이드 비용은 20달러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함께 한다고 한다. 후세인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낙타부대이다. 여기 저기서 낙타 낙타 낙타! 를 외친다. 후세인도 낙타를 타는 것이 편하다. 좋다. 그리고 빨리 간다 라고 말한다. 마치 No Camel No Top of Mountain! 이라는듯... 그러나 난 이스라엘에서 왔다. No Camel But I will stand on the Top!


*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중

       근데 이 낙타부대는 아랫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는 도중 어두캄캄한데, 갑자기 낙타! 낙타! 를 외친다. 깜짝 깜짝 놀래기도 했는데, 더 심한것도 있었다. 좁은 길가에 하얀옷을 입고 누워 있다가 갑자기 미이라가 일어나듯..."낙타 타쇼" 애구 깜짝이야!!! 이거 아주 조심해야 한다..잘못하면 간이 콩알만해질수 있고 실수로 놀라서 "예수 (Jesus)" 가인 예스 (Yes)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낙타 낙타 타낙 낙타 타낙 소리를 들으면서, 옆에서 앞에서 후세인의 눈물어린 호소. 낙타 타라...휴게소에서 뭐 사먹어라...라는 유혹을 물리치면서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휴게소는 많이 있었다. 물값도 그리 비싸지 않은 1-2불정도...산 중턱쯤 올라왔을까? 아마 2시간 가까이를 걸은듯 하다. 딸 채림이가 힘들다고 하지만, 다행히도 엎어달라고 하지 않는다...중턱까지 낙타부대가 있었지만 채림이를 태울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올라온것이 어디인데...


* 시내산에 암벽화 하나 그려놓고...


       아마 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의 다 올라왔다고 생각할때쯤 되었을때 진정한 등산가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났다. 바로 악명이 높다는 700 계단. 말이 계단이지 돌을 쌓아놓아 산 오르기를 더 힘들게 만드는 장애물들이다. 그냥 아주 힘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모세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다. 꼭 그 산을 올라가야 했냐고...산장쪽에 좀더 낮은 산도 있던데... 

       그렇게 산 정상까지 올라왔다. 산 정상에는 모세 기념교회와 함께 회교 사원이 있다. 아내와 딸, 채림이가 춥다고 회교 사원으로 들어가 있겠다고 한다. 안을 보니, 남자들뿐...괜히 들어갔다가 산에서 당장 내려가! 라는 물을 들을 수도 있다. 홈 그라운드도 아니고 원정을 왔으니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냥 버티라고 했다. 참 여기서 아내의 어록을 한마디 해야겠다. 산 정상에 올라왔을때 온갓 미사 여구로 시적 표현을 할법도 싶은데..."정상이네!" 이 한마디... 그게 다였다. 


* Attention 하세요...


       정상에서는 해오름을 기다리는 이들...성경을 읽는 이들 그리고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쪽편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잠시 한후에 해가 떠 오르기를 기다렸다. 힘들게 들고간 카메라와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부착하려는 순간...그 찰나에 갑작스럽게 집이 생각났다. 왠 집? 카메라와 삼각대를 연결시켜주는 그 이름도 알수 없는 장치를 집에, 호텔도 아니고 집에...호텔이라면 당장 뛰어 내려가서 가져오겠건만...집에 놓고 온 것이다. 그 무거운 삼각대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해오름을 보고 나서 예배를 드렸다. 무엇이든지 오르기는 힘들어도 내리막길은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법이다. 왜 이리도 빨리 내려오게 되는지 그렇게 산을 내려왔다. 오는 도중 함께 올랐던 후세인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과의 어울릴것 같지 않은 대화이지만 그에게도 복음은 필요하다. 

* 잘생긴 가이드 후세인...


       산을 내려와서 후세인에게 30달러를 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 새벽에 함께 동행해 주었는데 30 달 러를 줘도 고마울 뿐이다. 페이스북이 있다고 해서 연락처를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뭔가 잘못된 듯 하다. 사진을 보내줄 수가 없다. 페이스북의 후세인이 그 후세인인지도 모르겠다...포기했다. 그렇게 산을 내려왔다. 케더린 수도원을 방문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고 기다릴 체력도 없고 해서 포기하고 호텔로 향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 산에서 떨고 있는 중...잘 보면 비닐 봉지가 보인다..예루살렘에서부터 가져온 가방..


* 해오름을 기다리는 이들...



* 아내는 이것이 달걀인줄 알았다고... 아님 오리알..아님...공룡알이던가? 

 
 * 저기가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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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등정기 1

Public Diary 2011.10.23 02:34 Posted by Israel
        바로 아랫동네이다. 그런데 지난 8년 동안 그 동네를 먼발치에서만 바라봤지 정작 가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가보겠지 라는 안연한 생각을 하다가는 결국 그 동네에 내 신발 자국하나 못 남기겠다 싶어서, 앞뒤 재어보지 않고 결정했다. 바로 그 동네의 끝자락에 시내산을 등정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시내산의 위치를 두고 제벨 무사이냐 아니면 사우디의 라우즈 산이냐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지만, 사우디를 갈 수 있는 상황도 안되고 그렇다고 그곳이 맞다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제벨 무사 (전통적으로 인정하는 시내산)를 가기로 했다. 

 * 점심은 즉석 생우유로...
* 생우유 주지않는 젓소에게 똥침 공격... 

       새벽 3시쯤 예루살렘에서 차를 몰고 남쪽 국경인 타바를 향해 갔다. 걸리는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지만  가는 도중에 광야에서 해오름도 보고 아침 식사도 하고 나서 타바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타바 국경에서 출국 수속을 받고 (출국비가 개인당 105세겔 - 한화로 대략 3만원 진짜 비싸다) 이집트로 넘어갔다. 입국 심사를 간단하게 받고 나서 앞으로 걸어가니 택시 기사들이 여기 저기서 몰려든다. 여기서 잠깐... 정보를 제대로 입수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만을 의지하면 안된다. 듣기로는 절대로 택시를 타면 안된다. 바가지를 쓴다 였고 조금 더 걸어가면 버스가 있다 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지만 정작 도착한 곳에는 택시뿐이었고 버스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교통 수단 체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택시 정류장에서 시내산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를 보니 220 킬로미터, 생각보다 상당히 멀다. 아무튼 들은 정보에 의지해서 버스 정류장이 앞에 있겠거니 하고 짐을 끌고 아내와 딸을 뒤로 하고 앞으로 전진...택시 기사들이 따라오면 어디 가냐? 버스 없다! 라고 외쳐댔지만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콧날 세우고 앞으로 전진...근데 가도 가도 버스는 없다. 드디어 더 이상 가면 안되겠다 싶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택시 기사 왈...왜 내 말을 듣지 않냐? 버스 없다니까? 기싸움에서 Ko 패를 당하고 꼬리를 내리고 싶었지만 이제부터 흥정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나 너 택시 안탈거야? 라고 은근히 협박을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200 달러 내면 갈 수 있단다. 왠 200 달러...택도 없다. 난 한명당 20 달러해서 60 달러 이상은 절대 못준다...(220 킬로미터인데도 왠 배짱!!!) 라고 못을 쾅 박았다. 그랬더니 120달러 에서 조금 더 지나더니 70 달러까지 내려왔다. 사실 이정도면 되었다...만일 200 달러 이하로는 절대 안된다고 한들 다른 선택권이 없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곳 광야... 싯딤 나무 그늘 


       택시 기사는 70 달러로는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손님들과 동승을 해야 한단다. 오케이...그래서 다시 택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택시 기사들의 대장 격에 해당하는 사람인양 주장하는 사람이 와서 얼마동안 머무냐? 어디 어디 가냐? 를 묻는다. 2박 3일. 시내산과 다하브. 그래 그럼 200 달러에 2박 3일 택시를 이용해라. 그리고 가격은 200 달러! 머리속에서는 계산기가 굴러가고 있는데, 경험이 없으니 이게 좋은 가격인지 알 수가 없다. 이때 좋은 결정을 하는 방법은 쉽게 가는 것이다. 후회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과 딸 앞에서 째째하게 200 달러(???) 때문에 택시를 타지 못하는 못난 아빠가 되어서는 안된다 싶어서 흔쾌히 울면서 겨자를 먹으면서 오케이...

 * 시내산 아랫자락의 어린 친구들 


       함께 동승한 아랍 사람들은 이스라엘 아코에서 휴가를 왔단다. 아코하면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로 나도 여러번 가본 곳..그래서 가면서 아코 애찬을 침을 팍팍 튀겨가며 늘어놓고 금새 친구가 되었다. 약 30분 뒤에 그 친구 가족이 내렸고 이제부터는 우리 세 사람뿐이다. 기사 아저씨는 말이 없다. 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던 간식을 주니  고맙다고 한다.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 먹은 듯...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집트는 소요가 계속 되었고 관광객이 끊긴지 벌써 몇개월째 그런 생각을 하니 200 달러....로 흥정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과 이집트의 광야를 보면서 드디어 시내산에 도착하였다. 시내산 입구에 도착을 하면 케더린 수도원이 있는 마을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표를 구입한다. 뭐 일종에 입장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기억으로는 6달러 정도 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난 한 점원이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할아버지, 아주머니 안녕하세요...나는 쌀라말레쿰, 아랍어로 인사를 하고...슈쿠란 - 고맙다-으로 화답을 하고 그렇게 케더린 마을로 입장...

* 시내산에서 만난 목동 친구들

      시내산에 도착하니 산장 호텔들이 여려개가 있다. 오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한 호텔로 들어갔으나 예상외로 호텔이 좋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상외로 좋다는 말...방에 들어가니 모기들이 왠 떡이냐 라는듯 기다리고 욕실의 물은 무릎을 꿇은 자들에게만 샤워를 허락한다. 겸손을 배워야지..

      샤워를 마치니 시간이 대략 6시를 넘긴듯. 동네 구경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동네로 들어갔더니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길에서 놀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바로 포즈를 취한다. 아이들과 함께 잠시 사진도 찍고 사진를 찍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사진기도 맞겨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 마을 산 중턱을 보니 염소 몆마리가 보이고 어린 목동들이 있다. 산 중턱까지 헉헉대며 올라갔다. 여기서 중턱이라는 것은 산 아래에서 약 20 미터 정도 높은 곳...은근히 높은 곳을 기대한 분들에겐 쏘리...

*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시내산 정상이 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처음엔 거부..왜 그래 하면서 아래에서 어린 친구들을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더니 벌써 포즈를 취하기 시작한다...그렇게 그 아이들과 근 30분 정도를 보냈다. 이번엔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면 카메라를 달라고 한다. 주변의 바위들은 떨어뜨리기만 해봐라..그냥 박살을 내주지..라고 하지만 어쩌면 처음 카메라를 볼 수도 있는 아이들일 수 있기에 그냥 빌려 주었다. 이네 사진사가 된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라면서 마구 셔터를 눌러댄다....

      아쉽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근데 아이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사용한 말은 아마 두세마디 였을뿐...웃음과 손짓이면 오케이...

      배가 무진장 고팟기에 저녁 식사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날 아침에 만나를 준비하지 못한 탓에 그날 저녁 식사는 참 그랬다...그래도 어디인가 나의 위장이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이제 새벽 일찍 일어나서 시내산 등정을 하면된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새벽 1시에 깨워달라는 부탁을 하고 바로 취침...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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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예수 VS 웃지 않는 예수

Public Diary 2011.10.14 05:06 Posted by Israel

      성화속에서 만나는 예수는 우울하다. 이스라엘에 있는 기념교회들을 방문해서 혹이라도 웃는 예수의 성화가 있나 찾아보지만, 실망스럽게도 예수는 웃지 않는다.  기독 서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예수의 초상화는 구릿빛이 감도는 얼굴에 찰랑 거리는 머리 그리고 오똑 솟은 콧날과 후광이 비치는 모습이다. 과연 성화를 통해 만나는 예수와 성서의 예수는 동일 인물일까? 가끔 혹은 자주 이런 엉뚱한 (?) 생각을 해 본다. 기존의 전통을 뒤집을 용기라든가 혹은 적당한 문헌적 근거를 찾을 수는 없기에 손들고 웃으시는 예수의 성화도 있던데…” 라고 말할수는 없겠으나, 이스라엘의 광야속에서 만나는 예수는 성화속의 예수외에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같다.


 

       웃음이 없는 예수는 성화뿐 아니라,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 역시 웃음과는 거리가 먼듯하다.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의 웃음에 인색한 것이었을까? 물론 목적 지향적인 성서내용이다 보니, 이런 주변적인 이야기까지 기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복음서를 통해 예수 읽기를 하다보면, 사역 중심의 예수를 만난다. 사역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예수 읽기를 하다보니 우리 스스로 예수의 모습을 성서의 세계속에 한정한다. 과거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을 하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히자 못하겠거든…(왕상 8:27)” 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성서속의 예수가 예수의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지는 않을 것이고 성서속의 예수께서 웃지 않으셨다고, 웃지 않는 예수의 상을 만드는 것도 성서의 세계속에 예수를 한정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들 나름대로의 표현 방법 혹은 그 시대의 전통과 문화를 고려하였겠지만, 은근히 그 웃음 없는 성화를 하얀 혹은 누런 (예수 당시에는 미백 치약이 없었으니) 이빨을 드러내고 호탕하게 웃는 예수로 성형을 해 버리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성서의 세계 밖에 계신 예수를 만나는 좋은 방법들중 하나는 그 분이 걸으셨던 광야의 길을 직접 걸어보는 것이다. 광야 걷기. 아마 기억으로는 3-4번정도 광야를 오랜 시간 (대략 7-10 시간 정도) 걸어보았다. 유대 광야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성서의 세계를 벗어난 예수의 삶을 입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광야 걷기를 하면서 만나는 예수는 성화속의 예수처럼 근엄한 표정이 없다. 광야속의 예수는 구릿빛이 감도는 빛난 얼굴이 아닌 검게 그을린 주름살이 있는 얼굴이다. 광야속에서 만나는 예수는 먼지 바람을 뒤집어 쓴 머리카락과 땀내가 풀풀 나는 옷을 입고 있다. 광야속에서 만나는 예수는 샌달 사이로 드러난 거친 발과 군살 박힌 발 뒤꿈치, 그리고 가시 덤불에 찔려 상처난 종아리와 먼지낀 발톱이 있는 분이다.

사진: 광야지기 

       태양이 그 파워를 가장 자랑할때인 지난 8월초 친구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광야의 계곡을 따라 7시간 정도를 걸은 적이 있다. 흔히 예수께서 걸으셨다는 길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메마른 광야의 계곡과는 달리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웅덩이들이 있다. 작열하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도 있다. 이때가 바로 예수를 상상하기 좋은 시간이다. 아마 예수께서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실때마다 제자들과 함께 물과 그늘이 있는 그 계곡을 따라 걸으셨을 것이다. 예수뿐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흔히 계곡을 따라 걸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뜨거운 태양을 몸에 안고 광야의 길을 걸었을리는 만무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가끔 만나는 물웅덩이들은 광야의 나그네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잠시 쉬었다 간들 웅덩이가 뭐라 하지 않는다. 아마 예수께서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에 유대 광야의 계곡안 물 웅덩이가 있는 곳을 지나면서 제자들에게 옷 다 벗어! 우리 여기서 놀다 가자! 라고 하지 않았을까?” 무슨 불경건한 말인가 싶겠지만, 광야를 걸어보면 그런 상상이 전혀 엉뚱하지 않는듯 하다. 점잖게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조용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내가 그래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선생인데, 너희들과 함께 물 웅덩이에 들어갈 수 있것냐?” 라고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날 나는 종이밖의 예수를 상상하면서 옷을 벗고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았다. 마치 그 자리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하는듯한 상상의 나래를 펴가면서

 

       오래 전에 보았던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 생각이 난다. 영화는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 수도원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 문제를 다룬 소설 장미의 이름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소설은 아프리카의 끝이라 불리는 방에 보관되어 있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 2희극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4세기는 자연과학과 르네상스 철학이 발달하고 있었고 기독교 경건주의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현실 세계의 행복, 그리고 그 행복을 대변하는 인간의 웃음은 르네상스 철학과 자연과학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로 여겼으니, 현세가 아닌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수도원 경건주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웃음이라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웃음문제는 연속 살인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만약 성서의 예수께서 웃으셨다는 표현들이 있었다면 에코의 소설 내용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리고 중세 수도원의 음울하고 어두침침한 종교적 색채가 밝고 웃음이 절로 나는 색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사진: 성조지 수도원 (와디켈트) 

 

       “웃지 않는 예수 vs 웃는 예수의 상상에 대해 성서에 없는 것을 말한다고 혹자는 역정을 낼지 모르겟으나 어쩌면 우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를 신성한 너무나 신성한 예수의 상으로만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신의 아들 예수인듯 하지만 정작 그 분은 먹기를 탐하는 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죄인과 세리의 친구이고 잔치를 즐기시는 분이셨다. 잔치 분위기를 근엄한 표정으로 썰렁하게 망치는 분이 아니라 없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물에 기적을 베푸신 분이셨다. 예수의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나흘만에 무덤에서 살아 돌아왔을때 아마 예수께서는 그를 얼싸 끌어안고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덩실 덩실 춤을 추며 즐거워 하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지만,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도 웃으셨던 분이 바로 예수이다. 다시 복음서를 펼치고 그 분이 행하셨던 한가지 한가지를 읽으면서 함께 예수의 웃음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그리고 웃음의 선물을 주신 그분께 감사하고 그 웃음을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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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름에 생명을....

Public Diary 2011.09.07 10:50 Posted by Israel

네비게이션만 있으면 어느 곳이든지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세상이다그런데 난 아무래도 예외인듯 하다차에 네비게이션이 없을뿐 아니라구글맵으로 미리 갈 지역을 검색한 후에 가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세대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차를 세우기와 묻기를 반복하며 찾아간다때로는 지도책에 의지하지만 이것 마져도 확신없이 헤매이기 일수이다다행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을 잘 알려준다문제는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체 하는 아체족들이 있기 때문에 돌다리 두둘겨보는 식으로 묻고 또 묻곤한다얼마전에 예루살렘에서 약 한시간 정도 떨이진 지중해변 도시 텔아비브 욥바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함께 동행하였던 선교사 부부와 함께 욥바를 방문하고 늦은 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도중평소 길을 헤매는 병이 도졌다.


사진: We Will Return  - 여리고에 있는 열쇠 조형물입니다....

사실 나는 심각한 길치이다. 전에 학생 수련회의 선발대로 출발해서 후발대보다 한참 늦게 도착하여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을 한몸으로 받았을 정도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길치병 환자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방통행표시이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수가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시내 도로는 일방통행 투성이다. 남자의 자존심이란, 몰라도 아는체 하면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자존심을 싹둑 잘라버리고 주유소로 들어갔다. 예루살렘을 간다고 했더니 직원이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준다. 말한대로 따라 갔더니 이내 예루살렘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예루살렘이 내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길 거리 이름이었던 것이다. 화를 낼 수도,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속에 빠져버렸다. 누구를 탓하랴! 길치인 내가 매를 맞아야지.

그날 힘들게 내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무사귀한한 후 이스라엘 길거리 이름들 속에 숨어 있는 사연과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스라엘 도로명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도로 명칭과 관련된 따끈 따끈한 기사들이 뜬다. 그냥 주어진 이름은 없다. 다 크고 작은 역사가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과 갈등의 흔적들을 길거리 이름에서 조차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인기있는 길거리 이름은 자보틴스키와 헤르쩰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을 다진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들이다. 둘다 이스라엘 독립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이름은 독립한 이스라엘의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성서 인물들도 길거리에서 살아 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윗, 솔로몬, 그리고 사울등이 도로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사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인 라말라에 있는 분리 장벽....

이스라엘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유발 벤암미는 그의 블러그에 Myth and murder in Israeli street names (이스라엘 도로명에 숨겨져 있는 신화와 살인) 라는 글을 통해 이스라엘 길거리 이름을 비판하기도 한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옆동네에 프렌치 힐이라는 동네가 있다. 1967 6일 전쟁 이후에 세워진 이 동네는 과거 아랍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이 동네에는 에쩰, 하가나, 그리고 바르 코크바 라는 길거리 이름들이 있다. 이들 거리 이름의 공통 분모는 이스라엘 독립과 관련된 전쟁 영웅이나 집단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벤암미의 눈에는 무고한 생명들을 죽인 테러 집단 혹은 인물일 뿐이다. 영웅인가 아니면 원수인가? 이스라엘 길거리 이름이 된 역사적 인물들을 마냥 영웅시하기에는 현실 세상이 너무나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 참 어렵고 정답도 없다.

팔레스타인의 길거리 이름은 어떤가?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수도인 라말라의 중심 도로 명칭을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설전을 벌어졌다. 문제가 된 도로명은 에히야 아야시 (Yehiyeh Ayash)” 90년대 당시 팔레스타인 지하조직이었던 하마스에서 활동하던 엔지니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폭탄 제조 전문가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폭탄테러와 로켓포 공격을 배후에서 조정했던 인물로 1996년 이스라엘 정보 기관에 의해 암살당했다.  바로 그 폭탄테러 전문가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그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개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정부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에게 뭐라 한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대변인은 이스라엘의 길거리 이름들 중 수백개가 제 1차 중동 전쟁 (혹은 이스라엘 독립전쟁, 1948) 전후 팔레스타인들을 죽인 인물들이나 단체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는데 그런 나라가 무슨 딴지를 걸수 있냐 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길거리 이름들 중에는 손에 피를 묻힌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거리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 길거리 이름속에 숨겨진 의미를 과연 알고 있을까? 아니면 배우면서 자랄까? 그 앎과 배움은 서로를 향한 어떤 감정과 행동을 취하게 만들까? 두렵다. 성서 인물중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는 살인당함을 면할 수 있는 표를 받았다. 그의 5대손인 라멕은 자신의 손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에 살인을 면하기 위한 스스로 면죄부의 표를 매 달았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4:24). 이들이 영웅이든 살인자이든 다른 한편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들이었다. 현대판 가인과 라멕으로 길거리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 생명을 주셨던 예수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길거리 이름은 아직 없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죽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으로 생명을 주셨다. 그러나 이곳 분쟁의 땅에서는 그의 생명을 주신 이의 이름보다 피를 묻힌 이들의 이름이 길거리에서 외쳐지고 또 다른 피를 부르고 있다. 피로 얼룩진 분쟁의 담을 허물 예수 길거리가 만들어질 그 날이 손에 잡힐듯 가깝기만을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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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는 지혜

Public Diary 2011.03.07 22:10 Posted by Israel
 가 혹은 자주 곁에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늘 사용하던 것이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혹은 사라져 버렸는지 알지 못해서 진땀을 뺐던 경험들이 한 두번쯤은 있다. 예를 들면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서 시원하게 볼일을 본후에 휴지걸이를 보니 휴지 걸이 뼈다귀가 덩그러니 빛을 발하며 약을 올릴 때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한번은 학교 수업 첫 시간에 출석부에 이름과 이메일 그리고 어떤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적으라고 A4지를 돌리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흔하던 볼펜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좌우로 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니 열심히 뭔가 적고 있는 중인지라 부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혈서 쓰듯이 손가락을 깨물수도 없는 일인지라 눈 앞에 보이는 친구들이 쥐고 있는 볼펜을 향해 열열한 짝사랑을 하다가,  수업 끝난 후에 가서 적어본 경험이 있기도 하다. 



 사진: 에일랏을 향해  내려가는 길에 만난 마라톤 선수들...아직도 모른다. 왜 이 선수만 홀로 뒤로 달려 가는지...경기가 거의 끝나 가는 시간이 되어 차량 운행을 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방한 시간에 혼자서 뒤로 달려 간다. 혹 이 선수도 과거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달리는 것일까? 왜 뒤로 달리세요?????? :)


함께 있기에 소중한 줄 모르다가 비싼 수업료를 주고 깨달은 것이 있다. 최근 비바람이 몰아치던 새벽에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였다. 운전석 사이드 미러가 더 이상 일하기 싫다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아니..일 하기 싫으면 미리 경고를 하던가, 딜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몇년 동안 잘 섬겨주더니 갑자기 스스로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늘상 다니는 길이고 특별히 부딪힐 만한 것도 없는 길인데, 게다가 사이드 미러에게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 놈이 스스로 중대한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그 길을 다시 돌아보고 돌아보아도 사이드 미러가 그 무엇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는지를 알 수가 없다. 암튼 사이드 미러가 이별을 고한 순간부터 시작해서 전에 알지 못했던, 그리고 신경 쓰지 않았던 사이드 미러의 소중함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임시 방편으로 거울을 부착하고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며칠을 버텼지만 아침마다 차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새것으로 달아주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새것으로 사려고 여기 저기를 알아보니, 모델이 구식이라서 쉽게 구할 수 없단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발품을 팔아서 어렵사리 겨우 하나를 구해서 겸손히 인사를 드리고 그 귀한 사이드 미러님을 장착하였다. 그때 깨달았다. 그 동안 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는데 스스로 생명을 다한 사이드 미러가 마치 "뒤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요!!!" 라는 메아리를 내 귀에 남기고 떠난듯 하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앞 일에 대한 궁금함, 기대반 걱정반으로 이것 저것 두들겨가며 계산해 가며 발을 내딛지만, 정작 뒤를 돌아보는 삶의 지혜에 대해서는 영양 실조에 빠져 있었다. 


사진: 에일랏을 101 Km 남겨놓고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보니...애구 갈 길이 머네... 그나마 제일 가까운 곳이 페트라가 28 Km  인데,  문제는 국경 넘어 요르단에 있다는 것...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앞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에게 가끔은 거꾸로 가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난다.  40 고개를 넘어가면서, 이제는 가끔 뒤를 돌아 볼 수 있는 삶의 사이드 미러가 필요한 시기가 된 듯하다. 가끔은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일그러진 삶의 초상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를 볼 수 있는 삶의 사이드 미러가 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긴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전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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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틈속에 숨쉬는 소망

Public Diary 2010.12.24 00:34 Posted by Israel


수신인: 하나님 하나님께 이 편지를 전달해 주세요.

        예루살렘 구도시내에 있는 통곡의 벽(서쪽 벽)은 세계 곳곳에서 배달된 하나님께 드리는 편지들이 배달되는 곳이다. 해마다 익명의 편지들이 예루살렘 중앙 우체국에 배달이 되고 우체국 직원들은 이 편지들을 모아서 통곡의 벽, 돌틈 사이에 꽂아 준다 

        언제부터 통곡의 벽 돌틈 사이에 소망을 담은 작은 종이들을 끼워 놓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듯 이런 전통이 생기게 된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18세기경 모로코에 살았던 아줄라이라는 신실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서 공부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의 스승 오르 하카임은 아줄라이에게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서쪽벽 돌틈 사이에  (통곡의 벽)에 자신이 쓴 기도 편지를 꼭 꽂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줄라이는 그 편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외투에 바늘질을 해서 꼬맨 후 예루살렘을 행해 출발한다.

         한참을 걸려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그는 성서 공부에 전념하다 보니 스승의 부탁을 까맣게 잊게 된다.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였고 성서 공부에도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중 잊고 있었던 스승의 편지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급히 자신의 외투를 찾아 그 안에 부착되어 있는 편지를 서쪽 벽의 돌틈 사이에 꽂아 놓는다.

           그 다음날, 성서 공부시간에 랍비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는데 아무도 그 답을 하지 못하였다. 마침 그 전날 밤 아줄라이는 그 질문과 관련된 성서 본문을 읽었었고 정답을 말한다. 또 다른 질문에도, 아줄라이는 정확하게 그 답을 말하게 된다. 랍비는 아줄라이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를 묻지만, 그 자신 조차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줄라이는 혹시 서쪽 벽의 돌틈 사이에 꽂아 놓은 스승의 편지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수업을 마친 후 서쪽 벽에 가서 스승의 편지를 빼서 읽어 보았다. “하나님 사랑하는 아줄라이가 예루살렘에서의 공부를 성공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돌틈 사이의 기도는 바로 아줄라이를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 전설같은 이야기가 서쪽 벽 돌틈 사이에 소망을 담은 기도 제목을 넣게 된 기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서 역시 이 서쪽 벽 돌틈 사이에 소망의 기도 제목을 넣게 된 사연의 이유를 알려주는 듯 하다. 솔로몬은 7년에 걸친 성전 공사를 완성한 후, 백성들이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왕상 8 22절 이하). 솔로몬은,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그 간구함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기를, 범죄한 후 속죄의 기도를 성전을 향해 드릴때 그 죄를 사하시기를, 기근이나 전염병의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성전을 향해 드릴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기를 간구한다.

          솔로몬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니리 (왕상 9:3)” 라는 말씀으로 응답해 주신다. 훗날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그 성전을 지탱하던 옹벽 역할을 하던 서쪽 벽이 남아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서쪽 벽에 머물고 있으며 솔로몬에게 주셨던 응답의 약속이 유효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 약속이 있다는 서쪽 벽의 돌틈 사이에는 지금도 수만개의 기도제목들이 그 응답의 때를 기다리며 숨을 쉬고 있다.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꽂혀 있는 소망의 종이들이지만, 이 종이들도 유효 기간이 있다. 즉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응답 여부와 관계 없이 돌틈의 자리를 비워 주어야 한다. 해마다 유월절 ()과 초막절(가을)이 시작되기 직전 돌틈 사이에 있던 종이들을 빼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 사람이 종이를 넣을 자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소망의 기도 제목들은 쓰레기처럼 처리하지 않는다. 랍비들의 엄격한 감시하에 목욕으로 정결 의식을 행한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도구로 기도 제목들을 모아서 성전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에 묻어 준다.

         길어야 몇 개월 동안의 유효 기간을 지닌 소망을 담은 기도 제목들이 빼내어짐을 당하는 운명의 날, 신문지상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을 본적이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물론 들으셨다고 해서 다 “Yes”의 응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니, 어쩌면 자주 우리는 “No”라는 응답을 받을때가 있다. 그러나, 응답 여부를 떠나서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성지 순례의 경우가 아니고는 서쪽 벽은 자주 방문할 수 없다. 소망을 담은 기도 편지를 서쪽 벽 돌틈 사이에 끼워 넣고 싶다면 다음 사이트 (http://www.aish.com/w/note/) 를 방문해서 기도 내용을 쓰면 된다.  그러면 그 기도를 인쇄해서 서쪽 벽의 돌틈 사이에 넣어주는 친절한 기도 전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 우리 마음에는 이미 성전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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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속의 이스라엘은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이 넘쳐 흐르는 땅은 아니다. 지난9월 예루살렘 구도시 내의 서쪽벽 (일명: 통곡의 벽)에서는 초막절 기간을 맞이하여 대제사장의 축복 기도 시간이 있었다.대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받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서쪽벽에 몰려들었지만, 그 날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중 하나는 바로 이른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그만큼 이스라엘은 지금 물 부족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의 경우10월 말일 날 지중해변의 도시 네타냐에는 121 mm의 많은 비가 내렸고 그 아래쪽에 있는 텔아비브 역시 51 mm가 내렸다. 또 지난 3월자 신문에는 13년만에 사해 바다의 수위가 약 13cm 정도 상승하였고 갈릴리 바다 역시 1m정도 상승하였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초막절이 훨씬 지나 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비 소식이 없다. 얼마전에 잠깐 먼지 바람을 씻을 정도로 적은 양의 이른 비가 내린 것이 전부일 뿐이다.하늘을 바라보지만,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사환이 보았던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 조차도보이지 않는, 얄미운 푸른 하늘 뿐이다. 광야의 양떼들과 염소떼들도이쯤 되면 푸른 기운이 돋는 부드러운 풀을 기대하며 들판으로 나가지만 여전히 푸석거리는 먼지 바람속에 메마르고 거친 풀을 뜯다가 해질 무렵 우리로 돌아올 뿐이다.


어제 저녁 일기 예보에 이번 주에도 비 소식이 없는 한 주간을 보낼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 멀리 떠오르는 태양빛을 가릴 만한 구름이 있는지를 살펴 본다. 내심 전날의 일기 예보가 틀리기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는오래 가지 못하고 이내 태양은 그 온 힘을 다해 광야를 내리쬐며 밤새 이슬을 머금은 풀들을 바싹 말리기 시작 한다.

비는 언제 오려나? 잠시 성서 이야기를 하지만성서속의 비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언약의 상징이다. (히브리어-게셈)는 히브리 성서에37번 등장하는데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 준수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이 바로 이다. 즉 계명을 준수하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겠다는 약속을 성서는 한다( 11:10).  그러나, 단순히 비의 내림은 계명 준수와만 관련 있지 않다. 비의 내림은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도구이다. 비는신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게 하고, 우리의 삶이 그 분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때때로, 늦어지는 비 내림은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다시 한번 꺽을 수 있는 기회를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하다. 비는 그 분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5:45).”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치 정당도 가자 지역의 비 내림을 위해 간구할 것을 모슬림들에게 부탁하였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다. 전쟁의 상처로 깊은 시름을앓고 있는 가자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 우물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비가 내리지 않고는 그 우물속의 물도 오래가지 못한다. 2006년 지하 조직이었던 하마스가 정치 정당으로 부상한 이후,  바닷물의 담수화 작업을 통한 물 공급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 후 국제 사회에서의 지원역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자 지역내의 삶은 고통그 자체이다. 그 고통을 완화시켜 줄 것은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뿐이다.

이스라엘 내의 예슈아 (예수의 히브리식 발음)를 믿는 유대인들 역시 예배 때 마다  비를 위한 공동 기도제목을 내 놓는다. 그 비가 누구 머리 위에 내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비는 골짜기를 타고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며, 그 땅을 적신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 있는 8m 높이의 보안 장벽을 넘어서, 요단 서안 지역내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에게는 미운 오리가 되어버린 정착촌의 유대인들에게도, 성전산의 모슬렘들과 그 아래 서쪽벽에서기도하는 정통 유대인들에게도 비는 동일한 축복을 허락 한다.

종교와 영토 분쟁으로 얼룩진 이 땅이지만 비를 기다리는 심정만큼은 동일하다.  이른 비가 흡족히 내리는 날, 광야의 양떼들은 들판을 뛰어 다닐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이른 비가 내리는 날,그 동안 쌓였던 슬픔과 아픔 그리고 서로를 향한 분노의 감정이 씻겨가고 잠시 나마 시름을 놓는 웃음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비가 내리는 날 나는 우산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를 맞으면서 겸손히고개를 숙일 것이다. 인생의 연약함과 그 분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늘 은혜를 베푸시는그 분의 향기나는 사랑을 찬양하리라

광야의 들꽃처럼...

Public Diary 2010.11.06 04:45 Posted by Israel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로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지난 2-3주 전에 세례 요한 빈들 수도원에 다녀왔습니다.  수도원은 광야속의 빈자로서의 삶을 산 세례 요한의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향기의 정취를 마음에 새기고 가라는 듯 외지고 거친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세속 세계의 때가 뭍은 저에게 그 날은 그 먼지들을 씻고 광야의 영성을 묵상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거친 광야의 이름 모를 들꽃처럼, 광야의 빈자로서의 삶을 산 세례 요한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가 태어났을 때,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눅 1:66)" 라는 큰 기대감을 갖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빈 들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세속 세계에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풍요로움과 안락이라는 의자를 내려왔다. 그리고 거친 광야에 그의 부드러운 발을 맡겼다. 거친 모래 바람과 쉼없이 내리쬐는 모진 햇살은 그를 이름 없는 겸손의 빈자의 삶의 향기로 그의 내면 세계를 채우게 하였다. 

기나긴 기다림과 기대감으로 그를 바라보던 이들을 향해, 그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가 찾는 메시야가 아니다!" 그는 인생들의 헛된 주목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그는 인생들의 박수와 환호성 뒤에 숨겨져 있는 교만이라는 달콤하고도 진한 유혹의 뿌리를 뽑아 버릴 줄 알았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의 도덕적 불감증을 지적하였을 때, 불의에 대한 침묵은 결코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외쳤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을때 세상은 그의 죽음을 한낱 보잘것 없는 빈자의 죽음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였다. 그는 신랑을 보고 참으로 기뻐하였던 자였다. 그는 기꺼히 자신이 취할 수 있었던 영광을 내려 놓을 줄 알았다. 그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의 삶으로 인해 충분히 행복을 누렸던 인물이다. 

세례 요한이라는 거울을 바라보면서도, 왜 우리는 그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흉물스런 모습들을 벗어버리지 못하는가?  써서는 안될 영적 가면을 뒤집어 쓴채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부끄럽고 불쌍한가? 광야의 빈자 세례 요한 그는 거울이다.


빈들 수도원 교회 전경입니다. 


광야의 빈자 - 세례 요한


빈자 세례 요한이 기거하였다는 동굴 



광야의 빈자 - 그 들꽃같은 삶의 길에 내 자신이 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잠을 설치다 일어나, 잠시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갖었다. "삶의 자리" 를 찾기 위한 기도. 내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는 어디인가? 과연 지금 이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인가? 잘못된 번지수에 앉아서 안주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어쩌면 그리스도인에게 "안주"라는 단어는 그리 어울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에 익숙한 인물이 되었다. 몇년 혹은 몆십년 전 그에게 불타던 젊은 혈기와 민족을 향한 열정은 온다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는 광야의 양치기라는 다소 목가적인 삶에 적응된, 안주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한 그에게 요구된 것은 "신을 벗는" 것이었다. 

요셉 역시, 종의 신분이었지만 그는 한 집안의 사무장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그가 성실한 노예로, 그리고 인정받는 노예로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주하는 삶에 파도가 쳤을때, 비로소 그는 안주된 삶이 아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양치기 다윗도 그런 인물이었다. 어찌보면, 이세가 그 막내 아들 다윗을 전쟁터로 보내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랑하는 자녀를 전쟁터로 보내 형들의 안부를 묻는 다는 것은 도저히 아버지로서 할 일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에게 있어 삶의 자리는 양치기가 아닌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주하는 삶을 그리 기뻐하지 않으신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애굽에서 겪었던 비 인간적인 삶과, 자녀들이 나일강에 던져지는 비극을 잊은채 그들의 배를 즐겁게 해주었던, 음식과 과일들을 떠올렸다.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삶의 안주를 그리워 하였다.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세례 요한은 철저히 그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안주를 뒤로 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인기는 그를 쉽게 유혹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와 같았다. 그는 삶의 안주를 절대 꿈꾸지 않았으며 바라지도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삶의 안정를 추구한다. 어쩌면 이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욕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삶의 안주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였다.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세상의 권력, 명예 그리고 물질이라는 삼대 요소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도시 한복판에서 삶의 안주를 버리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 그는 빈들의 사람이었으며 광야의 소리였다. 그가 외친 메시지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였다. 현대 교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메시지들은 지옥, 재림에 관한 설교, 그리고 회개와 관련된 설교란다. 아마 현대 교회에서 세례 요한이 목회를 했다면 그는 얼마가지 못해 짐을 싸야만 하는 씁쓸한 목회를 경험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큰,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 삶의 안주에서 벗어나 광야로 몰려들었다. 세리도, 창기도, 군인들도, 심지어 종교인들 조차도 세례 요한을 찾았다. 갈릴리의 어부들도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삶의 안주를 흔드는 외침에 자신을 굴복시켰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 역시 삶의 안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따름의 삶을 요구하셨다. 그가 가는 곳을 밟아가는 In His Step 의 삶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삶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의 DNA는 삶이 주는 안정감으로 인해 삶의 만족을 얻는 그런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일어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가야한다면, 그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는, 신 벗음의 삶을 살아간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 주님의 것이라고.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 분의 부르심에 겸손히 따르기를 준비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신 벗음과, 삶의 안주를 꿈꾸지 않는 삶. 




너무나 짧았던 광야 체험

Public Diary 2010.08.11 06:54 Posted by Israel
가끔식 계획에 없던 일들을 저지르곤 합니다. 때로는 허무맹랑할 수도 있지만, 무계획속에 일어나는 일들은 또다른 삶의 모험이 되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하죠. 지난 주일날 밤에 아들 하림이와 월요일날  광야에 가서 하릇밤을 자고 오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처와 채림이는 아주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하는 말이 "우린 럭셔리 한것이 좋아...호텔이 아니면 절대로 안갈 거야" 라고 말하면서 냉기류를 형성하고 가는 길을 막으려 했지만. 어찌 남자들이 저지르는 무모한 짓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진: 광야에서 야영할 준비물입니다. 탠트 두개 (매우 좋은 것 하나와 좋은 것 하나 - 매우 좋은 탠트에서 아내와 내가 잘 생각이었는데, 럭셔리를 꿈꾸는 딸 채림이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부터 찜통 더위가 시작되어 이번주까지 아주 사람의 진을 빼는 더위가 계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림이는 월요일 아침부터 광야로 가서 하룻밤 잔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들떠서 천창에 붙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지난 두주간 교회 캠프를 다녀와서 이제부터 슬슬 엄마와의 공부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그 공부를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후가 되자 드디어 수학 공부에 돌입하게 되고, 광야가 수학보다 더 무서운줄 모르고 빨리 광야로 탈출하자는 하림이의 말을 무시하면서 저녁 시간이 되도록 기다렸습니다. 내딴에, 너무 더울것 같으니 해질 무렵에 갈 생각이 있던것 것이었습니다. 근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렇게 력셔리를 외쳐대던 딸 채림이와 처가 "피자"를 시켜서 광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돈인데 환전을 하지 않은 상태라 제 수중에 오십 세겔뿐이었고 원래 하림이와 광야에서 라면을 먹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 싫다고 했습니다. 


사진: 바로 이 유대 광야 산지에서 야영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말이죠. 겁도 없이...

그러나 싸늘한 눈총을 맞은 이후 정신을 잃어가며 어쩔 수 없는 항복을 하게 되었고 딜을 하여 채림이에게 오십 세겔을 내라고 하지도 못하고 꾸워 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그 오십 세겔 받기 위해 가계부를 만들어 쓰더니 "아빠가 빌려간돈 50 세겔 돌려달라고 아주 강압적인 태도로 말했지만 아직 돌려주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피자를 시켜서 (그것도 두판 식이나) 오후 5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약 7시쯤해서 목적지인 사해 중간쯤에 있는 광야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도착하여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너무나 멋있어서 하림이는 연신 "와우..와우..."하고 감탄사를 외쳐댔고 전에 한번 와본적이 있는 처와 채림이는 뭐 이런것 같고 소리를 지르냐는 식의 여유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사진: 산 정상에 도착해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 못찍을때 하는 말이 있죠..사람의 눈만큼 좋은 것은 없다..카메라 탓...) 

산 정상에 도착하여 전망대를 향해 가는 길은 정말로 험했습니다. 몇년 전에 왔을때나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돌짝길에다가 여기 저기 움푹 패여서 차가 대신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전망대 근처에 도착 하였을 때쯤 이미 해는 지중해 속으로 들어가 쉴 준비를 하고 있었고 멀리 서쪽편은 붉은 홍조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사진: 사진으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편은 깊은 협곡입니다. 가까이 가면 떨어질까 겁나는 곳이죠. 


이게 왠일...차에서 내리고 보니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게다가 주변에 탠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길가에 우뚝 서있는 경고판 - "이곳에서 하이킹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국립공원 관계자의 허락을 받고 하이킹을 할것" 은 마치 이곳은 너희들이 올곳이 못된다 라는 식의 경고를 하는 듯 했습니다. 

사진: 이때만 해도 좋았죠..바람은 거세게 불었지만 그래도 야영을 할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결국 못이기는 척하며 아내의 말을 듣고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그제그로 내려오면서 여기 저기 빈터를 보며 이곳에서 야영을 할까 저곳에서 야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용기가 없어 속으로만 외쳐대다가 결국 엔게디 국립공원 맞은편 야영장에서 탠트를 치고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피자를 먹었습니다. 

이미 해는 지고, 하늘엔 은하수와 수없이 많은 별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고, 바다가 부르는 소리에 하림이와 함께 사해 수영을 즐겼습니다.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가끔 발을 찔러대는 돌 빼놓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기온도 적당히 따뜻한 36도 였고 물도 따뜻했습니다. 무서워서 멀리 가지 못하고 해변에서 가까운 곳에서 둥둥 떠 있었지만 입에서는 찬양이 절로 나왔습니다. 

사진: 밤 9시 30분경에 찍은 것입니다. 기온이 36도..체감온도는 약 44도 어쩌면 그 이상...

수영을 마치고 탠트로 돌아와서 이미 잘 준비를 하고 있는 럭셔리를 꿈꾸는 아내와 딸에게 침을 튀겨가며 사해 예찬을 늘어 놓았지만 그들의 냉랭한 가슴과 감정을 녹일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은 어느 덧 흘러 10시를 넘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탠트가 그 바람에 리듬을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발로 탠트를 지탱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뜨거운 사해 바람은 비웃는듯 계속 탠트를 춤추게 만들었습니다. 결국엔 뚝 하더니 탠트 지지대가 부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이때를 노리고 있던 럭셔리를 꿈꾸던 아내가 도저히 여기서 못자겠다고 조용하지만 힘있게 주장을 하였습니다. 저도 못 이기는 척 그렇게 하자고 하고 일단 탠트를 걷어서 차에 밀어 넣고 나서 그래도 아쉬워서 그럼 여기 노상에서 그냥 자자 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사진: 멀리 엔게디 국립공원 그리고 그 뒤로 유대 광야 산지가 보입니다. 눈 비비고 잘 보면 별도 몇개 보이죠 

그리고 길가에 누워서 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언제 별똥별이 떨어지나 쳐다보고 있는데 그날 따라 별들이 다 초강력 본드로 붙어 있는지 떨어지질 않는 것입니다. 겨우 하나 보았습니다. 시간은 점점 지나 12시를 넘겼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내는 서성거리며 이 양반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는 식의 눈총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그 방향을 향한 이정표뿐이죠..ㅋㅋㅋ

사실 나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남자의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1시30분쯤 되어 아내가 돌아가자고 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 역시 빨리 럭셔리한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사진: 엔게디 도로변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광야와 사해 바람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만일 광야 산 정상에서 야영을 했다면 아마 그날 밤은 정말 공포의 밤이었을 것입니다. 탠트 안에서 아마 손들고 있었겠죠. 아내와 채림이의 구박을 들으며 말입니다. 어쩌면 탠트 날라가지 않도록 밤새도록 탠트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 오늘의 부상병입니다. 다리 골절에다가 뼈가 완전 으스러진 지지대 일병입니다. 

다음엔 보름때 다시 광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야영은 싫고 밤 하늘 구경가자고 합니다. 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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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 - 마크 트웨인. 


사진: 처음 사본 기차표 --- 목적지와, 표값 그리고, 편도...그리고 날짜만이 표시되어 있다. 


간혹, 혹은 때때로, 아니 자주 우리는 자신의 말, 행동, 혹은 결정으로 인해 생긴 좋지 않은 결과를 두고, "...할껄...할껄" 하는 후회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오늘 아침에 공항에 다녀왔다. 아침에 공항으로 가기 전, 돌아오는 길에 기차를 타고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스라엘에서 처음 타는 기차이니 카메라도 들고 가서 사진도 찍으면서 와야지 하곤 카메라 가방을 들고 공항에 도착해서 일을 본 후에 오전 8시 30분쯤 공항내에 있는 기차 플렛폼을 향해 갔다. 플렛폼 앞에는 친절하게도 승차권을 살 수 있는 단말기가 설치 되어 있어서 일단 학생용 (19.5 세겔 (대략 6500원)...이 정도면 엄청 싼 편...예루살렘행 미니 버스는 가격이 50세겔..게다가 손님이 10명 채워질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바로 가지 않고 돌아 돌아 가니 대략 1시간 3-40분정도가 걸린다) 표를 산 후에 그 앞에 있는 안내소에 가서 직원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기차가 몇시에 있는지를 물었다. 왜냐? 그 주변엔 기차 시간표가 없었으니까!!! 

직원은 친절하게 9시에 기차를 타고 텔아비브로 가서 예루살렘행 기차를 타면 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술술 풀렸다. 텔아브비까지 20분이면 넉넉히 가고 거기서 좀 기다리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기차가 있겠지 생각했다. 드디어 처음 타보는 기차...그것도 보기만 했던 2층 기차를 타게 되었다. 재미있는것은 기차표에 좌석이나 시간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는 것. 아마도 빈자리가 있으면 앉고...없으면 서서 가라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시간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뭐 구지 시간을 정해놓나...급하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에서 내리고 급하지 않으면 몇 구간 더 갔다가 돌아와도 되고 그런식이 아닐까 싶다..(사실, 우리나라에 있을때, 안양의 명학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종종 수원역을 찍고 돌아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졸다가...) 순간 기차길의 최남단인 브엘세바를 다녀와? 라는 충동이 들 정도다. 그러나, 나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다... 


사진: 기차를 기다리면서...시계는 8시 45분쯤을 가리키고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문제없이 기차 여행을 즐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텔아비브에 도착해서 기차 시간표를 한참 쳐다보았다...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하니 드디어 퍼즐같은 기차 시간표가 대충 이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암튼 약 20분 정도 기다려서 예루살렘 방향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잠시 뒤에 출발한 기차는 약 10여분을 달리더니 롯 (성경의 룻다)에 도착한다는 방송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손님들은 본 정거장에서 내려서 기차를 갈아타라" 는 매우 친절한 방송도 나왔다. 이게 왠일...왜 가다 마는 거야...하며 일단 기차에서 내렸다. 


사진: 벤구리온 공항 기차역

그때가 9시 4-50분쯤 되었나 보다. 다시 기차 시간표를 보고 제대로 이해해 보리라 다짐하고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아 이게 왠일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다음 기차는 10:40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있었다. 순간 내가 미니 버스를 탔다면 벌써 집에 거의 도착 했을텐데 라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암튼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인내로 참고 기다리자...끄응... 그렇게 생각하니 시간이 더 잘 안간다...


사진: 기차안에서...사실 생각보다 별로였다...우리나라 기차는 뭐니 뭐니해도 달걀과 계란 그리고 음료수를 파는 역무원 아저씨가 있어서 좋은데 말이다. 

10시 40분...기차가 도착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라..."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이 기차가 아니라 다음 기차를 타야 한단다...허걱...황당... 당황.... 다시 기차 시간표를 이해하기 위해 그 앞에 섰다...지금까지 타고 온 기차 시간표와 대조해서 이해를 해보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기차는 11:11에 있었다..순간 뒤로 쓰러질뻔 했다. 그 기차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시간은 12:38...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 1시간을 또 타고 가야 한다. 결국 2시가 넘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순간 수학적 계산이 되면서 미니 버스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11:11 기차에 올라타서 나는 거꾸로 앉아서 차창 밖을 내다 보았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떨까? 지나간 시간을 되 돌릴 수 있다면...내 인생에 있어 후회하는 순간으로 이동해서 그 순간들을 고칠 수만 있다면...내가 잘못한 결정들을 되 돌릴 수만 있다면...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미니 버스가 아닌 기차를 탄것도 어찌 보면 미리 기차 시간 정보를 제대로 입수하지 못한 나의 미련함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삶을 살아가면서 참 후회스런 잘못들을 많이 하였다...왜 그때는 그렇게 미련하게 그런 잘못들을 저질렀을까? 아니... 지금도 난 늘 실수와 넘어짐 그리고 후회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그런 삶이 내게 주는 유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 바퀴에 익숙해진 것 같다....


사진: 시간이 벌서 9시40분이 넘어가고 있다. 기다린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타야 할 기차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속에서의 주인공처럼 나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난 정말로 그 후회스런 일들을 다 고치고 싶다... 그러나, 이 푸념들의 높은 담은 나에게 쉬운 포기 라는 메아리를 들려 준다. 적어도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내가 가장 잘했다고 믿는 것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삶은 여전히 후회 투성이의 상처들이 나겠지만...그런 인생조차도 품어주시는 그 분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님을 만나는 것도 기차를 타는 것과 비슷한 듯 하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과 목적지를 향해 간다. 내가 시간이나 목적지를 만든 것이 아니기에 난, 그 정해진 것에 따라 발을 옮겨야 하고 올라 타기만 하면 (물론 시간과 목적지를 잘 보고 말이다) 된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내가 주님을 만난 것도, 주님께서 창세 이전에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에 따라, 그분의 전적인 은혜로 나로 하여금 그 구원의 길로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기차도 없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받을 시간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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