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 로쉬 하사냐

Jewish tradition & Yeshua 2015.09.12 14:18 Posted by Israel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전에 몇번 참석하였던 야다트 예슈아 회당에서 보내는 이메일이 보였다. 로쉬 하사냐 (유대력으로 새해)가 이번 주일이란다. 이스라엘을 떠난지 5년차가 되면서 내 마음은 유대 광야에 머물고 있으려 하나 보이지 않는 광야를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거실에 걸려있는 펜던트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5)” 를 종종 읽어보면서도 혹이라도 내가 예루살렘을 잊지 않을까 하는 염려 알약을 복용할 때가 된듯 하다. 오랜동안 블러그에 글을 쓰지 못해서 마음도 불편하고 펜대, 아니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무딜대로 무뎌졌다... 야다트 예슈아에서 보내온 로쉬하사냐가 자극제가 되었을까? 전에 궁금하였던 것 한 가지! 성경에서 말하는 새해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으로 무뎌진 손감각을 갈아보련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튀쉬레 월 첫날을 로쉬 하사냐, 즉 새해의 첫날로 지킨다. 

유대력으로 일곱번째 달인 튀쉬레 월 절기는 레위기 23:23-25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으리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민수가 29장은 좀더 길게 일곱째 달 초하루 절기 규례를 기록하는데 나팔을 불어 절기를 선포하고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 절기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위 두 성경구절에서 “새해” 라는 말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나팔을 불고 노동을 하지 말고,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 뿐이다. 


랍비문학에 의하면 티쉬레 달 첫날은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날은 세상이 창조된 날! 이 날은 하나님의 왕위 즉위식이 있었던 날! 이 날은 심판의 날! 이었다. 출애굽기 12장2절에는 החדש הזה לכם ראש חדשים ראשון הוא לכם לחדשי השנה  ( 이 달은 너희에게 달의 첫 날이 머리 (첫날)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 그 첫날은 해의 첫 날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의 첫날이 되는 그 달은 출 13:4에 보면, 아빕월은 에스더 3:7와 느 2:1에 니산월로 나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더 3:7에 בחדש הראשון הוא חדש ניסן (그 첫달이 되는 니산월) 이라 기록함으로 2차 성전시대에도 니산월(아빕월)이 정월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티쉬레 월 첫 날을 정월 초하루로 지키게 되었을까? 


티쉬레 달의 첫날을 로쉬 하사냐로 지케게 된 것은 고대 근동의 영향의 영향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대 메소포타미야 지역은 가을의 시작인 Tashritu (타쉬리투, 그 뜻은 시작)과 봄의 시작인 Nisaanu (니산누, 히브리어 성서의 니산) 월 첫 날을 새해의 첫날로 지켰다. 고대 근동의 새해 절기인 Akitu- Festival (아키투 절기)는 니산누 달 첫날부터 시작해서 11일동안 지켰다. 이 절기는 바벨론의 신 마둑이  바다의 신 Tiamat 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왕의 자리로 돌아와, 성전에 앉아 오는 새해의 운명을 심판한다는 신화와 관련이 있다. 정리하면, 바벨론의 새해 절기는 봄 혹은 가을에 새해를 시작하고, 전쟁과 승리, 신의 즉위식, 심판 이라는 요소들을 포함한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서 고대 근동의 새해 절기 행사와 성서의 새해 절기 행사의 연관성을 찾아보자. 시 74편은 하나님이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피조물과의 전쟁, 세상의 창조, 하나님의 왕의 즉위식, 심판을 노래한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새해 절기와 매우 흡사한 요소들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9장에 나오는 나팔을 부는 것은 왕의 즉위식때 하는 행위이다. 이 나팔을 부는 것도 시 47편과 연관성이 있으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시 47편을 새해때 낭송한다. 


메소포타미아 아키투 절기 행사와 유대 전통의 로쉬 하사냐 절기 사이의 의미상 (세상의 창조. 왕위 즉위식. 심판)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튀쉬레 달 첫날을 새해의 첫날로 삼게 된 것이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쩌면 바벨론 유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서 새해를 튀쉬레 달에 지키기로 결정하였을 수도 있고, 니산월과 튀쉬레월, 두번의 새해를 지켰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새해의 개념과 성경의 해의 첫머리이며 달의 시작이 되는 날과는 개념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한편, 고대 유대인들은 네번의 새해를 지켰다. 그 첫번째는 니산월로 왕의 새해로 지켰으며, 이 때를 기준으로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하였다. 두번째는 엘룰월로 이 달의 첫날, 짐승들의 십일조 (10번째 짐승을 십일조로 바침)를 드리는 날이었고 이 날을 새해의 첫날로 지켰다. 세번째로 튀쉬레월은 농사를 시작하는 새해의 첫달로 안식년과 희년을 이 달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켰다. 네번째로 쉬밧트월 15일로 이 날을 나무들의 새해로 (Tu BisSh’vat)로 지켰다. 


아므튼...유대인들의 시간은 로쉬 하사냐를 향해 째각거리고 있다. 새해 시작 한달전인 엘룰월부터 열심히 회개를 하며 새해 시작과 함께 10일간의 속죄 기간을 보내며 욤키푸르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새해를 시작해때쯤되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주어지는 365일을 시작한다. 새로운듯 하지만 얼마 못가는 NEW...어느덧 가을이 되었고 성급한 나뭇잎은 겨울준비라도 하라는듯 노란색으로 물들기전에 거리를 뒹굴고 있다. 15년이 낮설었던 날이 어제같은데 벌써 16년을 준비할 때이다... 새해가 새해될 수있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떠밀림속에 그 날을 맞이하기 때문이 아니다.  NEW 라는 말에 걸맞는 그런 삶을 살으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그 분과 함께 날마다 새로운 날을 시작한다면 새해가 따로 있으랴.... 



11년전 상영되었던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Christ)"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아람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한 부분인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과 대화에서 그 둘은 라틴어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께서는 아람어와 라틴어를 일상 생활에서 주로 사용하셨을까? 


먼저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아람어의 흔적을 보자. 구약 성서들 중 일부분 (에스라, 다니엘서)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직접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주전 5세기 느헤미야는 국제 결혼을 한 유대인의 자녀가 유대 방언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보다 앞선 주전 8세기 (702-701년 사이)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때 랍사게가 히브리 방언으로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한다. 이때 예루살렘의 관직자들이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왕하 18:26)" 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 당시 고위 관직자들은 아람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일반 백성들은 아람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람어는 점점 혼성 국제어 (Lingua franca)가 되었고 예수 시대 당시에는 지금의 영어가 국제어인것처럼 아람어가 국제어로 통용되었다. 


신약성서에도 국제어인 아람어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 히브리어 / אלי אלי מטול מה שבקתני - 아람어, 마태 27:46; 막 15:34)" 이다.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헬라어 σαβαχθανι (사박다니)는 아람어를 음역한 것이다. 야이로의 죽을 딸을 살릴때도 예수께서는 아람어로 "달리다굼 (막 5:41)" 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와 당시 제자들, 더 나아가 갈릴리의 유대인 혹은 유대 사회 전체적으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예수 당시의 문헌이나 고고학적 증거들은 오히려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전 2세기경의 유대 문헌 Ben Sira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사해 사본의 기록 역시 주로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주세 2세기 경의 문서인 바르 코크바의 편지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사도행전 21:40에 보면 바울이 히브리어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행 21:40-22:2). 




사진: "탈리타쿠미" 예루살렘에 있었던 아동 구제소의 흔적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는 일상 언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종교 의식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의식을 진행하였다.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의 나사렛 회당 방문과 그가 읽었던 이사야서 두루마리 (61장)는 분명 히브리어였다.David Flusser (저명한 신약 성서시대 학자 - 히브리 대학교)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의 성서 기록물들은 성서 히브리어에 배경을 둔 랍비 히브리어의 언어적 구조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서에 나타나며, 사도 바울이 기록한 헬라어로된 서신서들 문장 구조에서도 히브리어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한편 예수께서 로마 백부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백부장이 아람어나 혹은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기 보다는 헬라어로 예수와 대화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아람어가 아닌 라틴어와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실제 예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은 당시 갈릴리 지역의 수도였던 찌포리로부터 약 12 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어느 정도 로마인들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배웠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수 있다.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는 라틴어로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와 대화를 나누지만, 영화가 상영된 후 학자들이 지적하는 영화의 언어-역사적 배경의 문제로 "라틴어"를 지적한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군병들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유대 지역에서는 라틴어 보다는 헬라어가 일상 생활에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헬라어로 사복음서를 기록한 것 역시 당시 일반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결론적으로, 유대 지역과 주변 나라에서 아람어가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며 예수께서 아람어를 구사하였다는 것을 성서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히브리어 역시 아람어와 함께 유대인들의 모국어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고 라틴어보다는 아람어와 함께 국제어로가 된 헬라어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구사하였다는 것을 신약 성서와 당시 문헌 및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 








성서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서는 늘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두루마리(Scroll)로된 성서만이 통용되었다. 제임스 쿠겔 (James Kugel)의 말을 들어 보자. 





"고대에서 성서 본문은 페이지를 넘겨 읽는 책이 아니라,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다. 한 무리의 특별 처리된 동물 가죽들이 일정한 너비로 잘리고 바느질을 통해 하나의 긴 두루마리로 탄생된다. 본문은 세로 단 (column)으로 두리마리에 기록되며 한 단에 들어가는 본문의 양은 오늘날 큰 책의 한 페이지 분량에 해당한다. 고대의 독자들은 한 단의 글을 다 읽으면 두루마리를 돌려, 다음 단이 드러나게 한 후 그 단을 읽는다. 두루마리에 적힌 본문의 순서 보존을 위해 한 끝단을 긴 나무 막대에 고정시킨 후 말아 보관한다. 때로는 양 쪽에 막대를 두어 두루마리가 한쪽 막대에서 펼쳐지는 동시에 다른 막대에서 말려지도록 하였다. 그런데 불과 몇 단밖에 되지 않는 중요한 본문은 어떻게 하는가? 나무 막대로 말아 보관하기에는 너무 적고, 그렇다고 한 장의 양피지의 형태로 두는 것은 오늘날 당신의 사무실에서 던져진 한 페이지의 복사지와 같아서, 곧 사라지거나, 구겨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 고대 서기들은 서너 개의짧은 본문들을 하나의 긴 두루마리 본문으로 통합하였다. 이 때문에 이사야와 같은 긴 책은 자기 자신의 두루마리를 가지는 반면, 호세아, 아모스 등과 가은 짧은 선지서들은 하나의 두루마리, 즉 "열둘의 두루마리"에 통합된 것이다." (James L. Kugel, "How to read the Bible," 구약성경 개론, 김구원, 강신일 역, 784-785)





우리 집에는 아마 10권 정도의 성서가 집 구석 구석에 있지만, 성서 시대 당시에 기록된 성서는 희귀한 것이었다.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수작업을 거쳐서 제작되는 성서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주로 회당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신명기 6장의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들으라!, 6:4)는 성서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귀를 통해 전달되었고, 기록된 성서 두루마리 역시 낭독자의 성서 읽기를 들음으로 그 성서의 내용이 전달 되었다. 예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이는 당시 성서 이야기가 일반인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들음" 즉 "경청"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루마리 성서는 회당에 보관 되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회당에 "아론 코데쉬" 라고 해서 성서 보관함이 회당 앞쪽에 있다. 성서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아론 코데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루마리 성서를 보관하였던 것은 분명하며, "게니자" 라는 성서 무덤이 있었다. "게니자"는 성서가 오래되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때 그 두루마리 성서를 넣어 두는 일종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두루마리 성서를 가까이 할 수 없는 유대인들이 회당에 가면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것이 성서 시대의 상황이었는데, 출애굽기 24:12에 보면,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성서 돌판을 모세에게 주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명하는 말씀이 나온다. 성서의 기록 목적들중 하나는 율법과 계명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으므로, 분명 공공 장소에서 백성들에게 율법의 내용들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신명기 31:11-13에도 공공 장속에서의 성서 낭독을 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 느헤미야 역시 공공 장소에서 토라를 백성들에게 읽어 주었다.(느 8:1-8) 사도행전 13:15에는 안식일날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정기적으로 읽었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로 보건데, 공공 장소, 특히 안식일날과 절기때 공공 장소에서 성서 낭독 시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성서를 읽었는가? 다시 신명기 31장으로 돌아가 보자. 9절 말씀에 의하면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율법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할 것을 명한다. 여호수아 8:34에서는 여호수아가 직접 성서를 백성들 앞에서 낭독한다. 느헤미야 8장에서는 학사 에스라가 성서를 읽는다. 신약 성서 시대로 넘어가서,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백성들에게 율법의 내용을 가르쳤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예수께서도 회당에서 성서를 읽었는데 (눅 4:16), 당시 예수는 랍비로 인정 받았고, 랍비들 역시 성서를 읽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유대 회당에서는 랍비들이 성서를 읽는다. 또한 바르미쯔바(계명의 아들) 의식을 행한 유대 남자아이에게도 안식일날 성서를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허락하기도 한다. 





 





최초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입었던 것은 옷이 아니라 무화과 잎이었다. 두번째 그들이 입은 옷은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준 가죽옷이었다. (창 3:21)




사진: 무화과잎 


옷! 그 첫 시작은 죄를 지은 인류가 몸을 가리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그 옷을 입었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가죽옷을 입고 있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을 떠올렸을 것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구약 성서는 옷에 대해 자주 언급을 한다. 모세오경 특별히 레위기서에 보면, 옷에 관한 율법적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제사장이 입는 옷의 규정, 옷과 부정, 그리고 남녀가 유별한 옷 등등의 내용들이 나온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던 시기는 그리스 로마 문화가 이스라엘 땅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예루살렘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원전 333년 경 알렉산더 대제가 중동 지역을 집어 삼킨 이후 그리스 문화(헬레니즘 문화)는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의 문화를 헬레니즘 문화로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훗날 기원전 167년경 마카비 항쟁과 하스모니안 왕조 (이스라엘 독립 왕조)가 당시 이스라엘 종교 문화를 탄압하던 안티오쿠스 4세를 몰아내게된 직접적인 이유 역시 헬레니즘 문화를 이스라엘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한번 뿌리를 내렸던 헬레니즘 문화는 쉽게 그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이에 더해서 로마 문화 앞에 이스라엘은 점점 그 종교와 문화적 독특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제사장 계열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로마로 유학 보내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심지어 할레 받는 것을 회피하거나 할례 받은 것을 재수술하여 무할례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옷은 어떠할까?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막 12:38)


"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요 21:7). 




사진: 유대 종교인들


신약 성서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예수 시대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옷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3장에는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그들의 경문과 옷술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경문과 옷술은 신명기 6장8절과 민수기 15장 37절 이하에 나오는 전형적인 유대 복장의 일부분이다. 아마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은 성서 전통에 따른 복장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신명기 22:5에 의하면 남녀의 의복이 철저하게 구분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이 성서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면 신명기에서 명한 의복법 역시 지켰을 것이다.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은 주로 하얀색 계통의 옷 (튜닉/ 면화)을 입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을 입었으며 공공 장소에 나갈때는 얼굴을 가렸다. 예수 시대보다 한참 이전인 창세기 24장에 보면 리브가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이삭을 만나기 전에 면박을 취하여 그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 나온다 (창 24:65) 또한 다말은 그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기 전에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옷으로 그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아 있었다. (창 38:14) 이로 보건데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여자들은 공공 장소나 남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 얼굴을 면박으로 가렸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유대 종교인 여자들은 몸을 가리는 옷을 입는다. 이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종교적인 유대 여자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와 손목까지 가리는 부라우스를 주로 입는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면 머리를 짧게 깍고 가발을 쓰거나 두건으로 머리를 가린다. 




사진: 유대 종교 여자들


유대 종교인들이 사는 길 거리를 지나다 종교심이 강한 여자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가끔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는 경우들을 보기도 한다. 일종의 면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달리야 금식일

Jewish tradition & Yeshua 2013.07.24 02:09 Posted by Israel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 (그다랴)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왕하 25:22).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다. 예루살렘은 훼파되었고 성전은 불에 타버렸다. 수많은 귀족들과 고위 관직자들,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은 것은 빈민들 뿐이었다. 예레미야는 거듭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지만 유다인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것이었다.


이방인에 의해 짓밟힌 예루살렘...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남은 빈민들을 다스릴 유다 총독을 세웠다. 왕하 25:22에 의하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 (그다랴)가 유다 땅을 관할하는 총독이 되어 유다 땅의 빈민들과 모압, 암몬 그리고 에돔땅으로 피난을 갔던 유다인들까지 불러 모아 유다 땅에 정착하도록 돕는다. 


그러던 중, 암몬의 왕 바알리으는 그달리야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에게 그달리야를 암살하도록 지시한다. 이 모의를 미리 알게 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그달리야에게 이스마엘의 암살 의도를 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달리야는 이를 무시한다. 결국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의 손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그달리야와 함께 유다 땅 재건을 하던 다른 유다인들과 갈대아 군사들 역시 함께 죽임을 당한다. (렘 41:3)


이스마엘은 이에 그치지 않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애도하기 위해 오던 80명의 애도자들을 죽인다. 이러한 이스마엘의 악을 들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군 지휘관들이 이스마엘을 처단하기 위해 기브온 물가에 모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스마엘은 암몬 땅으로 도망을 간다. 




사진: 기브온 지역


유다 사가들은 그달리야의 죽임을 의로운 자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유대력으로 새해가 되는 티쉬레이 월 3일째 되는 날 금식을 한다. 


유대력과 그레고리안 력 


 유대력 (Month)

순서 (Order) 

기간 (Length) 

 그레고리안력

 니산 (Nissan)

30 days 

3월 - 4월 

이야르 (Iyar)

29 days 

4월 - 5월 

 시완월 (Sivan)

30 days 

5월 - 6월 

 탐무즈

29 days 

6월 - 7월 

압 (Av) 

30 days 

7월 - 8월 

엘루 (Elul) 

29 days 

8월 - 9월 

티쉬레이 (Tishrei)

30 days 

9월 - 10월 

헤시반 (Cheshvan) 

8

29 or 30 days 

10월 - 11월 

키슬레브 (Kislev)

30 or 29 days 

11월 - 12월 

테벳 (Tevet)

10 

29 days 

12월 - 1월 

쉐밧 (Shevat) 

11

30 days 

1월 - 2월 

아다르 (Adar) 

12 

29 or 30 days 

2월 -3월 

아다르 II 

(윤년) 

13

29 days 

3월 - 4월 


유대 절기들과 금식일 

 절기 / 금식일

*기간 

 금식월

 로쉬 하샤나 (새해)

2 일 

티쉬레이 1-2 

 그달리야 금식일

1일 

티쉬레이 3 

욤 키푸르 (대속죄일) 

1일 

티쉬레이 10 

숫콧 (초막절) 

8일  

티쉬레이 15-22

*심카 토라 

1일 

티쉬레이 23

하누카 (수전절) 

8일 

키슬레브 25 

투 비쉬바트 (나무들의 새해/식목일)

1일

쉐밧 15

부림  

1일

아다르 15

페삭 (유월절) 

8일 

니삿 15-22

유대인 대학살 추모일 

1일 

니산 27 

현충일 

1일 

이야르 4 

독립 기념일 

1일 

이야르 5 

예루살렘의 날 

1일 

이야르 28 

샤브오트(오순절) 

2일 

시완 5-6 

타므즈 금식일 

1일 

타므즈 17 

압월 금식일 

1일 

압 9 


*금식 기간은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가 져서 별이 보이는 시간까지입니다. 

* 심카 토라는 토라 읽기를 마치고 새롭게 토라 읽기를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나의 동지들이여! 지난 기나긴 세월동안 우리들은 모든 인류의 주이시며 진리이신 하나님 한분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로마인에게 조차도 결코 종이 되지 않기로 결심하였으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결심에 대한 마지막 꽃을 피울 때가 왔습니다.

어느 누가 내일 아침 붉은 물을 들이며 떠 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밤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으로 로마인들의 손에 의해 파괴된 하나님의 성전을 통탄하며, 이를 눈물로 후대에게 증거하는 치욕스런 증인이 되기 보다 우리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마인들에게 대항하여 봉기를 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라는 것을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미 로마인들에게 무릎을 꿇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여전히 용기가 있으며 자유가 있습니다.


이제 하루 밤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이 운명으로 인해 절대로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지 여러분, 우리 자신이 저 로마인의 손에 의해 노예가 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부인들이 치욕을 당하고 자녀들이 노예로 팔리는 것을 참아 볼 수 있겠습니까? 동지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밤은 저들 스스로 우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를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손에는 칼이 주어졌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영원한 자유를 쟁취합시다. 우리와 함께 서 있는 부인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명예로운 자유인으로서의 최후를 맞이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적들로 하여금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합시다.'

 

엘아제르의 연설문은 요세푸스가 맛사다에서 살아남은 두명의 여인과 5명의 어린 아이들의 증언을 듣고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맛사다에서 위와 같은 최후를 실제로 맞이하였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을 염원하던 시오니즘주의자들에게 맛사다의 최후는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 매개체 역할을 하였습니다.

 

위 글은 요세푸스의 글을 제가 2005년 8월에 맛사다를 방문하기 전에 번역하여 동행하였던 분들에게 읽어 주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앉아 있는 것도 보며, 내가 달리는 것도 본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내가 볼 일을 보는 것도 본다. (마카리우스 벨레리우스 마르티알리스. 주후 40 - 102). 


If you shit against the walls and we catch you, you will be punished. (CIL IV. 7038; from Regio V at Pompeii) 


"만일 벽에다 소변(혹은 대변)을 보다 잡히면 그냥 안둔다" 


이 경고는 어둠이 짙게 깔린 공공 장소에서 남몰래 볼일을 보거나, 혹은 너무나 급한데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멈출 수 없는 급한 설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실례를 했어야만 했던 당신이 읽었던 공공 장소의 경고문이 아니다. 지금부터 약 2천여년전 로마의 길거리에 붙어 있던 대소변 금지 경고문이다. 


성서 시대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소변을 보았을까? 당시에도 화장실이 있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하는 동안 과연 그들은 어떻게 대소변을 보았을까? 대소변은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다. 만일 화장실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바로 길거리 여기 저기는 오물들로 넘쳐날 것이고, 약간 어두운 곳에서는 볼일 보는 사람들로, 남의 집앞에서 볼일 보다가 잡히거나 도망가거나, 신발 바닥은 오물을 밟아서 냄새가 나고...정말로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진: 에베소의 공중 화장실


성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로마 시대를 살펴보자.고대 시대 문화가 최고로 발달되었다고 하는 로마였지만 화장실 문제는 늘 골치거리였다. 물론 일부 지역에는 아주 발달된 화장실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카르타고, 폼페이, 로마, 그리고 에베소와 같은 큰 도시들에는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 사람들은 앉아서 볼일을 볼 수 있는 돌로된 변기통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물길이 있어 오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어떤 곳에는 한번에 25명, 그 보다 더 큰 곳은 100명이 한번에 볼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 특히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는 이런 화장실이 전무하였다.




사진: 로마시대에는 화장지 대신에 스펀지를 이용하였다. 


사실, 공중 화장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거리는 지저분하고 처리되지 않은 오물들이 길거리에 넘쳐났다. 화장실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길거리나, 계단 아래 혹은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으슥한 곳을 찾아 볼일을 보았다. 어쩌면 당시에는 아무데서나 볼일 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비단 로마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이 있다. 어디라고 밝힐수는 없으나, 한때 함께 생활하였던 유학생이 겨울철에 어느 선교지를 갔었는데, 길에 얼어붙은 변들이 즐비하였다고 한다. 낮 시간대 햇볕을 잘 받은 변들이 녹기 시작하면서 길거리는 온통 녹아내린 변들의 밭이였고, 화장실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어서 늘 숲속을 애용해야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서 시대에는 어떻게 볼일을 보았을까? 그 당시에도 화장실이 있었을까? 먼저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장실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살펴 보자.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려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신 23:12-14). 


고맙게도 한글 성서는 "변소" 라는 아주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히브리어 원문은 יד (야드, 손) 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야드 (손)"은 "성기(penis)"를 의미하는데, 쿰란 문서에도 볼일 보는 것을 "야드"라는 완곡한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신명기 23장에 의하면 진영 밖으로 나가서 볼일을 보라고 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영 (마카네) 밖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둔지 밖을 의미한다면 상상컨데 볼일 보기 굉장히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는 분명히 진영 안쪽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거룩한 곳이고, 대소변을 보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진영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고 작은 삽으로 덮으라고 명한다. 


사사기 3장에 나오는 모압 왕 에글론이 에훗에 의해 암살당하는 사건도 개인 화장실과 연관성이 있다.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삿 3:20)


중세 시대 당시에 귀족이나 왕은 좌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면서 방문객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헨리 3세는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헨리 3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나베레의 헨리"를 지목하였다가 극우파 수도사인 자크 클레멘트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클레멘트는 왕에게 중요한 기밀을 알리기 위해 헨리 3세를 방문하였다고 속이고 왕을 암살하는데 이때 헨리 3세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시대적 거리감은 있으나, 어쩌면 모압 왕 에글론도 에훗을 자신의 개인 화장실에 앉아서 맞이하였을 가능성을 성서 택스트에서 엿볼수 있다. 에훗이 에글론을 암살하고 도망간 후 에글론의 신하들이 왕이 있던 다락 (아마 화장실이었을듯함)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왕이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삿 3:24)"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발을 가리운다" 는 히브리어는 볼일을 보고 있다는 말의 완곡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삼상 24장에도 사울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동굴에 들어가 "발을 가리우는 (개역 개정판에는 , 뒤를 보는)" 일이 있다. 만일 "발을 가리우다"가 대변을 보다 의 완곡한 표현이 맞다면 사울은 변(dung)을 보다가 변(accident)를 당할뻔 한 것이다. 


물론 변을 보고 있는 사울의 옷자락을 자르기는 매우 어렵다. 사울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놓고 변을 보았다면 조금은 쉽게 옷자락을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컨데 사울은 어쩌면 매우 심각한 변비에 걸려 있었을 수도 있다. 사위 다윗을 죽이려고 여기 저기를 헤매고 다녔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변비에 걸려 어쩌면 동굴안에서 볼일 보는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다윗이 옷 자락을 자르는 것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상상일뿐 그 이상은 아니다.!) 


예루살렘 다윗성에서는 주전 6 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돌로 된 좌변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로 보건데 이스라엘에도 개인 화장실이 집에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예루살렘 성전밖 북서쪽에는 미크베 (정결의식탕)와 함께 화장실이 있기도 하였다. 미쉬나에 의하면 성전 밖에 있는 화장실은 열고 닫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화장실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도 하였다. 


 

 

사진: 예루살렘 다윗성에서 발견된 좌변기 


탈무드에서는 대소변을 보는 것을 매우 정한 것 (purity)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몸에서 부정한 것들을 빼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대소변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막 7:18-19). 


즉 사람이 음식을 먹고 나서 뒤로 나오는 대소변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야말로 (막 7:20-23)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바울도 대소변을 언급한다. 이번에도 한글 성경은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배설물"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헬라어 "스쿠발론" 은 빌립보서 3:8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좀더 원색적으로 쓰레기나 똥 을 의미한다.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들, 소위 말하는 그가 갖고 있던 화려한 스펙들, 세상적으로 유익하던 것들을 전부다 똥으로 여겼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7-8). 


이 글을 쓰면서, 앞으로는 볼일 볼때 내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점검해서 그것도 화장실 물과 함께 내려버려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분쟁. 사기. 수군 수군. 능욕. 교만. 자랑. 부모 거역. 배약. 무정함. 무지비함. 


이 구린내나는 변(dung)들. 암(cancer)적인 것들을 변과 함께 버리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서 가장 고상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알랑한 지식  덩어리들을 버리기를 소망한다. 



참고 문헌: First Person: Privies and Privacy by Hershel Shanks (Mar/Apr 2012)

   Roman Latrines: How the Ancient Did Their Business by Ann Olga Koloski-Ostrow (May.Jun 2004)

Jodi Magness, Stone and Dung, Oil and Spit: Jewish Daily Life in the time of Jesus. 130-144. 


1번과 2번 사진은 Biblical Archeology Society Online 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입니다. 




성서와 유대 전통 금식

Jewish tradition & Yeshua 2012.12.29 10:04 Posted by Israel

       성서속의 인물들은 여려 가지 이유들을 가지고 금식을 하였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통해 태어난 아기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때 혹이라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다 (삼하 12장). 느헤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의 중건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보를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 기도를 하였다 (느 1장). 개인적인 이유뿐 아니라 왕의 죽음 (삼상 31:13; 삼하 1:12). 전쟁 (삿 20장), 전 국민의 회개 (삼상 7:6; 욘 3장) 를 촉구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에스더 4:16) 집단적인 금식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구약 성서는 국가적으로 정해진 금식일에 대한 언급을 한다. 예를 들어, 렘 36:6에는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라고 기록되어 있고, 요엘 1:14 에도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스가랴 7:5와 8:19에는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이 변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대속죄일에도 금식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라는 표현이 두번 (레 16:29,31) 등장하는데 이는 금식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표현들이다. 


       스가랴서에서 명한 사월, 오월 그리고 칠월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도 관련성이 있다. 4월 금식은 주전 587년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 포위된 때 (왕하 25장)를 기억하며, 5월 금식은 같은 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때 (왕하 25:8-9)를 기억하며, 그리고 7월 금식은 바벨론이 유대 땅을 관활하도록 세운 그달리아의 죽음 (왕하 25:22-26)을 애도하며 국가적으로 금식을 하였다. 물론 7월 금식은 대속죄일 금식일과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신약에서 금식은 예수와 바리새인들 사이의 논쟁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이틀 (월요일, 목요일)을 금식하였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막 2:18)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눅 18:12) 라는 표현들을 통해 금식은 유대 종교인들의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유대인들이 금식을 하였던 여러 이유들 중에는 이런것들도 있다. 우기철에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 유대인들은 금식을 통해 비 내림을 간구하기도 하였고, 쿰란 공동체의 경우에는, 소수 학자들의 견해이긴 하지만, 금요일날 정기적인 금식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까지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안식일 (토요일)에는 금식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기쁨의 날이기에 이날은 공동체 예배 모임과 가족 모임을 갖고 금식이 아닌 즐거운 식탁 교제를 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랍비들은 안식일날 식사를 더 맛있게 하기 위해 금요일 오후부터는 금식을 하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유대 종교인들은 일곱번의 공식적인 금식을 한다.

 

1. 대속죄일 (욤키푸르):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 10일째 되는 날. 이 날은 공휴일이며 공적인 용무 ( public work)를 위한 차량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하고, 텔레비젼 방송도 나오지 않는다. 


2. 장자들의 금식일: 이 금식은 첫 아들들만 금식하는 것으로 출애굽때 장자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금식으로 유월절 바로 전날 금식을 한다. 


3.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포위된 날: 주전 587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날을 기억하며 금식을 한다. 


4. 예루살렘 성벽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날: 유대력으로 4월에 해당하는 달 (타무즈 17일)로 금식을 한다. 


5. 예루살렘 성전 파괴일: 대속죄일 다음으로 중요한 금식일로 제 1 & 2 성전 파괴일을 기억하며 금식한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제 1 성전과 2 성전 파괴가 동일한 날 행해졌다고 믿고 있다. 


6. 그달리야 암살일: 왕하 25장에 나오는 그달리야가 암살 당한 사건을 기억하며 금식을 한다. 


7. 부림절 하루 전날 금식: 아드르 13일 (2월이나 3월중) 부림절기 하루 전날 금식을 한다. 



kai« e˙pedo/qh aujtwˆ◊ bibli÷on touv profh/tou ∆HsaiŒou kai« aÓnaptu/xaß to\ bibli÷on eu∞ren to\n to/pon ou∞ h™n gegramme÷non: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눅 4:17)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여 안식일날 회당에 가셨다. 누가는 눅 4:16에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kata» to\ ei˙wqo\ß aujtwˆ◊)" 라는 표현을 통해 안식일날 예수께서 늘 회당에서 가르치셨음을 말해준다. 한 안식일날 예수께서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 가셨고 성서를 읽으려고 서셨는데, 예수께서 회당장에게 "어떤 성서 두루마리"를 가져오라고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회당장은 예수께 이사야서를 갖다 주었다. 


우리말 성서에서는 "책을 펴서" 라고 되어 있지만, 당시 예수께서 읽으신 것은 책 (코덱스)이 아닌 두루마리 성서였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들중 이사야서 사본은 그 보존도가 아주 우수하였는데, 두루마리의 길이가 8미터 40센티미터에 가깝고 1장에서 66장까지가 하나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아마 예수께서 읽으셨던 이사야서 두루마리 역시 하나의 두루마리였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아니면 여러개의 두루마리로된 이사야 두루마리 성서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회당장은 예수께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갖다 주었고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서 이사야 61장 1절 이하의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글을 읽으셨다. 




사진: 두루마리 성서 


왜 예수께서는 이사야 61장을 읽었는가? 는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 분이 바로 메시야이기에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선포하셨다. 그러나, 왜 회당장이 예수께서 요구하지 않은 이사야 두루마리를 갖다 주었는가? 에 대해서는 성서 시대 (Biblical times)와 성서 후기 시대 (Post-Biblical times)의 성서 읽기 전통을 이해해야 그 답을 알 수가 있다. 


먼저 모세의 글중 신명기 31:10-13에 보면 공적으로 성서 읽기를 하라고 명하고 있다.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이 듣게 할지니..."


모세의 명에 따르면 7년에 한번씩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장소에 모여 율법을 읽고 들어야 했다. 


훗날 요시야 왕 당시 율법책을 성전에서 발견한 직후, 요시야는 백성들을 모아 공공 장소에서 성서를 낭독하도록 명한다.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왕하 23:2)


포로기 이후 느헤미야 시대에 우리는 또 한번 공공 장소에서 성서를 읽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느 8:1-8). 느헤미야 시대의 특징은 율법을 읽을뿐 아니라 해석도 하였다는 것이다 (7절). 


성서 후기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필료 (주전 20 - 주후 50년)와 요세푸스의 글에서도 안식일날 정기적으로 성서를 낭독하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신약 성서에도 성서 읽기를 한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눅 4:16-19 에서는 이사야서를, 행 13:15-16에서는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회당에서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15:21도 정기적인 성서 읽기가 회당에서 있었음을 증거한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성서 후기 시대의 기록들인 미쉬나, 탈무드에서도 회당에서의 정기적인 성서 읽기 시간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고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정기적인 성서 읽기를 한다. 이처럼 성서 읽기는 성서 본문들의 증거와 성서 후기 시대의 기록물들을 통해 찾아 볼 수가 있는데, 처음부터 성서 읽기가 고정된 방법이 있었다기 보다는 시대를 거쳐가면서 발전하고 수정되어졌다. 예를 들면 구약 성서에서는 모세 오경 읽기만이 언급되어 있는데 신약으로 넘어가면서 모세 오경뿐 아니라 선지서의 글도 읽게 되었다. 여기서 선지서의 글 읽기를 "하프타라 (Haftarah, להפטיר - to conclude)"라고 부른다. 미쉬나 시대에 가서는 하기오그라파 (Hagiographa - 구약 성서의 지혜서)를 추가해서 읽었다. 


그런데, 이 회당에서의 성서 읽기는 낭독자가 원하는 본문을 읽는 것이 아닌 이미 정해진 본문, 즉 그주 안식일에 읽어야 하는 본문이 지정되어 있고 낭독자는 그 지정된 본문을 읽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 가셔서 성서를 낭독하고자 서셨을때 회당장이 알아서 이사야 두루마리를 가져다 준것이다





사진: 나사렛 전경


만일 예수께서 그 안식일에 자신이 원하는 본문, 즉 오실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본문을 읽기 위해 이사야 두루마리를 요청하였고 그 본문을 찾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라고 하였다면 예수의 이 선포는 성서 예언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날 안식일에는 누가 낭독자이든지 이미 정해진 본문 이사야 61장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도 전통적으로 하프타라 읽기가 시작된 이후 많은 낭독자들이 이사야 61장을 읽고 낭독자들과 그 자리에 모인 청중들은 훗날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예수 이전에 아무도 감히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당장이 예수께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건네 준것 역시 그날은 하프타라 읽기 시간에 이사야 61장을 읽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예수께서는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선포하였다. 700여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을 이루어 가시면서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고향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이다. 


참고문헌


Michael Graves, "The Public Reading of Scripture in Early Judaism," JETS 50/3 (September 2007) 467-87


WBC Luke 4:16-19


JNT Luke 4:16-19



12년 동안 혈루증 (Hemorrhage)을 앓고 있던 여인! 그 여인이 만졌던 예수의 옷자락은 어느 부분일까? 한글 사복음서는 "그 겉옷 가" (마9:20), 마가복음은 "그의 옷에" (막 5:27), 그리고 누가복음은 "그 옷가에" (눅 8:43) 로 표현하기 때문에, 여인이 정확하게 예수의 옷 어느 부분을 만졌는지를 알수가 없다. 여인이 만진 "옷가"에 대한 정확한 부분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 당시의 전통적인 옷에 대해 알아보면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먼저 예수께서 입으셨던 옷에 대한 성서의 내용을 살펴 보면,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요 19:23) 라는 말씀을 통해 아마 당시 유대인들은 오늘날처럼 바지를 입지 않고 몸을 치마처럼 두르는 옷을 입었을 것이다. 


민수기 15장 37절 이하에는 옷가에 술을 달고 청색 끈을 달아서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한 율법의 명이 나온다. 이 율법은 신약시대에도 지켜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마태복음 23장 5절이다.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예수 시대 당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전형적인 외식하는 옷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옷술과 경문이었다. 예수께서도 율법을 지키셨으므로 옷술을 단 옷을 입으셨을 것이다. 오늘날 경문은 유대인들이 기도할때 착용을 하지만, 성서 시대 당시에도 경문은 기도할때, 혹은 평상시에도 착용을 하였을 것이다. 


 

사진: 이마에 착용한 경문


자, 그럼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만진 예수의 옷가는 어느 부분일까? 한글 성서는 그 부분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과 히브리어 성서는 옷의 어느 부분인지를 알려 준다. 눅 8:44에는 "크라세페돈" 이라는 헬라어가 나오는데 영어로 "Fringe" 즉 옷의 끝자락이다. 이것만으로는 아직 정확하게 어느 부분인지 알 수가 없다. 민수기 15장 38절에 "옷단 귀에 술"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찌찌트 알 카느페이 브기디이헴" 이다. 그리고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찌찌트"를 누가가 사용한 동일한 단어인 "크라세페돈"으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여인이 만진 예수의 옷 자락은 바로 "옷술"을 만진 것이다. 




사진: 탈리트와 경문, 그리고 찌찌트 (옷술)을 착용한 바비 인형 - 사진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임. 


그렇다면, 왜 다른 부분이 아닌 옷술을 만졌다는 것이 중요할까? 예수 당시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탈리트 (기도쇼올)과 옷술 (찌찌트)가 달린 옷을 입었다. 전통적으로 탈리트와 옷술은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었고 가족 관계가 아닌 외부인이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 옷술 (찌찌트), 청색 끈 (청색은 달팽이 피로 물들임) - 사진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임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만진 것은 가족 외에는 만질 수 없는 그 옷술을 만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찾으신 후에 "딸아!!!" 라고 불러주신 것이다. 그 여인이 예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구네 (여인)" 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결혼한 여인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옷술을 만진 여인에게 "딸"이라고 부른 것은 그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는 순간 병이 치유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복음서에는 많은 치유 사건들이 나오지만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딸"이라고 호칭한 경우는 혈루증에서 놓임받은 여인뿐이다. 




사진: 유대 남자 아이 성인식 (바르 미찌바)때 탈리트, 팔에 경문을 착용하여 주는 모습.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고대 시대의 결혼 풍습을 엿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이삭의 결혼 이야기가 오늘날 결혼 방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의 부모 시대는 서로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았던가?  이삭의 결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독자 이삭의 결혼을 위해 직접 자신이 며느리감을 찾아야 했지만, 그의 건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창 24:1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아브라함의 나이 많아 늙음에 대해서는 17장 17절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으리요", 18장 11절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21장 2절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라는 표현들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직접 며느리를 찾을 수 없기에 자신의 종인 엘리에셀을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에게로 보낸다. 

사진: 이삭을 임신한 사라의 웃음

       엘리에셀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가 막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 묻는다.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하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 24:5). 엘리에셀의 질문에 대해, 어떤 이들은 여자가 종이 주인을 대신해서 올 경우에 여자가 거부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주인이 종을 자신을 대신해서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주인의 대리자로서 종은 주인의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창 24:6). 또한 아브라함은 종에게 가나안 여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찾지 말라고 이미 말하였다 (창 24:3-4). 이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가나안 여인들은 우상 숭배와 음란한 전통이 있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여자들은 우상 숭배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가족내에서의 결혼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예를 들어, 민 36:6-7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지파의 가족내에서만 시집을 가도록 명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나홀이 거주하는 아람 땅에서 구하는 것은 당대의 풍습을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구약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 백성과의 결혼을 철저히 금하는 기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예. 수 23장. 에 9장)

사진: 하갈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우물가에서 만난후에 라반의 집에 가서 결혼 패물을 주고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할때, 리브가의 가족은 그녀를 불러 그녀의 의사를 묻는다. "네가 이 삶과 함께 가려느냐" (창 24:58).  어떤 학자는 라반이 리브가에게 주어진 결혼 패물들을 보고 리브가가 엘리에셀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하기를 은근히 바랬을 것으로 추정한다. 만일 이삭이 직접 온다면 결혼 패물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성서 이야기의 결혼 네러티브는 종종 우물가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다. 리브가의 경우도 그렇지만 야곱 역시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난다 (창 29장), 모세도 십보라를 우물가에서 만난다 (출 2장). 리브가는 우물가에서 엘리에셀로부터 값진 선물들을 받는데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결혼을 전재로 선물들을 받았다가 혹 결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여자의 부모는 자신들이 받은 결혼 패물의 두배를 값아야만 했다. 

사진: 드릴라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 리브가는 이삭을 만나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베일로 가린다. 함무라비 법에 의하면 여자의 얼굴을 베일로 가리는 것은 자유인만이 가능하였고 창녀나 여종은 베일로 그 얼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리브가가 이삭을 보고 말에서 내려온 것은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며, 이삭이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의 텐트로 인도한 것은 이제 그녀가 아브라함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글은 David Elgavish의 "Marital Customs as Reflected in the Account of the Marriage of Isaac and Rebekah"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자전거와 욤키푸르...

Jewish tradition & Yeshua 2011.09.30 20:54 Posted by Israel

10월이다. 10월은 유대 절기들의 기차가 지나가는 달이다. 9 29-30 로쉬 하샤나 (유대력으로 새해, 구약성서에서는 “나팔절”로 나옴) 시작으로 절기 기차는 10 8 욤키푸르( 대속죄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5 뒤에는 초막절이 있고 초막절 마지막 밤에는 쉬미니 아쯔레트(초막절 마지막 날 성회로 성서 시대에는 이 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심카 토라 (1 혹은 3 주기로 토라를 읽고 토라를 다시 읽는 )라는 종착역을 향해 간다. 절기들만 본다면 이스라엘 종교의 나라라는 환상이 있을수 있겠으나,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50% 이상의 유대인들이 무신론자들이다. 수치상의 통계와는 별개로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의식을 뛰어넘어 삶 일부분이 되었다.

사진: 카파롯트 의식 

성서에서는 3 절기를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 예루살렘에서 지키도록 명하고 있는데, 옛적이나 지금이나 절기들을 예루살렘에서 지킨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26백여년전 언약의 땅에서 삶의 뿌리가 뽑혀 머나먼 타국 바벨론으로 유배되었던 유대인들은 기약없는 유량 생활을 하며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예루살렘을 향한 사모곡을 시로 지어 불렀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 137:5) 그래서일까, 디아스포라된 유대인들은 매해마다 절기를 이방 나라에서 지키면서 그토록 갈망하며 돌아가고 싶은 예루살렘을 향한 마음의 소원을 담아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게 하소서!" 라고 기도를 드려왔다고 한다. 실제로 절기들의 달인 10월이 되면 예루살렘의 호텔 방값이 몇배 올라가지만, 그나마 방을 구하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세계에 흩어져 사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흩어진 유대인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아주는 절기들이지만, 유대 아이들이 10월의 절기들, 특히 욤키푸르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내년에도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신나게 타자."  뚱딴지 같은 말인가 싶겠지만, 아이들에게 욤키푸르는 성서의 절기라기 보다는 자전거 타는 날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차근 차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가 보자. 키푸르는 성서 절기들 중에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레위기 16장은 욤키푸르를 어떤 방식으로 지켜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차례 동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사함받는 날이 욤키푸르이다. 오직 이날 외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성막과 성전은 땅에 없다. 일년에 한차례 들어갈 있는 지성소, 사함을 받을 있는 지성소가 파괴된 것이다. 그 뒤 유대 랍비들은 기도와 구제, 그리고 율법이 명하는 행위적인 선행으로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제사를 대체하였다.

 사진: 욤키푸르날 회개하는 유대인 

욤키푸르가 있는 주간에는 여러 종교적 전통의식들이 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통곡의 벽에 가면 신발을 신지 않거나, 천으로 된 운동화를 신고 있는 유대인들을 많이 만날 있다. 그리고 평소에는 통곡의 주위에 의자들이 많이 있지만 기간 동안 만큼은 의자에 앉을 없다. 회개하면서 어떻게 편안하게 가죽으로된 푹신 푹신한 신을 신고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드릴수 있냐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 주변에서는 "카파롯트(속죄의식)" 행사가 진행된다. 카파롯트" 성전에서 드렸던 희생제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성전이 없는데 희생 제사를 아무곳에서나 드릴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희생제사가 아니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성서 시대 당시 희생 제물이 되었던 양이나 염소가 아닌 닭을 잡아 속죄 의식을 행한다. 욤키푸르 전날 사람들은 닭을 사서 카파롯트 의식을 직접 행한다. 닭을 죽이기 전에 회개 기도문을 읽고 닭을 머리 위로 몇바퀴 돌린 후에 닭을 죽인다. 닭이 카파롯트를 행하는 사람 대신에 죽는 것이다. 죽은 닭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한다. 어떤 이들은 살아있는 물고기 머리를 자르기도 하고 돈으로 구제를 하여 카파롯트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욤키푸르 당일날은 금식을 선포하고, 전국의 모든 도로들 (아랍 지역 도로 제외) 공공 차량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바리케이트를 친다. 인터넷은 사용 가능하지만, 일부 외국 체널들을 제외하고는 텔레비젼 방송도 송출되지 않는다. 세상의 차들이 멈춘듯 조용하다. 바로 이 순간을 아이들은 기다려온 것이다. 욤키푸르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리면, 길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들은 일제히 준비한 자전거를 타고 도로  한복판을 달린다. 그날 만큼은 도로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온 가족이 함께 한가롭게 도로를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니, 욤키푸르가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전거 타는 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자전거 타는 날(?) 

그 사이 통곡의 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통곡의 벽에는 적어도 그날 만큼은 통곡하는 유대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유대인들,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회개하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편 카파롯트를 행하는 장소에서는 동물보호 단체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무슨 닭이 당신들의 죄를 대신 속죄한단 말이냐? 엄한 닭을 죽이지 마라!

같은 하늘아래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욤키푸르의 일상은 다양한 생각, 표현 그리고 행동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듯 하면서도 그 하루를 만들어 간다. 해가 지중해로 넘어가고 나면 도로 곳곳의 바리케이트는 철거되고, 다시 도로는 차량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아이들은 내년에 자전거 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아쉬움속에 자전거에서 내려온다. 통곡의 벽에서 통곡하며 회개하던 유대인들은 통곡을 멈추고 신을 신고 초막절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동물보호 단체에서는 내년에 있을 시위를 위해 사용했던 피켓들을 들고 돌아간다. 그렇게 자전거 타는 날, 금식과 통곡의 날, 카파롯트의 날이 지나간다.
성서의 할례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적 상징이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 17:10). 하지만 할례는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전통이 아니다. 고대 셈족들중에는 할례 의식을 행하는 민족들이 있었다. 서부 셈족들, 이집트, 가나안, 암몬, 모압, 에돔, 페니키아, 그리고 아람 족속들은 할례 전통을 갖고 있었다. 반면 아카디안, 앗수르, 그리고 바벨론 사람들이 할례를 행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다. 


사진: 올리브 산 중턱에 있는 눈물교회내에서 바라본 성전산


성서에 나오는 헷족속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성서 창 34장에서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 이야기에 등장하는 헷 족속은 할례받지 않은 백성이었다. 블레셋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삼하 1:19-20). 

가나안에 정착하였던 해양 민족들중 하나인 블레셋은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다른 해양 민족들은 할례를 받았다. 카르낙 비문 (The Great Karnak Insciipition)에 의하면 Ekwesh, Shekdesh, Sherdani 부족들은 할례를 받았다. 이 해양 민족들은 이집트 바로 Memeptah (1212-1202 B.C.E)가 리베리안- 지중해 지역을 공격하였을때 당시 생포되었던 포도들의 명단에 등장한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할례받은 포로들은 손가락만을 잘랐다. 반면 할례를 받지 않은 포로들은 그들의 생식기를 절단하였다. 

고대 가나안인들과 이집트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이유는 성인이 되었다는 표시이자 결혼을 할 수 있는 연령이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아랍어로 hatana 는 "할례를 행하다" 라는 뜻인데, 신랑, 사위, 그리고 장인 이라는 단어들은  htn 라는 어근에서 파생한 것들이다. 디나의 강간 사건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족속에게 결혼의 선결 조건으로 할례 받을 것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사울이 다윗에게 미갈의 결혼 지참금으로 블레셋인들의 포피를 요구하는 것 (삼상 18:25) 등은 당시 할례 의식이 결혼 관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모양으로 할례를 행하였을까? 앗수르의 라기스 점령 벽화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포로들의 성기를 보면 귀두 부분이 완전히 드러나도록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V 자 형태로 귀두를 덮는 포피 부분을 잘라내는 식으로 할례를 행하였다. 


사진: 여리고 시험산 수도원에서 바라본 여리고 전경  

그레코 로만 시대 당시에는 할례 의식을 매우 천박한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특별히 셀루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175-163 B.C.E)는 할례를 받을 경우 사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한편 헬라 문명의 침투는 유대인 스스로 할례받은 성기를 다시 할레받지 않은 모양으로 변형시키는 것 (epispasm)이 유행이기도 하였다.

유대 1차 봉기 (66-73 C.E) 이후에, 유대인들은 제우스 신전의 유지 보수를 위해 드라크마 두개를 세금으로 내야만 했다. 에피스페즘은 이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헬라문화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시민권을 취득하는데 있어 할례는 걸림돌이 되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취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 생활에 애를 먹었고 결국 일부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위해서라도 에피스페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세속 사회와의 타협을 시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유대 문학들은 신랄하게 비난을 하였다. 쥬빌리의 저자는 헬라 문명을 사단의 세계로 규정하고 할례만이 이 사단의 소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1세기경 유대 철학자인 필로는 할례를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는 할례는 다산의 지르길이며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기술하였다. 

한편 유대인들중에는 할례 의식을 행하되, 성기의 귀두 부분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포피의 일부분만을 제거하는, 눈가림식의 할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이 역시 에피스페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 1 마카비서 1:11-15에는 이런 방식의 에피스페즘이 얼마나 만연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랍비 문학에서도, 에피스페즘을 행햐는 이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다고 경고를 하였고 탈무드 역시 에피스페즘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2세기경의 유대 주석가, 람반 (마이몬데스) 역시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은 다음 세계의 유산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할례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행 15장에서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지키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에피스페즘이 성행하던  당시에 이처럼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믿는 유대인들의 성향이 매우 종교적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할례받지 않은 이방 신자들과의 영적 교제는 결국 유대인들의 에피스페즘을 용인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일부 믿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 신자들의 유대교인화 (Judaising of Gentile Believer)는 할례와 모세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는데, 만일 이방의 신자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수에서 면죄부를 주게 되면 점차적으로 믿는 유대인들의 할례 의식을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한다. The Jewish Life Cycle의 저자 Daniel Sperber에 따르면, 할례 의식이 아프리카의 민속 신앙 그리고 무슬림들의 전통과 혼합된 형태, 그리고 미신적인 의식과 함께 진행된다. 예를 들면,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혹은 더 많은 아기를 낳고자 소망하는 여인들은 할례후에 포피를 꿀에 섞어서 먹기도 한다.
  
 위 글은 Circumcision: who did it, who didn't and why by Philip J, King BAR 32:04, Jul/Aug 2006과 Epispasm-Circumcision in Reverse by Robert G. Hail BR 8:04, Aug 1992 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공포의 라그 바오메르

Jewish tradition & Yeshua 2011.05.23 02:26 Posted by Israel
         2-3주 전부터 동네 아이들이 길거리에 있는 나무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나무들을 어디에서 그리도 많이 구하는지, 심지어 슈퍼마켓 카트를 이용해서 나무들을 실어나르면서, 마치 만선한 배를 이끌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선장이 된양 의기 양양하게 흡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무 수례를 끌고 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때쯤 되면 전통 절기인 "라그 바오메르"가 다가온 것입니다. Lag ba-Omer는 유월절 둘쨋날 저녁부터 오순절까지의 49일 기간중 33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날 불을 피우기 위해 아이들은 몇주전부터 그렇게 나무들을 주워 모으는것입니다. 라그 바오메르 날이 오면 동네 곳곳 빈들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주워온 나무들에 불을 붙이고 고기도 구워 먹고 신나고 즐겁게 놉니다. 

 

        왜 하필 33일째 이런 전통 절기를 지키는 것일까요? 궁금해서 길거리의 유대인들에게 물으니 마치 신도림 역의 아침 출근길 때 군중들이 달려가니 나도 달려야 하는가 보다 라며 뛰어가는 사람인양 답을 합니다. 그 동안 지켜왔으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가려운 것을 긁어줄만한 도우미들을 잘못만난 탓이겠죠. 역시 인터넷은 우리 시대 최고의 섬김이입니다. 무엇이든지 왠만한 것은 다 답을 주니 말이죠. 그 답의 진위 여부는 별개로 하고요. 여기 저기 인터넷을 서핑해보니 공통적으로 라그 바오메르가 시작된 이유들을 이렇게 말해 주네요. 참고로 유대인들은 두명이 한가지 문제를 갖고 격한 논쟁을 벌이다가 3가지 결론을 내린다 할 정도로 다양한 결론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1. 랍비 아키바의 제자 24,000명이 죽은 것을 추모하기 위해. 그럼 왜 죽었느냐? 이들은 토라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삶에 실천할줄 모르고 사랑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아키바의 제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들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라고 되어 있기도 하네요. 

2. 랍비 시몬 바르 요카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는 아키바의 수제자인데 훗날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캐논 "조하르 (The Brightness)"의 저자입니다. 

3. 주후 132-135년 사이에 있었던 바르 코크바 봉기를 기념하는 절기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이 날 밤새도록 노는 날입니다. 부모들을 괴롭히면서요. 어제 천만 다행으로(???) 아들은 일찌감치 집을 나가 친구들과 함께 밤새도록 놀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근데, 딸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불청객인줄 모르고 말이죠) 밤새도록 소란을 피웠습니다. 정말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공포 영화를 보겠다고 해서 방에 컴퓨터도 옮겨주었는데 진짜배기 공포는 아이들의 웃고 떠들고 비명지르는 소리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조용하라고 상기된 얼굴로 크게 소리지르고 싶었으나 ~~~~~~~~~ 속으로만 외쳤습니다. 잠좀 자자 잉...~~~~
평소 근처 다른 집에서 밤 늦도록 떠들고 놀면 뭐 저런 사람들이 있어!!! 라고 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바로 그 욕을 먹는 날이자 복수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히브리어로 제잘되었기에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는 않았겠죠. 

        아침에 8시쯤 겨우 눈을 떠서 보니 아이들이 잠시 자는 듯 하더니 저의 귀를 괴롭히기 위해 또 고성방가를 지르면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잠해졌고 밤새도록 아빠와 엄마를 괴롭힌 딸은 이제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옷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미니 스커트였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 아담과 하와에게는 옷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움으로 인식하고 다급하게 무화과 나뭇잎으로 미니 스커트를 만들어 입었다. 이렇게 옷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옷은 누구나 입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옷은 2천년 가까이  겪은 고난과 유량의 역사만큼이나 모질고 거친 세월의 깊은 주름을 담아내고 있다.


사진: 무화과 나뭇잎입니다. 열매가 없더군요... 
 

         유대교의 심장 예루살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쉽게 검은색 정장 혹은 긴 외투(카프탄)를 입고 중절모(스타라이멜)를 쓰고 곱슬한 구렛나루(페오트)를 한 정통 유대인들을 만날 수 있다. 정통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세상속의 또 다른 신기한 세상을 보는듯 하다. 정통 유대인들에게 왜 검은색 옷을 입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겸손한 삶을 지향하고 성전이 무너진 것을 애곡하기 위한 표현이란다.  현재 성전이 있었던 산에는 이슬람의 바위돔 (Dome of Rock)이 서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무슬림들은 성전산 (바위돔이 있는 장소)에 올라가서 그들의 신에게 경배를 드리지만 정작 과거 그 땅의 주인이었던 유대인들은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다.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성전산에 올라간다. 그리고 아주 간혹 정통 유대인들이 올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통 유대인들은 성전산 뜰 안쪽으로 걷지 않고 외곽을 따라 걷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니 올라가지 않는다. 지성소가 있던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기에 지성소를 밟는 죄를 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금하고 있다. 대신 정통 유대인들은 바위돔 아래 통곡의 벽에 근 2천년 동안 성전을 잃은 조상들의 피 눈물이 고인 돌틈 사이에 그들의 눈물을 심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성전이 세워질 그 날을 기다리는 심정을 담아 검은색 옷을 입는다. 한 마디로 이들은 상중(喪中)인 것이다.

 

         정통 유대인 여자들은 긴 소매의 소박한 옷과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는다.  그리고 두건을 쓰거나 머리카락을 짧게 깍거나 삭발을 하고 가발을 쓴다. 결혼 이후 이들은 더 이상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갖거나 혹은 관심을 끌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가리거나 자른다고 한다. 그렇게 평생을 산다.  중세의 종교개혁가들은 신앙적인 이유로 검은색이나 갈색 옷을 입었다. 당시 개혁가들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옷을 입게 되었으므로 화려한 색의 옷을 입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겼다. 정교회 수사들 역시 검은색 옷을 입는데, 이는 세상을 향해 죽고 그리스도를 향해 산다는 의미를 옷에 담고 있다. 이처럼 옷은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삶과 종교 그리고 철학을 담고 있다.

 

        정통 유대인들은 성전의 무너짐과 겸손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는다고 하지만 이들이 검은 옷을 입게 된 뒷 배경에는 중세 기독교의 신앙적인 이유와는 달리 교회의 강요에 의한 이유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중세 유럽 사회의 유대인들은 교회의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들은 신의 아들 예수를 죽인 죄를 짊어지고 평생 유량 생활을 하며 살아야 하는 백성이었다. 교회는 유대인을 조롱하고 기독교인과 교제 금지, 그리고 인종 차별을 목적으로 검은 옷과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도록 강요하였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동안 늘 입었던 옷을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신 마치 죄수처럼 정해진 옷만을 입도록 강요를 당한 것이다. 1215년 제 4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유대인과 무슬림의 옷에 특별 식표를 달아 어디에서든지 이들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1217년 영국 왕 헨리 3세는 유대인의 옷에 십계명의 뱃지를 달도록 명하였고 1269년 프랑스 왕 루이스 9세는 유대인의 식표를 상의 앞뒤에 달도록  명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39 11 23일 폴란드 정부의 한스 프랑크는  유대인의 옷에 노란색 다윗의 별을 달도록 법을 정하였다. 유대인의 옷에 달린 다윗의 별은 훈장이 아닌 저주의 상징이 되었다. 어딜 가든지 유대인은  옷에 다윗의 별을 달아야만 했고 혹이라도 그 별을 달지 않거나 혹은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옷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었다.

 

         미셀 파스투르 (Michel Pastoureau)의 책 “The Devil’s Cloth: a history of stripe and striped fabric” (악마의 옷: 스트라이프 (줄무늬)의 역사와 줄무늬 직물)”에 의하면 중세 시대의 교회는 스트라이프(줄무늬) 를 악마의 무늬로 규정하였다. 이는 레위기 19:19두 재료를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는 성서의 명령을 스트라이프 옷에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13 세기경 문학 작품이나 기독교 성화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이 스트라이프 옷을 입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유대인을 한센병을 앓고있는 환자, 창녀 그리고 이단자로 낙인찍힌 이들과 함께 저주받은 악마의 자식으로 몰아 세워 악마의 옷인 스트라우프 옷을 입도록 강요한 것이다.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를 다룬 영화들속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 스트라이프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시작된 옷은 중세와 근현대를 넘어 유대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검은 옷으로 인해 겪었던 수치와 모멸,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운 삶으로 점철된 역사를 모를리가 없을텐데 왜 이들은 여전히 검은 옷을 입는 것일까? 과연 성전의 무너짐과 겸손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는 것일까? 중세 랍비들은 당대의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유대인으로 구별된다는 것 그 자체를 영광으로 여기라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은 그리 얼마 가지 못하였을 것이다. 뜨거운 햇살에 나뭇잎은 말라 버렸을 것이고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또 다른 무화과 나뭇잎을 꺽기 위해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손수 만들어 입혀 주셨다. 도서관 밖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정통 유대인들이 지나간다. 입지 않고는 살수 없는 생활 필수품인 옷으로 인해 고난 받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의 가죽옷을 입혀 주시기를 소망해 본다


 
눈물 교회내에서 바라본 성전산입니다.  

카스루트 (일명 코셔- Kosher)의 나라.카스루트 코카 콜라. 카스루트  . 이스라엘엔 치즈버거가 없다.바로 카스루트 때문이다. 카스루트란 성서와 유대 전통에 근거해 만들어진 음식법으로유대인들이 먹어도 되는 음식,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 음식 조리 방법,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방법을 규제하는 법이다. 카스루트 라는 말은 적당한, 알맞은, 바람직한이란 뜻이다. 카스루트 식료품들은 제조 과정에 랍비가 제품의 성분들을 면밀히 조사하여 카스루트가아닌 성분들을 제거하고 생산한 제품에만 인증마크를 부착해 주고 이 인증 마크가 부착되어 있는 제품만을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판매할 수가 있다.물론 이스라엘내의 러시아계 유대인들을 위한 마트와 아랍 지역에서는 카스루트가 아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16억병이상 소비된다는 코카 콜라에도 카스루트  코카 콜라가 있다. 특별히 유월절 기간이 되면누룩을 제거하라는 성서의 명령 ( 16:4)을 따라 효소 성분을 제거한유월절용 코카 콜라가 슈퍼마켓에 진열된다. 이 카스루트  콜라는 이스라엘에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다. 2009 49일자 USA TODAY에 기고된 날개 돋힌듯 팔리는 코셔 콜라라는 제목의기사에 의하면 미국의 비유대인들도 카스루트  콜라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심지어 카스루트  콜라 메니아들은 유월절 기간에 한해동안 마실 콜라를 구입하기도 한다.


사진: 유월절용 코카 콜라입니다. 1.5 라는 숫자 위에 다이아몬드형 모양안에 기록된 것이 "카슈르 레페삭" (유월절용 코셔)로 유월절 기간에 판매되는 콜라입니다. (본 사진은 콜라 선전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다만 집에 콜라병이 있기에 찍은 것이고 펩시와 다른 음료수들도 유월절용을 판매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카스루트를 지킬까? 일각에서는 카스루트  음식이야말로 건강 식품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뚜렷하게있는 것은 아니다. To Be a Jew (유대인이 되기)의 저자 랍비하임 할레비 도닌에 의하면, 고대 시대의 랍비들은 가정집의 식탁을 성전의 제단과 같은 곳으로 간주하였다고한다. 따라서 성전의 제단에 정결한 짐승만을 희생 제물로 드리듯, 식탁에도동일한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카스루트를 지키는 이유를 제시한다. 어쩌면 성서에서 카스루트를 명하기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쉬운 답일 것이다. 성서는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 , 물고기 등의 목록과 그 구별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성서는 친절하게 그 정결과 부정함의 이유가 직접적으로 건강 관리와 관련있다고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사진: 유월절 기간에는 슈퍼마켓에 효소 성분이 들어간 상품 진열대를 하얀천으로 가려 놓습니다.  

카스루트의 엄격한 기준들 중 몇가지를 살펴보면, 성서에서 먹지 말도록  금한 짐승, , 물고기로 조리한 음식은 카스루트법에 저촉된다. 고기는 반드시 피를 제거해야 한다.벌레 먹은 야채와 과일은 먹어서는 안된다. 고기와 유제품을 같이 먹어서는 안된다.고기와 유제품간의 상극 관계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너는 염소 새끼를 그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 23:19, 34:26, 14:21)” 라는 음식 규제법을 적용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고기를 먹고 나서 적어도 6-9시간이 지난 후에 유제품을 먹는다. 카스루트에 의하면,  고기를먹은 후에 소화가 다 된 다음에만 유제품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스루트를 지키는 유대인들은 사용하는 조리 기구들 역시 구별하여사용한다. 고기를 조리하는 기구들과 유제품을 조리하는 기구들을 따로 사용하고 설거지 통 역시 두개로 나누어서고기와 유제품 기구들이 섞이지 않도록 한다.

 

오늘날 카스루트는 지구촌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식품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는 식품들중 40%가 카스루트  인증을 받은 것이다.카스루트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고 카스루트 인증을 받은 제품 가격은 다른 제품보다 비싸다.하지만 카스루트  제품은 안전하고, 헤롭지 않으며 신선하다는 신뢰감이 조성되어 현재 시장 규모가 5천억달러 이상으로 급성장을 하고있다. 미국내 유대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2% 불과하지만 비 유대인들중천이삼백 만명의 미국인들이 카스루트 제품들만을 찾는다고 한다. 중국 역시 발빠르게 카스루트 인증을 받은 제품들을생산해 내고 있다. 2000개가 넘는 중국 식품 공장들이 카스루트 인증을 받은 제품들을 생산해서 미국, 케나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수출을 한다. 어쩌면 요즘광우병과 구제역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카스루트 인증마크 제품 생산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진: 오늘 저녁 식사입니다...풀뿐입니다. 코셔냐구요? 슈퍼에서 산것들이니 그렇죠, 다만 접시들이 코셔가 아닌지라....

 

         한편, 성서속에서의 카스루트는 유대인과 비유대인과의 교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장애물이었다. 사도행전 10-11장 이야기를 보면, 비유대인 고넬료와 교제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카스루트 법을 뛰어 넘어야만 했다.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0:14).” 당시에는 비유대인과 교제를 한다는 것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의미하였고 카스루트가 아닌 음식을 먹는다는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고넬료의 카스루트를 깨는 음식 교제는 이후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선교의 공식적인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참조 사도행전 11, 15). 이스라엘에서 8년을 살아오면서 슈퍼마켓과 식당의 카스루트  제품을 의지해서하루 하루를 살아오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카수르트를 지키지는, 아니 지킬수는 없다. 그저 사는 것이 카수르트일뿐이지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것은 전혀 카수르트답지 않은 음식들이다. 그러기에 카수르트를 지키며 살아가는 베드로들에게 나는 그저 교제 불가 대상인 고넬료에 불과할 것이다. 



 

 

 

 

 

바르 미쯔바

Jewish tradition & Yeshua 2011.02.23 04:50 Posted by Israel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서의 절기와 유대 전통이라는 기차에 자동으로 탑승한다. 남자 아이가 태어난지 팔일째 되는 날 언약의 상징인 할례를 받는것을 시작으로 자녀의 종교 생활에 우선순위를 두는 유대 가정에서는 아이가 성서의 절기들과 유대 전통을 따라 살도록 가르친다. 이번 달에는 자녀의 영적 성장을 돕는 대표적인 전통인 바르 미쯔바(1)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르 미쯔바(계명의 아들 – “바르는 아람어로 아들이라는 뜻이며 미쯔바계명이라는 뜻이다)는 남자 아이가 만 13세가 되는 생일을 맞이할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바르 미쯔바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부모의 지도하에 종교 생활을 하였지만 이제 후로는 스스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 미쯔바의 기원은 중세기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세기 경 유대 회당에서는 남자 아이가 만 13세가 되었을 때부터 회당 예배때 회중앞에서 토라를 읽을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17세기 경에는 바르 미쯔바가 된 아이에게 토라 읽기와, 아이가 배운 탈무드의 내용으로 짧은 설교를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었다. 바르 미쯔바가 된 아이에게는 회당에서의 대우도 달라진다. 바르 미쯔바 의식을 행한 후 그 다음 안식일 날 회당에서 아이는 회중 앞에서 축복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 토라 읽기, 그리고 하프타라 (토라와 함께 읽는 예언서)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안식일, 월요일, 그리고 목요일에 있는 공식 기도회에 참석할 때 티필린 (성서 구절들-13:1-10, 13:11-16, 6:4-9, 11:13-21- 이 적힌 성구함을 미간에 부착하고 손목에 매는 것)을 착용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 회당의 공식적인 기도회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최소 열명의 성인 남자가 모여야 하는데 바르 미쯔바가 된 아이에게도 이 열명을 구성하는 자격이 주어진다.


바르 미쯔바 때 가장 중요한 의식은 알리야 라토라 (문자적으로 토라를 위해 올라간다는 뜻)이다. 바르 미쯔바 전에 아이들은 알리야 라토라와 회당에서 읽을 성서 구절들을 음율과 강세를 따라서 읽는 연습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알리야 라토라를 위해 랍비로부터 한달 정도 토라 읽기 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기도 필수품인 티필린을 착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바르 미쯔바의 준비는 아이들 뿐 아니라 가족 특별히 부모의 관심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부모가 어떻게 바르 미쯔바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장래 아이의 종교 생활이 결정 되기도 한다. 만일 부모가 바르 미쯔바를 먹고 마시고 즐기는 한낱 파티로 준비한다면 아이는 종교 생활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계명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반면 부모가 바르 미쯔바 의식을 철저히 준비하도록 아이를 돕는다면 아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영적 경험을 하게 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날 예루살렘 구도시내에 있는 서쪽벽 (일명 통곡의 벽)에 가면 바르 미쯔바 축하 파티 전에 있는 알리야 라토라 의식을 치루기 위해 온 그 날의 주인공인 아이들과 가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알리야 라토라를 행하는 아이는 긴장된 모습으로 부모가 선물한 탈리트 (기도 쇼울)를 머리에 쓴다. 그리고 티필린을 착용한 후 그 동안 연습한 성서 구절들을 읽는다. 토라 읽기가 끝난 후 아버지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한다. 함께 모인 가족들은 사탕을 던지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축복한다. 이제 아이는 드디어 바르 미쯔바가 되었고 부모는 13년 동안 아이의 영적 성장을 위해 헌신했던 작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성서 이야기들 중에서도 자녀의 건강한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를 말해 준다. 소년 예수는 12살이 되던 해에 그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올라갔다. 대략 한달 가까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소년 예수와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동행한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던 엘리 제사장 시대 (삼상 3:1)에 한나는 그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작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무엘도 아들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데는 실패하였다 (삼상 8:1-5)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나무를 심을 때 자기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지난 13년 동안 부모가 아이의 영적 생활 지도를 잘 했다면 바르 미쯔바가 된 아이는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튼튼한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신체의 성장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한다. 그러나 아이의 영적 성장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부모의 헌신과 수고에 비례한다. 4월이다. 우리 아이들의 영적 건강 지수를 점검해 보자. 그리고 우리 세대의 가장 소중한 사명은 다음 세대의 영적 성장을 돕고 영적 유산을 물려 주는 것임을 잊지 말자.

 



[1] 여자 아이들은 만 12세가 되었을때 바트 미쯔바 (계명의 딸) 의식을 행한다. 일부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바르 미쯔바와 동일한 방법으로 바트 미쯔바 의식을 행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바트 미쯔바가 된 딸을 위해 화려한 생일 파티만을 준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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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다카의 정신

Jewish tradition & Yeshua 2011.01.26 15:01 Posted by Israel

            

            최근 중국에서 사역하는 친구 선교사로부터 신명기 26장에 나오는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본문이었는데, 친구의 메일을 받고 유심히 살펴 보니 매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서 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매해마다 바치는 십일조가 있었다. 그와 함께 3년 주기로 바치는 십일조가 있었는데, 이 십일조의 해택을 받는 대상은 레위인,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었다. ( 14:29 참조). 신명기 26 12, 13절에서는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라는 명령이 있다. 3년 주기의 십일조는 매해마다 드리는 일반적인 십일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십일조이다. 즉 구제의 십일조이다. 이 밖에도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을 명한다. 예를 들면, 품군의 품삯을 반드시 당일 날 줄것,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것, 밭의 곡식을 벨때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 둘것, 올리브와 포도를 추수할 때 밭의 한쪽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 둘것 등등을 명령한다. 


          성서의 가르침이 현실 세계속에서 항상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의 명령과 함께 전통적인 쯔다카 (구제 혹은 기부)의 실천 의무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스라엘 사회는 가난한 자들로 넘쳐 난다. 전 국민( 7,569,000)중 약 22-3%가 빈곤층 (하루 생활비가 $7.3 이하인 경우)에 속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지난 12월 중순경에 하아레쯔 인터넷판 신문이 실린 기사에 의하면 1,770,000명의 이스라엘 시민들이 매일마다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이중 대부분은 하레딤이라고 불리는 초정통 유대인들 (Ultra Orthodox Jews)과 아랍계 이스라엘 사람들이 빈곤층에 속한다. 한 정부 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24% ( 300,000)의 아랍계 이스라엘 사람들과 40% ( 200,000)의 하레딤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가며  최저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850,0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중 생존을 위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4만명이 넘고, 7만명의 아이들은 먹거리를 훔치고 있으며 빵 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근 50%를 넘는다고 한다. 다섯명 중 한 아이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따끈 따끈한 저녁 식사를 못한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든다. 텔레비전에서는 빈곤층 아이들을 돕기 위한 쯔다카 광고를 한다. 가끔 아랍 아이들이 길거리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 통속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이나, 쓸만한 물건 혹은 공병을 찾는 것을 보기도 한다. 큰 사거리에서는 차의 유리창을 닦고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과, 어린 젖먹이를 안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그나마 쯔다카는 가나한 사람들의 숨통을 열게 하는 작은 산소 마스크 역할을 한다. 작년 9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갖 중학교에 입학한 딸의 등록금 청구서를 보니 쯔다카 20 세겔 ( 7 천원) 이라는 기부금 내역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쯔다카가 매우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이다.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들 중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돕기 위한 쯔다카를 모금하기 위해 집들을 방문한다. 학생들이 모금한 쯔다카는 선생님에게 전달되고 선생님은 학생들 중 생활이 어려운 아이에게 모금된 쯔다카를 전달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 쯔다카가  전달되는지는 비밀로 한다. 국가에서 주는 생활 보조금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종교인들 중에는 길거리에서 혹은 집을 방문하여 쯔다카를 받아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종교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 곳곳에는 쯔다카 라고 적힌 글귀와 함께 기부금을 넣을 수 있는 작은 함이 건물 벽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슈퍼마켓 입구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상자가 놓여 있다.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한 후 자원하여 일부를 그 구제 상자에 넣는다.  


           사실, 쯔다카는 기부혹은 구제로 번역하지만 원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쯔다카의 원 의미는 의로움, 정의 혹은 공평을 뜻한다. 유대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을 단순히 자비롭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쯔다카의 정신에 의하면 가난한 자를 돕는것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실천해야 할 의무이다전통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들 중 대부분은 수입의 10%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기부를 한다. 또한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는 쯔다카를 실천한다. 유월절에는 이웃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하고 부림절이라는 절기 때도 가난한 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도록 권장한다. 13세기경 유대 철학자이자 랍비였던 마이몬니데스 (혹은 람반으로 불리기도 한다) 8가지 단계의 기부금을 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 최고의 기부 방법은 가난한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수준 낮은 기부는 전혀 마음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기부금을 내는 경우이다


         유대교에서의 쯔다카가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사는 삶의 방법을 제시한다면 성서는 쯔다카의 정신에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성서에 의하면, 인자가 모든 인류를 심판할 때의 기준은 가난한 자들에게 얼마나 손을 내밀었는가? 이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이 항상 우리곁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직 이름 없이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베풀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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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왕 당시 예루살렘 상부 도시는 부유층들이, 특히 성전의 제사장들,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도시가 파괴된 후, 1967년 6일 전쟁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해 상부 도시의 파괴된 집터들이 그 모습을 들어내었는데,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럭셔리한 집들입니다. 유대인 지역내에 있는  Whol Araheological Museum에 전시된 집터의 복원된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집안에 개인 목욕탕 시설 (미크베라고 하는 정결 의식용 탕)도 있고 곡식 창고와 넓은 거실등을 볼 수 있습니다. 발굴된 유물들 중에는 당시 제사장들의 타락상을 엿볼 수 있는 우상들과 타국에서 수입한 포도주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인 쿼터내에 있는 Burnt House에 가면, 제 1성전과 2성전이 무너진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탈무드의 글귀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성서에서도, 불순종과 우상 숭배를 경고하는 선지자들의 목소리들을 자주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도 볼 수 있죠. 어쩌면 사사 시대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 모양만 달랐지, 그 죄악의 굴레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아래 사진은 Burnt House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집 역시 로마군에 의해서 불에 탄 흔적을 볼 수 있고 상류층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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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엄나무와 유대인

Jewish tradition & Yeshua 2010.12.25 03:44 Posted by Israel

쥐엄 나무 (케롭)는 구약 성서에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신약 성서에서는 단 한번 눅 15장의 탕자 이야기에 나옵니다.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16). 쥐엄 나무는 성서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 열매는 동물들이 먹기도 하지만 열매를 가지고 꿀같은 시럽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먹었다는 "석청 (wild honey - 마 3:4)는 바로 쥐엄 나무 열매였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사진: 의로운 자들의 정원에 새겨진 나라명과 유대인들을 구한 이들의 명단


겨울철이 지나 여름이 되면 쥐엄 나무 열매는 점점 말라서 진한 갈색으로 바뀝니다. 고대 시대에는 쥐엄 나무 씨앗을 가지고 보석의 무게를 재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케롭(carob)은 다이아몬드의 무게 단위인 케렛 (carat - 일케럿은 0.2 gm 입니다)과 동일한 어근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아랍권에서는 qarua 라는 작은 콩을 무게를 재는 단위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식목 행사일인 "투비쉐바트" (Tu B'Shevat - 미쉬나에서 명하는 절기로 대략 1월과 2월 사이에 절기가 있으며 "나무들의 새해 (New Year of the Trees" 인 이 날 나무들을 심고 무화과, 대추 야자 열매, 쥐엄 열매, 아몬드 그리고 건포도 등을 먹습니다)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먹는 나무 열매가 바로 쥐엄 열매입니다. 왜 쥐엄 열매를 먹는가 라고 묻는다면, 성서나 탈무드에서는 쥐엄 열매를 먹으라는 명령이 없지만. 어쩌면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전통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쥐엄 나무 


야드바셈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에는 유대인들을 대학살로부터 구해준 이들을 기념하여 심은 쥐엄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럼 왜 하필 쥐엄 나무일까요? 일종의 재담 (wordplay)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히브리어로 쥐엄 나무는 "하루브 (חרוב)"입니다. 하루브의 어원에는 1) 파괴되다, 말라 버리다 라는 동사형과 2) 칼 혹은 가뭄, 결핍 이라는 명사형이 있습니다. 쥐엄 나무를 식수한 이유는 유대인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천년을 지내면서 그들은 열강들의 지배를 당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쉬지 않은 백성이 유대인들입니다. 쥐엄 나무는 바로 그런 유대인의 삶속에 깊이 새겨진 고난과 핍박 그리고 저항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쥐엄 나무가 제대로 열매를 맺기까지는 7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쥐엄 나무는 인내하면서 미래를 기다리라 는 교훈을 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쥐엄 나무와 관련된 전설같은 이야기기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호니"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노인이 쥐엄 나무를 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왜 쥐엄 나무를 심는 것이죠?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동안에 열매를 얻을수 없쟎아요." 노인은 그 젊은이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어릴적에 늘 올라타고 놀던 나무들이 있었고, 즐겨 먹는 나무 열매들이 있었는데, 그 나무들은 누가 심었다고 생각하나" 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나무를 계속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늘에 앉아서 나무를 심던 노인을 지켜보던 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와서 잠을 청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잠을 잔것 같았지만 70년 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가 깨었을 때, 크게 자란 쥐엄 나무가 보였고, 한 중년 남자가 쥐엄 나무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이 쥐엄 나무를 심은 사람인가요?" 라고 호니는 묻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 나무를 심었고 이제 그 나무 열매를 제가 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