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연대기

Bible Story 2018.04.11 06:12 Posted by Israel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Bible Story 2018.02.09 15:26 Posted by Israel

성경의 완성은 책상머리가 아닌 시장 골목이라는 유대인들의 말대로 흰 종이에 검은 잉크의 집합체인 말을 생활 현장에서 실천할 때 성경이 진정한 의미가 있음이  평범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최근 현직 여 검사가 어느 뉴스 인터뷰에서 폭로한 Me Too 말미에 성추행 당사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남겼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 말이 여전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 예배당에서의 회개가 검은 지하에서 돈세탁을 하듯 회개자의 마음만 씻어주지 않나 라는 생각이 가슴 한 복판에서 떠나지 않는다.

 

회개를 뜻하는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는 슈브돌아가다, 돌이키다의 뜻이 있다. 성경 레위기 6장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배상을 명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지울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그것은 구약이고, 우리는 신약 시대에 살고 있으니 비껴 갈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해서는 안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는 어설픈 말도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예수께서 율법사에게 한 말이다. 그 말이 율법사의 귀와 가슴을 움직였다면, 그래서 결단하였다면 그는 두번째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것이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는 그저 앞으로 잘해! 가 아니다. 과거 청산이 있어야 한다. 여전히 율법사로부터 외면 받았던 인생들이 울고 있다. 율법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귀를 막았던 율법사로 인해 절망한 영혼들이 이웃에 살아 가고 있다. 그 과거의 청산 없이 앞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면 되지! 는 실현해서는 안되는 거짓된 회개이며 결단이다. 예수의 말은 너의 과거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로 인해 눈물 흘렸던 이들, 상처 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라. 그것이 두번째 선한 사마리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이다.


사진: 성묘 교회 내부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는 그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잘못 결정하고 선택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갔고 회개하였다. 탕자는 하늘(하나님)에게만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도 그는 죄인이었고, 그의 죄의 짐을 내려 놓기 위해 아들이 아닌 종이 되기를 구하였다. 이것이 회개이다.

 

삭게오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아무도 삭게오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는데 예수는 분명하게 말하였다. 삭게오야 내려와라! 그저 나무에서 내려오라 는 것이 아니다. 탐욕의 과거에서 내려올 것. 상처 주었던 과거에서 내려 올 것. 용서받는 자리로 내려 올 것을 말한 것이다. 삭게오가 내려왔다. 그는 예배당에서 숨 죽이며 경건한 자세로 하나님께 자신의 과거 청산을 하지 않았다. 재산의 절반! 토색한 물건의 네 배를 갚는 회개를 하겠다 하였다. 즉 삭게오가 예수의 사람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과거로 먼저 슈브돌아가야 했다. 이것이 회개이다.

 

바울이 동역자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다. 빌레몬 집에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가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한 뒤였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으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가 있다. 주인 빌레몬에게 갚을 것이 남은 것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슈브돌려 보낸다. 오네시모는 단지 주인에게만 돌아간 것이 아니다. 그의 과거로 슈브돌아간 것이며, 주인에게 범하였던 죄의 자리로 돌아가서 죄를 청산해야 했다. 그것이 예수의 제자로서 행해야 할 삶의 상식이며 정상적인 회개이다.

 

사진: 성묘 교회의 기도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여 검사의 말은 매우 상식적이며 성경적이다. 교회 예배당은 회개의 면죄부를 찍어내는 곳이 아니다. 단 몇 초만에 회개하였다 하여 용서를 받는 현장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에게 죄를 범하였다면 그에 따른 마땅한 책임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 회개는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늘과 땅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회개는 앞으로 변화되면 돼! 가 아니다. 회개는 뒤를 다시 바라보는 것을 통해 변화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죄를 다루는 수준, 회개의 수준을 낮추면 그것은 타락의 절벽에 위태롭게 한쪽 발로 버티고 서 있는 것과 같다. 10억엔을 주고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못을 박는 일본 정부의 발언에 분노하는 것은 액수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울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의 자리는 예배당을 넘어서야 한다. 예배당 밖, 여전히 그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 회개이다. 이 지극히 평범한 성경의 상식이 특별, 어색, 혹은 외면이 되는 순간 회개는 나를 타락시키는 해독제 없는 바이러스가 된다

예수 시대의 성전세 (반 세겔)은?

Bible Story 2016.07.21 07:18 Posted by Israel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 30:13-14). 

이스라엘 민족 절기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국 각처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그리고 장사로 한몫 잡기 위한 장사꾼들의 발걸음 소리가 예루살렘 영문밖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여리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하여 계곡길과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해수면보다 약 25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한 여리고에서 800미터 가까운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약 30 킬리미터의 길은 하루만에 가기에는 무리였다. 

예수 일행은 뽀얀 광야의 먼지 바람 옷을 벗고 봄 기운이 완연한 푸른 옷으로 갈아 입은 광야 골짜기 길을 따라  예루살렘과 여리고 중간 지점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에 도착하였다. 4월의 해는 이미 서산 너머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산 그림자 소리만이 광야를 감싸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행로에 지쳐 있었으나, 내일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도착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거의 뜬 눈으로 그 밤을 보냈고, 이른 아침 어김없이 요단 동편 느보 산 정상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수 일행도 순례자들 틈속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갔고, 그 날 저녁 때가 거의 될 즈음,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올리브 산에 도착하였다. 올리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등 뒤로 뒤쳐져 있던 태양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지나쳐 올리브 산 정상을 너머 성전 뒤에서 성전에 붉은 노을 옷을 입히고 순례자들을 맞이하였다.

예수는 나귀를 타고 성전 입성을 한 뒤, 어두움이 짙게 깔리기 전, 올리브 산 동편 베다니로 돌아와서 하룻 밤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이미 성전 마당에는 순례자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바꾸고, 소,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제사장들과 성전 경찰들은 성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날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갑자기 채찍을 만들어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고,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성전 마당에서 내쫓기 시작하였다. 이리 저리 뛰는 소와 양, 푸덕거리는 비둘기들, 엎어진 돈을 주워담는 환전상들로 인해 성전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성전 마당에서의 환전이라??? 무슨 동전으로 환전을 하였을 까? 

성서의 명에 따라 (출 30:13-4), 이스라엘의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예외없이 성전세로 반 세겔을 바쳤다. 그렇다면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돈을 성전세로 바쳤을까? 

혹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으나, 당시 성전세로 바치던 돈은 로마 시대 당시 이스라엘 지중해 북쪽 두로에서 주조되었다. 이 주조된 동전을 Tyrian Shekel (두로 세겔) 이라 불렀는데, 약94%의 순도와 14.2 그램 정도의 은 동전이다. 원래 두로 동전은 주전 126-125년 사이, 그리고 주전 19-18년 사이에 주조되었으나, 로마 정부가 두로 동전을 더 이상 주조하지 않은 이후, 에루살렘에서 주전 18/17년에서 주후 69/70년 사이에 성전세 용도로만 주조되었다. 당시 예루살렘의 동전 주조업자들은 두로 동전에 새겨져 있던 헬라클레스의 초상과 독수리 문양이 있는 것을 그대로 주조하였다. 

사실, 이것은 그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새기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 랍비들은 성전세로 바치는 동전의 규정으로 동전의 순은 정도와 무게가 동전에 새겨진 형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로 동전은 신약성서에 적어도 세번 등장한다. 마태복음 17:24-27에 예수와 베드로가 성전세를 내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 그 입에 있는 동전을 성전세로 냈고, 마태복음 26:14,15에 가룻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았던 은 30세겔 역시 두루 동전이었다. 그리고 성전 마당의 환전상들 역시 두로 세겔로 환전을 해 주었다. 

참고로, 유대 문헌에는 당시 환전상과 희생제물로 쓰이는, 소,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이 터무니 없는 환전 수수료를 받거나, 평소보다 비싼 가격으로 희생제물을 판매하였다는 내용의 글은 없다. 

하나 더 추가하여, 성전 청소의 의미에 대해 N.T. Wright 는 성전 청소와 죄 사함의 문제를 연결하여 해석한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한 뒤 종종, "소자여 네 죄 사함을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이고, 신성 모독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엄연히 성전이 존재하고, 그 성전에서의 속죄제를 통해 죄 사함을 받던 시대였는데, 성전의 속죄 기능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죄 사함을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성전 청소는 훗날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표이자, 속죄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있다는 점을 보여준 행동이었다. 

Wright의 말이 맞다면,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선포한 것 역시 당시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말이었다. 베드로가 죄 사함의 선포를 한 장소는 다름 아닌 속죄의 현장인 성전이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창 12:16)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아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던 날을 성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 12:5)





사진: 텔 브엘세바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 



창 12장5절의 히브리어 원문중 일부 내용이다. אשר עשו בחרן (곧 하란에서 얻은 것들). 아브람은 하란에 있을때 스스로 수고하여 재물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땀과 수고의 열매를 가지고 가나안땅에 입성하였다. 가나안은 그가 거주하였던 하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한 땅이다. 아브람은 가나안 입성이후, 남방, 즉 네게브 지역까지 내려간다. 그러던 중 가나안의 심한 기근으로 인해, 그는 가족과 함께 나일강의 물줄기가 지나는 가장 비옥한 고센 지역(델타 평야)으로 내려간다. 


이집트로 내려가던 중 아브람은 혹이라도 자신을 죽이고 아내 사래를 이집트인이 빼앗아 갈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궁여지책으로 이집트인들 앞에서 사래를 누이라 속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는 그녀를 자신의 궁으로 불러들인다. 덕분에 아브람은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과 가축을 받는다. 


중략하여,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창세기 저자는 가나안으로 되돌아온 아브람에게 가축, 은, 금이 풍부하였다고 증언한다.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내려갔으니, 아마 그의 손에는 보잘것 없는 작은 소유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올때는 풍부하였다. 


과연 아브람이 풍부해진것은 복이었을까? 결과만 본다면 빈손으로 갔다가 두손 가득 재물과 가축을 이끌고 돌아왔으니 그렇다! 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얻은 재물은 하란에서 얻은 재물과 달랐다. 하란에서 그가 얻은 재물과 가축은 그의 땀과 수고가 베어있었다. 그것은 아브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복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얻은 재물에는 그의 거짓말 표 딱지가 붙어 있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나, 불의의 이익을 얻고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거짓말을 하였다. 나는 그가 거짓말 한것 자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거짓말로 인해 그가 얻은 것을 과연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다.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올라올때 재물의 풍부함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주장하는 글 때문이다.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을 보고 하나님의 복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얻은 많은 재물과 가축은 좋은 것일지는 몰라도 옳은 것은 아니다. 그의 부유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 말할수 없다. 어떤 이는 아브람에게 있었던 은, 금의 풍부함이라는 물질적인 복에 카메라의 엥글을 맞추겠지만, 성서 저자는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에 엥글을 맞춘다. 




사진: 텔 벧엘 주변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17)."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 보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땅을 그와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아직 아브람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복은 이미 아브람의 손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결과에만 주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십자가의 사람은 좋은 결과를 쉽게 하나님의 복으로 판단하고 따르는 이들을 따라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는다. 십자가의 사람은 좋은 결과가 아닌 옳은 결과, 그것이 풍부이든 빈천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십자가의 사람은 옳은 결과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인도하는 과정 역시 선하고 옳아야 함을 믿고 추구한다. 


혹이라도 섣불리 13장의 아브람의 손에 있는 풍부함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긴다면, 세상 사람의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로 인해 어깨만 아픈 그런 삶을 살아갈 뿐이다. 



말라기(나의 종, 나의 사자-messenger)는 자신에 대한 소개 대신에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1:1) 라는 말로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가 누구(하나님)의 것이며, 그 메세지를 수신하는 이들이 누구(이스라엘)인지만을 밝힌다. 말라기가 사역하던 시대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였다. 성전 재건 공사를 마치고 나서 약 60-100년 정도가 지났고 성전 재건에 직접적으로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생존하였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 2:19),” 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 현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였다. 심지어 가난한 이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했고,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 5:5).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 1:2)라는 백성들의 질문은 말이 아닌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실망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하나님은 답한다. “아하브티 에트켐”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 1:2).  문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백성들에게 있었다. 말라기는 그의 이름의 뜻답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14),” 또는 여호와가 이르노라” (3:13) 라는 말을 열 아홉번이나 반복하여 언급한다. 이 열 아홉번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준비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들을 하나 하나 나열한다.



사진: 눈 내린 예루살렘 (프랜치 힐) 사진 제공: 유택수 목사 


이들은 더러운 떡과 눈멀고 병든것, 심지어 훔친 것들을 여호와의 제단에 바쳤다. 과거 솔로몬 성전이 건재할때는 우상을 성전 안으로 끌여들여 우상 숭배를 하였다. 이제는 성전에서 더 이상 우상을 섬기지 않았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고 희생 제물을 바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예배와 희생 의식이 행해지는듯 싶었으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1:10). 당시 제사장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들은 더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려 있었다. 제사장(목회자)은 진리. . 화평. 정직, 그리고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고, 지식을 지키고 사람들이 그 제사장에게 율법을 구하는 여호와의 사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제사장(목회자)이 하는 일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타락의 선봉 역활을 하고 있었다. 제사장(목회자)의 타락은 곧 백성(교인)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들의 종교 생활은 건강해 보였다. 정기 예배 모임에 빠지지 않았고, 눈물과 울음과 탄식의 예배과 헌금도 드렸다 (2:12-13). 그러나, 성전(교회) 밖에서의 삶은 가증함뿐이었다. 이들은 이방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어려서 얻은 아내와 이혼을 하였고 (2:11, 14-16),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그러면서도 입술로는 소리 높여 헛된 정의를 외쳤다 (2:17).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1:6) “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2:14). “우리가 언제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습니까?” (2:17)의 질문으로 하나님께 반문하는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오히려 소망이 있어 보인다. 적어도 그들은 여호와께서 예배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우리 시대의 교회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이라도  있는지 조차 의문이 드는 슬픈 현실을 숨길수 없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즉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한다고 지적한다. 흔히 십일조라면 수입의 10/1을 드리는 것을 떠올리겠지만,  말라기서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이와 성격이 다른 레위인. 과부. 고아. 나그네를 돌보는 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이다 (참조. 114:28-29; 26:12-13; 13:10-13). 성서는 이 십일조를 통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교회가 선택적으로 해도,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이고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것임을 말한다. 말라기의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 타락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올것을 촉구하면서( 3:7) 3년에 한번 드리는 십일조의 회복을 말씀하신다. 진정한 영적 회복은 기도와 예배. 규칙적인 QT 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은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나그네, 그리고 품꾼을 돌아보는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통해, 더 나아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즉 삶이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예배, 기도, 찬양, 그리고 봉헌도 무 가치하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진: 눈 내린 예루살렘 구도시. 사진 제공: 유택수 목사 


가식과 외식에 눈이 가리워진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것이 무가치한 일이며,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한다 (3:14).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분은 언제나 보시며,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 분은 언제나 가까이 계신 분이시다.  그 분은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지지 않는 자를 분별하시는 분이시다 (3:18). 그리고 그 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다가오고 있다 (4:5-6).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한때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다. 슬프고 안타깝게도 요즈음엔 교회는 요지경이라는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가 유행하지 않을까 싶다. 뉴스를 통해 터지는 사건들을 보며, 가슴이 뜨끔뜨끔하다. 혹시 저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십자가 장식이…, 혹은  교회 교인이 아닐까? 아니 교회 목사가말라기 시대의 영적 무감각증. 삶과 예배의 괴리라는 질병. 생활속에 드러나야 할 하나님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이 욕을 먹는  야누스적인 영적 가면을 쓰고 사는 고질적인 질병에 빠진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만 쏙쓰리게 할 뿐이다.


12월이다. 지나온 334일을 정리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삶을 회계할 때가 되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동안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전하는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삶이 없는 예배는 이미 생명없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일 뿐이다. 교회의 타락은  치유할 수 없는 암덩어리를 양산하였다. 다른 선지자의 외침을 듣기 위해 400년을 기다리며 죄악의 옷을 입고 지날 필요는 없다. 새해가 오기전, 말라기 선지자가 전하는 열 아홉번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세우자.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라는 발자국이 남아 있는지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예수의 흔적을 예배와 삶속에 남기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자.


* 위 글은 새가정 2014년 12월에 연재한 글입니다.


  주전 586년 아브월 9: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 날 솔로몬의 성전이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무너지고 수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먼 이방인의 땅에서 유다인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 137).” 포로가 된 유다인들은 눈물로 예루살렘을 그리워 하였다.

  

  주전 537년 일곱째 달(티쉬레이월):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그 이듬해인 538년 유다인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 1:1-4). 이 칙령에 의해 약 5만명 정도의 유다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고 ( 2:64-65) 주전 537년 그들은 일곱째 달 (티쉬레이월-새해 첫달)에 예루살렘에 모여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 기초 공사를 시작하였다. 학사 에스라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3:11).  그러나 귀환자들의 성전 재건은 곧바로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를 받는다. 이들은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다인들을 모함하는 편지와 당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공사를 중단케 한다. ( 4:23). 결국 주전 536년 성전 건축 중단을 명하는 아닥사스다의 조서로 의해 16년 동안 성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다리오 왕때 (520) 성전 공사가 재개되었다 ( 6:7). 선지자 학개 이야기는 성전 재건 공사가 재개된 520년 엘룰월에서 키슬레브월까지 약 4개월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성전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특히 학개 (. 축제)는 그가 전하는 네번의 메세지 (1:1, 2:1, 2:10, 2:20)에 특정 날짜들이 언급한다.  

  

  주전 520년 여섯째 달 (1:1. 엘룰월):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학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성전 건축  재개를 명하는 메세지를 전한다. 여섯째 달은 유대력으로 엘룰이다. 엘룰월은 일년중 마지막 달로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은 이 달 첫날부터 새해 첫날 (로쉬 하사냐, 티쉬레이월) 그리고 이어지는 대속죄일 (욤키푸르. 새해 첫날로부터 십일째 되는 날, 레위기 16장 참조)을 맞이하기 전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개는 회개의 달 엘룰월 첫날에 16년간 멈춰버린 성전 공사의 현장으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그리고 귀환자들을 인도한다.  그동안 귀환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기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1:2). 에스라서에 의하면 귀환자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그 비전을 갖고 돌아온 이들이었다 ( 1:5). 그러나 16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의 비전은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해 동안, 아닌 지난 16년 동안 귀환자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늘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씨를 뿌려도 거두지 못하였고, 땀을 흘러 돈을 벌어도 헛수고일뿐이었다 (1:6, 9-10). 회개의 달인 엘룰월 귀환자들은 왜 자신들이 이처럼 황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잡풀만 무성해진 성전 기초 공사 현장을 보며 깨달았다 (1:9). 중단된 성전 건축처럼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삶은 피폐해졌음을 황폐한 성전이 투영하고 있었다. 회개와 돌이킴의 엘룰월 학개의 말에 따라 귀환자들은 같은 달 이십사일 공사를 재개한다 (1:14-15).


  주전 520년 일곱째 달 이십일일 (2:1. 티쉬레이월. 초막절 끝날): 성전 건축이 진행되고 있던 중 초막절 끝날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다시 임하셨다. 엘룰월 이십사일 성전 건축을 재개한 후 귀환자들은 로쉬 하샤나와 욤키푸르 (대속죄일) 절기를 지켰고 일주일간 진행되는 초막절 끝날을 맞이하였다. 아마 귀환자들은 건축중인 성전에 모여서 초막절 마지막 절기 의식을 행하였을 것이다. 이때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노인들은 재건되는 성전을 보며 실망하였으리라 (2:3).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공사자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7,9).


  주전 520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 (키쉴레이월2:10):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한다고 해서 귀환자들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에 의하면 거룩한 고기를 쌌던 옷자락이 다른 음식물에 닿는다고 해서 그 음식이 거룩한 음식이 되지 못한다. 반면 시체를 만진 부정한 자가 음식에 손을 대면 그 음식은 부정해진다. 거룩함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그 거룩함이 전이되고  ( 29:37, 2:12) 부정함은 간접적인 접촉만으로도 전이가 된다 ( 22:4-6, 2:13).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던 16년동안 귀환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룩함의 회복과 전이였다. (2:14) 성전은 돌과 나무가 아닌 거룩함이라는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성전 건축 재개와 함께 잠자던 귀환자들의 거룩함을 향한 열정을 깨울 때가 된 것이다.


  주전 520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 (2:20): 학개는 그의 글 마지막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전한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2:23). 이 언약은 훗날 오실 메시야와 관련있다. 예수께서는 다윗과 스룹바벨의 후손으로 예수 믿는 이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전이 되셨고 ( 1:14)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의 거룩한 생명력이 있는 성전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다 ( 2:22).




사진: 예루살렘 올리브산에서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오는 골목에 위치한 선지자 학개, 말라기의 묘 (고고학적 근거는 없음!)


  귀환자들은 5년간의 성전 건축을 진행하여 516년 마침내 성전 (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하였다. 그 성전은 훗날 헤롯에 의해 더 화려하게 건축되었지만 주후 70년 아브월 9일 로마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1] 거룩한 생명력을 잃은 성전이 또 다시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전터가 내려다 보이는 동편 올리브 산비탈에 학개의 검증되지 않은 묘가 있다. 학개는 성전이 또 다시 무너질것을 알았을까? 오늘날 성전 건축은 곧 교회 성장이라는 공식을 믿는 많은 교회들이 성전 건축에 열을 올리며 학개서를 성전 건축의 교과서로 사용한다. 그러나 학개가 전한 메세지는 성전 건축이 중심내용이 아니었다.  학개의 메세지는  회개의 달 엘룰월을 통해 무너저버린 거룩한 성전된 삶의 재건과 티쉬레이월의 로쉬 하샤나, 욤키푸르, 그리고 초막절을 통해 거룩함의 회복과 전이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된 공동체가 건축되기를 소망한 것이었다.



[1] 유대 전통에 따르면 아브월 9일 같은 날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이 무너졌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Bible Story 2014.10.28 11:43 Posted by Israel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아나돗 출신으로 다윗 당시 대제사장직을 지냈던 아비아달의 후손이다. (왕상 2:26). 선지 소명을 받던 그 날 그는 고백한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1:6)” 나는 아이라 (나아르 아노키. 히브리어) 라는 말은 어린 아이 혹은 청년을 의미하는데 예레미야는 십대 후반 혹은 20세때에 선지 소명을 받았다 (요시야 왕 제 13, 주전 627). 하나님은 청년 예레미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소명을 그에게 주신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1:10). 특별히 예레미야가 전해야 했던 메세지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멸망이었다.


솔로몬에 의해 7년동안 건축된 예루살렘 성전은 남 유다의 심장이었다. 성전 봉헌식 때 솔로몬은 이렇게 외쳤다.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왕상 8:13). 제사장들이 성소로 언약궤를 옮기고 나올 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소를 뒤덮었다. 그 영광의 성전 봉헌식 이후 400년 가까이 지나는  사이 이스라엘 나라는 온갖 상처 투성이의 역사로 얽룩졌다. 하나님을 향한 배교. 양분된 나라. 북 이스라엘의 멸망. 지속적인 외적의 침입. 이집트와 바벨론의 패권 다툼속에서 정치적 줄타기를 하며 어느쪽 멍에가 더 가벼운지 눈치를 봐야만 했던 남 유다는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예루살렘.  예레미야가 멸망을 예언한 예루살렘은 단 한번도 외적의 손에 의해 완전히 파괴던 적이 없었다.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도 예루살렘 정복에는 실패하였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영원한 처소이기에 그 어떤 강대국의 칼과 창도 감히 넘볼수 없으리라고 유다 백성들은 굳게 믿었다




사진: 나사렛 전경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여러 차례의 큰 지진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남 유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계를 빠르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 심판을 멈출수 있는 의로운 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의 선지 사역 당시 왕이었던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의 바로 느고와의 므깃도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왕하 23:29). 그후 등극한 4명의 왕들은 (여호아하스, 여호아김, 여호아긴, 시드기야) 한결같이 므낫세의 죄를 따라 배교의 길을 걸었다. 그 사이 북쪽의 신흥제국 바벨론은 앗수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낸뒤 (주전 612-605년사이) 남쪽의 이집트와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하였다 (갈그미스 전투. 주전 605). 이후 친이집트 정책을 펴고 있던 남유다를 향해 바벨론은 칼을 겨누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바벨론의 침략을 예언한 적이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왕하 20:17-18). 그후 백여년이 지나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 역사의 한페이지로 빠르게 쓰여져 내려가고 있었다. 바벨론의 침략은 그 멍에를 거부한 남 유다를 향한 이방 나라의 정치 군사적 보복이나 경제적 수탈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벨론의 침략은 남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예레미야는 선지서1-25장에서 자세히 나열한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2:8). 남유다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2:13). 예루살렘은 패역과 배교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채를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6:6).




사진: 헤브론 막벨라 굴


예루살렘은 영원하리라! 라는 거짓된 믿음에 사로집힌 왕들과 백성들은  죄악의 소굴에서 하나님과 바알의 이름을 함께 불렀다. 바벨론 군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예루살렘 성밖에 들려오는 그 순간 조차도 왕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거부하였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다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땅으로 영원한 패허가 되게 하리라…(25:2-9).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살길임을 외쳤다 (38:18-20). 남 유다의 백성들은 겸손히 하나님이 준비하신 회초리인 바벨론에게 종아리를 걷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매를 피할 길만을 찾기에 급급하었다.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예루살렘을 우상처럼 섬기던 완고한 배교와 패역한 백성들 앞에 섰던 선지자.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주장하여 역사와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선지자 예레미야. 왕들과 백성들의 온갖 협박과 조롱속에서도 그가 심판의 메세지를 전할 수 있었던 힘과 용기는 남 유다의 임박한 멸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명한다 (32:6-14). 줄곧 남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던 선지자에게 밭을 사라니! 그러나 그 밭은 장래 유다의 회복을 담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32:15).


유대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성전 파괴일 (티샤 베아브)에 출생하였다고 한다. 예레미야의 출생일에 대해 유대 전승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어쩌면 유대 전승은 예레미야의 선지 사역의 중심이 되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투영하여 그의 출생일을 티샤 베아브로 정한듯 하다. 한편 이스라엘 전통 절기인 로쉬 하샤나 (새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의 회복을 알리는 렘 31:15-17을 읽는다. 소망이 있는 멸망을 전하였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그 눈물은 멸망을 바라봐야 했던 선지자의 심장을 찌르는듯한 아픔과 다시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았던 희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니느웨 성읍 동편 박넝쿨 아래 앉아 있던 요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것은 앗수르의 멸망이었다. 그러나 기대하던 드라마틱한 멸망은 없었다. 그렇게 약 백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심지어 앗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의 지방 도시로 강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 백성들을 정착시킴으로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과 신앙의 정체성을 말살하였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주전 722) 앗수르는 남 유다 왕국을 수차례 침공하였다 (왕하 18-19). 앗수르인들의 잔인함은 니느웨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앗수르인들은 전쟁 포로를 산채로 그 가죽을 벗겨 죽이거나, 항문으로 창을 집어 넣어 목까지 찔러 처형하였다.


   선지자 나훔이 선지 사역을 하던 때는 남 유다 왕국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가 다스릴 때였다 (주전 664-654). 선왕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때 왕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성전 바닥이 아닌 앗수르 왕 앞에 무릎을 꿇었고 봉신이 되었다. 앗수르의 신하가 된 므낫세는 유다 땅에 이방 신들의 제단을 쌓고 열심을 다해 그 신들을 섬겼다.





   나훔은 야훼라는 이름과 하나님을 지칭하는 1인칭과 3인칭 동사 혹은 접미사를 42회 이상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한다. 47절로 구성된 나훔서에는 13회의 야훼가 등장하는데 특히 1장에는 야훼라는 이름(10)과 그의 성품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훔의 메세지는 앗수르의 봉신이었던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의 배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직접적인 메세지 대신에 므낫세가 섬기는 앗수르의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전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놓인 앗수르에는 잘 훈련된 용사들이 있었다. 앗수르의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질주하였고 그 빠르기가 번개와도 같았다 (2:3-4). 수도 니느웨는 적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사방을 깊이 파고 물로 채웠다 (2:8). 니느웨 성읍은 젊은 사자의 굴과 같았다 (2:11). 그러나 나훔은 이 모든 것이 쓸모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벙겨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2:13).


   니느웨는 그들의 칼과 병거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3:11). 앗수르의 산성은 처음 익은 힘없는 무화과 나무 열매 같았고 그들의 장정은 여인과 같았다. 과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탐군 열명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13:33) 라고 보고하였던 적이 있다. 정탐군들은 자신들과 이스라엘이 메뚜기 같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훔의 메세지는 선지자 개인의 생각이 아닌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니느웨의 용맹스런 방백은 메뚜기 떼에 불과하였다 (3:17).


   나훔은 그의 메세지 마지막을 마침표로 끝내지 않는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3:19). 이는 과거 니느웨 백성들의 심판을 염원하며 그 성읍을 바라보던 요나를 향해 내가 어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단한 하나님의 메세지와 대조적인 말씀이다.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하나님은 앗수르 왕과 니느웨 백성들에게 되 묻는다. 백여 년 전 굵은 베옷을 입고 짐승조차도 금식하며 회개하던 것을 잊었느냐! 나훔이 요나처럼 니느웨를 방문하여 이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였는지 혹은 유다 왕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 앞에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는지 알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나훔서의 하나님은 단순히 니느웨만을 향해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 메세지는 깊은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앗수르의 봉신인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이기도 하다.





   사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전한 메세지는 심판의 메세지였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3:4). 마찬가지로 나훔 역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니느웨의 백성들에게 전한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 진노는 멸망이 아닌 다시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하기를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담겨있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치 않았고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주전 612).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잊었다. 메세지의 무게중심이 하나님의 사랑, 긍휼, 평안, 그리고 축복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묵상해야 할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 메세지를 나훔은 오늘날 교회를 향한 묵시로 전한다. 분명 베드로 역시 나훔 선지자가 전하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벤전 4:17).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때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1:7)라는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그 분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다


위 글은 새가정사 9월호에 연재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식한 사람이었을까?

Bible Story 2014.08.30 13:52 Posted by Israel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 αγραμματοι εισιν και ιδιωται)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13). 


본 글은 "학문없는 범인"(행 4:13)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1세기 시대 당시의 상황과 성서 택스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정리한 것이다.  


이야기는 사십여세된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보지 못하였던 걸인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걸인. 그는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늘 미문에 앉아 성전을 오고가는 유대인들에게 그는 손을 내밀었고, 그 미문을 이용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가 일어났다. 지팡이를 의지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서 힘이 없는 발이 대롱 대롱 메달린채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발과 발목에 힘을 얻게 되었고 일어나 걷기도, 뛰기도 하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은 관원들에게 잡혔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다음날 산헤드린 관원들. 장로들. 서기관들의 긴급 회동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그리고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석하였다. 이들은 얼마전에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류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지, 그리고 걷지 못하던 걸인이 치유된 사건의 경유를 물었고 베드로는 담대하게 그 앞에 선 인물들이 사주하여 주였던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걷게 되었음을 증언한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던 자들이 놀라며  한말.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라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직업과 이 구절을 연결하여 해석 한다. 그들은 갈릴리의 어부였다. 당시 어부라는 직업은 배우지 못한 이들이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정규 학업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경우를 어부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투영하여 그들이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고 결론짓는 이들이 있다 (본 글은 정규 학업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 어떤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이 해석은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먼저 오늘날의 특정 직업이나 학업 과정을 1세기 당시의 직업에 그대로 적용하여 해석해서는 안된다. 현 시대와 과거 사이에 있는 시간. 문화. 역사. 그리고 사회 환경상의 차이점들이 있다. 따라서, 이는 마치 현대인들은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데, 과거에는 왜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이용하였을까? 라는 어리석은 질문과도 같은 것이다. 현 시대 상황이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본문이 현 시대를 해석하고, 현 시대는 성서 본문의 해석을 적용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본래 학문없는 범인" 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성서 컨택스트의  의미를 살펴보자. αγραμματοι (uneducated. 학문 없는) 이란 뜻은  "글을 알지 못하는" 이란 의미가 아닌 전문적인 성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위대한 랍비들이 있었다. 샴마이와 힐렐 학파가 있었다. 바울은 가멜리엘 문하생이었다 (행 22:3). 유대교내의 여러 분파들 예를 들면,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 파등은 성서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그 분파내에서 성서 교육을 받았다. 회당에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백성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마 23:2). 재판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산헤드린 공회원. 서기관. 제사장들) 입장에서 볼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받아온 혹은 가르치는 성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 없는" 이란 표현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범인 (ιδιωται,amateurs)" 이란 의미 역시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들과 비교해 볼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어떤 정치적, 서기관적, 혹은 제사장적인 가문의 뿌리가 없는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재판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말대로 베드로와 요한은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학문 없는, 그리고 자신들처럼 권력이나 엘리트 층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었을까? 두번째는 양측을 비교해 보았을때 맞는 말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학문 없는" 이들이라는 그들의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 물론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처럼 전문적인 성서 교육 과정을 이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2-4장을 잘 읽어보면 이들이 성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들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이후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요 1:41)라고 말한다. 무엇에 근거해서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였을까?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었던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요 1:45)라고 말한다. 이들이 구약 성서가 증거하는 메시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면 이런 말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처럼 전문 성서 교육은 받지 않았을지라도 성서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성서 지식이 얄팍한 것도 아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대중 설교 혹은 형제들 사이에서 그가 한 말들을 살펴보면, 그가 구약 성서를 인용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1)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시 69:25) / 2).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욜 2:28ff)/ 3) 다윗이 그를 가르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시 16:8 ff)/ 4)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5).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6)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7)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시 118:22) / 8)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시 2:1,2). 


위에서 언급한 8번의 경우들은 베드로가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이 "학문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거나 그가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증거들이다. 물론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의 주와 메시야 되심을 구약 성서를 인용하여 변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분명하신 역사가 있었다 (행 2:4; 4:8).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과 함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유대의 세대를 잇는 종교 교육이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는 유대인들의 세대간 종교 교육의 좋은 실례이다.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 6:6-7)." 성서 시대 당시에는 성서가 흔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쇄 기술이 없었기에 성서는 수기로 기록되었고 가정집에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명기 저자는 왕이 권좌에 앉을때에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신 17:18)" 부지런히 그 율법을 배우라고 명한다. 왕은 등사본 성서를 소유하였다는 증거이다. 요시야 시대에는 (주전 622년)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되었다. 율법책, 즉 성서가 흔하였다면 그 책을 발견한 것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듣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가르친다. 듣고 기억하고 가르치는 것 이 사이클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성서 교육이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은 랍비로부터 성서를 배웠다. 일년 세차례의 절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들은 유대의 성서 교육의 중요한 예가 되기도 하며, 전 세대가 이 절기들을 통해 유대의 성서가 증거하는 과거의 역사를 배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역시 그들의 부모 세대로부터, 그리고 회당에서 성서를 배우고 기억하였다. 손에 성서가 들려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 주머니에는 늘 성서가 있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학문없는 사람이라는 재판 자리에 있던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의 말은 그들이 누리고 있던 최고의 종교 교육 시스템이라는 눈으로 베드로를 비웃듯 말하였지만 베드로는 절대 학문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학문 없는 범인" 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 재판 자리에 있던 이들이 받았던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사장이나 정치인들이 가문에서 출생하지 않은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 출신 베드로에게 한 말이다. 베드로가 어리석거나 혹은 무식하다는 말이 아니다. 





베드로가 거주하였던 갈릴리 바다 북쪽의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1세기 당시 국제 무역 도로가 통과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에루살렘의 종교 교육 현장에 그는 없었다. 그는 어떤 학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베드로는 당시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는 예루살렘의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보다도 더 밝았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은 고립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국제 도로가 없다. 높은 산위에 위치해 있다 (해발 750미터 이상). 물을 얻기도 어렵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땅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립의 최적 조건을 갖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반면 갈릴리는 물. 도로. 식량의 최적지이다. 따라서 국제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베드로는 국제도시의 한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었다. 


한편,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말중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라는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학문없는 범인들롤 알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구약 성서를 인용하여 예수의 주와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는 것, 그리고 베드로의 수사학적 표현등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는 1세기 시대 당시 그 누구보다 유명한 랍비였고 이들의 그 랍비의 제자들이 아니었던가! 


결론은 이렇다. 학문없는 범인 이라는 말은 세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글을 모르는 사람. 무식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성서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제사장이나 정치인과는 무관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상 15:23의 사신 우상의 뜻은?

Bible Story 2014.07.30 14:58 Posted by Israel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3). 


한글 성서와 히브리어 성서를 비교해서 읽다보면 조금 혹은 많이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얼마전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삼상 15장 23절에 "사신 우상" 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사신" 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질문을 받았기에 집에 오자마자 히브리 성서와 사전을 살펴 보았다. 과연 "사신 우상"은 무슨 의미일까? 언뜻 보기에는 "살아 있는 우상"의 존댓말인 "살아계신 우상"인가 싶기도 했다.  히브리어 본문을 통해 한글 성서가 삼상 15:23을 바르게 번역하였는지 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말 성서 버전들의 번역이다.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 성서는 "사신 우상"으로 번역을 한다. 

공동 번역은 "그분께 대드는 것은 우상을 위하는 것만큼이나 죄가 되오."

새번역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완고한 고집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오." 


영어 성경의 번역을 보면...

NIV: Arrogance like the evil of idolatry. 

JPS: Defiance, like the iniquity of teraphim

NET: Presumption is like the evil of idolatry 

NLT: Stubbornness as bad as worshiping idols. 

LXX: idols bring on pain and grief. 


히브리어 성서는.

כי הטאת קסם מרי ואון ותרפים הפצר 


"사신 우상" 이라는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פצר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BDB에 의하면 push, press, urge (칼 동사)로 to display pushing (arrogance) 로 그리고 히필 동사는 presumption (주제 넘음, 건방짐)으로 해석을 한다. 

HALOT은 urge someone, coerce (강압하다. 억지로 무엇을 하게 하다. 칼 동사). מרי (반항. 저항) 라는 단어와 함께 또 다른 "저항" 이라는 뜻 (히필 동사)을 가진 단어로 소개를 한다. 



사진: 드라빔 (가정 수호신)


따라서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은 일부 한글 성서(개역 개정 & 개역 한글)의 "사신 우상" 이라는 번역을 "살아계신 혹은 살아 있는 우상" 으로 번역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국어 사전에서 "사신" 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여러 뜻이 나온다. 1) 임금이나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 2) 짚신의 방언. 3) 의뜸 벼슬 (신라 시대). 4) 사초를 쓰던 신하. 5). 날이 밝아 새벽임을 알리는 것을 맡아보던 일. 등의 뜻이 나오는데 그 어느 것도 삼상 15:23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자로 "사신"은 어떤 추가적인 의미가 있을까? 1. 사사로 하는 편지. 2). 수행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본 구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혹 "사신"은 "죽은 신"이란 의미가 아닐까? "완고한 것은 죽은 신인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라고 말할 수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죽은 신"이라는 표현이 없고 그저 완고함 혹은 고집스러움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라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 성서의 "사신 우상"이라는 표현은 한글 성서에서 빼는 것이 이 구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유영삼 님께서 "사신 우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사신 우상이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옛날 한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생겨난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어려운 내용도 아닙니다. 저도 글을 읽고 옛날 한문이 섞여 있는 성경을 보니까 사신 우상에서 사신이라는 뜻이 邪神(사신)의 뜻이 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악한 신으로 섬기는 우상이지요."



        에서와 야곱. 그들은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서로 싸웠다. 형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고 동생은 속임수로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았다. 결국 형은 동생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그 형을 피해 동생은 20년동안 타국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 얍복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오던 동생은 형에게 용서를 구했고 둘은 화해를 하였다. 그러나 성서 저자들은 두 형제의 화해 이후 그들의 후손들 사이에 있었던 기나긴 반목의 역사를 기록한다.

        야곱의 백성이 출애굽 후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 에돔 족속이 거주하던 세일 산의 왕의 대로 이용을 요청하였을 때 에돔의 백성은 형제인 그들을 환영하는 대신 칼과 창으로 그 길을 막았고 야곱의 후손은 거친 광야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 20-21).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 했던 발람의 예언중에 등장하는 에돔은 이스라엘의 원수였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24:18). 이스라엘 왕 사울 주변의 대적들 중에는 형제 국가인 에돔도 있었다 (삼상 14:47). 솔로몬 시대에는 에돔 사람 하닷이 일어나서 솔로몬의 왕권을 위협하였다 (왕상 11:14-25).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는 한결같이 에돔을 향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였고 시편 중에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의 에돔을 향한 증오와 저주가 담긴 노래가 있기도 하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 137:7).



사진: 양각 나팔


        구약 성서중 가장 짧은 오바댜 서의 저자 오바댜와 동일한 이름이 성서에 12번 등장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자인 오바댜와 관련이 없다. 랍비 문학에 의하면 북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궁내 대신이었던 오바댜는 에돔 출신으로 그가 선지서의 저자일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오바댜서의 본문 내용은 이를 부인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11),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 (12), 시온 산에서 피할 자 (17) 등의 문구들이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이 아닌 남 유다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거나 적어도 남 유다와 관련된 예언 사역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선지자 오바댜에 관한 개인 정보가 없다 보니 선지서의 기록 시기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멀리는 주전 9세기 중엽부터 남 유다가 멸망 당한 주전 586년 경 혹은 그 이후까지 학자들은 여러 기록 연대들을  추정한다. 한편 오바댜는 유다 백성의 죄악이나 멸망의 원인을 지적하는 대신 유다의 환난의 때를 틈타 형제 나라를 노략하였던 에돔의 죄악과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유다의 회복을 강조한 메세지를 전한다.

        세일 산지의 에돔은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이었다 (3). 에돔은 요세화된 산지에 살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바댜는 그들의 교만을 꺽는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라” (3-4). 에돔은 공생 관계에 있던 열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이고 에돔의 지혜자들이 몰락하고 그 땅의 용사들 역시 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오바댜는 예언한다 (7-9).

        형제 국가인 유다의  재앙, 환난, 그리고 멸망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에돔에 대해, 오바댜는 에돔과 유다의 관계가 열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10-12). 그들은 리브가로부터 출생한 쌍둥이 형제의 후손이었다. 그들의 선조는 얍복강 건너에서 목을 어긋맞추어 울며 화해를 했었다. 그러나 에돔은 형제 유다의 환난을 방관할 뿐 아니라 멸망의 바람을 몰고 오는 열국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고 환난을 피해 도망가는 유다인들의 길목을 차단하였다 (14).

        에돔은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형제 야곱을 저버렸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재물을 탐내었고 열국과 함께 예루살렘을 노략하였다 (11).  에서의 형제였던 야곱의 후손을 향한 에돔의 소행은 그저 인간 역사의 한 구석에서 벌어진 한토막 사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형제를 돌아보지 않고 그 형제를 멸망시키는데 앞장선 에돔의 죄악을 좌시하지 않으셨다. 최고의 선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그 이익을 위해서라면 형제라도 버릴 수 있는 에돔을 향해 오바댜의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으로 다가오신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15).


사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의 묘(시온산 근처)


        한편 오바댜는 형제에 의해 버림당하고 유린당한 야곱 족속을 위한 소망의 회복을 전한다 (17-21). 야곱 족속은 다시 시온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네겝과 에서의 산 (세일 산지) 을 차지할 것이다. 과거 열국과 형제 에돔 족속에게 수탈 당하였던 시온 산에 올라가 에서의 산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오바댜는 선지서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한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21). 인류 역사의 펜은 사람이 쥐고 있고 사람에 의해  쓰여지는 듯 하지만, 그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연대를 알수 없는 오바댜의 외침은  영원한 진리의 경고를 담고 있다. 옳은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지 않고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세대. 눈앞의 이익을 위해 형제를 버리는 세대. 타인의 환난을 돌아보지 않고 죄악으로 배를 채우는 세대의 인생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위 글은 "새가정사" 7-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출 5:7-8). 


지금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어릴적 어느 날 아버지께서 버섯을 가져오셨다. 그 날 저녁 버섯을 먹고 나서 그 다음 날 오전부터 배앓이를 시작하였고 죽을 정도로 배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는 벽돌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셨다. 어린 나는 부모님이 일하시는 그 벽돌 공장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서 "배 아파! 배 아파!" 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울어 보채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돌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벽돌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부터 약 3천 5백여년전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벽돌을 만들었다. 그들은 시멘트와 모래가 아닌 진흙에 짚을 섞어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만들어내야 했다. 어느 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요구하였고 이에 바로는 Yes 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게으름에서 나온 어리석은 요구라고 비웃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게으름에 따른 벌로 벽돌 생산용 짚을 제공하지 말라고 명하고 벽돌 생산 수효를 반드시 채울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생산에는 큰 차질이 빚어졌고 백성들은 바로를 찾아가서 짚을 제공할 것을 호소하였지만 결과는 책망과 매질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생산과 짚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6800여 킬로미터를 내 달리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주 수원지이자 과거 고센땅의 풍요의 원천이었다. 이집트인들은 고센땅이 위치한 델타 평야에서 농사를 지었고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짚을 잘게 썰어서 진흙 벽돌 생산에 사용하였다. 사양길을 걷고 있지만 현재도 델타 평야 지역에는 진흙과 짚을 섞어 만든 전통 방식의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 

과거 이집트인들은 이틀에 약 2천개 정도의 진흙 벽돌을 만들었다. 몇명이 2천개의 벽돌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이집트의 벽돌 생산은 중요한 사업이었고 이 벽돌은 집과 신전 공사에 주로 사용되었다. 어떤 이집트 문서는 벽돌 생산에 있어 짚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re are no men to make bricks and no straw in the district." 즉 짚이 없는 곳에서는 벽돌을 만들수 없다! 라는 말인데 그만큼 짚은 벽돌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벽돌 생산에 짚이 필요한 이유는 벽들을 말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짚을 넣지 않는 벽돌은 쉽게 부스러진다. 벽돌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사진: 공인 저울 만드는 틀 


성서 본문은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벽돌 생산용 짚을 제공하였다고 말한다 (출 5:7).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분한 짚을 제공받았고 그 짚을 벽돌 생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짚을 더 이상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생산해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들판으로 나가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서 짚을 대신해서 벽돌을 생산해야 했다. 그들은 두배 혹은 세배 이상의 노동을 해야 했고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생산할 수가 없었다 (출 5:14). 아무때나 곡초 그루터기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추수기가 지난 들판에서나 곡초 그루터기를 구할 수 있었기에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곡초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흙 벽돌 생산은 연중 사업이었다. 이는 바로가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짚을 제공하지 말라는 명령에서 이집트인들이 벽돌용 짚을 저장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로는 매우 효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의 들판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고 짚이 없어 곡초 그루터기를 주어야 했던 그들은 모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출 5:21).


현실 생활속에 종종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은 종종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헤매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불안과 염려, 그리고 분노로 우리의 눈을 가리운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출 6:1). 그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헤매던 백성들이 그 눈을 들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벽돌 공장 한편에서 나는 정말로 죽는줄 알았다. 벽돌 한장 한장을 만들어 그 수효를 채워야 돈을 받아 하루를 먹고 살 수 있었던 부모님을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었다.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내 기억 주머니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나에게 그리고 현실의 고난과 역경에 남 모르게 눈물 흘리는 이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만 당장 답을 하지 않으시는 그 분을 향해 원망의 눈을 드는 이들을 향해 말한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아멘. 



사진: 돌로 된 저울추 


참고문헌 Robert Littman, Marta Lorenzon and Jay Silverstein "With & Without Straw: How Israelite Slaves Made Bricks," BAR 40:02, Mar/Apr 2014. 

         브두엘의 아들 요엘 (: 야훼는 하나님이시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그가 어느 시대에 선지 활동을 했는지도 추정할 뿐이다. 소선지서의 시작인 호세아 (14)와 아모스서 (9) 사이에 짧은  네장으로 된 선지자의 목소리는 찾기 조차도 힘들 정도이다. 아마 요엘 선지자가 전한 메세지는 구약보다 사도행전 2 14절 이하 베드로의 오순절 첫 설교때 인용된 것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 2:28-32).   요엘 선지자가  전하였던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이 수백년 후 예루살렘에 모인 한 무리를 통해 성취되었고 회개 운동으로 이어졌다.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요엘은 유대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세번에 걸쳐서 임박한 여호와의 심판 날을 선포한다. 그 첫번째는 자연 재해를 통한 여호와의 심판이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1:4).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경우 임할 자연 재해의 저주를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내 경내에 감람 나무가 있을 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 28:38-40). 요엘 시대의 백성들은 모세가 경고한 말씀의 메아리를 귀로만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하늘은 메말라 버렸다. 물 없는 구름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씨는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 버렸다. 꼴을 얻지 못하는 가축들은 헐떡거리며 피곤한 눈으로 부르짖었다. 말라버린 시내. 속빈 포도와 무화과는 다가오는 멸망의 날. “여호와의 날을 알리는 황색 경고등이었다. 멸망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굵은 베를 동이는 것 뿐이었다. 제사장들이 에봇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어야 했다. 성중의 장로들과 백성들도 제사장을 따라 회개의 굵은 베 옷을 입고 엎드려야 했다.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외친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1:13). 제사장. 장로. 그리고 백성들로 이어지는 국가적인 회개만이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요엘은 외친다.




사진: 요엘 선지자...


        과연 제사장들이 회개의 굵은 베옷을 입었을까? 요엘 선지자는 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을 두번째 여호와의 멸망의 날을 선포한다 (2:1-2). . 기병들. 병거 소리. 강한 군사. 용사. 무사.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를 달리는 이들. 이제는 자연 재해가 아닌 칼과 창으로 임하는 심판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황색 경고등으로 끝날 수 있는 여호와의 날이 적색 경보로 바뀌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백성들의 눈에는 바짝 말라버린 땅만 보였지만, 선지자는 그 메마른 땅위에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발굽 소리를 듣고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죄악의 절벽을 향해 달음질을 해서는 안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2:12-13). 여호와는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시다. 재앙 대신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2:14). 시내의 물이 말랐다고 해서 제사장들의 눈물까지 말라서는 안되었다.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회개의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2:17). 제사장들 뿐 아니라 백성들. 장로들. 신랑과 신부. 심지어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회개의 자리로 모으라고 요엘은 촉구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왕과  백성들뿐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을 때 그 성내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이들을 구하지 않으셨던가! 여호와는 회개하는 백성들을 위해 언제든지 자신의 정한 뜻을 돌이키기 위한 유턴을 준비하시는 분이셨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18-23). 회개한 백성들은 즐거워 할 것이고 들짐승들도 들판에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옷이 아닌 마음을 찢었을 때 하나님이 돌아오신다.


       요엘 선지자가 선포한 세번째 여호와의 멸망의 날은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3:2). 그 심판의 자리인 여호사밧 골짜기 (: 야훼는 심판하신다)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과 성전이 있던 모리아 산 사이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의 다른 이름이다. 이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이방의 열국들을 심판하신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 흩고 유다와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과 먼 나라 스바 사람들에게 판 사람들이다 (3:2-8).  아모스의 하나님은 사자처럼 심판과 회개를 부르짖으셨다. 요엘 선지자의 하나님 역시 시온에서 사자처럼 부르짖으신다 (3:16). 요엘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과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는 날이기도 하다. 회개하며 돌이키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복을 약속하신다.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3:20).   


       우리 세대는 굵은 베 옷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다. 회개의 금식이 거추장스런 세대이다. 마음의 옷 찢지 않는 세대이다. 팥중이. 메뚜기. 느치. 그리고 항충을 통해 전하는 여호와의 경고. 들짐승의 피곤한 부르짖음이 전하는 여호와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세대이다. 요엘 시대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굵은 베 옷을 입고 메말라 버린 그들의 눈물 샘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여호와의 심판의 종말이 외쳐졌다면 오늘날 우리 세대는 얼마나 그 심판의 종말에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는가!  선지자의 활동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역사의 흐름속에서 회개치 않는 백성들을 향한 적색 경보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더 늦기 전에 적색 경보의 여호와의 날을 소망과 평화의 녹색등으로 바꿀 굵은 베 옷을 입고 마음을 찢으라는 선지자의 외침을 들을 때이다.


* 위 글은 새가정사 6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αγαπας)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φιλω)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αγαπας)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φιλω)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φιλεις)하느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φλιεις)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


'아가페'와 '필레오'를 구분하여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 (divine love), 필레오는 친구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으로 해석 및 설교를 하는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한 것은 신적인 사랑이었으나 베드로는 신적인 사랑의 수준으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베드로는 친구간의 사랑 수준으로 예수를 사랑하였고, 결국 예수께서도 베드로에게 필레오의 사랑으로 물으셨다... 




사진: 베드로 재사명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사랑 모양의 돌판 


그렇다면 요한은 이 장면을 기록할 때 과연 그는 아가페와 필레오의 뜻을 구분하여 본문을 기록하였을까? 


신약 성서 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적어도 세가지 언어권속에서 생활하였다. 당시에는 아람어가 오늘날의 국제어인 영어와 같은 지배적인 언어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는 유대인들의 모국어였고 종교적인 언어로 회당이나 성서 읽기에 사용되었지만 생활속에서는 아람어가 주 언어였다. 또한 헬라어 역시 아람어와 함께 국제 언어로 사용되었다. F. F 부르스에 의하면, 예수의 성육신이 로마 제국시대 당시에 있었던 중요한 몇가지 이유들중 발달된 국제 도로와 공용어인 헬라어는 훗날 효과적인 복음 전파에 중요한 물리적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아람어는 주전 8세기 경에도 국제 언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앗수르의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하였을 때 산헤립이 보낸 랍사게가 유다 말 즉 히브리어로 항복을 요구하였을 때,  예루살렘의 정치인들은 랍사게에게 유다 말이 아닌 아람어로 말해줄 것을 요청한다.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데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왕하 18:26). 


적어도 유다의 지식인들은 아람어를 할 줄 알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실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같은 셈족어로 아주 비슷하여 배우기가 쉽다. 다시 돌아가서 신약 성서 시대의 유다인들은 아람어를 구사하였고 에수와 그의 제자들 역시 아람어로 대화를 하였다. 따라서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와 베드로 사이의 대화의 일차적 언어는 아람어였을 것이다. 훗날 요한은 이 아람어로 한 대화를 성서를 기록할 때 헬라어로 바꾸어서 기록을 하였다. 


헬라어에는 사랑을 뜻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아가페. 필레오. 스테레고. 에로스.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 필레오와 스테레고는 친구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그리고 에로스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정의하지만 실제로는 각 단어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한편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하바"이다. 아하바에는 신적. 친구간 혹은 부모와 자식.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단어가 사용된 컨텍스트가 그 단어의 의미를 규정한다. 


예수께서는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로 베드로에게 '아하바 (동사형 아하브)'하는지를 물었을 것이고, 베드로는 동일한 단어인 '아하바'로 답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차적인 언어로 볼때 예수의 질문과 베드로의 답변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신적 사랑'을 말하는지 '친구간의 사랑'을 말하는지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그 단어가 사용된 상황 역시 단어의 내적 의미를 쪼개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헬라어로 성서를 기록할 때 아가페와 필레오 이 두 단어를 사용하였다. 왜 요한은 '아하바'를 두 단어의 헬라어로 사용하였을까? 과연 요한이 이 두 단어를 사용할 때 그는 두 단어가 주는 내적인 의미 혹은 그 단어가 공유하는 혹은 분명히 구분된 의미를 예수와 베드로 사이의 대화에 적용하기 위해 이 두 단어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일까? 




사진: 베드로 재사명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가)


요한의 저작인 요한 복음과 그의 서신서에 등장하는 '아가페'와 '필레오'의 상황적 의미를 살펴보면 요한이 정의한 그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가페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은 요 3:16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신적인 사랑이 그대로 '아가페'에 들어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19절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에서도 '아가페'가 사용되었다. 12:43에도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일 2:15 에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에서도 '아가페'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아가페가 사용된 상황을 보면 신의 사람을 향한 사랑 혹은 사람의 신을 향한 사랑뿐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악을 사랑하는 사람, 즉 전혀 신적이거나 거룩하지 않은, 신성하지 않은 오히려 인간의 죄악 냄새가 풀풀나는 죄를 원하는 원초적 본능을 말할때에도 아가페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뿐 아니라 바울도 말하기를 그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아가페)하여'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필레오는 어떨까?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여기에서 사용된 것은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사이의 사랑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으로 정의한 필레오의 사랑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요 11:3에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필레오의 사랑을 한 것을 볼 수 있으며, 16:27에서는 제자들의 예수를 향한 사랑을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한다. 요한은 계시록 3:19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라는 주의 말씀에서도 '필레오'를 사용한다. 바울 역시 필레오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을 표현할때 사용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필레오)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전 16:22). 




사진: Feed my sheep! 베드로에게 재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베드로 재사명 교회)


이로 보건데, 아가페와 필레오는 그 단어들 사이의 분명한 구분선이 없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 아가페의 사랑을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필레오의 사랑으로 답을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랑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가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기에 예수께서 어쩔 수 없이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최고의 수준에서 한 단계 내려와서 그렇다면 너는 나를 필레오 수준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 라고 물은 것도 아니다. 아가페와 필레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필레오 사랑 고백 때마다 하신 말씀에 주목하는것을 놓칠 수 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일관되게 필레오의 사랑 고백을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양을 먹이고 (to feed) 양을 치라는 (to shepherd) 사명을 주신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21장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첫 부르심과 사명 주심 이후에 다시 베드로를 부르시고 그에게 재사명을 주는 것. 즉 아가페이냐 혹은 필레오냐의 문제가 아닌 어부의 길로 다시 돌아가 베드로를 찾아가 그에게 재사명 (양을 먹이고 양을 치는)을 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미 주께서는 베드로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갔고 그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들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숫양을 바치도록 하였다. 이야기의 결말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끝난다. 헤피엔딩... 히브리어로 "아케다" (Binding) 불리는 이 사건은 수세기를 걸쳐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이야기 거리가 되어 왔다. 이중 이삭과 아브라함의 대화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히브리어 원문을 통해 보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어 원문을 잘 살펴보면 아브라함의 답변은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나레이터: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이삭이 말하기를 


이삭:                                아버지! 

나레이터: 그가 대답하였다. 


아브라함:                          내가 여기 있다 나의 아들아! 

이삭:                                보세요.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은 어디 있지요? 




나레이터: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아브라함:                         여호와께서 그를 위해 번제로 드릴 양을 준비하실거야 아들아


나레이터: 이둘은 함께 길을 걸어갔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지금 왜 자신이 모리아를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다. 이미 나흘전 (집에서 출발하기 전날 22:1,3)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는 명을 받았지만 그런데, 아들 이삭과의 대화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질문에 그 번제물이 바로 이삭이 될 것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위해 준비하실 것이라는 말만을 남긴다. 진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지는 않았다. 


22:5절에 보면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 오리라" 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사환들 앞에서 이삭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5절에는 1인칭 복수의 표현이 세번 (노란색) 등장한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자신과 아들이 함께 가고 함께 돌아올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삭의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의 질문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밝히지 않았다. 



사진: 사라의 읏음 




사진: 사라의 웃음 (예루살렘 마밀라 거리)


8절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보면 히브리어 본문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1 (노란색 부분): 여호와께서 그를 위해 준비하실 것이다. 

2 (보라색 부분): 번제로 드릴 양은 내 아들이다! 


이렇게 읽는다 하더라도 히브리어 문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만일 이렇게 읽는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의 질문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이 둘이 함께 걸어갔다." 이삭은 자신이 번제로 드려질 희생양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와 함께 그 죽음의 길을 걸어갔다. 이와 같은 해석에 동의하는 고대 시대의 성서 번역본이나 자료들이 있다. 


탈굼 네오피티와 탈굼 파편 (파리 마소라 본문)은 다음과 같이 창 22:8을 해석한다. 

"아브리함이 이삭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번제를 위한 어린 양을 자신을 위하여 준비하실 것이다. 내 아들아 - 그렇지 않다면, 너는 번제를 위한 그 어린 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결의에 찬 의도로 함께 걸어갔다."

 

마카비 4서 7:12-14에 보면 이삭의 자발적인 희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아버지의 손에 의해서 이삭은 종교의 제의를 위해 죽음의 순간에 자신을 맡겼다는 것을...기억하라" 


위에서 본대로 고대 해석가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그의 운명을 모리아 산을 앞에 두고 밝혔고 이삭은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에 반해 신약 성서는 다른 각도로 이 이야기를 해석한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7-19). "믿음 장" (the chapter of faith)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에는 성서 인물들의 믿음의 행위들이 나오는데, 그 중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한다. 




사진: 아브라함의 손을 붙잡는 천사 


위 유대 문헌은 아브라함보다 이삭에 초점을 더 두는듯한 해석을 하였다. 반면 신약 성서는 이삭보다는 아브라함에게 그 중심축을 두는 해석을 하였다. 유대 문헌은 이삭의 순종적인 희생을 강조하였고, 신약성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였다. 유대 문헌은 아브라함의 답변을 통해 아브라함이 이삭의 운명을 밝힌 것에 관심을 두었지만, 신약 성서에서의 아브라함은 이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믿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 이상으로 그 죽게될 이삭을 다시 살리실 하나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참고문헌 하버드대 유대인 학자가 쓴 구약성경 개론, 제임스 L. 쿠겔. 김구원. 강신일 옮김 202-207.



다섯 마디 말의 선지자 요나

Bible Story 2014.05.08 09:52 Posted by Israel

      겨우 다섯 마디의 짧은 말로 멸망의 메세지를 전하였다 (3:4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의 히브리어 원문은 다섯마디의 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다섯 마디의 말에 십이만 명이 넘는 이방 백성들과 짐승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하며 회개하였다. 선지자 요나. 그는 북 이스라엘 왕국 여로보암 2(주전 786-746) 때의 선지자로 갈릴리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가드헤벨 출신이다 (왕하 14:25). 한때 요나는 북 이스라엘 왕국이 잃었던 영토를 회복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하였는데, 그 예언이 여로보암 2세 때 성취되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영토를 회복하였다.


      요나가 영토 회복을 선포할 때 동 시대 북 이스라엘 지역에서 활동하던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의 배교와 사회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앗수르의 손을 통해 행해질 것을 선포하였다 ( 11:5; 5:27). 아모스와 호세아가 타락한 나라를 향한 심판을 전할 때 왜 요나는 번영의 메세지를 전하였는가? 라고 요나를 비난할 수는 없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메세지만을 전하는 것이 소명이기 때문이다.




사진: 욥바(야포)에 있는 요나 물고기 


      그 하나님께서 요나를 다시 부르셨고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심판을 전하도록 명하셨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으니라” (1:2). 요나는 심판이라는 편지와 니느웨 행 비행기 티켓을 받았으나 지중해 건너편에 있는 다시스행 배를 타기 위해 욥바로 내려갔다. 성서 저자는 1장에서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1:3) 라는 짧은 표현으로 알려준다. 왜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 하였을까? 유대 랍비들은 요나가 도망한 이유를 왕하 14:25에서 요나가 전한 영토회복 성취에서 그 답을 찾는다. 요나의 영토회복 예언이 성취되었기에 그는 참된 선지자로 인정을 받았다 (참조. 18:22). 만일 요나의 니느웨 예언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로 낙인찍히게 되기에 다시스로 도망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는 자신이 전하는 예언이 성취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을까? 답은 4:2에 나온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4:2). 만일 요나가 적국 앗수르의 멸망 예언 성취를 확신했다면 그는 니느웨로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멸망의 메세지 안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을 보았다. 그는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과 심판 계획을  취소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나의 하나님은 은혜. 자비. 노하기를 더디하는. 인애가 크신. 재앙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2).


      요나는 다시스 항구에 도착하지 못했다. 대신 인류 최초의 살아있는 잠수함 (큰 물고기 뱃속)을 타고 사흘 후에 지중해 동편 어딘가에 내렸고 하나님의 두번째 부르심에 응답하여 니느웨로 갔다 (3:1-2). 큰 성읍 니느웨. 요나서에 5번 등장하는 큰 성읍.” 다른 성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 앞에 큰 성읍.” 그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들려주는 큰 성읍의 의미를 들어보자.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4:11). 십이만여 명이 거하는 성은 실제로 거대한 성읍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성의 크기가 아닌  소망없는 영혼들이었다. 악독으로 가득찼지만 그들도 구원받아야할 백성들이었다.




사진: 욥바의 야경


     큰 성읍 니느웨. 사흘 길을 걸으면서 심판을 전해야 했던 도시에서 요나는  하룻길을 걸으면서 짧은 다섯 마디의 말만을 외쳤다 (니느웨가 회개치 않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그 다섯 마디의 말에 니느웨가 회개한 것이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3:9). 요나는 다이어리에 형광팬으로 40일 뒤의 니느웨의 멸망 예정일을 표시해 놓고 그 날을 기다렸으나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요나 입장에서 볼때 여로보암 2세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영토 회복의 메세지를 일관성있게 성취시키신 하나님은 악독으로 가득찬 니느웨를 향한 심판의 메세지 역시 일관성있게 성취시키셔야 했다. 그러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고 요나는 거짓 선지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4:3). 불명예스런 거짓 선지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것이 낳았다.  혹이라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킬수도 있기에 요나는 성읍 동편 언덕에서 그 멸망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성읍 동편 언덕의 박넝쿨. 요나는 자신이 심지 않은 박넝쿨 그늘 밑에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그가 본것은 화염에 휩싸인 니느웨가 아닌 말라 죽어버린 박넝쿨이었다. 박넝쿨 그늘이 사라지자 요나는 뜨거운 둥풍으로 인해 견딜 수 없었고 죽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그는 니느웨 영혼들보다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 박넝쿨을 더 소중했다. 그는 박넝쿨을 아꼈고 하나님은 그 박넝쿨과 비교할 수 없는 십이만여 명이 넘는 백성들과 짐승들을 아꼈다.




사진: 욥바의 명물 시계탑


      유대 전통에 따르면 요나는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다 (왕상 17:23). 유대 랍비들은 그의 아버지 아밋대 (: 진리)의 이름과 의로운 심판자의 이미지가 강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요나의 성격을 추정한다. 그는 용서 없는 엄격한 진리만을 외치는 인물로 악독한 니느웨를 향한 용서 없는 진리의 심판만을 고집한 인물이다. 아이러니일까? 유대 절기인 욤키푸르(대속죄일)때 유대인들은 엄격한 진리의 심판만을 요구한 요나서를 읽는다. 그 이야기 속에서 유대인들은 니느웨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큰 긍휼을 구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요나 이야기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만에 살아난 선지자 이야기가 아닌 악독이 가득찬 이 세대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가득찬 이야기이다


* 위 글은 새가정사 5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모든것이 완벽해 보였다. 선조들이 잃었던 땅을 되찾았을뿐 아니라 그렇게 괴롭히던 이방 나라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공격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다 (참고. 왕하 14:23-29). 주전 8세기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 북 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 이후 최고의 경제 부흥기를 누리고 있었다. 주변 국가들도 감히 넘볼수 없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나라는 안정되었고 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페니키아와의 교역을 통해 고급 수입품들을 들여올 정도로 삶의 여유가 있었다. 백성들은 이스르엘 평야의 풍성한 수확으로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것 이상으로 풍족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백성들 앞에서 모세는 미래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교를 미리 내다 보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32:15).  약속의 땅에서 모세의 후손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풍요가 가져올 결과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아닌, 배교였고 타락이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조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약속의 땅에 정착하였고 뿌리를 내렸다. 주전 8세기 풍요속에 모세의 노래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 버렸다. 살이 쩠다. 비대해졌다. 윤택해졌다. 무릎을 꿇지 못할 만큼 배가 나와 버렸다. 그리고 풍요의 원천인 하나님을 버렸다.



사진: 성서 시대의 금 장신구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선지자 아모스의 메세지는 심판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열심으로 끝을 맺는다. “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9:11-15).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 채찍을 들면서도 이 소망의 메세지를 그들 가슴에 새겨주고 싶었다. 그 심판후의 소망의 전달자로 아모스를 부르셨다.


선지자 아모스. 그는 예루살렘에서 약 16 킬로미터 정도 남동쪽으로 떨어진 유대 광야 산지의 작은 마을 드고아 출신이다. 7:14에 의하면 아모스는 선지자도, 선지자의 아들도 아닌 양떼를 치는 목자이자 돌무화과 나무(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다. 선지자 전성시대였던 주전 8세기에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목자이며 농부인 아모스에게 선지자의 소명을 주셨고 북 이스라엘의 종교 성지인 벧엘로 보내셨다. 그 땅에서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의 풍요속에 가려진 치부인 부정. 부패. 불의. 부정직. 도덕적 타락의 죄들을 드러냈다.


스스로 선지자도, 선지자의 아들도 아님을 고백한  아모스였지만, 그는 사자(Lion)의 심정으로 북 이스라엘 백성앞에 섰다. 아모스는 그 백성을 향해 부르짖으시는 하나님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1:2). “부르짖다라는 히브리어는 샤아그로 사자의 부르짖음을 상상할 수 있는 동사이다. 아모스는 사자의 부르짖음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 고통. 심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대로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심판의 열심을 전한다. 1장에서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을 이웃하는 나라들의 죄를 지적하는데, 이들 국가의 죄는 전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2장부터 아모스가 들춰내는 북 이스라엘의 죄는 전쟁이 아닌 사회 생활속에서 저지르는 범죄였다.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2:6-7).



사진: 양각 나팔


이 백성은 종교적 열심이 있었다.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4:4). 벧엘 제단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경배와 제사를 드렸지만, 정작 삶속의 공의와 정의, 정직과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긍휼과 공의의 열매가 있는 예배가 없었다. 이들이 회복해야 할것은 제단에 드리는 번제나 소제가 아닌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삶의 예배였다 ( 5:22-4).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껏해야 20~30여년 정도 지나면 무너질 영광에 불과한 나라였.정의와 공의가 메마른 백성들, 배교한 나라를 향한 멸망은 이미 결정되었다. 다만 풍요에 가려져 있을 뿐이었고 멸망을 향한 시계 바늘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풍요와 소망에 대한 말씀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죄악으로 병든 몸과 영혼을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된다는 경고와 심판의 메세지를 듣지 않는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멸망뿐이었다.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 9:8).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시키고 죽이기 위한 심판이 아니다. 언제나 늘 하나님의 심판은 돌이킴을 위한 도구였다. 그러하기에 선지자는 사자의 부르짖음으로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는 하나님과 긍휼로 그 심판으로 찢겨진 백성들을 싸매고 돌이키실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을 전한다.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네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9:15).


*** 이 글은 "새가정" 4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호세아(:구원)는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의 죄악과 공의와 정의가 바닥을 치던 주전 8세기경(주전 753-722) 선지 활동을 하였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30여년 사이에 왕이 일곱번이나 바뀔 정도로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했고 바알 숭배가 만연하였다. 기나긴 타락의 암흑 시대 가운데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호세아 1장을 읽는 독자는 그 어떤 드라마틱한 선지 소명 이야기를 접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전한 첫 말씀은 순종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싶을 정도이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때에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1:2).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던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침묵함으로 순종했다. 이사야는 3년 동안 벌거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녔다 ( 20:3). 하나님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에스겔의 아내의 생명을 취하셨다 ( 24:18).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이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두 아들 (이스르엘, 로암미)과 딸 (로루하마)을 낳았다. 이스르엘을 낳았을 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피할 수 없는 패망을( 1:4). 딸 로루하마를 낳았을 때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지 않을 것을( 1:6).  로암미를 낳았을 때 이들은 더 이상 그의 백성이 아님을 선언하셨다 ( 1:9).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후회라도 하신것일까? 하나님은 곧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그러나라는 반전의 접속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그의 사랑을 전한다. “그러나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너희 형제에게는 암미 (나의 백성)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 (은혜를 입은 자)라 하라” ( 1:10-2:1).

        호세아가 피를 토하듯 타락한 백성들에게 돌이킴을 외친다 하더라도 기경되지 않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시대로 내몰아 가고 싶었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이 있는 북이스라엘이 아닌 거친 모래 바람의 들판, 뜨거운 태양, 메마른 가시나무만이 서있는 그 광야로 그들을 이끌고 싶었다. 과거 그 광야에서 백성들은 성막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렸다. 물이 부족할 때 그들은 바알을 찾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따라 살았다. 범죄하였으나 돌아왔다. 그 과거의 광야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의 사랑받는 신부로 맞이하고 싶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19).



 사진: 네게브 (남방) 광야의 싯딤 나무 


        그러나, 백성은 광야 생활을 잊었고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없었다( 4:6).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이 찢겨져 상했음을, 치명적인 영혼의 병이 들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바알이 아닌 여호와를 찾아야 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야만 했다. 오직 여호와만이 그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메어 주실 것임이라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6:1-2). 슬프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무성한 포도나무가 있었고 풍부한 곡식과 주상들을 아름답게 꾸밀 여유도 있었다 ( 10:1). 이스르엘 평야에 씨를 뿌릴 시기에 비가 내리면 그들은 바알의 축복으로 여겼다. 땅은 기경되었고 씨앗은 심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말한다.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묶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 10:12). 그들이 기경해야 할 것은 땅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버렸고 음란한 부인이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에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지자는 이렇게 전한다.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11:8-9). 사람은 사람을 포기한다. 그러나,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인생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결코 타락한 인생이 돌아오는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선지자가 써내려가던 글의 마침표를 찍을 때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손에 의해 멸망을 당했을 수도 있다. 선지자는 요청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14:2-3). 선지자의 사역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멈추었지만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아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전달된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 14:4).



사진: 텔단 (단지파의 땅) 도시 입구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선지자와 동일한 이름인 호세아였다. 왕은 나라를 구하지 못했다. 구원은 왕이나 바알이 아닌 여호와께만 있다. 선지자는 그의 글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 14:10). 역사의 한페이지였던 호세아서를 읽어내려가는 우리에게 선지자는 묻는다. 내안에. 우리안에. 교회안에 감추고 싶은, 알리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바알이 있지 않은가? 여호와만이 내가 섬길분이라는 것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그 분은 필요를 채워주는 밴딩 머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지, 여호와를 가장한 바알을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랑의 기다림의 손짓을 멈추지 않는 하나님과 순결한 사랑에 빠져 있는가? 이제 삶의 한 페이지 구석에 얽룩져 있는 바알숭배와 고멜의 흔적들을 내려놓을 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이다



*** 위 글은 기독교 잡지 "새가정사" 3월호에 연재한 것입니다. 


숨을 쉬지 못하시는 하나님

Bible Story 2014.02.22 16:00 Posted by Israel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삿 10:16). 


사사기는 "죄- 징계- 도움 요청 - 사사들의 등장과 구원 - 평안 " 이라는 사이클의 순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사기는 단순한 반복된 죄와 징계 그리고 구원의 사이클이 아니다. 사사기의 사이클 순환은 마치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파동을 일으키면서 물가로 점점 크게 퍼지듯이, 사사기의 사이클은 점점 깊은 죄악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사이클이다 (Downward Spiral). 등장하는 주요 사사들의 특징과 동시대에 살았던 백성들의 삶만을 보아도 이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3장에 등장하는 웃니엘과 에훗은 사사기에서 그리 길지 않은 부분은 차지하지 않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그러나, 사사 드보라와 그가 지정하여 부른 바락 (성서는 바락를 사사로 지칭하지는 않는다)의 경우를 보면, 바락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였고 사사 드보라를 의지하여 전쟁에 임하려 하였다. 사사 드보라는 바락에게 전쟁의 공로가 여인(헤벨의 아내 야엘)에게로 돌아갈 것을 말한다. 


기드온의 하나님의 사람과의 대화(삿 6장)는 이스라엘 역사를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드온의 잘못된 이해와 신앙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는 여러 차례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전쟁후에는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였지만 그는 왕처럼 살았다. 입다는 자신의 출세에 눈이 멀었고 결국 자신의 딸을 인신제사로 바치고 말았다. 삼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사사다운 삶을 전혀 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로 바빴던 인물이다.물론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사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방 백성의 압제에서 구원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기드온. 입다. 삼손등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개인 삶에 있었던 부끄러운 부분들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에서의 축복을 대신 받은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야곱의 하란 생활은 결코 평탄치 못했고 속임수와 술수를 써서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받아야 할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열번이나 속았다 (창 31:41).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던 라헬 대신에 그는 레아와 결혼을 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속임수에 걸리기도 하였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다시 사사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사기에는 3번 꾸짖음 이야기가 등장한다 (2장. 6장. 10장) 2장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하고, 6장에서는 이름없는 선지자, 그리고 10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타한다. 이중 10장에는 가장 강력한 어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꾸짖고 그들을 더 이상 구원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듣고 저희가 눈물을 흘리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린다. 6장에서는 백성들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10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등장하는 구절이 10:16이다.특히 이스라엘의 곤로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근심하였다 라는 말이 나온다. 




사진: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찍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요엘 2:13) - 야드하쉬모나 키부츠에 있는 요엘 선지자 조각. 


바르일란 대학의 교수 우리엘 시몬은 16절의 ותקצר נפשו בעמל ישראל 이 표현 하나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서 히브리어는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말 성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 번역은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담고 있지못하다. 영어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JPS (유대인 버전)을 보면 "He could not bear the miseries of Israel"로 우리말 성서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엘 시몬은 이 표현을 이스라엘의 곤고로 인해 하나님께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으시다 라는 뜻으로 해석을 한다. נפש (네페쉬)는 "영혼" 혹은 "생명"의 뜻도 있지만, "목구멍" 혹은 "숨(breath)" 이라는 뜻도 있다. 예를 들어 요나서 2장 6절 אפפוני מים עד נפש 의 우리말 성서는 "물이 나를 들렀으되 영혼(soul)까지 하였으며" 이지만 좀더 원본에 가까운 번역은 "물이 나의 목구멍(throat)까지 차올랐다" 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번역을 해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경험하였던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그의 간절한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숨이 탁탁 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목을 옥죄는 듯한 슬픔과 고통.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곤고함으로 인해 슬퍼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사사기 저자는 תקצר נפשו (티크짜르 납프쇼)로 표현한 것이다. 10장 이후에 등장하는 사사기의 이야기들은 더 이상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수 없는 그런 상황속으로 빠져든다. 인신제사. 성적으로 타락한 사사와 레위인, 혈족간의 전쟁등으로 점철된 이야기로 사사기는 죄의 급진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그런 백성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하나님은 숨을 쉴수가 없다. 




사진: 성서 시대의 타작 기구들 


나와 우리가 저지르는 죄 역시도 점점 그 사이클의 순환이 더 깊어지고 넓어져가지는 아니한지.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는. 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그런 세대의 주인공들이 되어 버린 나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하나님은 숨이 막히신다. 사사기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전에 들려 줄 정도로 가벼운 엣날 이야기가 아니다. 부끄럽게도 나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고, 교회 공동체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잣대외 핏대를 높이지만, 나, 우리,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죄를 지극 정성을 다해 관대함의 손길로 가려주고 쓰다듬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런 나와 우리의 모습에 하나님은 숨이 막히신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이다. 그러나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십자가 상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그 십자가의 앞이 아닌 십자가의 뒤만 바라보는 억지 어리석음을 범하는 나, 우리, 그리고 교회 공동체로 인해 하나님은 숨을 쉬지 못하신다. 




미가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모레셋출신이다. 미가서 1 1절에 의하면 그는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 (대략 주전 737-698년 사이)에 이사야, 아모스, 그리고 호세아와 함께 선지 활동을 하였다. 이 당시 남유대 왕국은 앗수르의 침공과 지배, 북 이스라엘과의 악화된 관계, 경제 불황, 리더십의 부재 등의 복합적인 문제들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속에서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선지서의 공통된 메세지인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전한다.



사진: 성서 시대의 망대 


미가는 그 시대의 사회.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직설적으로 고발한다. 지도자들은 정의를 미워하였으며 공의가 없는 재판을 행하였다. 그들의 손은 부정, , 뇌물로 더러워졌고 가난한 백성을 억압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의 성으로 채우는 이들이었다 ( 3:10). 수전노! 그들은 최고의 가치를 돈에 두었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두령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 3:11). 자칭 선지자들은 거짓된 평강. 돈을 위한 평강. 대중의 인정과 지지, 귀를 즐겁게 하는 메세지만을 전하였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 3:5). 정의, 공의, 그리고 진리가 돈과 권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좌지우지되는 시대에 선지자는 홀로 서 있었다.  


미가 시대 당시 북이스라엘은 멸망의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들이 붙잡아야 할 것은 썩은 동아줄같은 우상들이 아닌 그들을 향해 회개와 돌이킴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돌이키지 않았고 무너졌다 (주전 722).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로 돌의 무더기 같게 하고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며..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1:6-7).  남 유대의 지도자들은 사마리아의 멸망을 급변하는 국제 정세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의 이야기로 간과해서는 안되었다. 미가는 사마리아의 멸망이 남 유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유대의 지도자들은 죄악의 무감각증에 빠져 있었고 유대를 향한 하나님의 재앙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족속(유대)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 이는 재앙의 때임이니라” ( 2:3).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 119:160).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당대의 지도층이 정의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선지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담대히 선언한다. “말일에 이르러는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4:1-2). 시대의 풍조에 따라 변조되지 않는 진리앞에 이방의 백성들이 설 것이다. 타락하였던 예루살렘이 말씀으로 회복되고 열방이 영원한 진리를 그 거룩한 말씀의 성에서 배울 것이다.


그날은 이미 오고 있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 미가는 그 산골에서 태어날 미래의 참된 지도자, 정의, 공의, 그리고 진리를 가르칠 메시야의 탄생을 미리 내다 보았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 5:2). 훗날 마태는 미가의 예언이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먼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은 과거 이방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몰려들어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 ( 4:1-2)이 일부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 공의, 그리고 진리는 악한 지도자들과 타락한 종교인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리워질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가는 알고 있었다.


한편, 미가 시대는 무수한 예배 행위가 건강한 종교적 삶의 척도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여호와께서는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는 줄로, 심지어 맏아들을, 몸의 열매를 요구한다는 거짓된 믿음이 팽배하였다 ( 6:7). 과연 하나님께서 무수히 드려지는 제의 의식을 기뻐하시는가?  미가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6:8). 공의가 빠진 예배. 인자가 빠진 사랑.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는 예배는 떠들썩한 굿판과도 같은 것이다.


부정과 부패로 더러워진 손, 정의와 공의가 실천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예배임을 미가는 지적한다. 예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예배는 성전에서만 드려지는 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숨을 쉬고 있는 그 모든 순간,  삶의 구석 구석을 통해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가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당대의 백성들과 성서의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미가는 권력자들과 사회 지도층, 종교인들에게 실망하였다. 경제 부흥을 일으켰던 요담. 앗수르의 종이 된 아하스. 한때 경건하였으나 교만병에 빠졌던 히스기야. 돈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팔았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미가는 이들에게 소망을 둘 수 없었다. 소망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들으시리로다” ( 7:7). 죄악을 사유하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져 넣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인애를 더하시는 하나님 ( 7:18-20) 그 분만이 선지자의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열심으로 유대 나라를 회복하실 그 때를 기다렸다.


*** 위 글은 기독교 잡지 "새가정사" 2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