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연대기

Bible Story 2018.04.11 06:12 Posted by Israel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Bible Story 2018.02.09 15:26 Posted by Israel

성경의 완성은 책상머리가 아닌 시장 골목이라는 유대인들의 말대로 흰 종이에 검은 잉크의 집합체인 말을 생활 현장에서 실천할 때 성경이 진정한 의미가 있음이  평범한 상식이 되어야 한다. 

 

최근 현직 여 검사가 어느 뉴스 인터뷰에서 폭로한 Me Too 말미에 성추행 당사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남겼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 말이 여전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 예배당에서의 회개가 검은 지하에서 돈세탁을 하듯 회개자의 마음만 씻어주지 않나 라는 생각이 가슴 한 복판에서 떠나지 않는다.

 

회개를 뜻하는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는 슈브돌아가다, 돌이키다의 뜻이 있다. 성경 레위기 6장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배상을 명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지울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그것은 구약이고, 우리는 신약 시대에 살고 있으니 비껴 갈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해서는 안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는 어설픈 말도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예수께서 율법사에게 한 말이다. 그 말이 율법사의 귀와 가슴을 움직였다면, 그래서 결단하였다면 그는 두번째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것이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는 그저 앞으로 잘해! 가 아니다. 과거 청산이 있어야 한다. 여전히 율법사로부터 외면 받았던 인생들이 울고 있다. 율법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귀를 막았던 율법사로 인해 절망한 영혼들이 이웃에 살아 가고 있다. 그 과거의 청산 없이 앞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면 되지! 는 실현해서는 안되는 거짓된 회개이며 결단이다. 예수의 말은 너의 과거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로 인해 눈물 흘렸던 이들, 상처 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라. 그것이 두번째 선한 사마리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이다.


사진: 성묘 교회 내부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는 그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잘못 결정하고 선택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갔고 회개하였다. 탕자는 하늘(하나님)에게만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도 그는 죄인이었고, 그의 죄의 짐을 내려 놓기 위해 아들이 아닌 종이 되기를 구하였다. 이것이 회개이다.

 

삭게오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아무도 삭게오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는데 예수는 분명하게 말하였다. 삭게오야 내려와라! 그저 나무에서 내려오라 는 것이 아니다. 탐욕의 과거에서 내려올 것. 상처 주었던 과거에서 내려 올 것. 용서받는 자리로 내려 올 것을 말한 것이다. 삭게오가 내려왔다. 그는 예배당에서 숨 죽이며 경건한 자세로 하나님께 자신의 과거 청산을 하지 않았다. 재산의 절반! 토색한 물건의 네 배를 갚는 회개를 하겠다 하였다. 즉 삭게오가 예수의 사람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과거로 먼저 슈브돌아가야 했다. 이것이 회개이다.

 

바울이 동역자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다. 빌레몬 집에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가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한 뒤였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으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가 있다. 주인 빌레몬에게 갚을 것이 남은 것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슈브돌려 보낸다. 오네시모는 단지 주인에게만 돌아간 것이 아니다. 그의 과거로 슈브돌아간 것이며, 주인에게 범하였던 죄의 자리로 돌아가서 죄를 청산해야 했다. 그것이 예수의 제자로서 행해야 할 삶의 상식이며 정상적인 회개이다.

 

사진: 성묘 교회의 기도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여 검사의 말은 매우 상식적이며 성경적이다. 교회 예배당은 회개의 면죄부를 찍어내는 곳이 아니다. 단 몇 초만에 회개하였다 하여 용서를 받는 현장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에게 죄를 범하였다면 그에 따른 마땅한 책임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 회개는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늘과 땅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회개는 앞으로 변화되면 돼! 가 아니다. 회개는 뒤를 다시 바라보는 것을 통해 변화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죄를 다루는 수준, 회개의 수준을 낮추면 그것은 타락의 절벽에 위태롭게 한쪽 발로 버티고 서 있는 것과 같다. 10억엔을 주고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못을 박는 일본 정부의 발언에 분노하는 것은 액수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울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의 자리는 예배당을 넘어서야 한다. 예배당 밖, 여전히 그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 회개이다. 이 지극히 평범한 성경의 상식이 특별, 어색, 혹은 외면이 되는 순간 회개는 나를 타락시키는 해독제 없는 바이러스가 된다

잡석 VS 다듬어진 돌

Public Diary 2017.01.25 06:02 Posted by Israel

쉰들러 리스트. 영화의 엔딩 OST “예루살라임 셀 자하브 (황금의 예루살렘)”와 함께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들이 손에 작은 돌을 들고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 앞으로 걸어 온다. 그 돌들은 쉰들러의 묘지 비석위에 하나 둘씩 올려 진다. 왜 유대인들은 묘지에 꽃이 아닌 돌을 올려 놓을까?

 이스라엘의 돌의 나라이다. 여기 저기를 돌아봐도 돌 뿐이다. 돌은 파란만장한 이스라엘 역사와 늘 함께 하였다. 돌은 이스라엘 민족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 예루살렘은 돌-도시이다. 구도시의 옛 성은 돌산 위에 세워졌다. 영국이 오스만 투르크를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낸 뒤, 1918년에 최초 예루살렘 총독이 된 로날드 스토레스 (Sir. Ronald Storrs)경은 고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예루살렘만의 독특함을 유지하도록 베이지 색의 예루살렘 돌 (에벤 예루샬라임)을 건물 외벽에 부착하도록 하였다. 훗날 이스라엘이 독립을 한 이후에도 예루살렘은 이 건축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석양이 물들면 건물의 외벽에 부착된 돌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하여 황금의 예루살렘이라는 말을 생산해 내기도 하였다.



사진: 오스카 쉰들러의 묘

 갈릴리 역시 돌 천지이다.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께서는 목수 일을 하였다. 당시 목수는 목공보다는 석공에 가까웠다. 그 만큼 나무보다는 돌이 더 흔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석공들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정과 망치로 잡석을 다듬어서 집의 기초석을 놓고 벽을 쌓아 올렸다.

보잘 것 없는 잡석도 석공에 의해 다듬어지고 기억의 의미가 부여될 때 그 돌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특히 순례자들에게 성서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현장에 남겨진 잘 다듬어진 돌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여러 해전 성지순례를 다녀갔던 한 미국인이 이스라엘 국립 고고학 협회에 약 2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돌 하나를 보내 왔다는 뉴스가 있었다. 사연인즉, 오래 전 성지 순례를 다녀갔던 그는, 당시 가이드에게 고대 유적 발굴 현장에 있는 돌을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답은 No! 였다. 그후 그가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 가이드가 발굴 현장에서 가져온 돌을 선물이라며 주었다. 당시에는 너무 기뻐서 돌을 받았지만 돌아와서는 늘 그 돌로 인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늘 마음 한구석에 돌이 묵직하게 그의 양심을 짓눌렀다.  결국 용기를 내어 그 돌을 돌려 주기로 결정하였다물론 그 돌은 유적 현장에 있던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잡석이 아닌 옛 역사의 흔적이라는 기억을 담고 있는 다듬어진 돌이었기에 뉴스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사진: 집밖에 핀 아네모네 꽃 ~~~

구약성서는 돌에 어떤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까? 구약 성서에는 276회의 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 중 여호수아 4 12절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듯 하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면서 열 두개의 돌을 취하여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돌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 선조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돌은 영원한 기억과 기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묘지에 와서 돌을 올려놓는 추모자는 망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그 돌은 추모자가 잊고 싶어하지 않는, 붙들고 싶은, 따르고 싶은 망자의 삶에 대한 기억의 소망이다. 그 추모자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 세대의 추모자 역시 그의 묘지에 돌을 올려 놓으며 그를 기억하고 기념할 것이다.

 

            
사진: 나사렛에서 찍은 목공일하는 예수님...

세상을 떠난 이후에 누군가로부터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오늘을 살면서 스스로를 깎고 다듬어서다른 이에게 웃음과 기쁨을 줄 수 있는유익을 주는 다듬어진 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잡석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사람이 만든 모든 것들은 유한한 것이니 언젠가는 잊혀지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많은 돌들이 올려져 있는 묘지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의 삶은 쪼개지고 다듬어진 향기로운 생각행동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그러하기에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의  손에 들린 기억의 돌이 그의 무덤에 쌓여가는 것이리라


사진: 실로에 핀 백합화 (아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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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시대의 성전세 (반 세겔)은?

Bible Story 2016.07.21 07:18 Posted by Israel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 30:13-14). 

이스라엘 민족 절기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국 각처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그리고 장사로 한몫 잡기 위한 장사꾼들의 발걸음 소리가 예루살렘 영문밖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여리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하여 계곡길과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해수면보다 약 25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한 여리고에서 800미터 가까운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약 30 킬리미터의 길은 하루만에 가기에는 무리였다. 

예수 일행은 뽀얀 광야의 먼지 바람 옷을 벗고 봄 기운이 완연한 푸른 옷으로 갈아 입은 광야 골짜기 길을 따라  예루살렘과 여리고 중간 지점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에 도착하였다. 4월의 해는 이미 서산 너머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산 그림자 소리만이 광야를 감싸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행로에 지쳐 있었으나, 내일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도착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거의 뜬 눈으로 그 밤을 보냈고, 이른 아침 어김없이 요단 동편 느보 산 정상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수 일행도 순례자들 틈속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갔고, 그 날 저녁 때가 거의 될 즈음,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올리브 산에 도착하였다. 올리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등 뒤로 뒤쳐져 있던 태양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지나쳐 올리브 산 정상을 너머 성전 뒤에서 성전에 붉은 노을 옷을 입히고 순례자들을 맞이하였다.

예수는 나귀를 타고 성전 입성을 한 뒤, 어두움이 짙게 깔리기 전, 올리브 산 동편 베다니로 돌아와서 하룻 밤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이미 성전 마당에는 순례자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바꾸고, 소,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제사장들과 성전 경찰들은 성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날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갑자기 채찍을 만들어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고,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성전 마당에서 내쫓기 시작하였다. 이리 저리 뛰는 소와 양, 푸덕거리는 비둘기들, 엎어진 돈을 주워담는 환전상들로 인해 성전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성전 마당에서의 환전이라??? 무슨 동전으로 환전을 하였을 까? 

성서의 명에 따라 (출 30:13-4), 이스라엘의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예외없이 성전세로 반 세겔을 바쳤다. 그렇다면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돈을 성전세로 바쳤을까? 

혹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으나, 당시 성전세로 바치던 돈은 로마 시대 당시 이스라엘 지중해 북쪽 두로에서 주조되었다. 이 주조된 동전을 Tyrian Shekel (두로 세겔) 이라 불렀는데, 약94%의 순도와 14.2 그램 정도의 은 동전이다. 원래 두로 동전은 주전 126-125년 사이, 그리고 주전 19-18년 사이에 주조되었으나, 로마 정부가 두로 동전을 더 이상 주조하지 않은 이후, 에루살렘에서 주전 18/17년에서 주후 69/70년 사이에 성전세 용도로만 주조되었다. 당시 예루살렘의 동전 주조업자들은 두로 동전에 새겨져 있던 헬라클레스의 초상과 독수리 문양이 있는 것을 그대로 주조하였다. 

사실, 이것은 그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새기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 랍비들은 성전세로 바치는 동전의 규정으로 동전의 순은 정도와 무게가 동전에 새겨진 형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로 동전은 신약성서에 적어도 세번 등장한다. 마태복음 17:24-27에 예수와 베드로가 성전세를 내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 그 입에 있는 동전을 성전세로 냈고, 마태복음 26:14,15에 가룻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았던 은 30세겔 역시 두루 동전이었다. 그리고 성전 마당의 환전상들 역시 두로 세겔로 환전을 해 주었다. 

참고로, 유대 문헌에는 당시 환전상과 희생제물로 쓰이는, 소,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이 터무니 없는 환전 수수료를 받거나, 평소보다 비싼 가격으로 희생제물을 판매하였다는 내용의 글은 없다. 

하나 더 추가하여, 성전 청소의 의미에 대해 N.T. Wright 는 성전 청소와 죄 사함의 문제를 연결하여 해석한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한 뒤 종종, "소자여 네 죄 사함을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이고, 신성 모독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엄연히 성전이 존재하고, 그 성전에서의 속죄제를 통해 죄 사함을 받던 시대였는데, 성전의 속죄 기능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죄 사함을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성전 청소는 훗날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표이자, 속죄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있다는 점을 보여준 행동이었다. 

Wright의 말이 맞다면,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선포한 것 역시 당시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말이었다. 베드로가 죄 사함의 선포를 한 장소는 다름 아닌 속죄의 현장인 성전이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창 12:16)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아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던 날을 성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 12:5)





사진: 텔 브엘세바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 



창 12장5절의 히브리어 원문중 일부 내용이다. אשר עשו בחרן (곧 하란에서 얻은 것들). 아브람은 하란에 있을때 스스로 수고하여 재물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땀과 수고의 열매를 가지고 가나안땅에 입성하였다. 가나안은 그가 거주하였던 하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한 땅이다. 아브람은 가나안 입성이후, 남방, 즉 네게브 지역까지 내려간다. 그러던 중 가나안의 심한 기근으로 인해, 그는 가족과 함께 나일강의 물줄기가 지나는 가장 비옥한 고센 지역(델타 평야)으로 내려간다. 


이집트로 내려가던 중 아브람은 혹이라도 자신을 죽이고 아내 사래를 이집트인이 빼앗아 갈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궁여지책으로 이집트인들 앞에서 사래를 누이라 속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는 그녀를 자신의 궁으로 불러들인다. 덕분에 아브람은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과 가축을 받는다. 


중략하여,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창세기 저자는 가나안으로 되돌아온 아브람에게 가축, 은, 금이 풍부하였다고 증언한다.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내려갔으니, 아마 그의 손에는 보잘것 없는 작은 소유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올때는 풍부하였다. 


과연 아브람이 풍부해진것은 복이었을까? 결과만 본다면 빈손으로 갔다가 두손 가득 재물과 가축을 이끌고 돌아왔으니 그렇다! 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얻은 재물은 하란에서 얻은 재물과 달랐다. 하란에서 그가 얻은 재물과 가축은 그의 땀과 수고가 베어있었다. 그것은 아브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복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얻은 재물에는 그의 거짓말 표 딱지가 붙어 있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나, 불의의 이익을 얻고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거짓말을 하였다. 나는 그가 거짓말 한것 자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거짓말로 인해 그가 얻은 것을 과연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다.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올라올때 재물의 풍부함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주장하는 글 때문이다.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을 보고 하나님의 복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얻은 많은 재물과 가축은 좋은 것일지는 몰라도 옳은 것은 아니다. 그의 부유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 말할수 없다. 어떤 이는 아브람에게 있었던 은, 금의 풍부함이라는 물질적인 복에 카메라의 엥글을 맞추겠지만, 성서 저자는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에 엥글을 맞춘다. 




사진: 텔 벧엘 주변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17)."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 보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땅을 그와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아직 아브람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복은 이미 아브람의 손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결과에만 주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십자가의 사람은 좋은 결과를 쉽게 하나님의 복으로 판단하고 따르는 이들을 따라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는다. 십자가의 사람은 좋은 결과가 아닌 옳은 결과, 그것이 풍부이든 빈천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십자가의 사람은 옳은 결과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인도하는 과정 역시 선하고 옳아야 함을 믿고 추구한다. 


혹이라도 섣불리 13장의 아브람의 손에 있는 풍부함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긴다면, 세상 사람의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로 인해 어깨만 아픈 그런 삶을 살아갈 뿐이다. 



삼백예순다섯날의 사랑온도

Public Diary 2016.01.06 15:59 Posted by Israel

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달력 첫 장에는 20161. 삼백예순다섯날의 첫 시작을 알리는 가냘픈 숫자 ‘1’ 뒤로 어깨동무를 하듯 줄줄이 둘, , , 다섯서른 하룻날의 숫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날들은 내일을 예고하고, 그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겠지 라는 어렴풋한 소망을 품을 수 있어 좋다. 내일을 알리는 숫자들의 행진이 있는 달력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난다. 오래전 누렇게 빛바랜 종이 벽에 매달려 있던 습자지처럼 얇은 일력(日曆)이 있었다. 큼지막한 숫자의 일력은 그 날 하루의 날짜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력 한장 한장은 그 하루가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위급한 때 화장실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하루살이 일력은 그 하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경고음이었다.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오겠지만 그 내일이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날은 아니다. 성서는 내일이 자기 것인 양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누가복음 12:20).” 자정을 넘겨 내일이라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 그날 밤에 생명의 주인께서 그 내일의 시간을 인생으로부터 회수하신단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찾으리니이 말을 빌려준 것, 혹은 강탈당하였던 것을 되돌린다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성서의 말에 근거하여 볼 때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 빌려 쓰는 것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생은 시간의 채무자이다. 다만 그 시간을 빌려쓰는 동안에는 이자나 연체, 상환 날짜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사야 2:22)” 코의 호흡이 사라지는 그 날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유한한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시간을 무료로 빌려주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을 날이 오고 있다. 따라서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시간의 주인으로부터 빌려 쓰는 인생이기에 지금 주어진 시간, 오늘 하루, 그리고 삼백예순다섯날을 살아갈 수 있는 코의 호흡이 유지되는동안 그 하루하루를 채우는 삶의 징검다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다. 떼어낸 달력 뒤에 숨겨져 있던 덜 빛바렌 네모난 달력 자국처럼 인생의 선명한 공백만을 남기라고 시간을 빌려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겠도 시인 문인수의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처럼 얼마나 많은 인생이 공백만을 남기는 새해의 출발을 하였던가?



사진:  오병이어 교회 (갈릴리) 연자맷돌 


뜨거운 열기가 땅을 달구던 스물넷의 여름 한날. 굴곡지고 주름진 손 마디 마디에 묻어난 사랑으로 품어주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셨던 아버지의 여윈 가슴을 안고 사랑 고백을 하였다. 그날 공백만 뚜렷하게 남아있던 삶의 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야 함을 깨달았고 그것이 삶의 시간을 빌려주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십년 뒤 이스라엘행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떠날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식 날 단 한 번 신었던 구두 한 켤레만을 남기고 이 세상의 시간과 이별하셨다. 아버지의 시간은 그렇게 멈춰버렸지만 자식의 사랑고백을 안고 떠나셨다. 다들 그런다고 한다. 갑작스럽던지, 준비되었던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고 빌린 시간의 끝이 왔을 때 남기고 싶은 말 한마디는 사랑한다라고. 세월호 침몰로 희생되었던 아이들이 그 깊은 죽음의 바닷속에서 휴대전화에 남긴 메시지 역시 엄마, 아빠 사랑해!” 였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는 늦춰선  안된다. 이번 새해는 사랑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삼백예순다섯 징검다리의 이가 빠지지 않도록 매일 사랑 고백으로 채워야 한다.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어제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지워지지 않는 사랑으로 새겨야 한다. 삶의 무게가 실린 일력과 달력을 한장 한장 떼어낼 때마다 인생이 빌려쓰는 시간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허나 그 시간에 남겨진 사랑의 체온은 영원하다. 말에는 체온이 있다!’ 어느 드라마에서 들은 말이다. 정상인의 체온은 36.5도이다. 우연한 일치일까? 한해도 365이다. 그 많은 날의 정상적인 체온 유지는 오직 사랑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다. 시간과 생명의 주인 앞에 사랑으로 체온 유지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은 오늘 시작할 수 있는 사랑실천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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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 로쉬 하사냐

Jewish tradition & Yeshua 2015.09.12 14:18 Posted by Israel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전에 몇번 참석하였던 야다트 예슈아 회당에서 보내는 이메일이 보였다. 로쉬 하사냐 (유대력으로 새해)가 이번 주일이란다. 이스라엘을 떠난지 5년차가 되면서 내 마음은 유대 광야에 머물고 있으려 하나 보이지 않는 광야를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거실에 걸려있는 펜던트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5)” 를 종종 읽어보면서도 혹이라도 내가 예루살렘을 잊지 않을까 하는 염려 알약을 복용할 때가 된듯 하다. 오랜동안 블러그에 글을 쓰지 못해서 마음도 불편하고 펜대, 아니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무딜대로 무뎌졌다... 야다트 예슈아에서 보내온 로쉬하사냐가 자극제가 되었을까? 전에 궁금하였던 것 한 가지! 성경에서 말하는 새해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으로 무뎌진 손감각을 갈아보련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튀쉬레 월 첫날을 로쉬 하사냐, 즉 새해의 첫날로 지킨다. 

유대력으로 일곱번째 달인 튀쉬레 월 절기는 레위기 23:23-25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으리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민수가 29장은 좀더 길게 일곱째 달 초하루 절기 규례를 기록하는데 나팔을 불어 절기를 선포하고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 절기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위 두 성경구절에서 “새해” 라는 말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나팔을 불고 노동을 하지 말고,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 뿐이다. 


랍비문학에 의하면 티쉬레 달 첫날은 쉬는 날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날은 세상이 창조된 날! 이 날은 하나님의 왕위 즉위식이 있었던 날! 이 날은 심판의 날! 이었다. 출애굽기 12장2절에는 החדש הזה לכם ראש חדשים ראשון הוא לכם לחדשי השנה  ( 이 달은 너희에게 달의 첫 날이 머리 (첫날)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 그 첫날은 해의 첫 날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의 첫날이 되는 그 달은 출 13:4에 보면, 아빕월은 에스더 3:7와 느 2:1에 니산월로 나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더 3:7에 בחדש הראשון הוא חדש ניסן (그 첫달이 되는 니산월) 이라 기록함으로 2차 성전시대에도 니산월(아빕월)이 정월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티쉬레 월 첫 날을 정월 초하루로 지키게 되었을까? 


티쉬레 달의 첫날을 로쉬 하사냐로 지케게 된 것은 고대 근동의 영향의 영향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대 메소포타미야 지역은 가을의 시작인 Tashritu (타쉬리투, 그 뜻은 시작)과 봄의 시작인 Nisaanu (니산누, 히브리어 성서의 니산) 월 첫 날을 새해의 첫날로 지켰다. 고대 근동의 새해 절기인 Akitu- Festival (아키투 절기)는 니산누 달 첫날부터 시작해서 11일동안 지켰다. 이 절기는 바벨론의 신 마둑이  바다의 신 Tiamat 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왕의 자리로 돌아와, 성전에 앉아 오는 새해의 운명을 심판한다는 신화와 관련이 있다. 정리하면, 바벨론의 새해 절기는 봄 혹은 가을에 새해를 시작하고, 전쟁과 승리, 신의 즉위식, 심판 이라는 요소들을 포함한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서 고대 근동의 새해 절기 행사와 성서의 새해 절기 행사의 연관성을 찾아보자. 시 74편은 하나님이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피조물과의 전쟁, 세상의 창조, 하나님의 왕의 즉위식, 심판을 노래한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새해 절기와 매우 흡사한 요소들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9장에 나오는 나팔을 부는 것은 왕의 즉위식때 하는 행위이다. 이 나팔을 부는 것도 시 47편과 연관성이 있으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시 47편을 새해때 낭송한다. 


메소포타미아 아키투 절기 행사와 유대 전통의 로쉬 하사냐 절기 사이의 의미상 (세상의 창조. 왕위 즉위식. 심판)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튀쉬레 달 첫날을 새해의 첫날로 삼게 된 것이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쩌면 바벨론 유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서 새해를 튀쉬레 달에 지키기로 결정하였을 수도 있고, 니산월과 튀쉬레월, 두번의 새해를 지켰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새해의 개념과 성경의 해의 첫머리이며 달의 시작이 되는 날과는 개념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한편, 고대 유대인들은 네번의 새해를 지켰다. 그 첫번째는 니산월로 왕의 새해로 지켰으며, 이 때를 기준으로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하였다. 두번째는 엘룰월로 이 달의 첫날, 짐승들의 십일조 (10번째 짐승을 십일조로 바침)를 드리는 날이었고 이 날을 새해의 첫날로 지켰다. 세번째로 튀쉬레월은 농사를 시작하는 새해의 첫달로 안식년과 희년을 이 달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켰다. 네번째로 쉬밧트월 15일로 이 날을 나무들의 새해로 (Tu BisSh’vat)로 지켰다. 


아므튼...유대인들의 시간은 로쉬 하사냐를 향해 째각거리고 있다. 새해 시작 한달전인 엘룰월부터 열심히 회개를 하며 새해 시작과 함께 10일간의 속죄 기간을 보내며 욤키푸르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새해를 시작해때쯤되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주어지는 365일을 시작한다. 새로운듯 하지만 얼마 못가는 NEW...어느덧 가을이 되었고 성급한 나뭇잎은 겨울준비라도 하라는듯 노란색으로 물들기전에 거리를 뒹굴고 있다. 15년이 낮설었던 날이 어제같은데 벌써 16년을 준비할 때이다... 새해가 새해될 수있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떠밀림속에 그 날을 맞이하기 때문이 아니다.  NEW 라는 말에 걸맞는 그런 삶을 살으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그 분과 함께 날마다 새로운 날을 시작한다면 새해가 따로 있으랴....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6-7). 


왜 웃사는 죽임을 당하였을까?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이십년 동안 머물던 법궤 (삼상 7:2)를 예루살렘 다윗성으로 옮기던중 소 달구지에 실고 가던 법궤가 소의 날뜀으로 인해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는 법궤를 붙잡았다. 그는 아마 법궤를 보호하고자 붙잡았을텐데 하나님의 진노하심속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여러번 읽고 또 읽어보아도 웃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법궤는 레위인 (고핫 자손)이 메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민 4:15), 레위인이 아닌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가 법궤를 만진것도 문제가 있고, 법궤를 레위인이 메지 않고 소 달구지로 옮기려 하였던 것도 문제가 된다. 고로 율법에서 금하는 잘못된 행위를 하였기에 웃사가 죽는것은 당연하다 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찜찜한 것을 지울 수가 없다. 적어도 웃사가 손을 내밀어 법궤를 잡으려 하였던 것은 법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를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즉시 죽이시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웃사의 죽음! 어쩌면 법궤 운반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이 불행한 사건에서 성서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진노하심속에서 죽어야만 했던 웃사가 주된 이야기의 초점이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먼저 법궤의 이동에 대해 정리해 보자. 사사 엘리 시대 당시 법궤는 에브라임 지파의 땅인 실로에 있었다.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아벡 전투를 할때 법궤를 실로에서 가져갔다가 전쟁에서 질뿐 아니라 법궤까지 빼았겼다. 삼상 4장4절에는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וישלח העם שלה וישאו משם את ארון בירת יהוה צבאות ישב הכברים (그 백성이 실로로 보내어 그곳으로부터 그룹들 사이에 앉아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다) 라고 되어 있다. 레위인이 법궤를 옮겼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법궤를 전쟁터에 가져오면 승리가 따라올줄 알았으나 오히려 전쟁을 이끌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음을 당하였고 법궤까지 빼앗긴 것이다 (삼상 4:11). 사실, 이 전쟁은 그 어떤 것으로도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부정과 타락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들이었고 그들의 죽음은 이미 예견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삼상 2:34). 결국 법궤를 빼앗기게 된 것 역시 타락한 리더십이 그 근본 문제였다. 


법궤가 블레셋 다섯 지방에 머무는 동안 독한 종기와 재앙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역에 미쳤다. 결국 이스라엘 신의 궤로 인해 사망의 그림자속에 들어가자 그 법궤를 다시 돌려보낸다. 그들은 새 수레를 만들고 한번도 멍에를 매어 보지 않은 두 마리의 소에 수레를 메우고 법궤를 실어 단지파의 땅인 벳세메스로 법궤를 보낸다 (삼상 6:1-12). 


삼상 6장 13절에 의하면, 벳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던 중 블레셋 지역으로부터 소가 법궤를 끌고 오는 것을 보고 레위인이 법궤를 내려 큰 돌 위에 두고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린다 (삼상 6:15). 이후 벳세메스 사람들이 법궤 안을 들여다 보다가 칠십 명 (혹은 오만 칠십 명)이 죽음을 당한 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법궤를 가져가라고 요청한다 (삼상 6:19-2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와서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두고 엘이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는데, 법궤를 벳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길때에 레위인이 옮겼다는 텍스트의 증거는 없다! 아무튼 법궤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이십년간 보관되었고 그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운반하고자 이스라엘에서 뽑은 삼만명을 모아 아비나답의 집으로 온다. 삼하 6장의 이야기를 다룬 대상 13장에는 다윗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는 기록도 있다. 




사진: 법궤를 메고 가는 레위인들 (예루살렘 마밀라 거리 조각상)


다윗이 법궤를 옮기는 과정을 보면 그가 매우 흥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앙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삼하 6:5). 법궤를 옮기는 작업은 아비나답 혹은 그의 두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진두지휘할 수 있거나 해서는 안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아효는 소 달구지를 몰고 웃사는 법궤 옆에 서서 걸었지만, 이 모든 일을 지휘 감독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다윗이었다. 대상 13장에 의하면 법궤를 옮기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 인물은 바로 다윗이었고 삼하 6장에서도 다윗이 법궤 옮기는 일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다윗은 신중하게 법궤 옮기는 일을 준비했어야 했다. 삼만명이라는 거대한 인원을 동원하는 것보다, 온갖 악기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면서 기뻐 춤추며 법궤를 옮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법궤를 어떻게 옮길것인가에 대한 준비였다. 


레위 사람이 직접 법궤를 매고 옮기라는 성서의 명대로, 다윗이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나 아효, 그리고 말못하는 짐승인 소가 아닌 레위 사람에게 법궤를 직접 메고 옮기도록 하였다면 소가 날뛰거나 웃사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신명기 17장에 의하면 왕이 할 일은 전쟁 준비가 아닌 율법을 등사하여 그 율법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다윗은 법궤를 운반하는 성서적 방법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었어야 했다. 다윗뿐만이 아니라, 그와 동행하였던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백성들을 말씀으로 인도하는 리더들이 아니던가? 


다윗과 삼만명이나 되는 무리들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 사이, 소는 날뛰었고 소 달구지 위에 위험스럽게 실려있던 법궤는 흔들거리다가 결국 떨어질 찰나였다. 웃사는 순간적으로 그 법궤를 잡았다. 성서 저자는 분명 하나님께서 웃사에게 진노하셨다고 말한다.


ויחר־אף יהוה בעזה (하나님께서 웃사에게 진노하셨다!)


ויכהו שם האלהים על־השל (그 하나님께서 그 실수로 인해 그를 치셨다). 


성서 저자가 선택한 단어 של은 그 뜻이 매우 애매모호하다. 이 단어는 삼하 6:7에 단 한번 사용되었다. 성서 사전 HALOT에 의하면 של(쌀)은 아카드어의 "무례함, 건방짐," 혹은 "모독적인" 이란 단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웃사) 치셨다 를 뜻하는 ויכהו 에서는 웃사를 지칭하는 3인칭 단수 접미사가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신 이유의 표현인 전치사 (על) + 명사 (של) 다음에 3인칭 단수 접미사, 즉 웃사를 가리키는 접미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의(웃사) 실수 (혹은 무례함, 건방진 행위)로 인해 웃사를 치셨다" 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 실수로 인해 (혹은 그 무례한, 건방진 행위)로 인해 그를 치셨다" 라고 기록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웃사를 지칭하지 않고  "그 건방지고 무례한 행위로" 인해 웃사를 치셨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은 후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나팔 소리는 사라졌고 춤은 멈췄다. 성서 저자는 이어지는 구절인 8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한글 성서에서는 "다윗이 분하여" 라고 번역을 하였지만 원문의 의미는 이와 조금 다르다. 히브리어 원문의 전치사 ל + דוד 는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전치사 ל 는 of, to, for, belong 등등의 의미가 있는데 만일 다윗이 주어라면 굳이 전치사 ל 와 함께 쓸 이유가 없다. 어쩌면 "It is displeasing to David" (이것이 다윗에게 화를 불러 일으켰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듯 하다. 웃사의 죽음이 다윗을 분노케 하였는데, 법궤를 옮기는 축제의 분위기가 웃사의 죽음으로 인해 망쳤기 때문에 다윗은 분노하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경솔한 준비와 성서의 명령에 무지한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일까? 결국 다윗은 법궤를 다윗성으로 메어가지 않고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동안 보관한 후 다시 다윗성으로 가져간다. 13절에 의하면 두번째 법궤를 옮길때 다윗은 더 이상 소 달구지가 아닌 사람들이 직접 법궤를 메고 가도록 한다. 분명 다윗은 자신의 성서적이지 않았던 실수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소가 아닌 사람들이 법궤를 메도록 하였던 것이다. 


웃사의 죽음은 한 개인의 실수만으로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다. 물론 웃사도 법궤 운반과 관련된 성서의 명령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다윗, 그리고 그와 함께 하였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더더욱 자유롭지 못할뿐 아니라 웃사의 죽음에 대한 연대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 운반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다윗을 직접 치시지는 않으셨다. 현장 책임자인 웃사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물었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즉각적인 징계는 웃사를 넘어 다윗과 그의 무리들을 향한 것이었다. 


웃사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내가 까다로운 신학적인(???) 질문을 하였기 때문이다. 자료들을 찾고 읽어보니, 모든 초점이 웃사에게 맞춰져 있거나 하나님께서는 정당하게 진노하셨고 웃사가 마땅이 죽어야할 벌을 내리셨다는 하나님에 대한 변호의 글들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변명이나 변호로 그분의 행위가 옳다고 인정받는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웃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웃사에게만 돌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만 진노의 화살을 쏘셨다는 것이 성서 저자의 의도는 아니라고 본다. 성서 저자는 사사 시대 당시 이스라엘의 리더십 부재의 연속선상에서 사울과 다윗의 리더십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연약하고 무지하며 연대 책임을 지지 않는 리더십의 문제를 지적한다. 웃사의 죽음 앞에서 다윗은 분노할 것이 아니라 회개를 했어야 한다. 한 아들을 잃은 아비나답 앞에 그는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단 선지자처럼 "당신이 잘못이요!" 라고 다윗 앞에 당당히 서지 못했다. 다윗 스스로도 책임지는 리더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웃사의 죽음과 분노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분노하는 리더십속에서 오늘날의 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본다. 많은 무리가 모이는 축제 분위기가 있고 법궤 앞에서 춤을 추며 찬양하며 승리를 자축하는듯한 우리 교회. 그러나 그 축제 가운데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그 조그만 산골 동네인 기럇여아림에 삼만명이라는 거대한 군중이 운집해 있었지만 그 안에 "성서의 명대로" 법궤를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었다. 한 인생이 죽었지만 누구도 그 인생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의 진노하심속에서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당연시할 뿐이다! 그러나 "성서가 명하는대로"의 리더십이 죽어 있기에 한 인생이 하나님의 진노속에서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정치 세계에서 일어나는 꼴불견같은 일들을 보면 문제는 터지지만 책임지는 리더십은 없는 것을 흔히 본다. 비단 정치 세계뿐 아니라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책임지는 손을 들려 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책임지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부실한 리더십으로 인해 복음이 힘없이 쓰러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 (삼하 6:13)! 웃사 사건 석 달뒤 다윗은 소 달구지가 아닌 사람들이 법궤를 메도록 하였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성서가 명하는대로"의 리더십을 회복한 것이다. 우리 교회도 "석 달"뒤 성서가 명하는대로의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까? 





11년전 상영되었던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Christ)"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아람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한 부분인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과 대화에서 그 둘은 라틴어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께서는 아람어와 라틴어를 일상 생활에서 주로 사용하셨을까? 


먼저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아람어의 흔적을 보자. 구약 성서들 중 일부분 (에스라, 다니엘서)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직접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주전 5세기 느헤미야는 국제 결혼을 한 유대인의 자녀가 유대 방언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보다 앞선 주전 8세기 (702-701년 사이)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때 랍사게가 히브리 방언으로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한다. 이때 예루살렘의 관직자들이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왕하 18:26)" 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 당시 고위 관직자들은 아람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일반 백성들은 아람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람어는 점점 혼성 국제어 (Lingua franca)가 되었고 예수 시대 당시에는 지금의 영어가 국제어인것처럼 아람어가 국제어로 통용되었다. 


신약성서에도 국제어인 아람어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 히브리어 / אלי אלי מטול מה שבקתני - 아람어, 마태 27:46; 막 15:34)" 이다.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헬라어 σαβαχθανι (사박다니)는 아람어를 음역한 것이다. 야이로의 죽을 딸을 살릴때도 예수께서는 아람어로 "달리다굼 (막 5:41)" 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와 당시 제자들, 더 나아가 갈릴리의 유대인 혹은 유대 사회 전체적으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예수 당시의 문헌이나 고고학적 증거들은 오히려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전 2세기경의 유대 문헌 Ben Sira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사해 사본의 기록 역시 주로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주세 2세기 경의 문서인 바르 코크바의 편지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사도행전 21:40에 보면 바울이 히브리어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행 21:40-22:2). 




사진: "탈리타쿠미" 예루살렘에 있었던 아동 구제소의 흔적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는 일상 언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종교 의식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의식을 진행하였다.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의 나사렛 회당 방문과 그가 읽었던 이사야서 두루마리 (61장)는 분명 히브리어였다.David Flusser (저명한 신약 성서시대 학자 - 히브리 대학교)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의 성서 기록물들은 성서 히브리어에 배경을 둔 랍비 히브리어의 언어적 구조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서에 나타나며, 사도 바울이 기록한 헬라어로된 서신서들 문장 구조에서도 히브리어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한편 예수께서 로마 백부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백부장이 아람어나 혹은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기 보다는 헬라어로 예수와 대화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아람어가 아닌 라틴어와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실제 예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은 당시 갈릴리 지역의 수도였던 찌포리로부터 약 12 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어느 정도 로마인들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배웠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수 있다.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는 라틴어로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와 대화를 나누지만, 영화가 상영된 후 학자들이 지적하는 영화의 언어-역사적 배경의 문제로 "라틴어"를 지적한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군병들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유대 지역에서는 라틴어 보다는 헬라어가 일상 생활에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헬라어로 사복음서를 기록한 것 역시 당시 일반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결론적으로, 유대 지역과 주변 나라에서 아람어가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며 예수께서 아람어를 구사하였다는 것을 성서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히브리어 역시 아람어와 함께 유대인들의 모국어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고 라틴어보다는 아람어와 함께 국제어로가 된 헬라어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구사하였다는 것을 신약 성서와 당시 문헌 및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 








말라기(나의 종, 나의 사자-messenger)는 자신에 대한 소개 대신에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1:1) 라는 말로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가 누구(하나님)의 것이며, 그 메세지를 수신하는 이들이 누구(이스라엘)인지만을 밝힌다. 말라기가 사역하던 시대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였다. 성전 재건 공사를 마치고 나서 약 60-100년 정도가 지났고 성전 재건에 직접적으로 나섰던 이들이 여전히 생존하였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 2:19),” 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 현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였다. 심지어 가난한 이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했고,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 5:5).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 1:2)라는 백성들의 질문은 말이 아닌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실망을 보여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하나님은 답한다. “아하브티 에트켐”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 1:2).  문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백성들에게 있었다. 말라기는 그의 이름의 뜻답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14),” 또는 여호와가 이르노라” (3:13) 라는 말을 열 아홉번이나 반복하여 언급한다. 이 열 아홉번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준비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들을 하나 하나 나열한다.



사진: 눈 내린 예루살렘 (프랜치 힐) 사진 제공: 유택수 목사 


이들은 더러운 떡과 눈멀고 병든것, 심지어 훔친 것들을 여호와의 제단에 바쳤다. 과거 솔로몬 성전이 건재할때는 우상을 성전 안으로 끌여들여 우상 숭배를 하였다. 이제는 성전에서 더 이상 우상을 섬기지 않았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고 희생 제물을 바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예배와 희생 의식이 행해지는듯 싶었으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1:10). 당시 제사장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들은 더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려 있었다. 제사장(목회자)은 진리. . 화평. 정직, 그리고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고, 지식을 지키고 사람들이 그 제사장에게 율법을 구하는 여호와의 사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제사장(목회자)이 하는 일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타락의 선봉 역활을 하고 있었다. 제사장(목회자)의 타락은 곧 백성(교인)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들의 종교 생활은 건강해 보였다. 정기 예배 모임에 빠지지 않았고, 눈물과 울음과 탄식의 예배과 헌금도 드렸다 (2:12-13). 그러나, 성전(교회) 밖에서의 삶은 가증함뿐이었다. 이들은 이방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어려서 얻은 아내와 이혼을 하였고 (2:11, 14-16),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그러면서도 입술로는 소리 높여 헛된 정의를 외쳤다 (2:17).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1:6) “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2:14). “우리가 언제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습니까?” (2:17)의 질문으로 하나님께 반문하는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오히려 소망이 있어 보인다. 적어도 그들은 여호와께서 예배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우리 시대의 교회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이라도  있는지 조차 의문이 드는 슬픈 현실을 숨길수 없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즉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한다고 지적한다. 흔히 십일조라면 수입의 10/1을 드리는 것을 떠올리겠지만,  말라기서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이와 성격이 다른 레위인. 과부. 고아. 나그네를 돌보는 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이다 (참조. 114:28-29; 26:12-13; 13:10-13). 성서는 이 십일조를 통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교회가 선택적으로 해도,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이고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것임을 말한다. 말라기의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 타락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올것을 촉구하면서( 3:7) 3년에 한번 드리는 십일조의 회복을 말씀하신다. 진정한 영적 회복은 기도와 예배. 규칙적인 QT 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은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나그네, 그리고 품꾼을 돌아보는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통해, 더 나아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즉 삶이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예배, 기도, 찬양, 그리고 봉헌도 무 가치하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진: 눈 내린 예루살렘 구도시. 사진 제공: 유택수 목사 


가식과 외식에 눈이 가리워진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것이 무가치한 일이며,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한다 (3:14).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분은 언제나 보시며,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 분은 언제나 가까이 계신 분이시다.  그 분은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지지 않는 자를 분별하시는 분이시다 (3:18). 그리고 그 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다가오고 있다 (4:5-6).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한때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다. 슬프고 안타깝게도 요즈음엔 교회는 요지경이라는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가 유행하지 않을까 싶다. 뉴스를 통해 터지는 사건들을 보며, 가슴이 뜨끔뜨끔하다. 혹시 저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십자가 장식이…, 혹은  교회 교인이 아닐까? 아니 교회 목사가말라기 시대의 영적 무감각증. 삶과 예배의 괴리라는 질병. 생활속에 드러나야 할 하나님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이 욕을 먹는  야누스적인 영적 가면을 쓰고 사는 고질적인 질병에 빠진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만 쏙쓰리게 할 뿐이다.


12월이다. 지나온 334일을 정리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삶을 회계할 때가 되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동안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전하는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삶이 없는 예배는 이미 생명없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일 뿐이다. 교회의 타락은  치유할 수 없는 암덩어리를 양산하였다. 다른 선지자의 외침을 듣기 위해 400년을 기다리며 죄악의 옷을 입고 지날 필요는 없다. 새해가 오기전, 말라기 선지자가 전하는 열 아홉번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세우자.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라는 발자국이 남아 있는지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예수의 흔적을 예배와 삶속에 남기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자.


* 위 글은 새가정 2014년 12월에 연재한 글입니다.


  주전 586년 아브월 9: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 날 솔로몬의 성전이 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무너지고 수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먼 이방인의 땅에서 유다인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 137).” 포로가 된 유다인들은 눈물로 예루살렘을 그리워 하였다.

  

  주전 537년 일곱째 달(티쉬레이월):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그 이듬해인 538년 유다인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 1:1-4). 이 칙령에 의해 약 5만명 정도의 유다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고 ( 2:64-65) 주전 537년 그들은 일곱째 달 (티쉬레이월-새해 첫달)에 예루살렘에 모여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 기초 공사를 시작하였다. 학사 에스라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3:11).  그러나 귀환자들의 성전 재건은 곧바로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를 받는다. 이들은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다인들을 모함하는 편지와 당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공사를 중단케 한다. ( 4:23). 결국 주전 536년 성전 건축 중단을 명하는 아닥사스다의 조서로 의해 16년 동안 성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다리오 왕때 (520) 성전 공사가 재개되었다 ( 6:7). 선지자 학개 이야기는 성전 재건 공사가 재개된 520년 엘룰월에서 키슬레브월까지 약 4개월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성전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특히 학개 (. 축제)는 그가 전하는 네번의 메세지 (1:1, 2:1, 2:10, 2:20)에 특정 날짜들이 언급한다.  

  

  주전 520년 여섯째 달 (1:1. 엘룰월):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학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성전 건축  재개를 명하는 메세지를 전한다. 여섯째 달은 유대력으로 엘룰이다. 엘룰월은 일년중 마지막 달로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은 이 달 첫날부터 새해 첫날 (로쉬 하사냐, 티쉬레이월) 그리고 이어지는 대속죄일 (욤키푸르. 새해 첫날로부터 십일째 되는 날, 레위기 16장 참조)을 맞이하기 전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개는 회개의 달 엘룰월 첫날에 16년간 멈춰버린 성전 공사의 현장으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그리고 귀환자들을 인도한다.  그동안 귀환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기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1:2). 에스라서에 의하면 귀환자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그 비전을 갖고 돌아온 이들이었다 ( 1:5). 그러나 16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의 비전은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해 동안, 아닌 지난 16년 동안 귀환자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늘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씨를 뿌려도 거두지 못하였고, 땀을 흘러 돈을 벌어도 헛수고일뿐이었다 (1:6, 9-10). 회개의 달인 엘룰월 귀환자들은 왜 자신들이 이처럼 황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잡풀만 무성해진 성전 기초 공사 현장을 보며 깨달았다 (1:9). 중단된 성전 건축처럼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삶은 피폐해졌음을 황폐한 성전이 투영하고 있었다. 회개와 돌이킴의 엘룰월 학개의 말에 따라 귀환자들은 같은 달 이십사일 공사를 재개한다 (1:14-15).


  주전 520년 일곱째 달 이십일일 (2:1. 티쉬레이월. 초막절 끝날): 성전 건축이 진행되고 있던 중 초막절 끝날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다시 임하셨다. 엘룰월 이십사일 성전 건축을 재개한 후 귀환자들은 로쉬 하샤나와 욤키푸르 (대속죄일) 절기를 지켰고 일주일간 진행되는 초막절 끝날을 맞이하였다. 아마 귀환자들은 건축중인 성전에 모여서 초막절 마지막 절기 의식을 행하였을 것이다. 이때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노인들은 재건되는 성전을 보며 실망하였으리라 (2:3).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공사자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7,9).


  주전 520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 (키쉴레이월2:10):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한다고 해서 귀환자들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에 의하면 거룩한 고기를 쌌던 옷자락이 다른 음식물에 닿는다고 해서 그 음식이 거룩한 음식이 되지 못한다. 반면 시체를 만진 부정한 자가 음식에 손을 대면 그 음식은 부정해진다. 거룩함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그 거룩함이 전이되고  ( 29:37, 2:12) 부정함은 간접적인 접촉만으로도 전이가 된다 ( 22:4-6, 2:13).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던 16년동안 귀환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룩함의 회복과 전이였다. (2:14) 성전은 돌과 나무가 아닌 거룩함이라는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성전 건축 재개와 함께 잠자던 귀환자들의 거룩함을 향한 열정을 깨울 때가 된 것이다.


  주전 520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 (2:20): 학개는 그의 글 마지막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전한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2:23). 이 언약은 훗날 오실 메시야와 관련있다. 예수께서는 다윗과 스룹바벨의 후손으로 예수 믿는 이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전이 되셨고 ( 1:14)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의 거룩한 생명력이 있는 성전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다 ( 2:22).




사진: 예루살렘 올리브산에서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오는 골목에 위치한 선지자 학개, 말라기의 묘 (고고학적 근거는 없음!)


  귀환자들은 5년간의 성전 건축을 진행하여 516년 마침내 성전 (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하였다. 그 성전은 훗날 헤롯에 의해 더 화려하게 건축되었지만 주후 70년 아브월 9일 로마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1] 거룩한 생명력을 잃은 성전이 또 다시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전터가 내려다 보이는 동편 올리브 산비탈에 학개의 검증되지 않은 묘가 있다. 학개는 성전이 또 다시 무너질것을 알았을까? 오늘날 성전 건축은 곧 교회 성장이라는 공식을 믿는 많은 교회들이 성전 건축에 열을 올리며 학개서를 성전 건축의 교과서로 사용한다. 그러나 학개가 전한 메세지는 성전 건축이 중심내용이 아니었다.  학개의 메세지는  회개의 달 엘룰월을 통해 무너저버린 거룩한 성전된 삶의 재건과 티쉬레이월의 로쉬 하샤나, 욤키푸르, 그리고 초막절을 통해 거룩함의 회복과 전이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된 공동체가 건축되기를 소망한 것이었다.



[1] 유대 전통에 따르면 아브월 9일 같은 날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이 무너졌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Bible Story 2014.10.28 11:43 Posted by Israel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아나돗 출신으로 다윗 당시 대제사장직을 지냈던 아비아달의 후손이다. (왕상 2:26). 선지 소명을 받던 그 날 그는 고백한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1:6)” 나는 아이라 (나아르 아노키. 히브리어) 라는 말은 어린 아이 혹은 청년을 의미하는데 예레미야는 십대 후반 혹은 20세때에 선지 소명을 받았다 (요시야 왕 제 13, 주전 627). 하나님은 청년 예레미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소명을 그에게 주신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1:10). 특별히 예레미야가 전해야 했던 메세지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멸망이었다.


솔로몬에 의해 7년동안 건축된 예루살렘 성전은 남 유다의 심장이었다. 성전 봉헌식 때 솔로몬은 이렇게 외쳤다.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왕상 8:13). 제사장들이 성소로 언약궤를 옮기고 나올 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소를 뒤덮었다. 그 영광의 성전 봉헌식 이후 400년 가까이 지나는  사이 이스라엘 나라는 온갖 상처 투성이의 역사로 얽룩졌다. 하나님을 향한 배교. 양분된 나라. 북 이스라엘의 멸망. 지속적인 외적의 침입. 이집트와 바벨론의 패권 다툼속에서 정치적 줄타기를 하며 어느쪽 멍에가 더 가벼운지 눈치를 봐야만 했던 남 유다는 과거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예루살렘.  예레미야가 멸망을 예언한 예루살렘은 단 한번도 외적의 손에 의해 완전히 파괴던 적이 없었다.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도 예루살렘 정복에는 실패하였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영원한 처소이기에 그 어떤 강대국의 칼과 창도 감히 넘볼수 없으리라고 유다 백성들은 굳게 믿었다




사진: 나사렛 전경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여러 차례의 큰 지진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남 유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계를 빠르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 심판을 멈출수 있는 의로운 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의 선지 사역 당시 왕이었던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의 바로 느고와의 므깃도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왕하 23:29). 그후 등극한 4명의 왕들은 (여호아하스, 여호아김, 여호아긴, 시드기야) 한결같이 므낫세의 죄를 따라 배교의 길을 걸었다. 그 사이 북쪽의 신흥제국 바벨론은 앗수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낸뒤 (주전 612-605년사이) 남쪽의 이집트와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하였다 (갈그미스 전투. 주전 605). 이후 친이집트 정책을 펴고 있던 남유다를 향해 바벨론은 칼을 겨누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바벨론의 침략을 예언한 적이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왕하 20:17-18). 그후 백여년이 지나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 역사의 한페이지로 빠르게 쓰여져 내려가고 있었다. 바벨론의 침략은 그 멍에를 거부한 남 유다를 향한 이방 나라의 정치 군사적 보복이나 경제적 수탈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벨론의 침략은 남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예레미야는 선지서1-25장에서 자세히 나열한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2:8). 남유다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2:13). 예루살렘은 패역과 배교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채를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6:6).




사진: 헤브론 막벨라 굴


예루살렘은 영원하리라! 라는 거짓된 믿음에 사로집힌 왕들과 백성들은  죄악의 소굴에서 하나님과 바알의 이름을 함께 불렀다. 바벨론 군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예루살렘 성밖에 들려오는 그 순간 조차도 왕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거부하였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다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땅으로 영원한 패허가 되게 하리라…(25:2-9).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살길임을 외쳤다 (38:18-20). 남 유다의 백성들은 겸손히 하나님이 준비하신 회초리인 바벨론에게 종아리를 걷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매를 피할 길만을 찾기에 급급하었다.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예루살렘을 우상처럼 섬기던 완고한 배교와 패역한 백성들 앞에 섰던 선지자.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주장하여 역사와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선지자 예레미야. 왕들과 백성들의 온갖 협박과 조롱속에서도 그가 심판의 메세지를 전할 수 있었던 힘과 용기는 남 유다의 임박한 멸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명한다 (32:6-14). 줄곧 남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던 선지자에게 밭을 사라니! 그러나 그 밭은 장래 유다의 회복을 담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32:15).


유대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성전 파괴일 (티샤 베아브)에 출생하였다고 한다. 예레미야의 출생일에 대해 유대 전승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어쩌면 유대 전승은 예레미야의 선지 사역의 중심이 되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투영하여 그의 출생일을 티샤 베아브로 정한듯 하다. 한편 이스라엘 전통 절기인 로쉬 하샤나 (새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의 회복을 알리는 렘 31:15-17을 읽는다. 소망이 있는 멸망을 전하였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그 눈물은 멸망을 바라봐야 했던 선지자의 심장을 찌르는듯한 아픔과 다시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았던 희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니느웨 성읍 동편 박넝쿨 아래 앉아 있던 요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것은 앗수르의 멸망이었다. 그러나 기대하던 드라마틱한 멸망은 없었다. 그렇게 약 백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심지어 앗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의 지방 도시로 강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 백성들을 정착시킴으로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과 신앙의 정체성을 말살하였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주전 722) 앗수르는 남 유다 왕국을 수차례 침공하였다 (왕하 18-19). 앗수르인들의 잔인함은 니느웨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앗수르인들은 전쟁 포로를 산채로 그 가죽을 벗겨 죽이거나, 항문으로 창을 집어 넣어 목까지 찔러 처형하였다.


   선지자 나훔이 선지 사역을 하던 때는 남 유다 왕국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가 다스릴 때였다 (주전 664-654). 선왕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때 왕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성전 바닥이 아닌 앗수르 왕 앞에 무릎을 꿇었고 봉신이 되었다. 앗수르의 신하가 된 므낫세는 유다 땅에 이방 신들의 제단을 쌓고 열심을 다해 그 신들을 섬겼다.





   나훔은 야훼라는 이름과 하나님을 지칭하는 1인칭과 3인칭 동사 혹은 접미사를 42회 이상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한다. 47절로 구성된 나훔서에는 13회의 야훼가 등장하는데 특히 1장에는 야훼라는 이름(10)과 그의 성품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훔의 메세지는 앗수르의 봉신이었던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의 배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직접적인 메세지 대신에 므낫세가 섬기는 앗수르의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전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놓인 앗수르에는 잘 훈련된 용사들이 있었다. 앗수르의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질주하였고 그 빠르기가 번개와도 같았다 (2:3-4). 수도 니느웨는 적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사방을 깊이 파고 물로 채웠다 (2:8). 니느웨 성읍은 젊은 사자의 굴과 같았다 (2:11). 그러나 나훔은 이 모든 것이 쓸모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벙겨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2:13).


   니느웨는 그들의 칼과 병거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3:11). 앗수르의 산성은 처음 익은 힘없는 무화과 나무 열매 같았고 그들의 장정은 여인과 같았다. 과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탐군 열명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13:33) 라고 보고하였던 적이 있다. 정탐군들은 자신들과 이스라엘이 메뚜기 같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훔의 메세지는 선지자 개인의 생각이 아닌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니느웨의 용맹스런 방백은 메뚜기 떼에 불과하였다 (3:17).


   나훔은 그의 메세지 마지막을 마침표로 끝내지 않는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3:19). 이는 과거 니느웨 백성들의 심판을 염원하며 그 성읍을 바라보던 요나를 향해 내가 어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단한 하나님의 메세지와 대조적인 말씀이다.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하나님은 앗수르 왕과 니느웨 백성들에게 되 묻는다. 백여 년 전 굵은 베옷을 입고 짐승조차도 금식하며 회개하던 것을 잊었느냐! 나훔이 요나처럼 니느웨를 방문하여 이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였는지 혹은 유다 왕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 앞에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는지 알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나훔서의 하나님은 단순히 니느웨만을 향해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 메세지는 깊은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앗수르의 봉신인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이기도 하다.





   사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전한 메세지는 심판의 메세지였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3:4). 마찬가지로 나훔 역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니느웨의 백성들에게 전한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 진노는 멸망이 아닌 다시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하기를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담겨있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치 않았고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주전 612).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잊었다. 메세지의 무게중심이 하나님의 사랑, 긍휼, 평안, 그리고 축복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묵상해야 할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 메세지를 나훔은 오늘날 교회를 향한 묵시로 전한다. 분명 베드로 역시 나훔 선지자가 전하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벤전 4:17).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때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1:7)라는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그 분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다


위 글은 새가정사 9월호에 연재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식한 사람이었을까?

Bible Story 2014.08.30 13:52 Posted by Israel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 αγραμματοι εισιν και ιδιωται)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13). 


본 글은 "학문없는 범인"(행 4:13)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1세기 시대 당시의 상황과 성서 택스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정리한 것이다.  


이야기는 사십여세된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보지 못하였던 걸인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걸인. 그는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늘 미문에 앉아 성전을 오고가는 유대인들에게 그는 손을 내밀었고, 그 미문을 이용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가 일어났다. 지팡이를 의지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서 힘이 없는 발이 대롱 대롱 메달린채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발과 발목에 힘을 얻게 되었고 일어나 걷기도, 뛰기도 하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은 관원들에게 잡혔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다음날 산헤드린 관원들. 장로들. 서기관들의 긴급 회동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그리고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석하였다. 이들은 얼마전에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류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지, 그리고 걷지 못하던 걸인이 치유된 사건의 경유를 물었고 베드로는 담대하게 그 앞에 선 인물들이 사주하여 주였던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걷게 되었음을 증언한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던 자들이 놀라며  한말.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라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직업과 이 구절을 연결하여 해석 한다. 그들은 갈릴리의 어부였다. 당시 어부라는 직업은 배우지 못한 이들이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정규 학업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경우를 어부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투영하여 그들이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고 결론짓는 이들이 있다 (본 글은 정규 학업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 어떤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이 해석은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먼저 오늘날의 특정 직업이나 학업 과정을 1세기 당시의 직업에 그대로 적용하여 해석해서는 안된다. 현 시대와 과거 사이에 있는 시간. 문화. 역사. 그리고 사회 환경상의 차이점들이 있다. 따라서, 이는 마치 현대인들은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데, 과거에는 왜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이용하였을까? 라는 어리석은 질문과도 같은 것이다. 현 시대 상황이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본문이 현 시대를 해석하고, 현 시대는 성서 본문의 해석을 적용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본래 학문없는 범인" 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성서 컨택스트의  의미를 살펴보자. αγραμματοι (uneducated. 학문 없는) 이란 뜻은  "글을 알지 못하는" 이란 의미가 아닌 전문적인 성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위대한 랍비들이 있었다. 샴마이와 힐렐 학파가 있었다. 바울은 가멜리엘 문하생이었다 (행 22:3). 유대교내의 여러 분파들 예를 들면,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 파등은 성서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그 분파내에서 성서 교육을 받았다. 회당에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백성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마 23:2). 재판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산헤드린 공회원. 서기관. 제사장들) 입장에서 볼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받아온 혹은 가르치는 성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 없는" 이란 표현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범인 (ιδιωται,amateurs)" 이란 의미 역시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들과 비교해 볼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어떤 정치적, 서기관적, 혹은 제사장적인 가문의 뿌리가 없는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재판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말대로 베드로와 요한은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학문 없는, 그리고 자신들처럼 권력이나 엘리트 층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었을까? 두번째는 양측을 비교해 보았을때 맞는 말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학문 없는" 이들이라는 그들의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 물론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처럼 전문적인 성서 교육 과정을 이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2-4장을 잘 읽어보면 이들이 성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들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이후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요 1:41)라고 말한다. 무엇에 근거해서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였을까?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었던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요 1:45)라고 말한다. 이들이 구약 성서가 증거하는 메시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면 이런 말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처럼 전문 성서 교육은 받지 않았을지라도 성서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성서 지식이 얄팍한 것도 아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대중 설교 혹은 형제들 사이에서 그가 한 말들을 살펴보면, 그가 구약 성서를 인용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1)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시 69:25) / 2).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욜 2:28ff)/ 3) 다윗이 그를 가르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시 16:8 ff)/ 4)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5).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6)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7)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시 118:22) / 8)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시 2:1,2). 


위에서 언급한 8번의 경우들은 베드로가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이 "학문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거나 그가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증거들이다. 물론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의 주와 메시야 되심을 구약 성서를 인용하여 변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분명하신 역사가 있었다 (행 2:4; 4:8).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과 함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유대의 세대를 잇는 종교 교육이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는 유대인들의 세대간 종교 교육의 좋은 실례이다.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 6:6-7)." 성서 시대 당시에는 성서가 흔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쇄 기술이 없었기에 성서는 수기로 기록되었고 가정집에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명기 저자는 왕이 권좌에 앉을때에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신 17:18)" 부지런히 그 율법을 배우라고 명한다. 왕은 등사본 성서를 소유하였다는 증거이다. 요시야 시대에는 (주전 622년)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되었다. 율법책, 즉 성서가 흔하였다면 그 책을 발견한 것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듣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가르친다. 듣고 기억하고 가르치는 것 이 사이클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성서 교육이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은 랍비로부터 성서를 배웠다. 일년 세차례의 절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들은 유대의 성서 교육의 중요한 예가 되기도 하며, 전 세대가 이 절기들을 통해 유대의 성서가 증거하는 과거의 역사를 배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역시 그들의 부모 세대로부터, 그리고 회당에서 성서를 배우고 기억하였다. 손에 성서가 들려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 주머니에는 늘 성서가 있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학문없는 사람이라는 재판 자리에 있던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의 말은 그들이 누리고 있던 최고의 종교 교육 시스템이라는 눈으로 베드로를 비웃듯 말하였지만 베드로는 절대 학문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학문 없는 범인" 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 재판 자리에 있던 이들이 받았던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사장이나 정치인들이 가문에서 출생하지 않은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 출신 베드로에게 한 말이다. 베드로가 어리석거나 혹은 무식하다는 말이 아니다. 





베드로가 거주하였던 갈릴리 바다 북쪽의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1세기 당시 국제 무역 도로가 통과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에루살렘의 종교 교육 현장에 그는 없었다. 그는 어떤 학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베드로는 당시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는 예루살렘의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보다도 더 밝았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은 고립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국제 도로가 없다. 높은 산위에 위치해 있다 (해발 750미터 이상). 물을 얻기도 어렵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땅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립의 최적 조건을 갖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반면 갈릴리는 물. 도로. 식량의 최적지이다. 따라서 국제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베드로는 국제도시의 한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었다. 


한편,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말중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라는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학문없는 범인들롤 알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구약 성서를 인용하여 예수의 주와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는 것, 그리고 베드로의 수사학적 표현등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는 1세기 시대 당시 그 누구보다 유명한 랍비였고 이들의 그 랍비의 제자들이 아니었던가! 


결론은 이렇다. 학문없는 범인 이라는 말은 세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글을 모르는 사람. 무식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성서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제사장이나 정치인과는 무관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상 15:23의 사신 우상의 뜻은?

Bible Story 2014.07.30 14:58 Posted by Israel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3). 


한글 성서와 히브리어 성서를 비교해서 읽다보면 조금 혹은 많이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얼마전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삼상 15장 23절에 "사신 우상" 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사신" 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질문을 받았기에 집에 오자마자 히브리 성서와 사전을 살펴 보았다. 과연 "사신 우상"은 무슨 의미일까? 언뜻 보기에는 "살아 있는 우상"의 존댓말인 "살아계신 우상"인가 싶기도 했다.  히브리어 본문을 통해 한글 성서가 삼상 15:23을 바르게 번역하였는지 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말 성서 버전들의 번역이다.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 성서는 "사신 우상"으로 번역을 한다. 

공동 번역은 "그분께 대드는 것은 우상을 위하는 것만큼이나 죄가 되오."

새번역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완고한 고집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오." 


영어 성경의 번역을 보면...

NIV: Arrogance like the evil of idolatry. 

JPS: Defiance, like the iniquity of teraphim

NET: Presumption is like the evil of idolatry 

NLT: Stubbornness as bad as worshiping idols. 

LXX: idols bring on pain and grief. 


히브리어 성서는.

כי הטאת קסם מרי ואון ותרפים הפצר 


"사신 우상" 이라는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פצר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BDB에 의하면 push, press, urge (칼 동사)로 to display pushing (arrogance) 로 그리고 히필 동사는 presumption (주제 넘음, 건방짐)으로 해석을 한다. 

HALOT은 urge someone, coerce (강압하다. 억지로 무엇을 하게 하다. 칼 동사). מרי (반항. 저항) 라는 단어와 함께 또 다른 "저항" 이라는 뜻 (히필 동사)을 가진 단어로 소개를 한다. 



사진: 드라빔 (가정 수호신)


따라서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은 일부 한글 성서(개역 개정 & 개역 한글)의 "사신 우상" 이라는 번역을 "살아계신 혹은 살아 있는 우상" 으로 번역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국어 사전에서 "사신" 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여러 뜻이 나온다. 1) 임금이나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 2) 짚신의 방언. 3) 의뜸 벼슬 (신라 시대). 4) 사초를 쓰던 신하. 5). 날이 밝아 새벽임을 알리는 것을 맡아보던 일. 등의 뜻이 나오는데 그 어느 것도 삼상 15:23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자로 "사신"은 어떤 추가적인 의미가 있을까? 1. 사사로 하는 편지. 2). 수행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본 구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혹 "사신"은 "죽은 신"이란 의미가 아닐까? "완고한 것은 죽은 신인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라고 말할 수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죽은 신"이라는 표현이 없고 그저 완고함 혹은 고집스러움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라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개역 개정과 개역 한글 성서의 "사신 우상"이라는 표현은 한글 성서에서 빼는 것이 이 구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유영삼 님께서 "사신 우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사신 우상이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옛날 한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생겨난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어려운 내용도 아닙니다. 저도 글을 읽고 옛날 한문이 섞여 있는 성경을 보니까 사신 우상에서 사신이라는 뜻이 邪神(사신)의 뜻이 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악한 신으로 섬기는 우상이지요."



        에서와 야곱. 그들은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서로 싸웠다. 형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고 동생은 속임수로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았다. 결국 형은 동생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그 형을 피해 동생은 20년동안 타국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 얍복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오던 동생은 형에게 용서를 구했고 둘은 화해를 하였다. 그러나 성서 저자들은 두 형제의 화해 이후 그들의 후손들 사이에 있었던 기나긴 반목의 역사를 기록한다.

        야곱의 백성이 출애굽 후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 에돔 족속이 거주하던 세일 산의 왕의 대로 이용을 요청하였을 때 에돔의 백성은 형제인 그들을 환영하는 대신 칼과 창으로 그 길을 막았고 야곱의 후손은 거친 광야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 20-21).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 했던 발람의 예언중에 등장하는 에돔은 이스라엘의 원수였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24:18). 이스라엘 왕 사울 주변의 대적들 중에는 형제 국가인 에돔도 있었다 (삼상 14:47). 솔로몬 시대에는 에돔 사람 하닷이 일어나서 솔로몬의 왕권을 위협하였다 (왕상 11:14-25).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는 한결같이 에돔을 향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였고 시편 중에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의 에돔을 향한 증오와 저주가 담긴 노래가 있기도 하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 137:7).



사진: 양각 나팔


        구약 성서중 가장 짧은 오바댜 서의 저자 오바댜와 동일한 이름이 성서에 12번 등장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자인 오바댜와 관련이 없다. 랍비 문학에 의하면 북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궁내 대신이었던 오바댜는 에돔 출신으로 그가 선지서의 저자일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오바댜서의 본문 내용은 이를 부인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11),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 (12), 시온 산에서 피할 자 (17) 등의 문구들이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이 아닌 남 유다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거나 적어도 남 유다와 관련된 예언 사역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선지자 오바댜에 관한 개인 정보가 없다 보니 선지서의 기록 시기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멀리는 주전 9세기 중엽부터 남 유다가 멸망 당한 주전 586년 경 혹은 그 이후까지 학자들은 여러 기록 연대들을  추정한다. 한편 오바댜는 유다 백성의 죄악이나 멸망의 원인을 지적하는 대신 유다의 환난의 때를 틈타 형제 나라를 노략하였던 에돔의 죄악과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유다의 회복을 강조한 메세지를 전한다.

        세일 산지의 에돔은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이었다 (3). 에돔은 요세화된 산지에 살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바댜는 그들의 교만을 꺽는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라” (3-4). 에돔은 공생 관계에 있던 열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이고 에돔의 지혜자들이 몰락하고 그 땅의 용사들 역시 다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오바댜는 예언한다 (7-9).

        형제 국가인 유다의  재앙, 환난, 그리고 멸망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에돔에 대해, 오바댜는 에돔과 유다의 관계가 열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10-12). 그들은 리브가로부터 출생한 쌍둥이 형제의 후손이었다. 그들의 선조는 얍복강 건너에서 목을 어긋맞추어 울며 화해를 했었다. 그러나 에돔은 형제 유다의 환난을 방관할 뿐 아니라 멸망의 바람을 몰고 오는 열국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고 환난을 피해 도망가는 유다인들의 길목을 차단하였다 (14).

        에돔은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형제 야곱을 저버렸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재물을 탐내었고 열국과 함께 예루살렘을 노략하였다 (11).  에서의 형제였던 야곱의 후손을 향한 에돔의 소행은 그저 인간 역사의 한 구석에서 벌어진 한토막 사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형제를 돌아보지 않고 그 형제를 멸망시키는데 앞장선 에돔의 죄악을 좌시하지 않으셨다. 최고의 선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그 이익을 위해서라면 형제라도 버릴 수 있는 에돔을 향해 오바댜의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으로 다가오신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15).


사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의 묘(시온산 근처)


        한편 오바댜는 형제에 의해 버림당하고 유린당한 야곱 족속을 위한 소망의 회복을 전한다 (17-21). 야곱 족속은 다시 시온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네겝과 에서의 산 (세일 산지) 을 차지할 것이다. 과거 열국과 형제 에돔 족속에게 수탈 당하였던 시온 산에 올라가 에서의 산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오바댜는 선지서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한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21). 인류 역사의 펜은 사람이 쥐고 있고 사람에 의해  쓰여지는 듯 하지만, 그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연대를 알수 없는 오바댜의 외침은  영원한 진리의 경고를 담고 있다. 옳은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지 않고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세대. 눈앞의 이익을 위해 형제를 버리는 세대. 타인의 환난을 돌아보지 않고 죄악으로 배를 채우는 세대의 인생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위 글은 "새가정사" 7-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출 5:7-8). 


지금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어릴적 어느 날 아버지께서 버섯을 가져오셨다. 그 날 저녁 버섯을 먹고 나서 그 다음 날 오전부터 배앓이를 시작하였고 죽을 정도로 배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는 벽돌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셨다. 어린 나는 부모님이 일하시는 그 벽돌 공장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서 "배 아파! 배 아파!" 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울어 보채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돌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벽돌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부터 약 3천 5백여년전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벽돌을 만들었다. 그들은 시멘트와 모래가 아닌 진흙에 짚을 섞어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만들어내야 했다. 어느 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요구하였고 이에 바로는 Yes 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게으름에서 나온 어리석은 요구라고 비웃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게으름에 따른 벌로 벽돌 생산용 짚을 제공하지 말라고 명하고 벽돌 생산 수효를 반드시 채울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생산에는 큰 차질이 빚어졌고 백성들은 바로를 찾아가서 짚을 제공할 것을 호소하였지만 결과는 책망과 매질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생산과 짚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6800여 킬로미터를 내 달리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주 수원지이자 과거 고센땅의 풍요의 원천이었다. 이집트인들은 고센땅이 위치한 델타 평야에서 농사를 지었고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짚을 잘게 썰어서 진흙 벽돌 생산에 사용하였다. 사양길을 걷고 있지만 현재도 델타 평야 지역에는 진흙과 짚을 섞어 만든 전통 방식의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 

과거 이집트인들은 이틀에 약 2천개 정도의 진흙 벽돌을 만들었다. 몇명이 2천개의 벽돌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이집트의 벽돌 생산은 중요한 사업이었고 이 벽돌은 집과 신전 공사에 주로 사용되었다. 어떤 이집트 문서는 벽돌 생산에 있어 짚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re are no men to make bricks and no straw in the district." 즉 짚이 없는 곳에서는 벽돌을 만들수 없다! 라는 말인데 그만큼 짚은 벽돌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벽돌 생산에 짚이 필요한 이유는 벽들을 말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짚을 넣지 않는 벽돌은 쉽게 부스러진다. 벽돌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사진: 공인 저울 만드는 틀 


성서 본문은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벽돌 생산용 짚을 제공하였다고 말한다 (출 5:7).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분한 짚을 제공받았고 그 짚을 벽돌 생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짚을 더 이상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생산해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들판으로 나가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서 짚을 대신해서 벽돌을 생산해야 했다. 그들은 두배 혹은 세배 이상의 노동을 해야 했고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생산할 수가 없었다 (출 5:14). 아무때나 곡초 그루터기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추수기가 지난 들판에서나 곡초 그루터기를 구할 수 있었기에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곡초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흙 벽돌 생산은 연중 사업이었다. 이는 바로가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짚을 제공하지 말라는 명령에서 이집트인들이 벽돌용 짚을 저장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로는 매우 효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의 들판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고 짚이 없어 곡초 그루터기를 주어야 했던 그들은 모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출 5:21).


현실 생활속에 종종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은 종종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헤매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불안과 염려, 그리고 분노로 우리의 눈을 가리운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출 6:1). 그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헤매던 백성들이 그 눈을 들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벽돌 공장 한편에서 나는 정말로 죽는줄 알았다. 벽돌 한장 한장을 만들어 그 수효를 채워야 돈을 받아 하루를 먹고 살 수 있었던 부모님을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었다.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내 기억 주머니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나에게 그리고 현실의 고난과 역경에 남 모르게 눈물 흘리는 이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만 당장 답을 하지 않으시는 그 분을 향해 원망의 눈을 드는 이들을 향해 말한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아멘. 



사진: 돌로 된 저울추 


참고문헌 Robert Littman, Marta Lorenzon and Jay Silverstein "With & Without Straw: How Israelite Slaves Made Bricks," BAR 40:02, Mar/Apr 2014. 

         브두엘의 아들 요엘 (: 야훼는 하나님이시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그가 어느 시대에 선지 활동을 했는지도 추정할 뿐이다. 소선지서의 시작인 호세아 (14)와 아모스서 (9) 사이에 짧은  네장으로 된 선지자의 목소리는 찾기 조차도 힘들 정도이다. 아마 요엘 선지자가 전한 메세지는 구약보다 사도행전 2 14절 이하 베드로의 오순절 첫 설교때 인용된 것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 2:28-32).   요엘 선지자가  전하였던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이 수백년 후 예루살렘에 모인 한 무리를 통해 성취되었고 회개 운동으로 이어졌다.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요엘은 유대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세번에 걸쳐서 임박한 여호와의 심판 날을 선포한다. 그 첫번째는 자연 재해를 통한 여호와의 심판이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1:4).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경우 임할 자연 재해의 저주를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내 경내에 감람 나무가 있을 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 28:38-40). 요엘 시대의 백성들은 모세가 경고한 말씀의 메아리를 귀로만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하늘은 메말라 버렸다. 물 없는 구름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씨는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 버렸다. 꼴을 얻지 못하는 가축들은 헐떡거리며 피곤한 눈으로 부르짖었다. 말라버린 시내. 속빈 포도와 무화과는 다가오는 멸망의 날. “여호와의 날을 알리는 황색 경고등이었다. 멸망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굵은 베를 동이는 것 뿐이었다. 제사장들이 에봇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어야 했다. 성중의 장로들과 백성들도 제사장을 따라 회개의 굵은 베 옷을 입고 엎드려야 했다.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외친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1:13). 제사장. 장로. 그리고 백성들로 이어지는 국가적인 회개만이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요엘은 외친다.




사진: 요엘 선지자...


        과연 제사장들이 회개의 굵은 베옷을 입었을까? 요엘 선지자는 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을 두번째 여호와의 멸망의 날을 선포한다 (2:1-2). . 기병들. 병거 소리. 강한 군사. 용사. 무사.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를 달리는 이들. 이제는 자연 재해가 아닌 칼과 창으로 임하는 심판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황색 경고등으로 끝날 수 있는 여호와의 날이 적색 경보로 바뀌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백성들의 눈에는 바짝 말라버린 땅만 보였지만, 선지자는 그 메마른 땅위에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발굽 소리를 듣고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죄악의 절벽을 향해 달음질을 해서는 안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2:12-13). 여호와는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시다. 재앙 대신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2:14). 시내의 물이 말랐다고 해서 제사장들의 눈물까지 말라서는 안되었다.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회개의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2:17). 제사장들 뿐 아니라 백성들. 장로들. 신랑과 신부. 심지어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회개의 자리로 모으라고 요엘은 촉구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왕과  백성들뿐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을 때 그 성내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이들을 구하지 않으셨던가! 여호와는 회개하는 백성들을 위해 언제든지 자신의 정한 뜻을 돌이키기 위한 유턴을 준비하시는 분이셨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18-23). 회개한 백성들은 즐거워 할 것이고 들짐승들도 들판에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옷이 아닌 마음을 찢었을 때 하나님이 돌아오신다.


       요엘 선지자가 선포한 세번째 여호와의 멸망의 날은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3:2). 그 심판의 자리인 여호사밧 골짜기 (: 야훼는 심판하신다)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과 성전이 있던 모리아 산 사이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의 다른 이름이다. 이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이방의 열국들을 심판하신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 흩고 유다와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과 먼 나라 스바 사람들에게 판 사람들이다 (3:2-8).  아모스의 하나님은 사자처럼 심판과 회개를 부르짖으셨다. 요엘 선지자의 하나님 역시 시온에서 사자처럼 부르짖으신다 (3:16). 요엘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과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는 날이기도 하다. 회개하며 돌이키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복을 약속하신다.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3:20).   


       우리 세대는 굵은 베 옷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다. 회개의 금식이 거추장스런 세대이다. 마음의 옷 찢지 않는 세대이다. 팥중이. 메뚜기. 느치. 그리고 항충을 통해 전하는 여호와의 경고. 들짐승의 피곤한 부르짖음이 전하는 여호와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세대이다. 요엘 시대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굵은 베 옷을 입고 메말라 버린 그들의 눈물 샘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여호와의 심판의 종말이 외쳐졌다면 오늘날 우리 세대는 얼마나 그 심판의 종말에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는가!  선지자의 활동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역사의 흐름속에서 회개치 않는 백성들을 향한 적색 경보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더 늦기 전에 적색 경보의 여호와의 날을 소망과 평화의 녹색등으로 바꿀 굵은 베 옷을 입고 마음을 찢으라는 선지자의 외침을 들을 때이다.


* 위 글은 새가정사 6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αγαπας)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φιλω)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αγαπας)하느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φιλω)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φιλεις)하느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φλιεις)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


'아가페'와 '필레오'를 구분하여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 (divine love), 필레오는 친구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으로 해석 및 설교를 하는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한 것은 신적인 사랑이었으나 베드로는 신적인 사랑의 수준으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베드로는 친구간의 사랑 수준으로 예수를 사랑하였고, 결국 예수께서도 베드로에게 필레오의 사랑으로 물으셨다... 




사진: 베드로 재사명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사랑 모양의 돌판 


그렇다면 요한은 이 장면을 기록할 때 과연 그는 아가페와 필레오의 뜻을 구분하여 본문을 기록하였을까? 


신약 성서 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적어도 세가지 언어권속에서 생활하였다. 당시에는 아람어가 오늘날의 국제어인 영어와 같은 지배적인 언어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는 유대인들의 모국어였고 종교적인 언어로 회당이나 성서 읽기에 사용되었지만 생활속에서는 아람어가 주 언어였다. 또한 헬라어 역시 아람어와 함께 국제 언어로 사용되었다. F. F 부르스에 의하면, 예수의 성육신이 로마 제국시대 당시에 있었던 중요한 몇가지 이유들중 발달된 국제 도로와 공용어인 헬라어는 훗날 효과적인 복음 전파에 중요한 물리적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아람어는 주전 8세기 경에도 국제 언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앗수르의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하였을 때 산헤립이 보낸 랍사게가 유다 말 즉 히브리어로 항복을 요구하였을 때,  예루살렘의 정치인들은 랍사게에게 유다 말이 아닌 아람어로 말해줄 것을 요청한다.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데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왕하 18:26). 


적어도 유다의 지식인들은 아람어를 할 줄 알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실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같은 셈족어로 아주 비슷하여 배우기가 쉽다. 다시 돌아가서 신약 성서 시대의 유다인들은 아람어를 구사하였고 에수와 그의 제자들 역시 아람어로 대화를 하였다. 따라서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와 베드로 사이의 대화의 일차적 언어는 아람어였을 것이다. 훗날 요한은 이 아람어로 한 대화를 성서를 기록할 때 헬라어로 바꾸어서 기록을 하였다. 


헬라어에는 사랑을 뜻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아가페. 필레오. 스테레고. 에로스.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 필레오와 스테레고는 친구 혹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그리고 에로스는 남녀간의 사랑으로 정의하지만 실제로는 각 단어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한편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하바"이다. 아하바에는 신적. 친구간 혹은 부모와 자식.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단어가 사용된 컨텍스트가 그 단어의 의미를 규정한다. 


예수께서는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로 베드로에게 '아하바 (동사형 아하브)'하는지를 물었을 것이고, 베드로는 동일한 단어인 '아하바'로 답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차적인 언어로 볼때 예수의 질문과 베드로의 답변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신적 사랑'을 말하는지 '친구간의 사랑'을 말하는지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그 단어가 사용된 상황 역시 단어의 내적 의미를 쪼개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헬라어로 성서를 기록할 때 아가페와 필레오 이 두 단어를 사용하였다. 왜 요한은 '아하바'를 두 단어의 헬라어로 사용하였을까? 과연 요한이 이 두 단어를 사용할 때 그는 두 단어가 주는 내적인 의미 혹은 그 단어가 공유하는 혹은 분명히 구분된 의미를 예수와 베드로 사이의 대화에 적용하기 위해 이 두 단어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일까? 




사진: 베드로 재사명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가)


요한의 저작인 요한 복음과 그의 서신서에 등장하는 '아가페'와 '필레오'의 상황적 의미를 살펴보면 요한이 정의한 그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가페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은 요 3:16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신적인 사랑이 그대로 '아가페'에 들어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19절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에서도 '아가페'가 사용되었다. 12:43에도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일 2:15 에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에서도 '아가페'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아가페가 사용된 상황을 보면 신의 사람을 향한 사랑 혹은 사람의 신을 향한 사랑뿐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악을 사랑하는 사람, 즉 전혀 신적이거나 거룩하지 않은, 신성하지 않은 오히려 인간의 죄악 냄새가 풀풀나는 죄를 원하는 원초적 본능을 말할때에도 아가페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뿐 아니라 바울도 말하기를 그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아가페)하여'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필레오는 어떨까?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여기에서 사용된 것은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사이의 사랑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으로 정의한 필레오의 사랑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요 11:3에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필레오의 사랑을 한 것을 볼 수 있으며, 16:27에서는 제자들의 예수를 향한 사랑을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한다. 요한은 계시록 3:19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라는 주의 말씀에서도 '필레오'를 사용한다. 바울 역시 필레오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을 표현할때 사용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필레오)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전 16:22). 




사진: Feed my sheep! 베드로에게 재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베드로 재사명 교회)


이로 보건데, 아가페와 필레오는 그 단어들 사이의 분명한 구분선이 없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 아가페의 사랑을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필레오의 사랑으로 답을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랑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가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기에 예수께서 어쩔 수 없이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최고의 수준에서 한 단계 내려와서 그렇다면 너는 나를 필레오 수준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 라고 물은 것도 아니다. 아가페와 필레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필레오 사랑 고백 때마다 하신 말씀에 주목하는것을 놓칠 수 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일관되게 필레오의 사랑 고백을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양을 먹이고 (to feed) 양을 치라는 (to shepherd) 사명을 주신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21장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첫 부르심과 사명 주심 이후에 다시 베드로를 부르시고 그에게 재사명을 주는 것. 즉 아가페이냐 혹은 필레오냐의 문제가 아닌 어부의 길로 다시 돌아가 베드로를 찾아가 그에게 재사명 (양을 먹이고 양을 치는)을 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미 주께서는 베드로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