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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 나의 사랑 이스라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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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2-11T11:57:3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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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쿰란의 물 수로 시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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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20T14:04:56Z</updated>
  <published>2010-01-15T15:33:27Z</published>
  <summary type="html">몇일전에, 블러그 이사왔습니다. 섬기던 교회 제자 (지금은 다른 교회로 떠났지만)가 블러그를 관리해 주는데, 새로운 블러그를 추천해 주고 직접 이삿짐까지 날라 주었답니다. 아직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시험때문에요. 앞으로 시간되는대로 성지와 관련된 사진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로 (맛보기죠)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 공동체가 이용했던 수로 사진 입니다. 오른편 산 중턱에 보면 수로로 이용했던 구멍이 보입니다. 바로 그 수로의 모습입니다. 밑에서 보던것 보다 상당히 커서 몸을 굽히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네요. 이렇게 수로를 만들고 우기철에 내리는 비를 공동체가 사는 마을로 끌여 들여서 미크베 (정결 의식탕)에서 목욕도 하고 식수로도 사용하였답니다.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82&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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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성전산의 이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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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5Z</updated>
  <published>2009-12-27T18:21:06Z</published>
  <summary type="html"> &amp;nbsp; 사진: 바위 돔 (흔히 황금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혹 오마르 사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오마르 사원은 예루살렘 성묘 교회 근처에 있는 사원입니다. 바위 돔은 사원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은 돌 위에 강력한 기도자처럼 서있다. 우마야드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 (685 - 705 C.E)가 세운 이슬람 제단인 바위 돔은 예루살렘의 이전 주인이었던 기독교를 대체하는 이슬람의 상징이 되었다. 바위 돔 뒷편으로 푸른색이 도는 회색 돔 건물인 성묘교회가 보인다. 아랍 정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 성묘 교회는 도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물일 뿐 아니라 가장 거룩한 장소였다.&amp;nbsp; 638년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파함족 출신인 카할리드 이븐 트하비트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 시리아의 중요한 도시들이 무슬림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뒤에 콘스탄티노플의 원조가 끊어지게 되었고, 예루살렘의 주교 소프로니우스는 소망을 잃게 되었다. 아랍군은 북쪽 혹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시리아와 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비잔틴 제국의 도시들을 정복해 갔다. 가이사랴에 있는 기독교인들만이 홀로 남아서 대항하였지만 얼마 가지못해 무슬림들에 의해 정복 당하고 말았다.&amp;nbsp; 아랍 정권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동안에도, 유대 광야 산지에 자리한 예루살렘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좀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 7세기 초, 예루살렘은 로마 시대 당시 세워진 성벽과&amp;nbsp; 망대 그리고 성문으로 인해 거의 난공 불락의 성채였다. 당시 아랍 세력은 요세화된 도시를 점령하기 위한 무기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루살렘의 기독교 주교는 항복을 결정하였다. 대부분 아랍 역사 자료들은 예루살렘 정복과 관련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만 9세기경에 기록된 이슬람 정복 기사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주교 소프로니우스가 항복을 하였다고 되어 있다. 어쩌면, 역사는 이 특이한 사건을 역사 기록의 작은 그림자로 남겨 두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amp;nbsp; 사진: 성묘 교회 - 성묘교회의 돔과 바위 돔의 돔 사이즈는 동일합니다.&amp;nbsp; 예루살렘이 무슬림의 손에 넘어간 후, 이슬람의 사상과 종교적 실천으로 가득찬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기독교 색체로 가득했던 도시는 이슬람의 거룩한 도시가 되었고, 예루살렘 정복 약 1세기 후 정복과 관련된 이슬람 전통들이 기록되면서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화는 탄력을 받게 되었고, 이슬람 문서 집필시 예루살렘은 단골로 등장하는 도시가 되었다. 사실 이슬람 정복자들은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재빠르게 인식하였으며 많은 무슬림들은 이 특별한 도시를 이슬람이라는 왕관에 하나의 보석처럼 장식하기를 원하였다.&amp;nbsp; 예루살렘 정복과 관련하여 많은 전통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권위적인 전통으로 인정받는 것은 칼리프 우마르 (634-644 C.E)의 정복 기사이다. 이 전통에 의하면, 우마르가 예루살렘을 정복할때 그는 성전산에 서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그의 이름을 딴 모스크를 세웠다. 이는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성지가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amp;nbsp; 예루살렘은 메시아 사상으로 가득차 있는 도시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예루살렘이야 말로 그들이 갖고 있는 메시아 열망이 성취될 도시로 믿고 있다.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다윗 가문 출신으로,&amp;nbsp; 유대땅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그의 보좌를 만들것이며 유대 왕국을 새롭게 하고 해방을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 기독교인들에게, 메시아는 역시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루살렘에서 죽고 장사되었지만, 부활 승천후 세상 끝날과 새천년 시대에 그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amp;nbsp; 예루살렘 정복과 관련된 이슬람의 전통들 역시 메시아 사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칼리프 우마르는 선지자 무하마드 다음으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슬람 저작들은 우마르에게 &amp;quot;알 파루크&amp;quot;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이 단어의 뜻은 &amp;quot;그는 옳음과 그름을 구분한다&amp;quot; 로&amp;nbsp; 신적 선택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 단어의 어원에는 &amp;quot;구원자&amp;quot;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amp;quot;메시아&amp;quot;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슬람 전통에서는 우마르가 메시야적인 행위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고 기술한다. 이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처럼 우마르 역시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과 겟세마네를 지나 동문을 통해 성전산에 들어와 솔로몬의 성전터를 발견하고 모스크를 건축함으로써 옛적 성지에서 드려졌던 예배를 회복하였다는 것이다.&amp;nbsp; 7세기 초, 메시아에 대한 열망과 종말론적 사상들은 이슬람의 핵심이었다. 선지자 무하마드는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고 강조하였다. 전통에 의하면, 무하마드는 손가락 두개를 펴서 서로 맞대어 놓고 &amp;quot;나와 심판의 시간 사이에는 이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amp;quot;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코란은 심판주인 알라를 찬양하고 종말에 있을 사건들을 자세하게 언급하기도 한다.&amp;nbsp; 예루살렘이 무슬림의 손에 넘어간 후,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마지막 심판날에 메시아 사건이 있을 도시로 이 도시를 주목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슬람의 종말론적 사상을 꽃피울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amp;nbsp; 예루살렘은 근 삼백년 동안 기독교 문화속에 있었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고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뿐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 사도들과 초기 순교자 이야기들을 예루살렘 곳곳에 새겨놓았다. 7세기 당시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금방이라도 있을 듯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 성묘 교회와 승천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의 상징들로서, 예수께서 곧 다시 오셔서 그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신앙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하였다.&amp;nbsp; 사진: 승천교회&amp;nbsp; 성묘 교회와 승천 교회 사이에는 성전산 - 유대 전통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케다 사건이 있었던 모리아 산- 이 있다. 성전산은 헤롯과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슬름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때, 그들이 본것은 버려진 거대한 광장을 보게 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하신 예언을 무언으로 증거하는 것이었다. &amp;quot;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amp;quot; (마 24:2). 기독교인들에게 버려진 성전산은 유대교로부터의 승리를 증거하는 한 산물이기도 하였다.&amp;nbsp;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들의 독실함을 흥분속에서 발견하였다. 도시는 교회, 바실리카, 수도원, 순례자의 숙소, 순교자 기념 교회들로 가득하였다. 16년 동안 페르시아의 짧은 지배가 끝난 후 630년 기독교인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십자가를 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황제의 입성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상징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회복시키는 기념적인 사건이었으며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때가 그리스도 재림의 때가 아닌가? 예루살렘의 새로운 주인이 된 무슬림 정복자들은 도시가 얼마나 성스러운지를 쉽게 이해하였으며, 코란이 말하는 종말론적 환상이 바로 이 거룩한 도시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amp;nbsp; 비록 예루살렘이 기독교 도시로 300년을 보냈지만 여전히 도시는 유대의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안에 의해 유대인들이 도시로부터 쫓겨난 후 5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시는 유대교의 색체가 남아 있었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한가지 이유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구약 성경이라는 경전을 바탕으로 사역을 했고, 그들의 삶의 모습들이 새겨진 도시를 훗날 기독교인들이 그대로 간직하였기 때문이다.&amp;nbsp;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유대인의 성전이 있던 자리는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그 자리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성전이 있던 자리의 파괴는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의 진리 그리고 성공을 보여주는 장소이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유대인의 성전은 다시 세워지지 않을 장소였다. 자연스럽게 성전산은 아담,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솔로몬 (무슬림들은 제 2차 성전 시대 혹은 헤롯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과 연결되었으며, 무슬림 정복자 역시 예루살렘의 찬란했던 영광을 재현함으로 무슬림의 거룩한 성지로 만드는데 주력하였다.&amp;nbsp; 1996년 이슬람의 저명한 학자인 올레그 가르바르는 &amp;quot;거룩함의 실현 (The Shape of the Holy: Early Islamic Jerusalem)&amp;quot; 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떻게 이슬람이 기독교인의 예루살렘을 메카와 메디나와 같은 거룩한 도시로 거듭나도록 만들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기술하였다. 가르바르는 예루살렘의 이슬람화는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십자군 시대의 서막이 열린 주후 638년과 1099년에 사이에 이뤄졌다고 제안한다. 이 기간 동안 예루살렘은 무슬림의 여러 왕조들의 지배를 받았다: 1) 메디나의 칼리프 - 632-661년, 2) 우마야드 칼리프 - 661-750년, 3) 바그다드의 아바시드 - 750 - 878년, 4) 이집트로부터 온 지배자들 - 투룬이즈, 이크시즈, 파타미드, - 878 - 1099년&amp;nbsp; 사진: 6세기경에 만들어진 마다바 지도중 예루살렘&amp;nbsp; 가르바르는 이 모든 지배자들 중에서 우마야드 왕조를 가장 중요한 왕조로 본다. 이 왕조는 아브드 알 말리크 (685-705년)때 예루살렘에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바위 돔을 건축하였다. 이 건축은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성지로 만드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가르바르는 근 40년 이상 바위 돔 연구에 몰입하였다. ( 1959년 그가 쓴 예루살렘에 있는 우마야드 바위 돔은 이 분야에 있어 최고의 논문들중 하나이다.) 다른 비-모슬림 학자들과는 달리 가르바르는 무슬림 와키프 당국의 전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전산 (무슬림들은 하람 알 샤리프 혹은 존귀한 성소라고 부른다)의 많은 장소들을 연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오늘날까지도 비-무슬림들은 성전산 연구를 공식적으로 허락받을 수 없다. 또한 가르바르는 여러 명의 훌륭한 조력자들 - 사진 기사&amp;nbsp; (사디 누세이베), 컴퓨터 전문가들 (무하마드 알 아사드, 아베르 아우데)이 있었으며 이들은 자유롭게 바위 돔과 알악사 사원과 그 지하까지도 출입할 수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가르바르가&amp;nbsp; 쓴 &amp;quot;거룩함의 실현&amp;quot; 그리고 사디 누세이베와 함께 출간한 &amp;quot;바위 돔&amp;quot; (1996)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되었다.&amp;nbsp; 이슬람의 예루살렘 재구성의 대표적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바위 돔은 이슬람의 정복후 거의 2세기 후에나 건축되었다. 이 건축물은 초기 이슬람 건축물들중 기념비적인 건축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amp;nbsp; 사진: 바위 돔의 내부 구조- 이중 옥타곤 형식입니다.&amp;nbsp; 하지만 바위 돔은 건축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위 돔 남쪽과 동쪽 문에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amp;quot; 하나님 (알라)의 유일성과 무하마드의 예언은 진리이다&amp;quot;, &amp;quot;예수의 성자&amp;nbsp; (son of God)됨과 삼위일체는 거짓이다.&amp;quot;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 당시의 건축물과 주화들, 마일 표석 (milestone), 그리고 다른 건축물들에는 이 글귀가 짧은 형식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건축물들에는 이슬람 신앙의&amp;nbsp; 간단 명료한 글귀들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amp;quot;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 그에게는 동등한 다른 동반자가 없다.&amp;quot; 라는 글귀를 금과 은 주화에 새겨 넣기도 하였다 (696년 경).&amp;nbsp; 바위 돔은 반 기독교 정책을 펴기 위한 하나의 장치 이상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중으로된 옥타곤 (8각형) 형식과 지붕을 돔으로 만들게 된것은 특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건축 형식은 일종의 기념을 위한 건축형식이다. 가르바르는, 바위 돔 건축이 성묘 교회나 네아 교회 (저스틴 황제가 건축한 동정녀의 새 교회 - New Church of the Virgin)에는 없는 권능과 웅대함으로 충만한 이슬람의 존재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가르바르는, 바위 돔이 일반 이슬람 사원이 아닌 하나의 성소이며 돔안에 있는 바위를 존귀히 여기고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amp;nbsp; 무엇이 그 바위를 중요하게 만들었는가? 비록 대부분의 전통들은 돔이 건축된 뒤에 바위를 장식했다고 하지만, 그 전통들은 옛적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기억은 바로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성전이다. 무슬림들은 바위 돔에 있는 바위에는 솔로몬 성전의 흔적이 있다고 믿는다.&amp;nbsp; 이러한 전통은 그 나름대로 믿을만한 이유를 제시한다. 아랍 정권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얼마 안되어, 무슬림과 유대인은, 그 전 유대인들이 제의 장소로 발전시킨 그&amp;nbsp; 장소 (바위 돔 - 성전이 있던 터)에 있는 바위 주변에서 경배를 드렸다. 4세기 초 유대인들은 아빕월 9일째 되는 날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이날 제 1차 성전과 제 2차 성전이 무너졌다고 믿는다) 성전산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135년경부터 유대인들의 성전산 방문은 전면 금지되었었다.) 성전산 방문시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게 된 슬픔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였다. 333년경 보르데우스 필그림 이라 불리는 글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amp;nbsp; &amp;quot;하드리안의 동상 (135년경 하드리안은 유대 제 2차 봉기를 진압한 후 그 자신의 동상과 쥬피터의 신전을 성전이 있던 자리에 세웠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대인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바위가 있다. 그들은 그 바위에 파인 구멍에 기름을 붓고, 그들의 옷을 찢으며 큰 소리를 울부짖었다.&amp;quot;&amp;nbsp; 사진: 바위 돔 천장 몇몇 기독교 자료들에 의하면, 비잔틴 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파괴된 성전산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들은 그곳에 있는 바위에 기름을 부었다. 유대인들이 기름을 붓는 행위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 출 40:9-16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봉헌을 위해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삼상 16:13에서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는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amp;quot;기름 부음을 받은 자&amp;quot;이며 헬라어, 크리스토스 혹은 그리스도 역시 동일한 의미이다. 따라서 매해 아빕월 9일에 제사장 계열의 가족들이 일반 유대인들과 함께 성전산에 와서 바위에 기름을 붓고 시편 혹은 예레미야 애가를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제의적 행위는 무슬림들에게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터가 얼마나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amp;nbsp; 사진: 바위 돔 내부 - 상부에 있는 돔에는 반 기독교적인 글귀가 적혀 있다. 글의 내용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선지자임을 강조한다: &amp;quot;사람의 아들 메시야 예수는 진정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이다. 또한 글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선지자들을 믿으라 / 삼위일체에 관한 말은 더 이상 하지 말라/ 당신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관심거리에 종지부를 찍으라 /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분이시다 /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셨다든가 혹은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절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amp;nbsp; 몇년 전에 나는, 초기 무슬림들에 의해 건축된 바위 돔은 성전 재건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제안하였다. 따라서 신성한 건물의 건축은 기존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던 신앙, 즉 성전산 터는 황폐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개념에 대한 반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초기 유대 미드라쉬에 의하면, 비록 바위 돔이 건축된 후 약 60년뒤에 기록되었지만, 무슬림들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선도자로 찬양하고, 무슬림 지도자들을 향해 &amp;quot;하나님의 집&amp;quot;을 건축하였다고 칭송하기도 하였다.&amp;nbsp; 믿을만한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바위 돔을 솔로몬의 성전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이 전통은 11세기 초 (첫번째 십자군 운동이 있기 약 50년 전)에 편집된 &amp;quot;예루살렘의 찬양들&amp;quot; 로 알려진 문학 작품에 나타난다.&amp;nbsp; 이 전통을 편집한 무슬림 학자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알 바쉬티로&amp;nbsp; 바위 돔 건축과 그 건축의 이유들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바위 돔이 솔로몬 성전이 있던 자리에 건축된 후, 그는 이 건축을 봉헌하는 제의적 의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제의적 의식은 이슬람의 종교적 행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알 바쉬티는 그 제의적 의식을 그 어떤 거부 반응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였다. 사실 그는 그 제의적 의식이 새로 건축된 건물에 매우 적절한 행위였다고 믿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제의적 의식들은 바위에 특별하게 만들어진 연고와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알 바쉬티는 이 연고의 제조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다) 알 바쉬티는 유대인의 성전에서의 제의를 연상케 하는 바위 돔 제의 의식을 기록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amp;quot; 그 바위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바로 그 바위 위로 돔을 씌웠다. 그는 다른 전통을 인용한다.&amp;nbsp; &amp;quot;타위라트 (성서)에 기록되기를, &amp;quot;예루살렘을 기뻐하라&amp;quot;, 그리고 그 바위는 하이칼 (히브리어로 헤이칼 - 의미는 성전의 성소 - 시편 27:4, 65:5 (히브리어 성서) 65:4 (한글 성서).&amp;quot;&amp;nbsp; 사진: 루잠 사파르에 있는 비잔틴 시대 요새에서 발견된 무슬림의 신앙 고백 (7-8 세기 경): 바위 돔에 있는 글귀처럼 이 글 역시 유일신을 강조하고 삼위일체와 예수의 신성을 믿는 것을 비난한다.&amp;nbsp; 바위 돔에서의 주요 행사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있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이 날들은 제의 의식을 행하는 특별한 날들이었다. 예를 들면,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는 성서를 공공 장소에서 읽는 날이다. 또한 이 날들은 금식을 하는 날이며, 아침과 오후 기도 시간에 특별한 간청을 드리는 기도 시간이 있다. 주목할 것은, 이처럼 유대인의 전통 의식이 이슬람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이다.&amp;nbsp; 이 모든것으로 보건데, 바위 돔의 건축은 정치적, 종교적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바위 돔 건축 직후,&amp;nbsp; 다섯 유대인 가정이 바위 돔내의 등잔 심지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데 고용되었다. 유대인이 바위 돔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위 돔의 등잔을 준비하는 일은 유대인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일과 매우 흡사하다.&amp;nbsp; 사진: 7세기 후반에 주조된 이슬람 동전에 새겨진 글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그와 동등한 동역자는 없다.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 당시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 주조된 금화와 은화, 마일 스톤 그리고 건물들에는 이와 비슷한 글귀들이 새겨져 있다.&amp;nbsp; 당시 랍비 문헌에서는 유대인들이 성전의 거룩한 장소로 들어가는 것을 금한다는 내용이 없다. 이 금지 사항은 십자군 시대를 지나 마믈릭 시대까지도 나타나지 않다가 1488년 예루살렘의 랍비 오바댜 다 바르티노르가 그의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에서 언급이 최초로 나타난다.&amp;nbsp; 비잔틴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시리아 지역을 무슬림이 정복한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과의 조우는, 무슬림으로 하여금 예루살렘과 성전산을 거룩한 장소로 간주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란은 예루살렘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영적인 장소로 알게 된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인들과의 접촉이 있은 후였다. 그들은 도시와 관련된 성서의 사건들을 배우게 되었고 특별히 솔로몬의 성전에&amp;nbsp; 대한 많은 전통들을 듣게 되었다. 솔로몬은 코란에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코란에 나오는 성서 인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인해 유대교와 기독교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amp;nbsp; 사진: 무슬림들은 이 바위를 &amp;quot;아스 사크라 (the rock)&amp;quot;라고 부른다.&amp;nbsp; 무슬림 사이에도 이미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존재했지만 유대인들은 더 깊이 있는 기대감을 불어 넣았다. 유대인들은 이 새로운 정복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올 것으로 여겼으며, 이제 곧 성전산에서의 예배가 재개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성전이 있던 자리에 바위 돔이 건축되고, 봉헌식때 바위에 기름을 붓고, 매주 월요이과 목요일에 향을 피우고, 불을 밝혔다. 사실, 무슬림들에게 이러한 제의적 행위는 자신들을 솔로몬과 연결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대적자인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었던, 성전산은 황폐한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신앙적 개념을 뒤집을 수 있었다.&amp;nbsp; 한편, 유대인들에게, 우마야드 왕조때 세운 바위 돔은 성전을 복원하는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무슬림의 정복은 이스라엘 회복의 첫 출발로 여겼다.&amp;nbsp; 이 글은 아래 성서 고고학 잡지를 번역한 것이며, 첫번째 사진은 직접 찍은 것이며 그 외 사진들은 &amp;nbsp;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업로드 시킨 것입니다.&amp;nbsp; Reference for this article: Sharon, Moshe. “Islam on the Temple Mount.”&amp;nbsp;Biblical Archaeology Review, Jul/Aug 2006, 36-47, 68.&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81&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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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통곡의 벽에서 잘못 기도하다 잡히면 감옥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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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15T06:32:15Z</updated>
  <published>2009-12-27T12:04:39Z</published>
  <summary type="html"> 하아레쯔 인터넷판 신문에 보니, 코텔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문제가 실렸네요. 다음은 기사 전문입니다. 코텔 (서쪽벽 혹은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여자들 체포될 위험에 처하다. 한달에 한번, 유대인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코텔에서 기도하는 여자들은 체포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동의 화약고로 알려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지만, 유대인들 사이의 종교적인 문제로 인한 성 차별 역시 심각하다. 코텔에서 사역하는 랍비들은,&amp;nbsp; 종교적인 복장, 예를 들면, 야르묵 (키파), 기도 쇼올, 혹은 토라를 갖고 기도하는 것은 오직 남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절대로 이런 복장이나 토라를 갖고 기도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여자들이 코텔에서 종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 역시 남자들이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에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자들이 이런 모자를 쓰고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 종교인이 쓰고 있는 탈리트 (기도 쇼올)도 해서는 안되고요. 지난 금요일 약 200여명의 여자들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중에도 코텔에서 남자들처럼 종교적 복장을 하고 기도를 하였고, 반대편에서는 종교인 남자들이 여자들을 향해 저주와 욕을 퍼 붓었다. 그들은 여자들을 향해 &amp;quot;나찌들&amp;quot; &amp;quot;교회나 가라&amp;quot; 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장면들은 유대력으로 월삭 (매달 첫날)이 되면 코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난 11월 코텔에서 기도하는 여자들 단체 (The Women at the Wall - WoW) 회원들이 탈리트 (기도할때 쓰는 쇼올)와 토라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회원들은 법적으로 최고 6개월 간은 구류 혹은 3천 달러의 벌금을&amp;nbsp; 내야 될 수도 있다. &amp;nbsp; 코텔에서 사역하는 랍비 사무엘 라비노비치는 이런 여자들의 행동에 대해 &amp;quot;끓어오르는 분노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amp;quot; 라고 말한다. 한편, WoW의 리더인 아나트 호프만은 유대 경전은 이런 남녀 차별을 말하지 않고 있으며,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기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2003년 대법원에서는 여자들이 코텔에서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것은 법과 규칙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판결을 내렸다. 호프만에 의하면, 지난 수년 동안 코텔을 장악한 하레딤 (those who fear God)들은 다른 유대 종파들의 견해를 무시해왔다고 주장한다. 코텔은 모든 이들의 것이지 어느 특정 종파의 것이 될 수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에 대해 라비노비치는 이 단체의 기도는 전혀 유대교적인 기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 단체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나 방해할 뿐이다 라고 비난한다.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80&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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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선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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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4Z</updated>
  <published>2009-11-23T23:48:13Z</published>
  <summary type="html"> 오늘 한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몇일전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지난 9월에 소포를 보냈는데, 아직 못받았냐고 하더군요. 애구 경제 사정도 뻔히 안 좋은 것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귀한 선물을 보내주다니 너무나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amp;nbsp; 우체국에 들려서 한 20분정도를 기다렸다가 큼지막한 상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무게가 17킬로나 나갑니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집에서 우체국까지 어떻게 옮겼을까요. 집에 와서 선물 포장을 뜯기 전에 먼저 찰칵하고 사진 한장을 찍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간만에 받아보는 택배입니다.&amp;nbsp; 포장을 뜯고 나니, 맨 먼저 보이는 것이 반가운 김과 일회용 커피입니다. 커피가 여기 저기 촘촘하게 박혀 있네요. 그리고 한쪽에 예쁘게 포장된 책이 보입니다. 제목은 &amp;quot;히말라야 도서관&amp;quot; 첫 페이지를 펴자, &amp;quot;떠나지 않겠노라던 당신은 지금 여기 없네 영원히, 이를 수 없는 언젠가, 지나쳐 버리는 여기에, 나는 살아가고 있네&amp;quot; 녀석 철학과를 다니더니 상당히 철학적인 표현으로 꼬끝을 찡하게 만듭니다.&amp;nbsp; 김과 커피 아래쪽에 숨겨져 있던 라면과 우동 그리고 냉면이 보입니다. 우동을 보면 전 웃음이 나옵니다. 제 작년, 그리고 올해 한국에 다녀 왔을때 지금은 교회 전도사가 된 제자와 함께 편의점에서 먹었던 우동이 너무나 맛있어서 그냥 웃고 말았던 기억때문이죠. 사실 오늘 아내가 학교에서 먹으라고 빵을 싸주었는데, 빵 대신 웃음 우동 한그릇으로 화려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지난 4월에 한국 다녀오면서 우동 4개를 가져와서 네식구가 2개를 끓여 아껴 가면서 나눠 먹었던 기억도 나네요.&amp;nbsp; 아침에 아이들과 큐티를 하면서, 쉴 수 있는 집과 건강 그리고 매일 양식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었는데, 오늘은 매우 특별한 만나 선물을 받아서 &amp;quot;주님 감사합니다!&amp;quot; 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제 가슴속에 함께 있는 그 제자에게도요.&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9&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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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마가의 다락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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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4Z</updated>
  <published>2009-11-23T23:13:00Z</published>
  <summary type="html"> 사진: 마가의 다락방 한쪽에 있는 기둥에 새겨진 &amp;quot;펠리칸&amp;quot;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 펠리칸 새는 새끼들에게 먹일 것을 구하지 못하였을 때 자신의 가슴살을 새끼들이 뜯어 먹도록 한다. 이런 전승이 생긴 이유는 펠리칸 새의 부리 때문 이랍니다. 왜냐하면, 펠리칸은 먹이를 잡아서 긴 부리 아래쪽의 주머니처럼 생긴 저장 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새끼들에게 준다고 합니다. 이때 새끼들이 그 부리를 어미 입속에 넣어 먹을 것을 받아 먹는 것을 보고, 마치 어미의 가슴살을 뜯어 먹도록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전승이랍니다. 이 펠리칸 새를 마가의 다락방에 장식한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로 자신의 희생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이 의식을 늘 행하라고 하신것을 펠리칸 새를 통해 말해주는 것이죠. &amp;nbsp;펠리칸 새 다리 아래쪽에 있는 괴상한 모양은 도데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성지 순례 안내중, 마가의 다락방을 가고 있는데 한 자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amp;quot;마가의 다락방&amp;quot;이라고 하죠?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요? 그 당시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amp;quot;마가의 다락방&amp;quot; 이라고 늘 말해 왔지만 정작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던 것이죠. &amp;nbsp; 몇일전 주일 예배후에 마가의 다락방을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 부부를 모시고 갔었죠. 그 전날 성경과 인터넷을 통해, 그 자매로부터 받았던 질문의 해답을 늦게 나마 찾아 보았습니다. 딱히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은 없더군요. 다만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순교를 당한 후 감옥에 투옥되었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풀려나는 사건을 보면, 5절에 &amp;quot;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에클레시아)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amp;quot; 그리고 12절에 &amp;quot;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오이코스)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amp;quot; 등의 구절들을 통해 요한 마가의 집이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듯 합니다. &amp;nbsp; 또, 막 14:13-16, 그리고 눅 22:7-13에는 &amp;quot;큰 다락방 (aÓna¿gaion me÷ga)&amp;quot;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amp;quot;그들이 유하는 다락방 (uJperwˆ◊on)으로 올라가니&amp;quot; (행 1:13) 라는 구절에서 누가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사용한 단어의 원 의미는 방이 여러개로 나눠져 있는 위층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사용된 헬라어의 원 의미는 넓은 공간이 있는 하나의 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amp;nbsp;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 준비를 위해 두명의 제자들을 성내로 보낼때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 (MAN)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은 여자들이 하는 일 (예를 들면, 라헬, 수가성 여인)이지만, 두 본문에서는 남자가 물을 길렀다는 것입니다. 암튼 막 14:14를 보면, 그 이름 모를 남자는 하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amp;quot;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amp;quot; 라고 되어 있는 본문을 보면 그렇게 추정해도 무리는 아닐듯 합니다. &amp;nbsp; 성지 순례를 와서 충격을 받는 것중 하나가 있다면, &amp;quot;다락방&amp;quot;의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가옥 구조를 성경의 &amp;quot;다락&amp;quot;에 그대로 대입시켜서 상상을 했던 분들은 눈앞에 펼쳐진 다락의 크기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한글 성경에 &amp;quot;다락&amp;quot;이라고 번역된 것을 영어나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amp;nbsp;upstair room or upper room 이 됩니다. 즉 &amp;quot;위에 있는 방&amp;quot;이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헬라어 원문에서는 &amp;quot;메가&amp;quot; (great) 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은 것으로 봐서, 상당한 규모의 방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오순절 성령 세례 이전 120명의 제자들이 기도하였던 upper room 과 예수께서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드셨던 upper room이 동일한 장소라면 그 크기가 얼마나 컷을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amp;nbsp; 현재 마가의 다락방이 위치한 곳은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습니다. 제 2차 성전시대 &amp;nbsp;시온산 주변은 upper city (상부 도시) 라고 불렸고, 관공서와 부유층 (주로 제사장 계열)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현재도 구도시내에 있는 유대인 지역에 들어가면 burnt house (불에 탄집) 박물관이 있는데,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만일 마가의 다락방이, 예수께서 최후의 유월절 식사를 하신 장소이고 초대교회 당시 교회 역할을 하였다면, 당시 예루살렘의 중심부에 최초 믿는 유대인 교회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amp;nbsp;물론, 현재 우리가 방문하는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 당시의 것은 아닙니다. 이 곳은 12세기경에 건축된 것이고, 다락방 아래쪽에는 다윗의 가묘가 있습니다. &amp;nbsp;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딜 가려면, 사정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뇌물 (???) 공세를 해야 할때도 있죠. 사진은 마가의 다락방 지붕위에서 찍은 것입니다.&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8&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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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고대 이스라엘의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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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4Z</updated>
  <published>2009-11-22T19:48:29Z</published>
  <summary type="html"> 고대 이스라엘의 집 (주전 1200년-586년 사이)은 흔히 4방 구조를 지닌, 기둥이 있는 집 (Four Pillared house or Four Room House)이었습니다. 방에는 2-3개의 기둥이 있으며, 이 기둥들은 방과 방사이를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하게 구분을 짓고, 방들의 뒷편에는 넓은 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집은 햇빛에 말린 진흙 벽돌을 석회암 돌로 만들어진 벽위에 쌓아올렸습니다. 벽면은 석회를 바르고 지붕에는 각목을 대고, 갈대 혹은 나무 잔 가지들을 깛은 후 진흙을 바릅니다. 집 바닥은, 짐승의 우리, 곡식 저장고, 그리고 부엌으로 사용되었으며 바닥에 돌을 깔아 우리의 청결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굴뚝은 없었으므로 불을 때게 되면 연기는 창문이나 문을 통해 빠져 나가도록 했습니다.&amp;nbsp;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 혹은 사다리를 놓고, 그 위층은 식사, 잠자리 그리고 손님 접대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의 뜰이나 지붕에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amp;nbsp; 위 글과 사진은 하바드 대학교 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amp;nbsp; http://www.fas.harvard.edu/~semitic/HOAI/adultmain.cgi?article=house.htm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7&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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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일곱번째 비자 받았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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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4Z</updated>
  <published>2009-11-11T22:33:55Z</published>
  <summary type="html"> 오늘 아침에 비자국에 가서 1년 비자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에 살면서 제일 기쁜 날이 있다면 비자를 받는 날일 것입니다. 사실 비자를 받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안하죠. 공부도, 사역도 비자 문제가 잘 해결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지난 9월초에 비자 신청을 해놓고 가정 예배 드릴때 마다, 비자 갱신을 위해 기도했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새로운 1년의 선물을 주셨네요. 주위분들도 기도해 주셨고, 멀리 미국에 있는 미국인 아저씨도 중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amp;nbsp; 비자 받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들은 후, 저녁 시간에 있는 중보기도 모임 참석전 간만에 슈바르마를 사먹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고양이 녀석들이 모여들었지만 모른척 하고 다 먹었습니다. 내일은 그 동안 함께 기도해준 아이들에게 피자 한판을 시켜주려고 합니다.&amp;nbsp; 사진은 얼마전 채림이가 삐져서 자기 방 &amp;quot;출입 금지&amp;quot; 시위를 한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제일 무서운 분이 바로 채림입니다. 지금은 출입 금지 대신에 편지함을 달아 놓았는데, 편지 한통 못 보냈네요.&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6&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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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만일 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죽는다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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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3Z</updated>
  <published>2009-11-09T20:25:36Z</published>
  <summary type="html"> 사진: 올해는 이른비가 일찍 내렸습니다. 특히 지난 주에는 많은 비가 내려서 행복했습니다. 다음주에도 비소식이 있는 것을 보면 축복의 해가 되려나 봅니다. 우리 아이들도 비가 내려서 좋은가 봅니다.&amp;nbsp; &amp;quot;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담아 여호와 앞에 (לפני יהוה - in front of God&amp;quot;)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לפני יהוה) 죽은지라...모세가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פני הקדש) 진 밖으로 메어가라&amp;quot; (레 10:1-4) 때로는 우리가 알거나 혹은 믿고 있다는 것이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전통 혹은 전설에 근거한 것을 마치 성서적 근거가 있는 사실인것처럼 믿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중 하나가,&amp;nbsp;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차례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하는 대속죄일때, 그가 지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그의 발목에 끈을 매달고 옷자락 끝에는 방울을 매달아서, 혹이라도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죽음을 당할 경우, 성소 밖에서 끈을 잡아 당겨 죽은 시체를 끌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 하지만 정작, 성서에서 제사장이 성소에서 죽은 경우는 단 한번,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죽는 사건이 나옵니다.&amp;nbsp; 그렇다면 과연 성서는 만일 제사장이 지성소에서 (혹은 성소에서)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어떻게 지성소 (혹은 성소) 밖으로 끌어 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아래의 글은 밀그롬의 레위기 주석 (엥커 바이블 주석)과 위 제목과 관련된 글들을 토대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본 것입니다.&amp;nbsp;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다운받은 것입니다.&amp;nbsp; 먼저 본문에서 애매 모호한 표현인 &amp;quot;성소 앞에서 (פני הקדש - 프네 하코데쉬)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합니다. 1. 프네 하코데쉬는 프네 하오헬 모에드 (פני האהל מועד -레 9:5, 민 17:8, 19:4)와 비슷한 표현으로 희막 앞(in front of the Tent of Meeting)으로서 희막의 앞마당을 뜻합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나답과 아비후는 회막 앞에서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amp;quot;코데쉬&amp;quot; 라는 단어가 해당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코데쉬는 거룩한 물건들 (민 4:15, 16,20, 8;19, 18:5) 혹은 거룩한 장소를 뜻합니다. 하지만 장소적인 개념으로 해석할때는 &amp;quot;성소&amp;quot;로서 회막의 안쪽 방 (레 16장), 혹은 희막의 바깥 방 (출 28:29, 35, 29:30, 31:4, 레 6:23, 민 4:12, 28:7), 혹은 희막의 뜰 (레 10:4, 18)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마콤 코데쉬 (מקום קדש - holy place, &amp;nbsp;레 6:9, 19, 20, 7:6, 10:13, 16:24)로 볼 수도 있습니다.&amp;nbsp; 2. 솔로몬 성전 당시에 &amp;#039;코데쉬&amp;quot;는 번제를 드리는 장소를 뜻하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대하 29:7을 보면, העלו בקדש לאלהי ישראל (헤엘루 바코데쉬 레엘로헤 이스라엘 - make burnt offerings in the holy place to the God of Israel) 번제를 거룩한 장소에서 드리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amp;nbsp;에스겔의 성전 환상에서는 코데쉬를 희생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amp;quot;성소에 수종들려 하여 안 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amp;quot; (겔 44:27).&amp;nbsp; 3. 코데쉬의 장소적 이해에 대해서, 랍비들 중에는 회막 그 자체가 코데쉬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웃시엘과 엘사반은 레위인이지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민 18:4-5). 랍비 아키바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은 시체들을 이들이 성소 밖에서 도구를 이용해 끌어 내었다 라고 말합니다. 랍비 엘레에제르는 신적인 능력의 역사로 죽은 시체들이 성소 밖으로 굴러 나왔다 라고 말합니다. 람반은, 제사장들이 성소내에 수리를 해야 할 경우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제사장이 불가능할 경우, 특별한 긴급 상황이 발생 하였을때 (예를 들면 성소안에서 제사장이 죽었을 경우가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죽은 시체가 거룩한 성소에 있다는 것은 성소를 부정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레위인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딜만은 코데쉬를 성소를 들러싼 전체를 뜻한다고 보고 있으며, &amp;quot;성소 앞에서&amp;quot;라는 의미는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 밖에서 쓰러졌다는 것을 증거한다고 말합니다.&amp;nbsp;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 밖에서 향을 피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또한 본문에서는 분명히 &amp;quot;before the Lord&amp;quot; (여호와 앞에서) 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코데쉬는 장소적으로 희막의 뜰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회막의 뜰에서 죽었고, 그의 친척인 웃시엘과 엘사반이 직접 그 뜰에 들어가서 &amp;quot;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매고&amp;quot; 나간 것입니다.&amp;nbsp; 4. 그렇다면, 성서는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갈때, 그의 발목 혹은 그의 허리에 끈을 매달아야 한다고 언급할까요? 대답은 &amp;quot;아니다&amp;quot; 입니다. 레 16:4를 보면, &amp;quot;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amp;quot; 라고 말하여 제사장의 복장에 방울 (출 28:34)을 달거나 끈을 발에 혹은 허리춤에 매달라는 명령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amp;nbsp; 5. 그럼, 왜 성서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을 듣게 될까요? Dr. W.E. Nunnally에 의하면, 이것은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서 성서, 외경, 사해사본, 요세푸스의 글, 탈무드, 미쉬나 혹은 다른 유대 문헌에 언급되지 않은 것이며 중세때 시작된 전설입니다. The Biblical Studies Foundation의 연구에 의하면, 아론의 에봇에 매는 금방울 역시 지성소가 아닌 성소에 들어갈때 매는 것입니다. (출 28:31-35). 메시아닉 쥬들은, 설령 발목이나 허리에 끈을 매단다 할지라도 죽은 제사장을 지성소에서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지성소와 성소 사에는 여려 겹의 휘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amp;nbsp; 결론적으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때, 발목이나 허리에 끈을 매달고 옷자락에 바울을 매단다는 것은 성서적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1)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경우가 있었기에, 2) 또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레 10:9), 그리고,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 16:2). 등을 볼때, 지성소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있는 장소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amp;nbsp; 구약에서의 지성소는 속죄의 장소이면서 두려움의 장소였다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amp;quot;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찌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amp;quot; (마 27:51). 예수께서 운명하심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찢어졌고, 히브리서 기자는 &amp;quot;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자은 곧 그의 육체니라&amp;quot; (히 10:19-20) 라는 말씀을 통해 발목의 끈이나 방울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아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증거합니다.&amp;nbsp; 참고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에 들어가는 입구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이곳은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지성소가 위치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소가 있는 성전산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십시오. (기억나는대로 적었습니다. 나중에 가서 확인해 보고 수정할 필요가 있으면 하도록 하죠). 그래서, 정통 유대인들은 성전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어디가 지성소인지 모르기 때문이죠.&amp;nbsp; References: &amp;nbsp;&amp;nbsp;1. Dr. W.E. Nunnally is Associate Professor of Early Judaism and Christian Origins at Central Bible College and Adjunct Professor of Hebrew at the Assemblies of God Theological Seminary &amp;nbsp;&amp;nbsp;2. &amp;quot;All in the Family: The Visions and Vanities of Sam Hinn,&amp;quot; The Quarterly Journal, Vol. 16, No. 4, (St. Louis: Personal Freedom Outreach),&amp;nbsp;http://www.pfo.org/allinfam.htm &amp;nbsp;&amp;nbsp;3. Biblical Studies Foundation (Garland, TX),&amp;nbsp;http://www.bible.org/docs/qa/qa.asp?StudyID=462 &amp;nbsp;&amp;nbsp;4. Zion Messianic Jewish Fellowship Congregation (Austin, Texas),&amp;nbsp;http://tzion.org/articles/Temple1.html&amp;nbsp; &amp;nbsp;&amp;nbsp;5. Jacob, Milgrom, Leviticus 1-16 (The Anchor Bible)&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5&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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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더 이상 못 참겠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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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Israel</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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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3Z</updated>
  <published>2009-10-31T12:34:03Z</published>
  <summary type="html"> 우리 견공께서 더 이상 참지 못했나 봅니다. 어제 비가 온뒤로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인간들은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나는 베란다 밖에서 추위로 벌벌 떨게 내버려 두다니...전에 못 마친 미션을 오늘은 완수하리라 라는 독한 마음으로 쇼파를 완벽하게 뜯어 버렸습니다.&amp;nbsp; 찬 바닥에서 잠을 재운 주인에게 보복을 한듯 합니다.&amp;nbsp; 뭘 보쇼.&amp;nbsp; 으흐...따뜻하다 여기가 좋사오니...나중에 보니 그 집 청년들 포기했나 봅니다. &amp;quot;그냥 그렇게 살아라...&amp;quot; 라는 듯이 내버려 두네요.&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4&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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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겨울로 향하는 빗소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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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0-01-09T08:38:03Z</updated>
  <published>2009-10-30T20:52:05Z</published>
  <summary type="html">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과 함께 큐티를 하기 전 늘 습관처럼 광야 저 멀리서 떠 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곤 합니다. 오늘은 구름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햇창살만을 내밀고 있는 해를 보았습니다.&amp;nbsp; 오전&amp;nbsp;시간이 다가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반가운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창문 너머 길거리에 흘러 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니 마음까지 시원하더군요. 유난히도 올해는 10월에 여러 차례 비가 내리네요. 겨울이 얼마나 추우려는지 기대가 됩니다.&amp;nbsp; 베란다 너머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치 쌀알을 흩트려 놓은듯 합니다. 그리 완성도 높지 않은 왕관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마치 눈발이 흩날리는 모양을 만들기도 합니다.&amp;nbsp; 한동안 비가 내려서 그런지 몸이 으스스해져서 바로 겨울 이불을 꺼냈습니다. 아직 11월로 넘어가려면 기나긴 하루가 남았지만, 아내를 반 협박해서 &amp;quot;극세사&amp;quot; 이불을 꺼내고 여름 이불을 치워버렸습니다. 침대 메트리스 균형을 잡기 위해 한바퀴 돌려주고요. 오후 내내 하늘이 꿀꿀 하더니 저녁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다시 비가 내렸습니다.&amp;nbsp; 오랜만에 축복의 비를 맞았습니다. 겨울이 오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치만서도, 광야의 양때들이 얼마나 이때를 기다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올 겨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비가 와서 목마른 광야 곳곳의 와디에 물이 흘러 넘치기를 기대해 봅니다.&amp;nbsp; &lt;p&gt;&lt;strong&gt;&lt;a href=&quot;http://myloveisrael.com/573&quot;&gt;글 전체보기&lt;/a&gt;&lt;/strong&gt;&lt;/p&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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