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2014/09'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9.22 나훔 -하나님의 심판을 잊지 마세요.

   니느웨 성읍 동편 박넝쿨 아래 앉아 있던 요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것은 앗수르의 멸망이었다. 그러나 기대하던 드라마틱한 멸망은 없었다. 그렇게 약 백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심지어 앗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의 지방 도시로 강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 백성들을 정착시킴으로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과 신앙의 정체성을 말살하였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주전 722) 앗수르는 남 유다 왕국을 수차례 침공하였다 (왕하 18-19). 앗수르인들의 잔인함은 니느웨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앗수르인들은 전쟁 포로를 산채로 그 가죽을 벗겨 죽이거나, 항문으로 창을 집어 넣어 목까지 찔러 처형하였다.


   선지자 나훔이 선지 사역을 하던 때는 남 유다 왕국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가 다스릴 때였다 (주전 664-654). 선왕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때 왕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성전 바닥이 아닌 앗수르 왕 앞에 무릎을 꿇었고 봉신이 되었다. 앗수르의 신하가 된 므낫세는 유다 땅에 이방 신들의 제단을 쌓고 열심을 다해 그 신들을 섬겼다.





   나훔은 야훼라는 이름과 하나님을 지칭하는 1인칭과 3인칭 동사 혹은 접미사를 42회 이상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한다. 47절로 구성된 나훔서에는 13회의 야훼가 등장하는데 특히 1장에는 야훼라는 이름(10)과 그의 성품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훔의 메세지는 앗수르의 봉신이었던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의 배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직접적인 메세지 대신에 므낫세가 섬기는 앗수르의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전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놓인 앗수르에는 잘 훈련된 용사들이 있었다. 앗수르의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질주하였고 그 빠르기가 번개와도 같았다 (2:3-4). 수도 니느웨는 적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사방을 깊이 파고 물로 채웠다 (2:8). 니느웨 성읍은 젊은 사자의 굴과 같았다 (2:11). 그러나 나훔은 이 모든 것이 쓸모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벙겨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2:13).


   니느웨는 그들의 칼과 병거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3:11). 앗수르의 산성은 처음 익은 힘없는 무화과 나무 열매 같았고 그들의 장정은 여인과 같았다. 과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탐군 열명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13:33) 라고 보고하였던 적이 있다. 정탐군들은 자신들과 이스라엘이 메뚜기 같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훔의 메세지는 선지자 개인의 생각이 아닌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니느웨의 용맹스런 방백은 메뚜기 떼에 불과하였다 (3:17).


   나훔은 그의 메세지 마지막을 마침표로 끝내지 않는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3:19). 이는 과거 니느웨 백성들의 심판을 염원하며 그 성읍을 바라보던 요나를 향해 내가 어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는 질문으로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단한 하나님의 메세지와 대조적인 말씀이다.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하나님은 앗수르 왕과 니느웨 백성들에게 되 묻는다. 백여 년 전 굵은 베옷을 입고 짐승조차도 금식하며 회개하던 것을 잊었느냐! 나훔이 요나처럼 니느웨를 방문하여 이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였는지 혹은 유다 왕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 앞에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는지 알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나훔서의 하나님은 단순히 니느웨만을 향해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 메세지는 깊은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앗수르의 봉신인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이기도 하다.





   사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전한 메세지는 심판의 메세지였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3:4). 마찬가지로 나훔 역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니느웨의 백성들에게 전한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 진노는 멸망이 아닌 다시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하기를 기대하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담겨있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치 않았고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주전 612).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잊었다. 메세지의 무게중심이 하나님의 사랑, 긍휼, 평안, 그리고 축복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묵상해야 할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 메세지를 나훔은 오늘날 교회를 향한 묵시로 전한다. 분명 베드로 역시 나훔 선지자가 전하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벤전 4:17).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때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1:7)라는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그 분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다


위 글은 새가정사 9월호에 연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