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출 5:7-8). 


지금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어릴적 어느 날 아버지께서 버섯을 가져오셨다. 그 날 저녁 버섯을 먹고 나서 그 다음 날 오전부터 배앓이를 시작하였고 죽을 정도로 배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는 벽돌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셨다. 어린 나는 부모님이 일하시는 그 벽돌 공장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서 "배 아파! 배 아파!" 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울어 보채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돌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벽돌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부터 약 3천 5백여년전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벽돌을 만들었다. 그들은 시멘트와 모래가 아닌 진흙에 짚을 섞어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만들어내야 했다. 어느 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요구하였고 이에 바로는 Yes 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게으름에서 나온 어리석은 요구라고 비웃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게으름에 따른 벌로 벽돌 생산용 짚을 제공하지 말라고 명하고 벽돌 생산 수효를 반드시 채울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생산에는 큰 차질이 빚어졌고 백성들은 바로를 찾아가서 짚을 제공할 것을 호소하였지만 결과는 책망과 매질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생산과 짚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6800여 킬로미터를 내 달리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주 수원지이자 과거 고센땅의 풍요의 원천이었다. 이집트인들은 고센땅이 위치한 델타 평야에서 농사를 지었고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짚을 잘게 썰어서 진흙 벽돌 생산에 사용하였다. 사양길을 걷고 있지만 현재도 델타 평야 지역에는 진흙과 짚을 섞어 만든 전통 방식의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 

과거 이집트인들은 이틀에 약 2천개 정도의 진흙 벽돌을 만들었다. 몇명이 2천개의 벽돌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이집트의 벽돌 생산은 중요한 사업이었고 이 벽돌은 집과 신전 공사에 주로 사용되었다. 어떤 이집트 문서는 벽돌 생산에 있어 짚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re are no men to make bricks and no straw in the district." 즉 짚이 없는 곳에서는 벽돌을 만들수 없다! 라는 말인데 그만큼 짚은 벽돌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벽돌 생산에 짚이 필요한 이유는 벽들을 말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짚을 넣지 않는 벽돌은 쉽게 부스러진다. 벽돌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사진: 공인 저울 만드는 틀 


성서 본문은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벽돌 생산용 짚을 제공하였다고 말한다 (출 5:7).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분한 짚을 제공받았고 그 짚을 벽돌 생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짚을 더 이상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생산해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들판으로 나가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서 짚을 대신해서 벽돌을 생산해야 했다. 그들은 두배 혹은 세배 이상의 노동을 해야 했고 정해진 분량의 벽돌을 생산할 수가 없었다 (출 5:14). 아무때나 곡초 그루터기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추수기가 지난 들판에서나 곡초 그루터기를 구할 수 있었기에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곡초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흙 벽돌 생산은 연중 사업이었다. 이는 바로가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짚을 제공하지 말라는 명령에서 이집트인들이 벽돌용 짚을 저장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로는 매우 효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의 들판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고 짚이 없어 곡초 그루터기를 주어야 했던 그들은 모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출 5:21).


현실 생활속에 종종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은 종종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헤매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불안과 염려, 그리고 분노로 우리의 눈을 가리운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출 6:1). 그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곡초 그루터기를 찾아 헤매던 백성들이 그 눈을 들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벽돌 공장 한편에서 나는 정말로 죽는줄 알았다. 벽돌 한장 한장을 만들어 그 수효를 채워야 돈을 받아 하루를 먹고 살 수 있었던 부모님을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었다.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내 기억 주머니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나에게 그리고 현실의 고난과 역경에 남 모르게 눈물 흘리는 이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만 당장 답을 하지 않으시는 그 분을 향해 원망의 눈을 드는 이들을 향해 말한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아멘. 



사진: 돌로 된 저울추 


참고문헌 Robert Littman, Marta Lorenzon and Jay Silverstein "With & Without Straw: How Israelite Slaves Made Bricks," BAR 40:02, Mar/Apr 2014. 

         브두엘의 아들 요엘 (: 야훼는 하나님이시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그가 어느 시대에 선지 활동을 했는지도 추정할 뿐이다. 소선지서의 시작인 호세아 (14)와 아모스서 (9) 사이에 짧은  네장으로 된 선지자의 목소리는 찾기 조차도 힘들 정도이다. 아마 요엘 선지자가 전한 메세지는 구약보다 사도행전 2 14절 이하 베드로의 오순절 첫 설교때 인용된 것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 2:28-32).   요엘 선지자가  전하였던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이 수백년 후 예루살렘에 모인 한 무리를 통해 성취되었고 회개 운동으로 이어졌다.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요엘은 유대 백성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세번에 걸쳐서 임박한 여호와의 심판 날을 선포한다. 그 첫번째는 자연 재해를 통한 여호와의 심판이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1:4).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경우 임할 자연 재해의 저주를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내 경내에 감람 나무가 있을 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 28:38-40). 요엘 시대의 백성들은 모세가 경고한 말씀의 메아리를 귀로만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하늘은 메말라 버렸다. 물 없는 구름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씨는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 버렸다. 꼴을 얻지 못하는 가축들은 헐떡거리며 피곤한 눈으로 부르짖었다. 말라버린 시내. 속빈 포도와 무화과는 다가오는 멸망의 날. “여호와의 날을 알리는 황색 경고등이었다. 멸망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굵은 베를 동이는 것 뿐이었다. 제사장들이 에봇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어야 했다. 성중의 장로들과 백성들도 제사장을 따라 회개의 굵은 베 옷을 입고 엎드려야 했다.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외친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1:13). 제사장. 장로. 그리고 백성들로 이어지는 국가적인 회개만이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요엘은 외친다.




사진: 요엘 선지자...


        과연 제사장들이 회개의 굵은 베옷을 입었을까? 요엘 선지자는 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을 두번째 여호와의 멸망의 날을 선포한다 (2:1-2). . 기병들. 병거 소리. 강한 군사. 용사. 무사.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를 달리는 이들. 이제는 자연 재해가 아닌 칼과 창으로 임하는 심판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황색 경고등으로 끝날 수 있는 여호와의 날이 적색 경보로 바뀌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백성들의 눈에는 바짝 말라버린 땅만 보였지만, 선지자는 그 메마른 땅위에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발굽 소리를 듣고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죄악의 절벽을 향해 달음질을 해서는 안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2:12-13). 여호와는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시다. 재앙 대신에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2:14). 시내의 물이 말랐다고 해서 제사장들의 눈물까지 말라서는 안되었다.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회개의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2:17). 제사장들 뿐 아니라 백성들. 장로들. 신랑과 신부. 심지어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회개의 자리로 모으라고 요엘은 촉구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왕과  백성들뿐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굵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을 때 그 성내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이들을 구하지 않으셨던가! 여호와는 회개하는 백성들을 위해 언제든지 자신의 정한 뜻을 돌이키기 위한 유턴을 준비하시는 분이셨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18-23). 회개한 백성들은 즐거워 할 것이고 들짐승들도 들판에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옷이 아닌 마음을 찢었을 때 하나님이 돌아오신다.


       요엘 선지자가 선포한 세번째 여호와의 멸망의 날은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3:2). 그 심판의 자리인 여호사밧 골짜기 (: 야훼는 심판하신다)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과 성전이 있던 모리아 산 사이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의 다른 이름이다. 이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이방의 열국들을 심판하신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 흩고 유다와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과 먼 나라 스바 사람들에게 판 사람들이다 (3:2-8).  아모스의 하나님은 사자처럼 심판과 회개를 부르짖으셨다. 요엘 선지자의 하나님 역시 시온에서 사자처럼 부르짖으신다 (3:16). 요엘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과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는 날이기도 하다. 회개하며 돌이키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복을 약속하신다.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3:20).   


       우리 세대는 굵은 베 옷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다. 회개의 금식이 거추장스런 세대이다. 마음의 옷 찢지 않는 세대이다. 팥중이. 메뚜기. 느치. 그리고 항충을 통해 전하는 여호와의 경고. 들짐승의 피곤한 부르짖음이 전하는 여호와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세대이다. 요엘 시대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굵은 베 옷을 입고 메말라 버린 그들의 눈물 샘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여호와의 심판의 종말이 외쳐졌다면 오늘날 우리 세대는 얼마나 그 심판의 종말에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는가!  선지자의 활동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역사의 흐름속에서 회개치 않는 백성들을 향한 적색 경보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더 늦기 전에 적색 경보의 여호와의 날을 소망과 평화의 녹색등으로 바꿀 굵은 베 옷을 입고 마음을 찢으라는 선지자의 외침을 들을 때이다.


* 위 글은 새가정사 6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