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름에 대한 보상은 없다!

Public Diary 2014.03.18 13:25 Posted by Israel

       마가복음 10:46-52. 이 짧은 7절의 맹인 거지 바디매오 사건은 나와 우리의 "제자도"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바디매오가 보여준 제자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또 다른 맹인의 눈이 치유되는 사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벳새다의 맹인이 눈을 떴다. 예수께서는 두번의 안수를 하였고, 첫번째 안수 때 그 맹인은 눈은 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두번째 안수를 받은 후 그는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갔다. 왜 두번의 안수와 흐릿한 봄(seeing)에서 제대로 된 봄의 점진적인 과정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이 이야기의 끝으로 미루고 8-10장에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들로 넘어가자. 


      예수께서는 세번에 걸쳐서 자신이 받을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예고하셨다 (막 8:31; 9:31; 10:33-34). 이에 대해 제자들의 반응은 이러하였다. 1) 베드로는 예수께 항변하여 예수께서 걸으실 죽음의 길을 막고자 하였다 (막 8:32). 2)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도 두려워 하였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큰자인지를 쟁론하는데 바빴다 (막 9:32, 34). 3) 예수께서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향한 예루살렘 길에 들어섰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들뜬 마음으로 주의 영광중에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막 10:37).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내었다. 그들은 높은 자리를 요구할 기회를 놓친것에 대해, 그리고 그 자리가 야고보나 요한이 아닌 자신들이 앉을 자리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사진: 예루살렘 성교 교회 - 십자가의 길 


      베드로가 예수의 길을 막았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가 걸어야 할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를 두려워 할 뿐 아니라 서로 큰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막 9:35)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우편과 좌편의 영광을 요구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4-45).


      자신을 부인하라! 십자가를 져라! 나를 따르라! 섬기는 자가 되어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라!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요구하신 제자의 삶이고 길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였고 큰 자가 되고 싶었으며,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을 영광을 누리고 싶었다. 예수의 예루살렘 길은 고난을 향한. 죽음을 향한. 그리고 부활을 향한 길이었다. 제자들의 예루살렘 길은 첫째가 되려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영광의 우편과 좌편에 앉는 길이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고 주장하였다. 배. 그물. 부모. 직장을 떠나고 버린 후에 예수를 따랐다. 그러하기에 자신들의 버림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고 더 나아가 그 보상을 요구하였다. 


      한 젊은 부자가 예수께 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게 되는지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셨다 (막 10:21). 그 순간 제자들은 자신들이 버린 목록을 하나 하나 헤아렸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막 10:28). 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29)" 이라는 말로 베드로에게 응대하셨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러하기에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막 10:30)" 라는 말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은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을까? 


      그들은 예수의 길을 막았다. 그들은 첫째가 되고자 하였다. 그들은 으뜸이 되고자 하였다. 그들은 영광의 우편과 좌편에 앉고자 하였다. 그들은 그 자리가 자신들과 동행하는 다른 제자들이 아닌 자기의 자리이며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배. 그물. 부모. 직장을 다 버렸다고 하지만, 그 빈자리에 채울 그 무엇. 보상을 요구하며 예수를 따랐다. 


      여기 바디매오가 있다. 여리고의 바디매오. 마가는 그를 맹인 거지 바디매오. 길가에 앉아 있는 자로 소개한다. 그는 볼 수 없었다. 그는 거지였다. 유대교에서는 불구로 태어난 사람 혹은 불구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여겼다. 늘 죄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일 뿐이었다. 그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막 10:47). 다른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예수께서는 바디매오를 불렀다. "그를 부르라" (막 10:49).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1). 바디매오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그리고 보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그의 눈이 떠졌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막 10:52). 


      예수께서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는 질문을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하셨다 (막 10:36). 그들은 자신들의 따름에 걸맞는 보상을 요구하였다. 우편과 좌편에 앉는 영광. 예수께서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보기만을 원하였다. 


     마가는 직접적으로 여리고의 바디매오가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랐는지, 골고다 언덕의 예수와 함께 있었는지를 알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라고 기록한다. 헬라어 문법상 이 구절은 지속적인 따름이다. 그저 예수께서 여리고를 빠져나갈 때까지만 따르지 않고 그는 예수의 마지막 십자가 고난의 길에 동참한 것이다. 


      8장의 맹인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맹인은 눈이 뜬 후 점진적으로 그의 눈이 밝아졌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맹인이 아니었던 제자들은 예수를 보았고 만났다. 그러나 그들이 보았던 예수. 만났던 예수는 자신들의 필요. 기대. 그리고 보상을 해 주는 예수였다. 그 메시야는 보상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줄 메시야였다. 그들은 맹인이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예수의 길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그 맹인이 "모든 것을 밝히 본"것처럼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야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다 (행 12:2).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그의 제자들에게 요구하였다 (벧전 3:21).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즐거움과 그 영광을 전하였다 (벧전 4:13-16).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 (계 1:9). 



사진: 예루살렘 성묘 교회 - 십자가의 길 


      나와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 (엡 2:1). 죽었던 나와 우리가 새생명을 얻게 된 것은 예수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의 결과이다. 그러하기에, 예수를 따르는 나와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그 어떤 보상은 없다. 제자가 누려야 할 영광은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에 동참하는 영광이다. 그 예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부르심이 나와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이다. 현세에서 그 어떤 보상의 기대 주머니를 버리지 못한.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는 나와 우리는 여전히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았던 맹인처럼 예수를 따르는 길이 아닌 나와 우리의 영광을 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따름에 대한 보상을 기대했는가? 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해 누가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라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 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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