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지 못하시는 하나님

Bible Story 2014.02.22 16:00 Posted by Israel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삿 10:16). 


사사기는 "죄- 징계- 도움 요청 - 사사들의 등장과 구원 - 평안 " 이라는 사이클의 순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사기는 단순한 반복된 죄와 징계 그리고 구원의 사이클이 아니다. 사사기의 사이클 순환은 마치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파동을 일으키면서 물가로 점점 크게 퍼지듯이, 사사기의 사이클은 점점 깊은 죄악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사이클이다 (Downward Spiral). 등장하는 주요 사사들의 특징과 동시대에 살았던 백성들의 삶만을 보아도 이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3장에 등장하는 웃니엘과 에훗은 사사기에서 그리 길지 않은 부분은 차지하지 않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그러나, 사사 드보라와 그가 지정하여 부른 바락 (성서는 바락를 사사로 지칭하지는 않는다)의 경우를 보면, 바락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였고 사사 드보라를 의지하여 전쟁에 임하려 하였다. 사사 드보라는 바락에게 전쟁의 공로가 여인(헤벨의 아내 야엘)에게로 돌아갈 것을 말한다. 


기드온의 하나님의 사람과의 대화(삿 6장)는 이스라엘 역사를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드온의 잘못된 이해와 신앙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는 여러 차례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전쟁후에는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였지만 그는 왕처럼 살았다. 입다는 자신의 출세에 눈이 멀었고 결국 자신의 딸을 인신제사로 바치고 말았다. 삼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사사다운 삶을 전혀 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로 바빴던 인물이다.물론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사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방 백성의 압제에서 구원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기드온. 입다. 삼손등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개인 삶에 있었던 부끄러운 부분들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에서의 축복을 대신 받은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야곱의 하란 생활은 결코 평탄치 못했고 속임수와 술수를 써서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받아야 할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열번이나 속았다 (창 31:41).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던 라헬 대신에 그는 레아와 결혼을 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속임수에 걸리기도 하였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다시 사사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사기에는 3번 꾸짖음 이야기가 등장한다 (2장. 6장. 10장) 2장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하고, 6장에서는 이름없는 선지자, 그리고 10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타한다. 이중 10장에는 가장 강력한 어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꾸짖고 그들을 더 이상 구원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듣고 저희가 눈물을 흘리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린다. 6장에서는 백성들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10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등장하는 구절이 10:16이다.특히 이스라엘의 곤로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근심하였다 라는 말이 나온다. 




사진: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찍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요엘 2:13) - 야드하쉬모나 키부츠에 있는 요엘 선지자 조각. 


바르일란 대학의 교수 우리엘 시몬은 16절의 ותקצר נפשו בעמל ישראל 이 표현 하나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서 히브리어는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말 성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 번역은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담고 있지못하다. 영어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JPS (유대인 버전)을 보면 "He could not bear the miseries of Israel"로 우리말 성서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엘 시몬은 이 표현을 이스라엘의 곤고로 인해 하나님께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으시다 라는 뜻으로 해석을 한다. נפש (네페쉬)는 "영혼" 혹은 "생명"의 뜻도 있지만, "목구멍" 혹은 "숨(breath)" 이라는 뜻도 있다. 예를 들어 요나서 2장 6절 אפפוני מים עד נפש 의 우리말 성서는 "물이 나를 들렀으되 영혼(soul)까지 하였으며" 이지만 좀더 원본에 가까운 번역은 "물이 나의 목구멍(throat)까지 차올랐다" 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번역을 해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경험하였던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그의 간절한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숨이 탁탁 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목을 옥죄는 듯한 슬픔과 고통.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곤고함으로 인해 슬퍼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사사기 저자는 תקצר נפשו (티크짜르 납프쇼)로 표현한 것이다. 10장 이후에 등장하는 사사기의 이야기들은 더 이상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수 없는 그런 상황속으로 빠져든다. 인신제사. 성적으로 타락한 사사와 레위인, 혈족간의 전쟁등으로 점철된 이야기로 사사기는 죄의 급진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그런 백성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하나님은 숨을 쉴수가 없다. 




사진: 성서 시대의 타작 기구들 


나와 우리가 저지르는 죄 역시도 점점 그 사이클의 순환이 더 깊어지고 넓어져가지는 아니한지.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는. 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그런 세대의 주인공들이 되어 버린 나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하나님은 숨이 막히신다. 사사기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전에 들려 줄 정도로 가벼운 엣날 이야기가 아니다. 부끄럽게도 나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고, 교회 공동체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잣대외 핏대를 높이지만, 나, 우리,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죄를 지극 정성을 다해 관대함의 손길로 가려주고 쓰다듬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런 나와 우리의 모습에 하나님은 숨이 막히신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이다. 그러나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십자가 상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그 십자가의 앞이 아닌 십자가의 뒤만 바라보는 억지 어리석음을 범하는 나, 우리, 그리고 교회 공동체로 인해 하나님은 숨을 쉬지 못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