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동함을 기다렸으나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나 소망없이 하루 하루를 살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았던 사건의 현장 베데스다(아람어로 베이트 하스다, 히브리어로는 베이트 헤세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비, 은혜의 집"이라는 아름다운 뜻이 있는 곳이지만 그 곳은 처절한 경쟁, 남을 밟고 넘어가지 않고는 치유를 받을 수 없기에 반드시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하는 곳, 자비와 은혜가 무색한 현장이었다. 38년된 병자의 깊은 절망속에 나오는 하소연은 처절한 경쟁으로 점철된 자비의 집의 현실을 증거한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7). 


38년 된 병자가 물이 움직이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물이 움직일때 마다 물이 있는 곳으로 가려하였으나, 그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보다 건강한 사람들과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내려가곤 하였다. 그때 마다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절망의 늪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38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는 쉬고 싶지 않은 숨을 쉴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소망을 줄 수 없었고, 누구도 그럴 여유가 없는 곳이 베데스다, 자비의 집의 현실이었다. 




사진: 베데스다 


이 38년된 병자가 절망이라는 소망만을 붙잡고 있었던 베데스다는 어떤 곳이었을까?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못이었을까?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든 물을 저수하는 곳이었을까? 만일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 저수지라면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일까? 


베데스다는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 저수지이다. 그렇다면 그 용도는 무엇일까?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두 가지로 나누어 진다. 첫번째로 베데스다를 예루살렘의 생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인공 저수지라는 견해가 있다. 다른 견해로는, 생활 용수와 함께 미크베 (정결 의식탕)라는 복합적인 기능을 하는 곳이 베데스다 라고 주장한다. 


성서 본문, 요한복음 5장 2절은,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라고 말한다. "행각 다섯"이 있다는 말은 베데스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라는 것을 문자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베데스다는 두개로 나누어져 있고 "행각 다섯"은 베데스다를 두개로 나누는 댐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사진: 베데스다 - 북쪽은 물 저수지로, 남쪽은 미크베로 사용되었다. 


7절 말씀을 보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는 말씀을 통해 베데스다는 사람들이 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고 실제로 현재 베데스다를 가서 보면 그 옛날 계단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베데스다는 생활 용수를 위한 저수지였을까? 아니면 정결 의식을 의한 미크베와 생활 용수의 복합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저수지였을까? 




사진: 남쪽 미크베가 있었던 현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예루살렘의 물 부족 현상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영토 갈등 이상으로 물 부족으로 인한 공급 문제로 인한 심각한 갈등이 있다. 헤롯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당시에는 예루살렘에서 약 4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헤브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송수관 공사를 하여 물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그 이전, 히스기야가 통치할 당시 앗수르의 공격이 있을때 기혼샘에서 시작되는 물길을 적들이 끊기 전에 533 미터에 이르는 긴 터널을 만들어 물을 예루살렘 성내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사 22장 참조). 


우기철이 되면 예루살렘에는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렸지만, 산지(약 750미터 고지)에 자리하고 있던 예루살렘은 인위적으로 저수지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직접적으로 해택을 받을 수 없는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는 곳곳에 물을 저수할 수 있는 저수지를 만들어야 했는데, 베데스다는 바로 그 저수지들 중 하나였다. 계곡을 따라 흘려내리는 물을 저장하여 생활 용수로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이 생활 용수를 모아 두는 베데스다에 병자들이 모여 들었고,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할때 그 물로 들어갔다고 하자. 정수 시설이 없는 물에 병자들이 한꺼번에 들어간다면 아마 베데스다는 생활용수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학자들은 베데스다는 생활용수의 기능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행각 다섯"이 있는 베데스다, 고고학적으로 두개로 나누어진 베데스다. 그래서 남쪽에는 미크베의 역할을, 북쪽은 생활 용수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베데스다는 남쪽 미크베가 있었던 부분만을 발굴하였고, 이 미크베를 둘러싼 부분은 집들과 십자군 시대의 교회터, 그리고 로마 시대 치유의 여신 Asclepius의 신전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미크베로 다른 병자들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던 38년된 병자. 그에게 찾아온 예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라는 이 한 마디의 말에 38년 동안의 설움과 절망, 원망과 미움의 자리에서 그는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질병만을 치유한 것이 아니었다. 미크베를 통해서 정결 의식을 행하던 유대인들, 자신의 죄의 문제와 부정함을 씻기 위해 들어갔던 미크베, 베데스다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인간 본질의 죄 문제를 말씀으로 씻어 주신 현장이 바로 베데스다이다. 


참고문헌:Urban C. von Wahlde, The Puzzling Pool of Bethesda: Where Jesus cured the crippled man, BAR (Sep/Oct 2011). 

위 사진들은 BAR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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