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앉아 있는 것도 보며, 내가 달리는 것도 본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내가 볼 일을 보는 것도 본다. (마카리우스 벨레리우스 마르티알리스. 주후 40 - 102). 


If you shit against the walls and we catch you, you will be punished. (CIL IV. 7038; from Regio V at Pompeii) 


"만일 벽에다 소변(혹은 대변)을 보다 잡히면 그냥 안둔다" 


이 경고는 어둠이 짙게 깔린 공공 장소에서 남몰래 볼일을 보거나, 혹은 너무나 급한데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멈출 수 없는 급한 설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실례를 했어야만 했던 당신이 읽었던 공공 장소의 경고문이 아니다. 지금부터 약 2천여년전 로마의 길거리에 붙어 있던 대소변 금지 경고문이다. 


성서 시대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소변을 보았을까? 당시에도 화장실이 있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하는 동안 과연 그들은 어떻게 대소변을 보았을까? 대소변은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다. 만일 화장실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바로 길거리 여기 저기는 오물들로 넘쳐날 것이고, 약간 어두운 곳에서는 볼일 보는 사람들로, 남의 집앞에서 볼일 보다가 잡히거나 도망가거나, 신발 바닥은 오물을 밟아서 냄새가 나고...정말로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진: 에베소의 공중 화장실


성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로마 시대를 살펴보자.고대 시대 문화가 최고로 발달되었다고 하는 로마였지만 화장실 문제는 늘 골치거리였다. 물론 일부 지역에는 아주 발달된 화장실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카르타고, 폼페이, 로마, 그리고 에베소와 같은 큰 도시들에는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 사람들은 앉아서 볼일을 볼 수 있는 돌로된 변기통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물길이 있어 오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어떤 곳에는 한번에 25명, 그 보다 더 큰 곳은 100명이 한번에 볼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 특히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는 이런 화장실이 전무하였다.




사진: 로마시대에는 화장지 대신에 스펀지를 이용하였다. 


사실, 공중 화장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거리는 지저분하고 처리되지 않은 오물들이 길거리에 넘쳐났다. 화장실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길거리나, 계단 아래 혹은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으슥한 곳을 찾아 볼일을 보았다. 어쩌면 당시에는 아무데서나 볼일 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비단 로마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이 있다. 어디라고 밝힐수는 없으나, 한때 함께 생활하였던 유학생이 겨울철에 어느 선교지를 갔었는데, 길에 얼어붙은 변들이 즐비하였다고 한다. 낮 시간대 햇볕을 잘 받은 변들이 녹기 시작하면서 길거리는 온통 녹아내린 변들의 밭이였고, 화장실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어서 늘 숲속을 애용해야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서 시대에는 어떻게 볼일을 보았을까? 그 당시에도 화장실이 있었을까? 먼저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화장실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살펴 보자.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려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신 23:12-14). 


고맙게도 한글 성서는 "변소" 라는 아주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히브리어 원문은 יד (야드, 손) 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야드 (손)"은 "성기(penis)"를 의미하는데, 쿰란 문서에도 볼일 보는 것을 "야드"라는 완곡한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신명기 23장에 의하면 진영 밖으로 나가서 볼일을 보라고 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영 (마카네) 밖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둔지 밖을 의미한다면 상상컨데 볼일 보기 굉장히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는 분명히 진영 안쪽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거룩한 곳이고, 대소변을 보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진영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고 작은 삽으로 덮으라고 명한다. 


사사기 3장에 나오는 모압 왕 에글론이 에훗에 의해 암살당하는 사건도 개인 화장실과 연관성이 있다.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삿 3:20)


중세 시대 당시에 귀족이나 왕은 좌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면서 방문객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헨리 3세는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헨리 3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나베레의 헨리"를 지목하였다가 극우파 수도사인 자크 클레멘트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클레멘트는 왕에게 중요한 기밀을 알리기 위해 헨리 3세를 방문하였다고 속이고 왕을 암살하는데 이때 헨리 3세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시대적 거리감은 있으나, 어쩌면 모압 왕 에글론도 에훗을 자신의 개인 화장실에 앉아서 맞이하였을 가능성을 성서 택스트에서 엿볼수 있다. 에훗이 에글론을 암살하고 도망간 후 에글론의 신하들이 왕이 있던 다락 (아마 화장실이었을듯함)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왕이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삿 3:24)"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발을 가리운다" 는 히브리어는 볼일을 보고 있다는 말의 완곡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삼상 24장에도 사울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동굴에 들어가 "발을 가리우는 (개역 개정판에는 , 뒤를 보는)" 일이 있다. 만일 "발을 가리우다"가 대변을 보다 의 완곡한 표현이 맞다면 사울은 변(dung)을 보다가 변(accident)를 당할뻔 한 것이다. 


물론 변을 보고 있는 사울의 옷자락을 자르기는 매우 어렵다. 사울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놓고 변을 보았다면 조금은 쉽게 옷자락을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컨데 사울은 어쩌면 매우 심각한 변비에 걸려 있었을 수도 있다. 사위 다윗을 죽이려고 여기 저기를 헤매고 다녔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변비에 걸려 어쩌면 동굴안에서 볼일 보는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다윗이 옷 자락을 자르는 것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상상일뿐 그 이상은 아니다.!) 


예루살렘 다윗성에서는 주전 6 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돌로 된 좌변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로 보건데 이스라엘에도 개인 화장실이 집에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예루살렘 성전밖 북서쪽에는 미크베 (정결의식탕)와 함께 화장실이 있기도 하였다. 미쉬나에 의하면 성전 밖에 있는 화장실은 열고 닫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화장실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도 하였다. 


 

 

사진: 예루살렘 다윗성에서 발견된 좌변기 


탈무드에서는 대소변을 보는 것을 매우 정한 것 (purity)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몸에서 부정한 것들을 빼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대소변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막 7:18-19). 


즉 사람이 음식을 먹고 나서 뒤로 나오는 대소변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야말로 (막 7:20-23)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바울도 대소변을 언급한다. 이번에도 한글 성경은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배설물"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헬라어 "스쿠발론" 은 빌립보서 3:8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좀더 원색적으로 쓰레기나 똥 을 의미한다.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들, 소위 말하는 그가 갖고 있던 화려한 스펙들, 세상적으로 유익하던 것들을 전부다 똥으로 여겼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7-8). 


이 글을 쓰면서, 앞으로는 볼일 볼때 내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점검해서 그것도 화장실 물과 함께 내려버려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분쟁. 사기. 수군 수군. 능욕. 교만. 자랑. 부모 거역. 배약. 무정함. 무지비함. 


이 구린내나는 변(dung)들. 암(cancer)적인 것들을 변과 함께 버리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서 가장 고상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알랑한 지식  덩어리들을 버리기를 소망한다. 



참고 문헌: First Person: Privies and Privacy by Hershel Shanks (Mar/Apr 2012)

   Roman Latrines: How the Ancient Did Their Business by Ann Olga Koloski-Ostrow (May.Jun 2004)

Jodi Magness, Stone and Dung, Oil and Spit: Jewish Daily Life in the time of Jesus. 130-144. 


1번과 2번 사진은 Biblical Archeology Society Online 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