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라사인가?

Biblical Site 2012.08.30 14:34 Posted by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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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마 8.28)


예수께서 바다 건녀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막 5. 1)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눅 8. 26)


예수께서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한 사건은 위 세 성경에 다 나온다. 특이한 점은 성서 기자들의 지명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말 성서에서는 가다라와 거라사로 기록되었지만, 실제 헬라어 성서는 3개의 다른 스펠링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헬라어 사본들을 살펴 보면 위 세개의 서로 다른 지명이 나오기 때문에 딱히 어느 것을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날도 동일한 지명이 각각 달리 불리는 경우들이 있기에 혹 고대 시대 당시 가다라와 거라사는 동일한 지명인데 호칭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사진- 거라사 지역 


거라사 (혹은 가다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두개의 추정지가 있는데 갈릴리 바다 동쪽 산비탈 지역과 현재 요르단에 있는 제라시를 그 추정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 본문의 지리 정보에 의하면 요르단의 제라시가 그 추정지가 되기는 어려운듯 하다. 예를 들면 위에 언급된 성서 본문은 예수께서 가신 거리사를 갈릴리 맞은편 이라고 되어 있다. 특히 막 5:2는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림이 무덤..." 이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께서 방문하셨던 거라사는 갈릴리 바다 동편 해변에서 아주 가까운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참고로 요르단의 제라시는 갈릴리 바다에서 약 50 킬로미터 동쪽으로 더 가야 한다. 


예수 시대 당시에는 약 16개의 선착장이 있었고 갈릴리 바다 동편에도 선착장이 있었다. 현재도 갈릴리 바다 동편에 있는 엔게브는 선착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엔게브에서 거라사 (히브리어로 쿠르시)는 약 10분 거리에 있다. 따라서 성서 본문의 정보와 갈릴리 바다 동편에 있었던 선착장을 근거로 하여 거라사는 갈릴리 바다 동쪽 해변 근처에 있던 마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 거라사의 거주민들은 누구였는가? 세 복음서 기자들 모두 "가다라 지방" 혹은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기록을 하는데, 이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살았다는 증거로 볼 수가 있다. 게다가 이들의 직업은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었으니 레위기법에서 부정한 짐승으로 규정한 돼지를 유대인들이 사육하였을리가 없다. 


예수 시대 당시의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서쪽에 "디베랴 도시"를 건설한다. 주로 갈릴리 바다 서쪽과 동쪽에는 이방인들이 거주하였고 북쪽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였다. 예수의 주 사역지인 가버나움, 고라신, 그리고 벳세다 역시 모두 갈릴리 바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사진 - 거라사 지역, 멀리 구름 아래로 보이는 곳이 갈릴리 바다 북서쪽


거라사 사건의 특이한 점은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막 5:1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눅 8:39) 이다. 예수께서는 치유와 귀신 축사를 행하신 이후에 유대인들에게 조용하고 잠잠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거라사 사건에서는 치유를 받은 사람에게 명하기를 동네에 들어가서 전하라고 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라사인들은 예수께서 그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예수께서는 그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실 수가 없었다. 그러하기에 치유받은 사람을 파송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볼때 거라사는 유대인들의 주 거주지인 벳세다나 가버나움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배를 타고 예수의 주 사역지를 방문할 수도 있었고 쉽지는 않겠지만 걸어서도 갈릴리 바다 북쪽으로 가서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관계라는 것이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율법적 장애가 있는지라 (참고 사도행전 10장) 거라사인들이 예수의 사역에 대해 소문을 들었다 하더라도 예수를 방문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이 돼지를 사육하는 이방인들의 마을에 들어가서 사역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가능하셨겠지만, 율법에 근거하여 예수의 제자들은 아마 마음이 매우 불편하였을 것이다. 


거라사는 역사적으로 알렉산더가 이스라엘과 시리아 지역을 점령한 주전 330년 이후에 세워진 데가볼리 지역에 속한 헬라 문명이 자리하고 있었던 도시였다. 거라사는 당시 히포스 혹은 아람어로 쑤시타로 불리는 데가볼리의 한 마을이었다. 지금도 쑤시타에 가면 헬라와 로마 시대 당시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훗날 비쟌틴 시대가 이스라엘에 뿌리를 내리면서 헬라와 로마 문명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쑤시타에는 지금도 교회터들이 남아 있다. 




사진 - 쑤시타 (히포스) 


거라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돼지를 사육하던 마을이었고, 헬라 문명이 찌들었던 곳이지만 훗날 이곳에 수도원이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단순히 비쟌틴 문명이 이스라엘에 들어왔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거라사의 광인이 예수로부터 치유 받은 사건 그리고 그가 전하였던 간증! 예수께서 자신을 치유했다는 간증은 분명 복음의 씨가 그 땅에 심겨지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뿌린 복음의 씨가 훗날 교회가 세워지는 기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에수께서는 자신이 가지 못하는 땅에 거라사의 한 사람을 보냈다.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보내는 일을 하신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보내는 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할일이며, 거라사의 광인처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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