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벽

Biblical Site 2012.06.13 00:43 Posted by Israel

높이 18미터, 길이 488미터의 벽, 골곡 깊은 유대 역사의 산 증인, 유대인에게 가장 거룩한 성지...코텔 하마아라비 (서쪽벽, 일명 통곡의 벽)... 


주전 37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른 에돔 족속의 후손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성전 확장 공사를 시작한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이 초라하였던 스룹바벨의 성전 (제 2차 성전)을 보며 과거의 영화로운 위대한 성전의 기억을 담고 있던 노인들은 그 기억을 눈물로 씻어내지 않았던가. 





수백년 동안 외세의 침입과 우상 숭배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그 성전에 헤롯은 매쓰를 가한 것이다. 석공들과 당대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기술진 그리고 헤롯의 탁월한 건축술을 총동원하여 성전을 확장한다. 그러나, 성전 확장 공사는 그의 종교적 열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다만 유대 정통 혈통을 지니지 못했던 그이기에 유대인의 환심을 살 필요성이 있었다. 더 나아가 고대 시대의 다른 왕들처럼 자신의 업적을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건축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헤롯은 돌을 쪼개고 쌓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헤롯이 성전 확장 공사를 하는 중 가장 고난이도의 작업이 요구되었던 것은 지진으로부터 성전을 보호하는 것과, 산지 위쪽을 평탄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전 주변의 고르지 못한 산지의 계곡 사방에 돌을 쌓도록 명하였다. 돌을 쌓은 후에 굴곡진 빈 공간을 다시 돌을 쌓는 방법으로 헤롯은 성전산에 거대한 플라자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성전 주변 사방에 쌓여진 돌들은 벽이 되었다. 그 벽이 지금도 성전산에 남아 있다. 통곡의 벽 (서쪽벽) 역시 헤롯이 쌓아올린 것이다. 예루살렘 구도시 동쪽과 남쪽에서는 헤롯이 남긴 돌들의 유산을 분명하게 볼 수 있고 북쪽은 이미 집들이 들어서 있기에 성전산 플라자 벽을 보기가 용이하지 않다. 





다른 방향의 벽들과 달리 서쪽벽은 유대인들이 접근 가능한 곳이었다. 로마 시대를 거쳐 비잔틴 시대, 그리고 초기 아랍 정권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해마다 이 서쪽벽을 찾았다. 그리고 그 벽에 서서 눈물의 기도를 하늘에 쌓아 올렸다. 훗날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후, 서쪽벽은 요르단의 손에 넘어가게 되고 유대인들은 그 서쪽벽으로의 접근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시온산에 올라가서 서쪽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의 손에 서쪽벽이 넘어오기 전 요르단 정부는 서쪽벽 플라자를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의 수용소로 사용하였다. 


통곡의 벽은 헤롯이 쌓아올린 돌들의 유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통곡의 벽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늘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유는 솔로몬이 성전 봉헌 기도를 할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 중 하나가 "내가 이 성전을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전은 무너졌으나, 그 성전을 지탱하던 통곡의 벽에 하나님의 임재가 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유대 전승에 따르면 성전산은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된 곳 아담이 살았던 곳이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려 하였던 곳이다. 하란 땅으로 도망하던 야곱이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게다가 솔로몬과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졌던 곳이다. 


민족 전통의 유산이 숨쉬는 통곡의 벽이기에 유대인들에게 통곡의 벽은 그들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1967년 6일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통곡의 벽에 기대서서 기도하는 장면은 얼마나 그들이 이 통곡의 벽을 사모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날 통곡의 벽에서는 바르 미쯔바 (계명의 아들, 유대 성인식) 의식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 사진 출처: 사진작가 David Rubinger 

*** 이 사진으로 인해 루빈거는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6일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통곡의 벽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아내와 함께 좋은 사진을 고를 때 이 사진보다는 랍비가 토라를 들고 학생들과 함께 통곡의 벽으로 들어오는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그의 아내는 이 사진을 최고의 사진으로 꼽았다고 한다. 루빈거는 자신이 찍은 이 사진을 군 관계자에게 전달했고 이스라엘 군은 저작권를 고려하지 않고 이 사진을 인화하여 6일 전쟁사 책에 담았고 다른 사진사들은 이 사진을 마치 자신들이 찍은 것처럼 속여 팔기도 하였다. 훗날 루빈거는 저작권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고 고백하였다



과거 유대인들은 헤롯을 미움을 뛰어넘어 증오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헤롯이 건축한 그 서쪽벽 (통곡의 벽)에서 민족 애환의 역사의 숨결을 기록하는 것을 보노라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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