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할례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적 상징이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 17:10). 하지만 할례는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전통이 아니다. 고대 셈족들중에는 할례 의식을 행하는 민족들이 있었다. 서부 셈족들, 이집트, 가나안, 암몬, 모압, 에돔, 페니키아, 그리고 아람 족속들은 할례 전통을 갖고 있었다. 반면 아카디안, 앗수르, 그리고 바벨론 사람들이 할례를 행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다. 


사진: 올리브 산 중턱에 있는 눈물교회내에서 바라본 성전산


성서에 나오는 헷족속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성서 창 34장에서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 이야기에 등장하는 헷 족속은 할례받지 않은 백성이었다. 블레셋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삼하 1:19-20). 

가나안에 정착하였던 해양 민족들중 하나인 블레셋은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다른 해양 민족들은 할례를 받았다. 카르낙 비문 (The Great Karnak Insciipition)에 의하면 Ekwesh, Shekdesh, Sherdani 부족들은 할례를 받았다. 이 해양 민족들은 이집트 바로 Memeptah (1212-1202 B.C.E)가 리베리안- 지중해 지역을 공격하였을때 당시 생포되었던 포도들의 명단에 등장한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할례받은 포로들은 손가락만을 잘랐다. 반면 할례를 받지 않은 포로들은 그들의 생식기를 절단하였다. 

고대 가나안인들과 이집트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이유는 성인이 되었다는 표시이자 결혼을 할 수 있는 연령이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아랍어로 hatana 는 "할례를 행하다" 라는 뜻인데, 신랑, 사위, 그리고 장인 이라는 단어들은  htn 라는 어근에서 파생한 것들이다. 디나의 강간 사건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족속에게 결혼의 선결 조건으로 할례 받을 것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사울이 다윗에게 미갈의 결혼 지참금으로 블레셋인들의 포피를 요구하는 것 (삼상 18:25) 등은 당시 할례 의식이 결혼 관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모양으로 할례를 행하였을까? 앗수르의 라기스 점령 벽화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포로들의 성기를 보면 귀두 부분이 완전히 드러나도록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V 자 형태로 귀두를 덮는 포피 부분을 잘라내는 식으로 할례를 행하였다. 


사진: 여리고 시험산 수도원에서 바라본 여리고 전경  

그레코 로만 시대 당시에는 할례 의식을 매우 천박한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특별히 셀루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175-163 B.C.E)는 할례를 받을 경우 사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한편 헬라 문명의 침투는 유대인 스스로 할례받은 성기를 다시 할레받지 않은 모양으로 변형시키는 것 (epispasm)이 유행이기도 하였다.

유대 1차 봉기 (66-73 C.E) 이후에, 유대인들은 제우스 신전의 유지 보수를 위해 드라크마 두개를 세금으로 내야만 했다. 에피스페즘은 이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헬라문화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시민권을 취득하는데 있어 할례는 걸림돌이 되었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취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 생활에 애를 먹었고 결국 일부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위해서라도 에피스페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세속 사회와의 타협을 시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유대 문학들은 신랄하게 비난을 하였다. 쥬빌리의 저자는 헬라 문명을 사단의 세계로 규정하고 할례만이 이 사단의 소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1세기경 유대 철학자인 필로는 할례를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는 할례는 다산의 지르길이며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기술하였다. 

한편 유대인들중에는 할례 의식을 행하되, 성기의 귀두 부분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포피의 일부분만을 제거하는, 눈가림식의 할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이 역시 에피스페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 1 마카비서 1:11-15에는 이런 방식의 에피스페즘이 얼마나 만연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랍비 문학에서도, 에피스페즘을 행햐는 이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다고 경고를 하였고 탈무드 역시 에피스페즘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2세기경의 유대 주석가, 람반 (마이몬데스) 역시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은 다음 세계의 유산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할례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행 15장에서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지키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에피스페즘이 성행하던  당시에 이처럼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믿는 유대인들의 성향이 매우 종교적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할례받지 않은 이방 신자들과의 영적 교제는 결국 유대인들의 에피스페즘을 용인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일부 믿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 신자들의 유대교인화 (Judaising of Gentile Believer)는 할례와 모세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는데, 만일 이방의 신자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수에서 면죄부를 주게 되면 점차적으로 믿는 유대인들의 할례 의식을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한다. The Jewish Life Cycle의 저자 Daniel Sperber에 따르면, 할례 의식이 아프리카의 민속 신앙 그리고 무슬림들의 전통과 혼합된 형태, 그리고 미신적인 의식과 함께 진행된다. 예를 들면,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혹은 더 많은 아기를 낳고자 소망하는 여인들은 할례후에 포피를 꿀에 섞어서 먹기도 한다.
  
 위 글은 Circumcision: who did it, who didn't and why by Philip J, King BAR 32:04, Jul/Aug 2006과 Epispasm-Circumcision in Reverse by Robert G. Hail BR 8:04, Aug 1992 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