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하아레츠 인터넷판 기사에 실린 이스라엘군 장교의 모습입니다. 

Lieberman to Un chief: International community is two-faced for condemning Israel 

이스라엘 외무 장관인 리베르만은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에서, "국제 사회는 양면성의 얼굴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최근 한달동안 전 세계에서 있었던 테러 혹은 반정부 시위 - 태국,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그리고 인도 -로 인해 최소 500여명이 희생 당했지만 국제 사회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이번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구호 물자 수송선 사건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한편, 한 하아레츠 신문 사설에서는,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이 설치한 덫에 빠져버렸다고 말합니다. 즉, 구호 물자 수송을 봉쇄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로부터 윤리적, 인도적 비난을 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구호 물자 수송을 허락한다면, 반 이스라엘 정치 세력인 팔레스타인 하마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전쟁 물자를 공급하게 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어느 한편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과의 골이 깊은 첨예한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장구한 역사를 지닌 Anti-Israel 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스라엘은 God-killer 라는 죄명을 그 목에 걸고 살아왔습니다. 서구 유럽 사회가 자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의 잔상들은 역사의 현장 곳곳에 서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향한 비난은 가실줄 모릅니다. 

혹 이 블러그를 방문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면, 냉철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스라엘은 비난을 받아야 하는 그 대상인가? 과연 마땅히 비난해야 할 이유를 갖고 비난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비난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어떨까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공의와 정의가 외쳐지고 그것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리고 약자편에 서서 그 약자를 보호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되겠지만,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정죄하기보다 사랑으로 끌어 안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손에 들려진 돌을 내려 놓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은 주의 사랑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사실, 이런 정치적인 사안을 이 블러그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이번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가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긍휼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받은 용서와 긍휼은 어디에서 온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