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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의 다락방


사진: 마가의 다락방 한쪽에 있는 기둥에 새겨진 "펠리칸"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 펠리칸 새는 새끼들에게 먹일 것을 구하지 못하였을 때 자신의 가슴살을 새끼들이 뜯어 먹도록 한다. 이런 전승이 생긴 이유는 펠리칸 새의 부리 때문 이랍니다. 왜냐하면, 펠리칸은 먹이를 잡아서 긴 부리 아래쪽의 주머니처럼 생긴 저장 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새끼들에게 준다고 합니다. 이때 새끼들이 그 부리를 어미 입속에 넣어 먹을 것을 받아 먹는 것을 보고, 마치 어미의 가슴살을 뜯어 먹도록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전승이랍니다. 이 펠리칸 새를 마가의 다락방에 장식한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로 자신의 희생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이 의식을 늘 행하라고 하신것을 펠리칸 새를 통해 말해주는 것이죠.  펠리칸 새 다리 아래쪽에 있는 괴상한 모양은 도데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성지 순례 안내중, 마가의 다락방을 가고 있는데 한 자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죠?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요? 그 당시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마가의 다락방" 이라고 늘 말해 왔지만 정작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던 것이죠.

 

몇일전 주일 예배후에 마가의 다락방을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 부부를 모시고 갔었죠. 그 전날 성경과 인터넷을 통해, 그 자매로부터 받았던 질문의 해답을 늦게 나마 찾아 보았습니다. 딱히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은 없더군요. 다만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순교를 당한 후 감옥에 투옥되었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풀려나는 사건을 보면, 5절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에클레시아)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그리고 12절에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오이코스)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등의 구절들을 통해 요한 마가의 집이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또, 막 14:13-16, 그리고 눅 22:7-13에는 "큰 다락방 (aÓna¿gaion me÷ga)"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 (uJperwˆ◊on)으로 올라가니" (행 1:13) 라는 구절에서 누가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사용한 단어의 원 의미는 방이 여러개로 나눠져 있는 위층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사용된 헬라어의 원 의미는 넓은 공간이 있는 하나의 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 준비를 위해 두명의 제자들을 성내로 보낼때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 (MAN)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은 여자들이 하는 일 (예를 들면, 라헬, 수가성 여인)이지만, 두 본문에서는 남자가 물을 길렀다는 것입니다. 암튼 막 14:14를 보면, 그 이름 모를 남자는 하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라고 되어 있는 본문을 보면 그렇게 추정해도 무리는 아닐듯 합니다.

 

성지 순례를 와서 충격을 받는 것중 하나가 있다면, "다락방"의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가옥 구조를 성경의 "다락"에 그대로 대입시켜서 상상을 했던 분들은 눈앞에 펼쳐진 다락의 크기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한글 성경에 "다락"이라고 번역된 것을 영어나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upstair room or upper room 이 됩니다. 즉 "위에 있는 방"이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헬라어 원문에서는 "메가" (great) 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은 것으로 봐서, 상당한 규모의 방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오순절 성령 세례 이전 120명의 제자들이 기도하였던 upper room 과 예수께서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드셨던 upper room이 동일한 장소라면 그 크기가 얼마나 컷을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현재 마가의 다락방이 위치한 곳은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습니다. 제 2차 성전시대  시온산 주변은 upper city (상부 도시) 라고 불렸고, 관공서와 부유층 (주로 제사장 계열)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현재도 구도시내에 있는 유대인 지역에 들어가면 burnt house (불에 탄집) 박물관이 있는데,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만일 마가의 다락방이, 예수께서 최후의 유월절 식사를 하신 장소이고 초대교회 당시 교회 역할을 하였다면, 당시 예루살렘의 중심부에 최초 믿는 유대인 교회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가 방문하는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 당시의 것은 아닙니다. 이 곳은 12세기경에 건축된 것이고, 다락방 아래쪽에는 다윗의 가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딜 가려면, 사정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뇌물 (???) 공세를 해야 할때도 있죠. 사진은 마가의 다락방 지붕위에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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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우리 2009.12.31 0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락방이란 번역이 적절치 않군요. 오히려 사랑방의 개념이 맞지 않나 싶네요. 위층 사랑방... 아이들이 무척 크군요. 뇌물공세에 정말 동감합니다.